[향, 제가요] 오래된 트로트명곡에 대한 단상
-1930년대 ‘목포의 눈물’과 1950년대 ‘봄날은 간다’-⑤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우리 정통대중가요에도 명곡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것은 분명 1930년대부터 시작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90년 가요사에서 60년대 이전의 가요에 국한해 짚어보자면 최고의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노래는 1935년도에 레코드를 취입한 이난영 씨의 ‘목포의 눈물’에서 시작하여 백설희 씨가 1953년도에 부른 ‘봄날은 간다’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지만 두 곡은 오늘날까지 노래 제목에서부터 내용 일부분이나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인에게 회자되며 사랑을 받고 있다 생각되는 곡이기에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포의 눈물’과 ‘봄날은 간다’가 “어떤 점에서 명곡일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봅니다. 먼저 ‘목포의 눈물’은 제목부터 묘합니다. 문학적 수사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시 이름에 눈물이라는 말을 매칭 시킨 것은 무척이나 이질적이고도 엉뚱한 표현이라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언어를 접목하여 은유든 직유법이든 의미 전달에 성공하는 경우에는 상식을 파괴하는 표현법으로서 희소성을 갖습니다. 예술 분야에서만 허용되는 특별한 문법체계이겠지요. 더하여 발표 당시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엔 좀 더 우월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어나 노랫말이 다양하게 해석될수록, 얼핏 들으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생각의 파장이 넓고 깊을수록, 명곡.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하겠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이런 점에서 제목부터 한 점 따고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겠고요. 노랫말도 그렇습니다. 내용이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고 뚜렷하게 잡히는 것이 없지만 애매하고도 추상적이기까지 한 요소들이 직선보다는 곡선의 멋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성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특이한 점이죠.

 

‘목포의 눈물’의 존재감은 시대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목포는 눈물’이다. ‘목포는 설움이다’라는 정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노래가 나온 시기는 1935년 일제 강점기입니다. 목포 주변에 있는 1004개의 섬들은 결코 기득권층이 사는 곳이 아니었고요. 섬은 목포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기대어 염전을 일구고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는 식민 백성들의 터전이었습니다. 목포가 대처로 나온 가난한 집의 맏형이라면 주변의 섬들은 형의 출세 소식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두메산골의 동생들이라고나 할까요. 신흥도시 목포의 뒷자락엔 그렇게 숨죽이고 사는 사람들의 터전 천여 개가 있었습니다. 목포는 지금도 ‘섬들의 수도’라 불리며 애잔한 정취를 발산하고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노래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첫 구절은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으로 끝나는데요. 여인은 이별로 인하여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그게 바로 ‘목포의 설움’이라고 주장합니다. 재밌는 것은 이 노래의 청자들은 그 같은 주장에 이의 없이 동의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점이죠. 여인의 눈물이 ‘목포의 눈물’이고 이어 목포의 눈물은 곧 ‘망국의 설움’이라는 식의 가치 전도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 역시 이심전심 이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원곡자인 이난영(이하 경칭 생략)을 보죠. 약간의 콧소리 섞인 고음에 대책 없이 넓은 음역 대에서 애조를 가득 띠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난영에게서 배태되는 애조는 일제 강점기라서 그런지 유난히 세기말적인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는 맑고 좋다는 식으로 단순 명쾌하게 규정할 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탁음이 섞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문득 “요즘 가수들 중에 누가 저처럼 치명적으로 애조 띤 음색으로 변화무쌍한 결을 드러내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백설희의 목소리는 이난영에 비해 굵고 맑은소리를 자랑합니다. 참 백설희 이전에 꾀꼬리라는 애칭을 가졌던 황금심에 대해서 소개해야겠네요.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보다 3년 늦은 1938에 발표됩니다. 이후 1953년에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나오면서 우리 정통대중가요 계는 그야말로 최고의 여가수 3인방을 배출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백설희의 목소리는 은쟁반에 알이 굵고 실한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라 한다면, 황금심의 소리는 백설희의 것보다는 조금은 더 얇고 맑고 섬세하게 구르는 옥구슬 소리라고 밖에는 더 이상 알맞은 표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나저나 현대에 와서도 즐겨 소환되는 노래에는 그만의 특장점이 있습니다. 정상급 가수들 중에서 다시 부르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곡이죠. 그런데 발표 당시에는 대박이 나고도 세월이 흐른 후엔 관심이 덜한 경우가 있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멋과 한 그리고 대중성이 조금 더하고 덜한 차이에서 난다고 생각합니다. 탁월한 보이스의 소유자인 황금심의 노래는 앞의 두 곡보다는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됩니다. 이에 비해 ‘목포의 눈물’과 ‘봄날은 간다’는 멋과 한 그리고 대중적인 면에서 항상 기시감을 주고 있습니다. 곡의 수용자들이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응용하고 대입할 수 있는 융통성을 허락하는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봄날은 간다’도 ‘목포의 눈물’에 못지않게 제목 멋있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곡입니다. 이 노래는 6.25동란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나온 곡으로서 우리나라 시인 100명이 응답한, 광복 이후 대중가요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로 선정된 곡으로 알려져 있죠. 노랫말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첫 구절은 특히 시각적 이미지가 강하죠. 그림 한 폭이 그려집니다. 연분홍 치맛자락을 휘날리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 한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1953년이라면 망국의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습니다. 더구나 6.25의 상흔 한복판에서 힘든 생활고를 겪던 때였고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물로 허기를 달래는가 하면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람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래의 첫 소절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며 낭만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랫말의 힘이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요란한 약속도, 연인의 사랑의 맹세도 공수표로 맴돌고 있는 사이에 봄날은 흔적 없이 가버립니다. 열아홉 처녀는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꽃이 필 때도 울고 꽃이 질 때도 울었다 합니다.

2절도 3절도 ‘봄날은 간다’로 끝나는데 맥락은 똑같습니다. ‘실없는 그 기약에 매달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봄날은 갔다 하고 ‘얄궂은 그 노래만 듣다가’ 봄날은 또 속절없이 갔다 합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거듭되는 약속과 맹세에도 불구하고 봄은 쉽게 오지도 않거니와 왔다가도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봄날은 간다’ 역시 곡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속적 향토적 감성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아주 모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봄날은 간다’와 ‘목포의 눈물’은 우회적인 표현과 곡선적인 미학에 세대 불문하고 다양한 의미로 재해석하여 부르기 좋은 다면성을 가지고 있는 노래로 여겨집니다. 하여 인간의 내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까지 실어 담을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해주면서 변함없이 사랑받는 곡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⑥에서 계속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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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2 22:10 2020/09/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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