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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이 글은 한 연예인을 중심에 놓고 쓴 칼럼입니다. 그동안 정치 쪽 기사와 칼럼을 주로 써온 기자로서는 다소 뜬금없는 분야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게 된 연예인은 ‘송가인’이라는 트로트가수에 대해서이니까요. 때마침 불붙기 시작한 트로트장르에서 일어나는 관심과 유행, 대중문화현상에 대한 소회까지를 폭넓게 밝혀보고자 합니다.】

삼국지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또 반드시 나누어지는 법이다.’ 천하대세를 놓고 다투는 영웅호걸들의 각축전과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설파해놓은 명 구절입니다. 하물며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그래서 너무나 흔한 존재일지 모르는 민초들의 희로애락을 구현해낸 대중가요와 대중예술가들의 명멸에 이르러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명곡과 명가수

명곡이란, ‘뛰어나게 잘 된 악곡’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가요 사에 불멸의 명곡을 남긴 가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스트롯’ 우승자로 뽑혀 트로트의 진가를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는 송가인 이후에도 가수는 많고 세상에 나올 노래 또한 부지기수일 테지요. 장담하건대 가수와 곡의 운명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중가요라는 장르가 민초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죠.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깊이 파고들어 그들의 일거 수 일 투족을 정직하게 반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같은 가요의 선(善)기능이야말로 가요가 종속변수가 아닌 대중예술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유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마침 생각 몇 개가 엮어집니다.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 내로라하는 정상급 가수들이 공통적으로 도전하여 부르고 있는 노래, 중장년층들의 가슴속에 머물며 무한한 애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 이들은 대부분 명곡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신선하게 등장한 미스트롯 송가인이 ‘트로트 계의 대세’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중장년층들’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중장년층들은 최소 40,50에 6070세대를 넘어 그 윗세대 연령층에까지 맞닿아 있는 연배들로서 결코 간단치 않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중요한 시기를 살아낸 분들로서 멀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8.15 광복을 맞고 6.25전쟁까지 겪어낸 대한민국의 산증인들입니다. 그 후엔 경제개발을 이루며 산업전사로서의 소임을 다 했고요.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세계 무역량 12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는 얘기죠. 그 사이 독일 파견 광부는 없었나요? 베트남 전쟁을 치러내며 멀리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이념전쟁의 모순과 국제간 세력균형의 엄중함을 몸소 겪어낸 분들이 아니던가요? 열사의 땅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달러를 벌어들인 산업역군들 또한 지금의 중장년층 들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장년을 넘어 그 윗세대 연배들은 그래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한다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때마다의 풍랑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남은 백전노장들입니다.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라도 이 땅의 중장년층들은 문화 소비주체로서도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필자는 앞에서 트로트장르는 무려 ‘30년 이상 찬밥신세였다.’는 주장을 폈더랬습니다.

즉 트로트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은, 비슷비슷한 실력의 가수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노래를 주야장천 불러대며 붙박이 터줏대감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때문이라는 논지를 폈습니다. 이에 비해 대중음악 소비자들은 보다 수준 높은 음악을 고대해왔고, 아이돌가수출신들의 댄스곡처럼 정통가요에도 한과 흥을 세련되게 녹여 리드미컬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뒤지지 않는 노래를 들려달라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귀명창이란 말’이 왜 있는데요? 애창곡 한두 곡쯤 없는 사람 없고 좋은 노래를 들을 귀를 안 가진 사람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어 ‘목포의 눈물’이나 ‘봄날은 간다’와 같은 불후의 명곡에 도전한 후세대 가수들을 보죠. 내로라하는 정상급 가수들이 옛 명곡을 찾아 부르고 도전하지만 뭔가 늘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2%라고 해두죠. 트로트는 그렇게 향상심 없고, 소양 부족한 음악인들의 무사안일주의와 무관치 않았던 거죠. 이 땅의 귀명창이자 산업역군이었던 중장년층들이 오랫동안 침묵했던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같은 노래라 하더라도 기본기 탄탄하고 보컬 능력을 남다르게 갖춘 사람이 부른 노래는 전달력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컨대 필자가 생각하는 명곡이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면서도 시대정신이 살아 있고,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감을 자아내게 하며, 위로와 평화를 선물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 담아 만족감을 주고, 더해서 인생을 관조하게 만들고,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아 삶에 기폭제가 되는 노래라면 가히 명곡이라 할 것입니다. 그 무엇이든 예술작품은 아름다워야겠지요.

흔히 ‘한과 흥은 통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한이 눈물이라면 흥은 기쁨의 영역에 속한다.’고 예단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슬퍼서도 울고 너무 기뻐도 우는 존재죠. 춥고 시리기만 하던 겨울의 끝이 곧 봄의 시작이듯, 좋은 노래에는 한과 흥이 맞물려 있기 마련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곡일수록 인간을 치유와 회복의 길로 인도하는 힘을 가지기에 명곡은 그렇게 만인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오늘날 내로라하는 정상급 가수들이 ‘불멸의 노래 부르기’를 시도하는 이유죠. 덕분에 애청자들은 원곡과 정상급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비교 감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적인 풍요가 곧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에 좋은 노래와 좋은 가수에 대한 갈증은 여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명곡이 주는 감동의 힘이 막강할수록 메신저들의 능력치는 그래서 필요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곡과 명가수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불멸의 명곡, 중장년층들의 팬심, 송가인으로 연결되는 세 가지 핵심 고리가 접점을 이루며 트로트 장르는 대중음악의 중심부로 들어왔다고 진단합니다. 가수 송가인, 부쩍 타 장르 음악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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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5 15:20 2020/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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