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기다림, 정통트로트가수 송가인 -②
-미스트롯 우승자를 계기로 나타난 문화현상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이 글은 한 연예인을 중심에 놓고 쓴 칼럼입니다. 그동안 정치 쪽 기사와 칼럼을 주로 써온 기자로서는 다소 뜬금없는 분야의 글이라 할 수 있지요. 관심을 가지게 된 연예인은 ‘송가인’이라는 트로트가수입니다. 때마침 불붙기 시작한 트로트장르에서 일어나는 관심과 유행, 대중문화현상에 대한 소회까지를 폭넓게 밝혀보고자 합니다.】
송가인 팬덤 현상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트로트 가수가 팬덤을 형성하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인기가수로 등극하리란 것을요. 사람들은 가수 송가인에게 열혈 팬덤이 형성되는 것을 보며 “이게 뭔 일이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를 중심으로 유명 아이돌가수에게나 있을 법한 팬 카페가 형성됐습니다. 그것도 회원수가 5만을 훌쩍 넘기는 데까지 이르자 이는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신호가 됐습니다.
트로트 가수에게 팬덤이 생긴 일이 이상한가요?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을 돌아보면 그와 유사한 사건과 전조증상이 이미 있어왔다 합니다. 그걸 통계적으로 연구한 사례가 하인리히 법칙이고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가설, 하인리히 법칙이 시사해 주는 핵심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적 흐름도 그렇고 한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탄생도 그가 받아들여질 만한 기반이 형성돼야 함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송가인 팬덤 현상은 그래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그 이유와 배경을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해보려 합니다.
30년의 기다림, 정통트로트 가수 탄생
송가인이 ‘트로트계의 대세’로 등장한 것은 작년 중반의 일입니다. 시장에서 죽은 장르로 취급받던 트로트가 30년 만에 부활한 거죠. 그토록 오랫동안 트로트 팬심이 발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 인성과 실력을 동시에 갖춘 가수가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모릅니다.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이입시키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고품격의 실력자가 없었던 탓이었을지 모릅니다. 예컨대 정통가요를 사랑하는 팬심은 마음을 줘도 아깝지 않을 누군가를 고대하고 있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트로트의 위상은 미미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방송출연은 공영방송에 존속하고 있는 ‘흘러간 옛 노래’ 코너 아니면 변두리 나이트클럽과 지방의 행사장 정도였으니까요. 트로트는 굳이 관심 갖지 않아도 될 음악, 술 한 잔 마시고 가볍게 소비해도 되는 음악쯤으로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방송에 비친 남녀 가수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반짝이 옷과 화려한 드레스 차림, 변할 줄 모르는 노래 스타일, 더 이상 추억과 활력을 선사하지 못하는 진부함으로 휘감은 만년 터줏대감과 같은 이미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세월 가요계는 검열과 금지곡으로 수난을 겪던 군사독재시대를 거쳤는가 하면 다양한 음악이 뒤섞이며 분화하던 시기를 거쳐 댄스음악으로 가는 전환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90년대까지는 트로트, 포크음악 그리고 발라드와 댄스음악까지 공존하던 시기로 일컬어지지요.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는 한국 가요에 랩을 섞는 등 급속히 댄스음악 위주로 흐름 자체가 확 변해버립니다.
그 사이 드라마에서부터 한류열풍이 일어납니다. 대장금과 겨울연가 굉장했지요. 고이즈미 일본 총리 옆에 나란히 선 한류스타 배용준을 기억하실 겁니다. 문화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대중음악 쪽에서도 본격적인 대형 기획사의 매니지먼트가 시작됩니다. 기획사에 의해 배출된 젊은 댄스가수들이 K-Pop의 도약을 이루며 맹위를 떨치는 시대가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신세대 댄스그룹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은 그들만의 팬 문화를 형성하는 추세를 구축하고요. 이를 보며 방송사들은 시청률과 광고료 획득을 위한 광맥이나 발견한 것처럼 재빨리 아이돌가수 위주로 음악방송을 도배합니다. 음악의 소비 형태도 음반소비에서 음원 소비시대로 바뀌며 가수들의 연령대는 더 젊어지고 세대교체도 더 빨라졌습니다.
그야말로 아이돌그룹의 댄스음악은 도약기를 맞아 동방신기로부터 시작하여 데뷔 연도가 2007년도로 같은 원더걸스, 소녀시대, 카라 등이 모두 활발한 활동을 펼칩니다. 때마침 일렉트로닉 댄스 팝인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1차 정점을 찍습니다. ‘강남스타일’은 개방·공유·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SNS 유튜브 세대가 함께 놀고 공유하기 딱 좋은 음악 스타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은 한국 대중음악으로는 최초로 4주 연속 빌보드차트에 올랐으며 유튜브 동영상 사상 10억 뷰가 넘어서는 기록을 보이기도 하죠.
한국의 대중음악은 더한층 미국 한복판에서도 통한다는 자신감으로 들썩였습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성공의 기반 위에 작금에 이르러서는 BTS,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등 수많은 아이돌 출신 댄스그룹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적으로 대활약을 펼치는 약진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복판에 송가인이 등장하였습니다. 4050, 6070세대뿐 아니라 젊은 층들까지 트로트 장르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음악적인 지평을 넓히고 이해하는데 세대 간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얘기지요. 이를 두고 문화 평론가들은 “가수 ‘송가인’이 세대통합 지역통합을 이루었다”라고 평합니다. 트로트 장르는 송가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나옵니다. 오랜만에 되찾은 트로트의 위상이자 현주소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중장년층이 소외됐던 대중가요 시장에 송가인은 30년의 기다림 끝에 나온 진짜 실력자라는 점, 여기다 품성과 인성까지 갖추며 호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송가인의 시대적 의미는 자명합니다.
4050과 6070을 넘어 노소 구별 없이 “진짜 실력은 이런 것이야!”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대중가수의 전범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첫째도 둘째도 탄탄한 실력에 절대음감, 차지고 맑은 데다 때로는 몇 갈래로 갈라지는 시시상청에 탁성을 섞어 내뱉는 음역 대, 이 모든 것이 합을 이뤄 한과 흥이 서렸으면서도 품격 있는 감성을 여지없이 품어냅니다. 가히 30년의 기다림, 이의를 달 수 없는 가창력의 소유자 송가인, 정통가요로 시작했기에 더욱 빛나는 가수입니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