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필’의 ‘1인 30인 역’,,,모노드라마 ‘하이타이’
-해태타이거즈를 소재로 한 90분간의 1인극 ‘하이타이’
연극 ‘하이타이’가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하이타이’는 왕년의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의 초대 응원 단장이었던 ‘임갑교’라는 실제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연극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극중 주인공 이만식이 IMF를 맞아 냉동 기사 자리에서 해고를 당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는데 결국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20년 만에 광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만식은 거기에서도 야구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옆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면서다. 20년간 레인저스 팀의 세탁물을 도맡게 되고, 땀에 전 유니폼을 깨끗이 빨아 다림질을 하여 라커룸으로 달려가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야구단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으며 바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돌연 한국행을 결정하는 만식, 광주 5.18 때 행방불명 됐던 아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 때문이다. 만식의 귀향 소식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구단의 유니폼 세탁을 도맡아 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월드시리즈 시구를 제안한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던 중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싶다는 피디와 작가다. 이들의 방문이 달갑지 만은 않았으나 만식은 결국 호루라기 하나로 광주 무등 경기장에서 해태타이거즈의 사생 팬들을 이끌며 관중석의 지휘자로 살았던 자신의 지난 삶을 풀어낸다.
이 극의 핵심 키워드는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를 배경으로 표출되는 당시의 광주시민들의 정서와 5.18이다. 연극 제목도 그래서 ‘하이타이’인데 만식의 세탁소 상호인 해태 세탁소(HAITA Laundry)를 미국 사람들은 ‘하이타이’라고 발음했고, 한국의 해태 찐 팬들 역시 해태를 종종 ‘하이타이’라 부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
하이타이’에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30명에 달한다. 주인공 이만식과 동생 만우를 비롯하여 구단 관계자에 이어 국보급 투수 선동열과 롯데의 최동원 그리고 홈런 타자였던 김봉연과 오리 궁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투타를 겸했던 김성한 선수 그리고 심지어 독재자 전두환까지, 이와 같은 30인 역을 배우(김필) 한 사람이 배역을 넘나들며 격동의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1인 극 형식의 모노드라마 ‘하이타이’의 러닝 타임은 총 90분이다.
연극 ‘하이타이’에는 특별한 점이 많다. 우선 내용이 재미고 발상 또한 신선하다. 평범한 냉동 기사가 자신의 타고난 끼와 신명을 주체하지 못하고 응원석에 섰다가 한국 최초로 프로야구단의 응원단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무대에서는 3.3.7박수와 기차박수 그리고 파도타기와 같은 응원기법이 동원되고, 관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인 호응과 참여로 박수와 함성을 쏟아내며 열기 가득한 흥취를 토해낸다.
연극 ‘하이타이’에는 적지 않은 리얼리티가 곳곳에 숨쉬고 있다. 인물과 사건, 에피소드와 퍼포먼스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전체적인 서사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예컨대 33년 경력의 배우가 펼치는 연기의 내공과 꼼꼼한 연출, 더하여 탄탄한 대본의 힘이 어우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그날의 기억을 마주하며’라는 3부에 이르면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스멀거려온다. 꼭 피에로 분장을 해야만 재미가 있는 것인지, 지나친 절규와 마구 쏟아내는 감정 과잉 상태여야만 감동과 호응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 이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순전한 주관적인 감상평이다. 연극 ‘하이타이’가 정극으로서도 훌륭한 요소를 갖췄으며 수많은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관객들의 자발적인 호응까지를 유도해내는 현장성 높은 극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보다 많은 절제미가 요구된다. 그쯤해서 관객은 이미 대리만족과 감동을 충분히 만끽 한 상태였고, 오랜 시간의 몰입으로 인한 감동과 감정 역시 상당히 많이 소진한 상태였기에 나도 이제 좀 ‘나만의 여백을 갖고 싶다’는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이점을 좀 알아줬으면 한다. 작가와 연출가의 냉철한 덜어내기와 편집의 미덕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가을의 전설을 만들고 싶은 극단 도시락의 가을 무대 ‘하이타이’는 대학로 후암씨어터에서 11월27일까지 평일 저녁 7시30분/토.일요일 우후 4시에 공연을 펼친다. (월요일엔 공연 없음)
*글쓴이/자유기고가 박정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