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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의 풍경, 그리고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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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시골 인심이 좋다고들 하지만 거기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사실 경험에 따르면 시골엔 시골 나름의 숨막히는 뭔가가 있으니까. 그래도 시골이라고 해서 무법천지라고까진 생각하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더 끔찍한 거 같다. 자본주의적인 경쟁과 느슨한 공권력이 순박한 어부들을 노예주로-캘리포니아의 농장주들이 그러하듯-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사실 자본주의 이전, 어쩌면 노예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래왔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 심지어 이해 당사자가 아닌 동네 주민까지도 자연스럽게 납득하는,가 씁쓸하다.

 

  별로 본성으로서의 인간의 선의란 것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말 별 것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가장 끔찍한 형태로 짓이겨 놓는 것을 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가 넘실넘실. 도시인들도 분발해야지 시골에 밀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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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회사

 

 
 아슬아슬하다. 시계의 분침은 30분을 향해가고 있고 지하철 출구에서 회사의 거리는 분침과 30분의 거리보다 더 멀리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어제 회식의 후유증인지 힘이 빠진다. 어느덧 회사 앞이다. 하지만 운명의 30분은 지난 듯 하다. 직원 과장이 박달나무 몽둥이를 뒤꿈치에 퉁퉁 튀기고 있고 그 좌우로 소위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남자 직원들과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는 여자 직원들이 줄 지어 있으니까. 아.
 
  "이 짜-식이 대리까지 달고 빠져가지고. 너 머리 길이는 왜 이래? 니가 양아치야?"
 
  직원 과장-지난 수년동안 수많은 직원들이 그의 몽둥이 아래 인간이 되었다고 하여 인간 제조기로 불리우며 회사의 업무 분위기 조성과 실적 향상에 기여한 바 작년 표창장까지 수상한 바 있는 바로 그 직원 과장-의 몽둥이가 가볍게 내 정수리를 통통 두들기고 있다. 아슬아슬한 것은 머리 길이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의 손에 가위가 들려있지 않은 것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야 너 신입. 너 치마 길이가 왜 이래? 니가 회사원이야 연예인이야? 머리는 이거 참. 염색도 하냐? 너 당담 사수 누구냐?"
 
  "저.. 원래 머리 색깔이 갈색인데요.."
 
  "누가 변명하래? 너 이따가 들어가면 너랑 니네 사수랑 직원과로 튀어와."
 
  총무과 신입에게도 사수 김대리에게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내 팔이 저린 게 더 급해서인지 그렇게까지 안쓰럽지는 않았다.
 
 
  결국 9시가 다 되어서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럭키. 과장님이 자리에 없다. 과장에게 쿠사리 먹을 일은 줄었으니 2중 과세는 면한 셈이다. 하지만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기묘할 정도의 정적. 옆 자리 정대리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디갔어?"
 
  "...부장실에. 월간보고 회의잖아."
 
  "...썅."
 
  죽음과 같은 정적은 다가올 죽음을 대비한 의식이었는가. 마침내 벗겨진 이마 한 가운데 병뚜껑 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진 과장이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다. 한 올의 완충막도 없이 중력과 싸운 그의 머리에 경의를. 과장은 뚜벅뚜벅 갓 수습을 면한 사원의 뒤통수를 강타하며 가라사대,
 
  "야 얘 위로 내 밑으로, 지금 당장 탕비실 앞으로 집합이야. 면담 좀 하자."
 
  탕비실 앞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떼 같은 줄이 늘어서 있다. 간간히 비명, 그리고 둔탁한 소리가 그보다는 덜 간간히 새어나온다. 사실 그 소리보다 더 듣기 짜증나는 소리는 넌실적이왜이모양이냐 너이따위로일하면서월차쓸용기는어디서나오냐 너업무중에누가쇼핑몰접속하래모를줄알았냐 누가업무외용무로휴대폰쓰래창문밖으로던져줘 이런 종류들이다. 이윽고 입사 동기 정대리가 허벅지를 문지르며 절룩절룩 걸어나온다. 그리고 나에게 손짓한다. 다음 너니까 들어가라고.
 
  "...야 넌 맞을 가치도 없어. 그냥 넌 사표 써라."
 
  항상 듣는 소리지만 가끔은 맞을 가치가 없어지고 싶긴하다가도 사표 쓸 생각하니 오싹해지는 오묘한 울림이다. 전셋집 융자 반도 안갚은 상황에서는 더욱. 예의 온갖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결재판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따귀가 귓등에서 춤을 춘다.
 
  "너네 부모가 회사에서 이 따위로 일하라고 가르치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다. 과장도 이 미묘한 변화를 느꼈는지 일순 말을 멈춘다. 묘한 정적이 흐른다.
 
  "...야 내가 니가 미워서 그러는거 아닌거 알지?"
 
  "...압니다."
 
  "다 너 잘 되라고 안잘리고 임원까지 달고 정년 다 채우라고 하는 거 알잖아."
 
  "...네"
 
  그리고 마침내 마대자루에 손이 닿는다.
 
  "몇 대 맞으면 정신차릴 거 같애? 니가 말해봐."
 
  내 허벅지는 한대를 외치고 있지만 날카로운 이성, 역사적 경험에서 나오는 이성은 10대를 속삭인다. 사실 이미 충분히 맞은 거 같기도 하고 이미 정신은 차린 거 같거나 혹은 더 맞는다고 정신이 돌아올 거 같지는 않다는 목소리도 어디선가 들리는 듯 하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그가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랑은 격노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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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하는 사람이 노동자이건 아니건 알 게 뭐람

 

42차 전(全) 구로동 은하-변혁주의자 테란 지회 대표자 연석 회의에서 전 은하 소비에트 보내는 성매매 하는 사람이 노동자인가 아닌가 안건 토론 속기록에 대한 의견 첨부 중 발췌
 
trans. by GlaDOS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다. 이 한마디에서 이 사람이 노동자인지 소생산자인지 소위 농경영자인지 구분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당근 몬산토 당근 농장에서 당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노동자이거나 중간 관리자일테고 충북 진천 어느 산자락에서 자기 땅을 일궈먹는 사람이라면 보통 소생산자라고 부를 것이다. 혹은 동네 할머니 30명쯤에게 일당 3만원씩 주고 농장을 경영한다면 자본가라고 규정될 것이고 마약 조직의 땅에서 양귀비를 키우고 일정 비율을 상납하고 남은 걸 암시장에 팔아서 먹고 산다면 농노라고 할 수 있다. 고전적인 단어를 듣고 싶다면 워낭소리의 소가 사실 사람이었다 ... 라면 노예란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심지어 지구탐험대에 나올법한 오지에서 부족민들끼리 조촐하게 짓고 있다면 친북좌익 공산공동체의 구성원일 확률도 있다!
 
뭐 비슷한 이치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본질적으로 어떤 계급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사실 위에 상술한 웬만한 '계급'의 역사보다는 유서가 깊으니까. 이 사람들이 이른바 생산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 혹은 생산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등등을 고려해야 견적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보면 이 사람들에게 '몸' 이외에 다른 생산 도구가 있을 수 없으니까 몸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을테니 얘들은 소생산자다 ...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일단 '몸'의 통제권이 자신에게 없는 경우는 넘어가고서라도 '몸' 하나로 성매매를 하기란 쉽지않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늘부터 성매매를 해서 월세를 내야한다고 가정하고 성매매를 하기 위한 준비물을 챙겨보자. 피임도구나 휴대폰 이런 세세한 거는 대충 넘어가고, 일단 무엇보다 구매자를 찾는 단계에서 일차로 벽에 부딫히게 될 것이다. 뭐 생활 정보지에 휴대폰 번호 남겨놓고1 ...  이런 어중간한 생각은 경찰의 단속을 도울 뿐일테니까.  즉 안정적인 영업을 위해서는-경쟁자를 물리치거나 경찰이나 양아치 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는-안전하게 구매자를 접선할 수 있는 장소 혹은 연락망, 또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대포폰이나 위장 사무실, 혹은 관료나 경찰 때로는 조직폭력배와의 커넥션 등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조건들을 모두 혹은 일부 갖추고 개인 영업을 한다면 프리랜서 혹은 소생산자로 볼 수 있을 것이고 포주와 고용관계를 맺고 월급-보통 성과급이겠지만-노동자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되 조폭이나 포주가 뒤를 봐주고 보호비 등을 뜯는다면 봉건적인 관계라고 규정할 것이고 보도방 등에 소속되어 노래방, 술집 등에 파견을 나간다면 하청 노동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혹은 인신매매로 낙도 다방에 팔려갔다거나 원양어선 등을 타고 있거나 부당 계약으로 부당한 빚이나 벌금제 등에 묶여있다면 노예 아니겠는가. 혹은 야구선수급 연봉을 받으면서 소위 강남 텐프로를 뛰고 있다면 야구선수나 연예인이 그러하듯이 노동자라고 잘라 말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성매매업종 종사자를 하나의 계급으로 보거나 이들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운동을 하나의 경향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더더군다나 현실적 운동에서 인적으로건 경향적으로건 당면한 공동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업자와 직원을 걸러내는 것도 힘들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얘들은 (혹은 얘들의 입장은) 노동자적(?)이지 않으니까 얘들 인생 어떻게 되든 알바가 아니야는 아닐 것이다. 소위 친북좌빨 나부랭이들이라면 계급적 이해가 대다수의 보편적 이해가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이들 속에서 노동자 계급적 경향을 발굴하고 조직하여 계급의 해방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성적 결정권이 짓밟히는 형태의 모든 행위 자체를 종결짓도록 앞장 서거나 앞장 세우거나 해야하지 않나 싶긴한데 알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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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용돈벌이나 반노숙을 각오한다면 소위 조건 만남을 노리고 채팅 사이트에서 영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생업으로 가져가기는 좀 무리가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