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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센터 '들' 소식지에 실린 글)
'거부 이후'를 사는 법
“해가 바뀌면 나는 스무 살에서 스물한 살이 된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정해져 있다. 열아홉과 스물의 차이도 그러하지만,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의 차이도 제법 크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부럽다고 할 테고, 누군가는 '청춘'이라 하겠지만, 나는 사실 불안하기만 하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자격'들 속에서 증명할 것도 없고 내보일 것도 하나도 없는 삶이 불안하다. 그래서 돌아올 새해가 그렇게 반갑지는 않다.”
인생을 숫자로 구분지어 부를 수 있다면 작년까지 나는 20대의 중간지점을 보냈고 스무 살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불안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위의 문단은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때에 쓴 글의 한 부분이다. 탈학교를 하고 대학거부를 하고, 후련하고 뿌듯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불안했다.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없어야 할 곳에 있는 기분, 내내 그랬다. 어떤 식으로든 학교/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을, 우리들을 밀어내는 것. 써내야 하는 이력서에서도, 무심코 학번이나 전공을 묻는 질문에서도, 대학 갈 준비하라며 부추기는 이상한 조언 속에서도,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내 또래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 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하던 때만큼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 중에 가장 큰 질문 덩어리는 “뭐 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것. 내가 주업(?)으로 삼고 있는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활동비도 받을 수 있다면. 넉넉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통장에 빵꾸는 나지 않을 정도로 딱 그만큼의 ‘지속가능함’을 꿈꿨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활동가로서의 삶과 지속가능한 운동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최근에는 인권교육 온다의 상임활동을 하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나의 운동과 인권교육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교육활동은 쭉 관심을 갖고 함께할 생각이다.
당장의 청소년운동과 지금의 내가 마주한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아수나로와 활기에서 활동가들에게 줄 수 있는 활동비는 없다시피 하다. 피자 한 판 위에 토핑 한 조각을 가지고 이걸 어떻게 쪼개 쓸까, 하는 내용이 회의 안건으로 다뤄진다고 해야 하나. 재정의 어려움을 열악함의 모든 조건으로 내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그만큼 청소년운동이 처한 현실은 가난하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지쳐 떠나는 사람들을 그저 붙잡기만 할 수도 없어서 또 외롭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운동을 부여잡고 붙들고 채워나가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식상한 결론이지만 나는 그 식상함-다른 이름으로는 ‘익숙함에 곧잘 잊어버리는 소중함’-을 믿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투명가방끈’에서 준비하는 대학거부자들의 공동주거 프로젝트 <거부하우스>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거부하우스>는 대학거부자들이 함께 모여 살 집을 만드는 것으로 요즘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투명한 집’이라는 이름으로, 투명가방끈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를 고민하다가 대학과 학벌 없이 ‘선언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학거부자/비대학생들의 사는 문제, 즉 ‘주거 문제’와 부딪혀보자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입주를 신청한 사람들 네 명이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함께 모여 살 집을 만든다고 했지만, 실제로 집을 짓는 것은 아니다!(그럴 능력도 없다ㅋㅋ)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먹고 살기란 참 힘든 일이다. 특히 집값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어떤 집에서 살지를 결정하는데 다른 조건은 다 제쳐두고, ‘월세가 얼마나 저렴한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기도 한다. 정부에서 혜택이랍시고 내놓는 몇몇 주거 정책들이 있는데, 이는 청년(이라 쓰고 ‘대학생’이라 읽는다), 직장인, 신혼부부 등 ‘보통의 생애주기’에 맞춰져 있어 그에 벗어난 대학거부자와 같은 존재들은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청년주거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거부자들이 함께 공동주거를 꾸려 열악한 주거조건을 스스로 바꿔보려고 <거부하우스>를 구해서 함께 살아가보려고 한다. 제도의 따뜻한 손길(?)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먹고 살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거부하우스>를 꾸려나가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투명가방끈들의 네트워크를 마련하여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고민을 하나의 운동으로 이어가보려는 포부도 있다. 그리고 일단 당장은 ‘1호’라는 생각으로 지금 모여 있는 이들과 한 군데에서 시작하지만, 1~2년 뒤에는 ‘2호’, ‘3호’의 <거부하우스>를 만들려는 욕심도 갖고 있다. 집을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보증금의 일부를 ‘출자자’의 출자금으로 보탤 계획이다. 출자자들에게는 연 5%의 이자를 적용하여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 돌려드린다. 마침 지금, 막 시작하는 <거부하우스>의 ‘출자자 모집’ 기간이다. 2월 22일까지 출자신청을 받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투명가방끈 게시물을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바로 가기 -> http://cafe.daum.net/wrongedu1/K7XD/102)
이래저래 불안한 오늘이지만, 지금처럼 스스로를 지지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건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투명가방끈 공동주거 프로젝트 <거부하우스>를 준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같이 살아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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