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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리 이제 친해지길 바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리 이제 친해지길 바래

 

난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시기를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낸다. 학생, 청소년이라면 착실히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꼭 공부나 배움이 ‘학교’라는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제쳐두고서 현실을 보면, 어쨌든 학교가 많은 청소년들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의 학교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변하지 않는 곳 중에 하나였던 학교가, ‘갑갑함’, ‘감옥’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던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 등등이 새로운 열쇳말로 떠오르면서, 경기도에서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은 어떤 학교를 바라고 있을까? 지금 학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나야 할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따라 학교, 학생인권과 친해져보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지

 

  나는 지금도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우중충한 하늘이나 조용한 교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떠오른다. 언제나 잠은 부족했고, 시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문제를 풀고 점수를 올리는 연습에 더 익숙했다. 새벽에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잠에서 깰 때마다 생각했다. 주섬주섬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던 그 때, 같은 모양의 틀로 찍어낸 것 같은 그 일상과 하루하루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답답하던 나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우연히 만난 ‘청소년인권’이었다. 입학식 첫날부터 시작된 ‘야자’에 적응할 수 없어 몸부림치던 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바깥풍경이, 반짝이던 하늘빛이, 구름이,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지만 그 아름다움을 결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미학혁명(미친 학교를 혁명하라)’을 만났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집회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내 마음 속을 제대로 엿보게 된 것이다. 혼자 마음 속으로만 꿍시렁거리던 그 불만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청소년운동을 일궈온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은 현실을 위해 부던히도 몸을 움직여왔다.

 

  우리가 원했던 그 학교의 변화를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하고 개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연히도 학생인권 운동의 역사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두발자유-no cut’ 운동, 독립적 학생회 보장 요구 등등 거의 10년 가깝게 학생인권에 관한 학생들의 요구와 행동이 진행되어왔다.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고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문제―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운동은 2005년 이후로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그리고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 등의 형태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치들을 만드는 것을 요구해왔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인권운동은 음으로 양으로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에도 학생인권에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연구용역팀에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참여했다. 과거에 연구되고 발표되었던 학생인권 지침, 결정 등이 함께 검토되었고,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이나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그리고 학생인권법안 등은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또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생참여기획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생생하면서도 인권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학생인권운동이 지난 세월 동안 문제제기하고 그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쌓여온 이야기와, 사례와 담론들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튼실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지금처럼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한 활동 외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그리고 통과되는 데에 참여하고 힘을 보탰다. 사실 경기도 교육청 차원에서 그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데 큰 힘을 쏟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도 지역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리고 그 동안 학생인권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활동해오던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직접 학교 앞으로 찾아가 뿌리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고,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키자,는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서명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던 날,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그것은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더욱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시행, 그 이후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전국에서 최초로 통과되고 그렇게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인권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조항들을 통해 학생인권의 구체적 권리들을 명시했다. 얼마 전에 통과된 광주학생인권조례안, 일본 가와사키 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조례’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5일, 공포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강제야자-보충 금지, 집회의 자유 보장, 차별 금지 등의 조항을 담았다. 그 외에도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참여위원회 등의 제도를 명시함으로써,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의 내용이 담겨있다. 비록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서 완전한 조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학생인권을 명문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아직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한글문서에서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소지품검사’ 같은 말들이 틀렸다고 빨간 줄도 안 그어지는 현실이다.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0교시, 강제야자, 학원 뺑뺑이까지 쉴 틈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규정에 어긋난 데는 없나’ 자신을 검열하며, 양말색깔 하나, 머리핀 색깔까지 신경 써야 하는 모습은 익숙한 장면이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는 말 뿐이다. 이 같은 현실들을 바꾸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권은 어떤 이유로든 유보되어서도 안 되고, ‘미래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분명한 의미가 아닐까.

 

  지난 1년을 돌아보자.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 교문 앞에서 멈추던 인권이 교문으로 등교를 시도했다. 학생인권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터져 나오고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학생인권조례가 뭔지, 학생인권이 뭔지, 대충은 알게 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시작으로, 지난 10월,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경남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제정운동이 성공했다. 서울에서도 얼마 전 서울시 주민발의로 성사된 학생인권조례가 극적으로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전북, 충북/충남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갑갑한 학교와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그러나 이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학생인권조례가 잘 정착하고 자리잡아가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달랑 학생인권조례만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왔지만 아직 한참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문 앞에서 멈췄던 인권이 그렇다면 이제는 과연 교문을 넘어섰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누구도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에도, 아직도 교문지도와 체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체벌금지 이후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벌점제는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만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정착화에 나서서 힘써야 할 경기도교육청은 대놓고 산으로 가고 있다. 학생인권이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보여주기만을 위한 ‘전시성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끊이지 않는 민원과 상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교사들도, 아직은 학생인권조례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직은 이 조례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올해 초,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때 즈음 진행된 ‘경기도 학생참여위원회’의 공개모집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4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안에 따라 ‘학생참여위원회’를 공개모집했다. 학생참여위원회는 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같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에서 여러 가지 학생인권에 관한 일들을 진행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위원회이다. 하지만 이 ‘학생참여위원회’ 공고 과정은, 모집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 학교장의 직인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점 등에서 학생들의 자치적 참여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참여위원회의 자치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학생인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이 학생참여위원회는 공개모집 과정부터 지금까지 운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학생참여위원회의 존재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안타깝다. 그리고 학생참여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여러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학참위를 ‘학생참여기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생인권조례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전시물로써 인식하고 있는 태도 또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학생인권조례와 친해지길 바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이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보장받는 권리는 진짜 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 사실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을 실제 삶에서 구체화하고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걸 잘 해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더욱,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를 우리는 다시금 되새기고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고 가는 길이 더디더라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잘 해쳐나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마음을 모아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만큼 여러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아직은 어색한 이 사이를 조금 더 좁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 지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보의 역사는 당연한 것에 대해 던지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가 그 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그 질서에, 지금 학생인권조례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당연하냐고. 지금의 이 모습은 이대로 괜찮은거냐고.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참여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에 꾸준히 관심 갖기. 질문 던지기. 학교 안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내 이야기 꺼내기. 규칙개정심의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등 구제절차 적극 활용하기. 등등. 이런 활동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청소년을 둘러싼 견고한 ‘전제’를 넘자

 

  학생인권조례 이전의 학교가 “뭐 되는 게 있겠어“, “대충 참는 거지”하며 여러 인권침해적인 장면도 그냥 넘어가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 이후, 인권은 그런 무기력함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요청받기도 한다. 적어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청소년)인권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얘기들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위치에 세워두고 있는 지, 청소년을 어떤 주체로 인식하는 지에 대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고, 그 이야기꺼리들을 수면 위로 띄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조차 ‘금기’였던 학생인권, 그 존재가 꽁꽁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청소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는 류의 청소년 ‘존재’에 대한 그 견고하고 딱딱한 ‘전제’를 바꾸는 일이다.

  재작년에 몇몇 학생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 질문이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가?”였다. 그 중 한 학생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학교는 학생도, 교사도, 서로에 대해서도, 수업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면서 “학교가 바뀌기 위해서는 ‘궁금해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라는 것이었다. 밑줄을 쫙 그어야 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학생인권이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학교의 익숙한 장면과는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고 좀 헤매기도 할 것이다. 혹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은 ‘살아있는 건지, 살아있는 꿈을 꾸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건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아닌 건지, 궁금해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지 않고 숨긴 채, 숨죽이며 살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를 바꾸자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가기’를 위한 교육을 만나고 응원할 것이다.

 

 

 

 

 

2012청소년인권아카데미,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파트 설명글(?)로 들어간 글.

그리고 이번 아주대 글로벌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육운동 관련 토론회에도 가져갈 글.

역시나 여기저기 짜집기 글.

부끄럽지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다가도, 언제나 마무리는 비슷.

보는 시야가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건가ㅡ 좀 더 애써야 되는 걸라나ㅡ 아아 자극이 필요하다. 흐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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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이후 1년,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이후 1년,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난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지금도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우중충한 하늘이나 조용한 교실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떠오른다. 언제나 잠은 부족했고, 시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문제를 풀고 점수를 올리는 연습에 더 익숙했다. 새벽에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잠에서 깰 때마다 생각했다. 주섬주섬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던 그 때, 그 일상과 하루하루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고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어간다. 교문 앞에서 멈추던 인권이 교문으로 등교를 시도한 것이다. 학생인권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터져 나오고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학생인권조례가 뭔지, 학생인권이 뭔지, 대충은 알게 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시작으로, 광주, 서울, 경남, 전북, 충북/충남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갑갑한 학교와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물론 달랑 학생인권조례만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왔지만 아직 한참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인권이 과연 교문을 넘어섰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누구도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교문지도와 체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체벌금지 이후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벌점제는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만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정착화에 나서서 힘써야 할 경기도교육청은 대놓고 산으로 가고 있다. 학생인권이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보여주기만을 위한 ‘전시성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끊이지 않는 민원과 상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이전의 학교가 “뭐 되는 게 있겠어“, “대충 참는 거지”하며 여러 인권침해적인 장면도 그냥 넘어가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 이후, 인권은 그런 무기력함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요청받기도 한다. 적어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조차 ‘금기’였던 학생인권, 그 존재가 꽁꽁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그렇기에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학생인권이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학교의 익숙한 장면과는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고 좀 헤매기도 할 것이다. 혹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은 ‘살아가는 건지,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건지’, 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아닌 건지, 궁금해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지 않고 숨긴 채, 숨죽이며 살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를 바꾸자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가기’를 위한 교육을 만나고 학생인권과 함께 할 것이다.

 

 

 

2011 인천인권영화제 자료집에 실린 글 ^^;

또 여러 글들 짜집기한 글....ㅋ_ㅋ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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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과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과제

 

 

난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

 

지난 9월 17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는 작년에 이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인권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조항들을 통해 학생인권의 구체적 권리들을 명시했습니다. 광주/경남지역의 학생인권조례, 일본 가와사키 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조례’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강제야자-보충 금지, 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학생 간 차별 금지 등의 조항을 담았습니다. 그 외에도 학생인권옹호관, 옴부즈만 등의 제도를 명시함으로써,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안의 통과를 계기로, 앞으로 경기도 지역 외에도 전국적으로(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을 포함하여) 학생인권조례가 힘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아직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한글문서에서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소지품검사’ 같은 말들이 틀렸다고 빨간 줄도 안 그어지는 현실(...)입니다. 입시만을 위한 공부에 0교시, 강제야자, 학원 뺑뺑이까지 쉴 틈이 없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규정에 어긋난 데는 없나’ 자신을 검열하며, 양말색깔까지 신경써야 할 지경입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는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 같은 현실들을 바꾸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인권은 어떤 이유로든 유보되어서도 안 되고, ‘미래의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분명한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에겐 보다 ‘현실’이 필요하다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의 자신들의 안습적인 상황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ㅠ_ㅠ” 같은 패배적 분위기가 해를 넘길수록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들 중에 오히려, “인권 따위, 지금 우리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오랜 세월 동안 꿈쩍도 않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학교니까요. 감시와 통제가 난리 부르스를 치고, 인권이 억압받는 삶이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것입니다.

어쨌거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아직 부족하다고! 제도적으로 탄탄히 만들어야 될 거 아냐!” 라는 식의 끊임없는 운동사회의 요구들 속에서 그나마도 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고 선포식도 진행됨에 따라, “아아, 뭔가 되겠구나” 하는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두발자유’, ‘체벌금지’로 대표된다 할 수 있는 ‘학생인권’이, 그런 것들이 정말 이루어질 수 있겠나, 하는 의심을 사고, “에이, 거봐, 안 되잖아“하는 체념을 낳았던 현실을 넘어, 진짜 가능하다는 것,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보여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걸 같이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운동이라는 것, 우리가 뭔가를 한다는 것은 보고 싶은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니까요. 이것이 우리가 아픈 과정을 겪으면서도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운영되기 위하여 힘있게 운동을 해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기까지

 

그럼 이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 지역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냐구요? 이 글에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하고 개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학생인권 운동의 역사가 녹아있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고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문제―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인권운동은 2005년 이후로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그리고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 등의 형태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치들을 만드는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인권운동은 음으로 양으로 참여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에도 학생인권에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연구용역팀에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과거에 연구되고 발표되었던 학생인권 지침, 결정 등이 함께 검토되었고,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이나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그리고 학생인권법안 등은 중요한 참고자료였습니다. 또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생참여기획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생생하면서도 인권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학생인권운동이 지난 세월 동안 문제제기하고 그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쌓여온 이야기와, 사례와 담론들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튼실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지금처럼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17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초안이 발표되기까지, 각 지역에서 사전협의회를 거쳐 경기도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부족한 내용을 덧붙이는 등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초안이 발표된 이후에는 지역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를 보다 활발히 하기 위한 공청회를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공청회에는 전문가(교수 등), 학생인권조례에 찬성/반대하는 입장의 교사, 학부모 등이 패널로 참가했고, 경기도 지역의 학생도 당연히 패널로 참가했습니다. 다만 학생 패널이 하나였던 이유는 교사, 학부모들은 찬성/반대로 입장이 나뉘었는데, 학생들 중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들 또한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한 활동 외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그리고 통과되는 데에 참여하고 힘을 보탰습니다. 사실 경기도 교육청 차원에서 그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데 큰 힘을 쏟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도 지역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리고 그 동안 학생인권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활동해오던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직접 학교 앞으로 찾아가 뿌리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고,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키자,는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서명은 지난 9월 17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던 날,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그것은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더욱 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견고한 ‘전제’를 바꿀 학생인권조례

 

우리 사회에서 학생(청소년)인권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얘기들을 끌어올리는 작업입니다.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위치에 세워두고 있는 지, 청소년을 어떤 주체로 인식하는 지에 대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고, 그 이야기꺼리들을 수면 위로 띄우는 작업입니다. “학생/청소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는 류의 청소년 ‘존재’에 대한 그 견고하고 딱딱한 ‘전제’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그 동안의 청소년 운동이 좀 더 힘을 받고, 그 힘을 밑거름 삼아 더욱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통과되었고, 10월 5일 이후로 이미 효력도 (형식적으로는)발휘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현실이 동전을 뒤집을 수 있는 것처럼, 어떻게 바뀌는 건 아닐 것입니다. 청소년/학생인권운동이 학교 안팎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알리는 데 많은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할 순 없습니다. 학교 현장은 아직도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교사들도 학생인권조례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학생들이 힘을 모아 학생인권조례가 정말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서 현장에서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면 안 될 것입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단순히 경기도에서 끝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것에 불씨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움직임을 멈추면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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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이후,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여러 지역에서 토론회, 교육 등등 요청이 꽤나 자주 들어온다. 인천, 이천, 시흥, 부천.... 등등-

 

그 때마다 거의 비슷한 주제로 자료집에 실을 원고를 부탁받는데,

매번 같은 주제다보니 더 어떻게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어서(-_-;) 거의 매번, 여기저기 글들을 짜집기하고 있다 뚜둥

점점 나의 편집 솜씨는 늘어만가고...크크크

제목도 바꿔가면서... 에휴

 

지금 올린 요 글은 이번주 토요일에 부천차세대위원회 청소년토론회,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 주제발제할 내용.

 

더 할 말이...... 쩜쩜

 

어쨌거나 결론은, 우리의 움직임을 멈추면 안 될 것입니다, 다.

그렇치요- 계속 가야지요- 헉헉대더라도- 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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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만나고 싶었고, 만나야 했던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쳇”을 외치다

 

(인권교육센터 '들' 소식지 글)

 

 

 

만나고 싶었고, 만나야 했던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쳇”을 외치다

- 2010 청소년활동가대회 “쳇(chat)" 후기 -

 

 

 

난다(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만나고 싶었다. 여기저기에서 나와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는데, 만나보고 싶었다. '청소년활동가대회‘를 준비하고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장 밑바닥의 마음은 아마 이와 같았을 것이다. 청소년활동을 하면서 가장 갈증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함께 할)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 할 사람이 없다, 는 느낌이 들면 아무리 즐겁고, 의욕에 넘쳐 일을 준비하던 사람도 한 켠에서는 쓸쓸함이라거나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청소년활동가대회 “쳇”은 이러한 것들을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진행되었다.

 

 

청소년활동가들과 ‘로그인’ 하다

 

 

  대망의 첫째 날, ‘오덕훈련원’에 도착했다. 와, 경기도에서 조금 벗어나기만 했는데,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감탄하며, 짐을 풀어놓고 강당으로 모였다. ‘로그인’을 하며 각자 자기 소개를 했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규칙 정하는 시간을 조별로 갖게 되었다. 우리 모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2박3일을 보낼까?“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안녕하세쳇?, 밥먹었쳇?’ 등등으로 끝에 ‘쳇’자를 붙여서 말해보자”, “아침에 기상미션을 성공하면 컵라면 한 박스씩 더 갖게 하기” 등의 번쩍번쩍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 모둠만 깔깔깔 웃느라, 시끄럽다고 다른 모둠에서 태클을 걸기도 했다.

  마지막으로는 각 모둠에서 합의된 규칙들을 정리해 바닥에 깔아놓고 다른 조에 참여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모둠에서 정리된 이야기들 중, ”‘남자친구, 여자친구 있어요?’ 라는 말 대신 ‘애인‘이라는 표현 쓰기”, ”동성이든 이성이든 서로 불편할 신체적 접촉 자제하기“, ”누나/형 등의 호칭 되도록 쓰지 않기“,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반말 쓰지 않기“등의 인권적인 마인드가 가득가득한 약속들이 인상에 남는다. 그렇게 다른 모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보면서, 마음에 들면 파란색 스티커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간색 스티커를 부착했다. 그리고 모둠별로 스티커가 붙여진 종이를 가져와 토론을 통해 다시 내용을 수정했다. 최종안이 만들어진 뒤 다시 전체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었다. 1명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그 의견의 적정성을 판단해 수정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굉장히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작은 규칙 하나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점이 즐거웠다.

  첫째 날 저녁에는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큼발랄 청소년라디오 모난라디오’에서 참가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후에는 꼭 인터뷰 형식이 아니더라도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를 소개하게 되었다. 명단으로만 만났던 어디어디의 누구, 무슨 활동하는 누구, 라고 봤을 때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 청소년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 청소년과 여성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청소년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요구하는 홍성지역의 청소년모임 ‘날개’ 분들의 소개를 들을 때는 꽤나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느낌이기도 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쳇, 이런 얘기가 ‘오락’이 될 줄은 몰랐을걸?

 

 

  2박3일 동안 진행되었던 “쳇”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섯 가지 주제의 모둠 토론, “오락”시간이다. 우리는 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내 인생의 환승센터>, 밑줄을 쫙 그어야 했던 순간들, 공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눠보는 <내 인생의 밑줄 쫙>, 살면서 혹은 활동을 하면서 설렜던 순간들, 그리고 망설이게 되는 것들,<설렘과 망설임>, 내 인생에서 헤어지고 싶은 순간은 언제였는지, 얘기해보는<내 인생의 빠염>은 “오락”의 다섯 가지 주제들이었다.

  내가 함께 했던 모둠은 ‘내 인생에서 헤어지고 싶은 순간들에 대하여- <내 인생의 빠염>’이었다. ‘빠염’은 ‘바이바이(헤어질 때 하는 인사)’랑 거의 같은 의미이다. 청소년활동을 하게 되면서 부딪히는 재정적인 어려움이든, 활동하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권위적인 시선이든, 청소년활동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별을 선고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빠염’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이었지만 ‘청소년’활동가이기 때문에 함께 겪는 서러움들이 있었다. ‘너 같은 어린애가 어쩌고’, ‘학생 때는 공부나 해, 활동은 무슨...’ 이런 말들을 집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들었던 경험들을 함께 쏟아내었다. 개중에는 정부부서와 연결되어 청소년들이 청소년들과 관련된 정책을 논의하고 토론하여 실제로 청소년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고 하는 ‘참여위원회’에 소속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참여’라는 말이 무기력해질 만큼 그냥 형식적으로 모임을 지속하거나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권위에 쩔어있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하고 있는 한 분은 정부부서와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우린 뭔가 달라’ 하는 ‘럭셔리함’이 오히려 활동의 발목을 붙잡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모둠의 이야기는 이후에 각 모둠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전지에 정리하여 강당에 붙여두었는데, <내 인생의 환승센터>모둠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에 공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아무리 나의 활동에 의미를 둔다 하더라도 사회의 견고한 통념들을 쉽게 넘어서기엔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어서’ 시작했던 이 활동이 지금까지 힘을 얻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활동’으로 그저 ‘환승’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일상에 ‘활동’이라는 삶의 태도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청소년활동, 살아‘가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일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 꿈을 꾸는 것일까.

  나는 살아가는 것일까, 그저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노래 가사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이는 비단 일상에 쫓기고, 월급에 찌들어 사는 어른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많은 것들을 요구해왔다. ‘청소년-어리고 미성숙한 애들’ 이라는 전제를 밑바닥에 항상 깔고 가는 것은 기본인데, 예전에는 ‘오로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게 최고였다면, 요즘엔 공부‘플러스 알파’가 거의 필수다. 그리하여 리더십, 자발적인 참여, 사회활동, 봉사활동 등을 개인을 평가할 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이런 것들 또한 ‘좋은 대학 진학’이 목표가 된다는 것. 그래서 청소년‘활동’이라 하였을 때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참여하기를 이 사회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활동가대회 ‘쳇’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건지, 살아있는 꿈을 꾸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건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내가 지금 왜 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그 답을 찾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지 않고 숨긴 채, 숨죽이며 살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를 바꾸고 싶어했다.

  살아‘지는’ 것이 미덕이고, 힘이고, 질서라고 말하는 세상에 “쳇!”을 외치는 청소년활동가들은 그래서 ‘살아가기’를 실천하려 한다. 청소년활동의 움직임과 행동에 우리가 함께 하고, 응원해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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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소식지에 실을 글로 부탁을 받아서, 쓴 글.

2010청소년활동가대회 "쳇[chat]" 후기네욤

후기를 거의 한 달이 지나서 쓰는 거라 쓸 때 쬐끔 고생했...<-

 

흠.

내가 쓰는 글은 항상 마무리가 어색하다. 매번 쬐끔씩 부끄럽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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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성년자

 

 

맥주 한 병 하려고.

그니까- 세 명이니까- 세 병 사들고 가서, 포도랑 포테토칩이랑 같이 사들고 가서,

이제 막 병뚜껑을 딱 깠는데,

"니 아직 미성년자 아이가, 와 묵노"

 

그러게요. 아직 미성년자.

근데 것도 이제 4개월 하고 조금 남았어요.

 

헐~

 

4개월 후면 마법이 풀리는건가요.

나 이제 신분증 당당히 내밀 수 있는건가요.

술집 좀 뚫어볼라고- 이것저것 안 덧붙여도 되는건가요.

 

 

여기서 '헐~'은 '도토리 점심'의 '헐'이에요.

이게 뭐임? 하면서,

알고 싶은 분은 저에게 물어보시면 즐겁게 들려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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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여기 있어.

 

경찰, 쌍용차 도장2공장 옥상 진입 시도

연합뉴스 | 입력 2009.08.04 15:16 | 수정 2009.08.04 15:27

 
(평택=연합뉴스) 심언철 4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노조원 강제 해산 작전에 돌입한 경찰은 오후 들어 노조의 점거 거점인 도장2공장 옥상 진입을 시도 중이다.

오전 11시40분께 차체2공장 옥상을 장악한 경찰은 도장2공장 옥상 점거를 시도했으나 노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오후 3시 현재 대치 상태다.

경찰의 도장2공장 진입 작전은 지상과 옥상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옥상에서는 특공대를 포함한 400여명이, 지상에서는 전경 등 400여명이 노조원들과 공방을 벌였다.

작전이 전개되는 동안 도장2공장 상공에서는 경찰 헬기 2대가 옥상으로 최루액을 살포했고 지상에서는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며 노조의 저항을 무력화했다. 노조는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며 도장2공장 접근을 막았다.

도장2공장 뒤편 조립3, 4공장에서도 경찰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옥상 점거를 시도하고 있다.

도장2공장과 조립3, 4공장 옥상에는 노조원이 각각 40여명과 70~80명 배치돼 볼트가 발사되는 사제 대포 등으로 경찰에 대항했다.

도장2공장은 차체2공장과 6~7m 떨어져 있어 사다리를 가로로 놓고 건너야 하는 상황이며, 조립3,4공장에는 3층에 도장2공장과의 연결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dkkim@yna.co.kr
(끝)
 

 

더 이상 졸라맬 허리띠의 구멍도 없다는 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말, 그래서 그 곳으로 올라갔다는 말.

해고는 살인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외침. 살려달라는 절규.

그리고 외면.

그냥 울고 싶어. 그치만 울면 안돼. 나는 울면 안돼.

 

무력감. 그러나 버티기. 힘껏. 우린 여기 있어.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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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에서- 일기.

 

 

작은책에서 요청한 원고부탁을,

오늘이 마감인데 '급' 부탁을 받아버리고 허겁지겁 글을 썼다.-_-; 

10대의 이야기면서, 글쓴 사람의 삶이 드러나면 좋겠다 그래서,

공현과 논의(?) 끝에 전에 여기 블로그에서 썼던 자퇴할 때의 기억을 가져오면서

지금 사는 이야기를 좀 더 덧붙였다.

 

음 근데, 새삼스럽게-

자퇴 결심하고, 그 때 했던 고민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그랬구나, 싶으면서, 참 일들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 때는 그래도 오래오래 고민 많이 했는데

요즘은 고민도 별로 안하고 너무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것 같다고-

또 그렇게 생각했다. -_-

 

무튼 다시 덧붙이는 글을 쓰면서 그래도 잘했다면서 스스로 토닥였다. *

 

 

 

 

*

 

2008년 4월 8일, 어느 고등학교에서- 나의 일기.

 

 

담임이 날 불렀다.

"아까 어머니 오셨더라, 봤냐?"

"네."

"근데 넌 왜 학교 그만둘라 그러냐?"

"......"

"자자, 앉아봐. 얘기 좀 들어보자 뭐 때문이냐? 나 때문이냐?"

"아뇨."

"내가 싫은거면 그냥 하루에 20분만 보면 되는거 아니냐, 좀 참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것도 못 참겄냐?"

"제가 선생님 땜에 그러는게 아니라요, 학교에서의 공부 같은거나, 학교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그게 왜 의미가 없냐?"

"시험 잘 보고, 수능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하는 그런 공부가 싫어요.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내 자리가 정해지고, 그런....."

"잠깐잠깐, 근데 말이다. 너는 지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어. 나도 학교 다니고, 너만한 시절에는 학교 그만두고 싶었던 적 많았다. 나는 니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럴 땐 더 오래 산 사람 말을 들어야되는거야, 알겄냐? 나는 50년을 살았지만, 니는 18년 밖에 안 살았단 말이다."

"네, 선생님이 저보다 오래 사시고, 아무래도 저보다 경험 많으신 것도 사실이겠지만요, 그렇다고 제 판단이 잘못되고, 선생님 판단이 옳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니지. 어른 말이 맞는거야. 니는 지금 동굴 앞에 서있어. 캄캄한 동굴 말이다. 거기로 들어갈라고 하고 있단 말야. 근데 안돼. 거기서 비껴나야돼. 내가 만약에 그 때 니처럼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뒀으면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몰라. 배추장사 하고 있을지도 몰라."

"선생님, 그 말씀은..."

"어쨌든 안돼. 지금 내 말 안 들으면 니는 나중에 후회한다."

"선생님, 전 예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던거구요,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니가 고민해봤음 얼마나 해봤겠냐. 그럼 한 달 동안 나오지 말아봐, 어떻게 되나. 학교에 있는 게 더 행복할걸. 학교에 막 오고싶을걸."

"....."

"니 지금 이래서는 안돼. 니가 뭐 해금 한다고 그러나본데, 예체능도, 정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으면 안돼. 인정 못 받는단 말이야."

"전 인정 받고 성공할려고 하는거 아니예요."

"국악고 같은데 가고싶어서 이러는거면 선생님이 국악고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한테...."

"전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예요."

"....아무튼, 공부 지금 안해놓으면 안돼.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안된다고."

"지금 하는 공부가 제 머리를 전혀 채워주지 못하면요?"

".....아무튼간에 안돼. 다시 생각해봐. 니가 너네 가족들이랑 다 같이 얘기를 했든, 온 친척들하고 얘기를 했든간에, 무조건 안돼. 선생님 말 들어."

"......"

"선생님도 힘들어. 우리반 애들이 좀 많냐. 오늘도 이따 병원 가봐야돼."

"그럼 저 하나 빠지면 반 인원도 줄고 좋겠네요. 전에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우리반 사람 너무 많아서 전학 좀 보내야겠다고."

"그거는, 안 나와도 될 애들이 안 나와야 편해지는기고. 니는 안돼."

".........선생님, 진짜..."

"종쳤다. 올라가봐라. 암튼 생각 고쳐먹어라."

 

 

 

 

2009년 1월 8일, 오늘, 학교 밖에서- 나의 일기

 

 

난 학교를 다니지 않는 탈학교 청소년이다. 이 대화는 학교를 그만두려고 결심한 나를 위해(??) 엄마가 학교에 다녀간 후, 담임이 나를 불렀을 때, 그 분과 내가 한 이야기이다. 학교를 그만둔 건 작년, 그러니까 2008년 4월 쯤이다. 지금은 2009년- 몇 달 뒤엔 자퇴를 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그 때 담임과 한 얘기를 적어놓은 내 글을 보면서, 내가 탈학교 청소년-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나름 특수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새삼 뚜렷하게 느껴진다.

학교를 다닐 땐 정말, 아니 뭐, 중학교 때도 거의 비슷하긴 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를 가서 더 심하게 압박을 느꼈다. 아침 6시반 쯤 일어나서 정신없이 씻고, 옷 갈아입고, 꾸역꾸역 아침 먹고 지각할까봐 발 동동 구르며 버스 기다리고, 교문 들어설 때는 혹시라도 뭐 잡힐까봐 나도 모르게 머리를 매만지고, 책가방을 다시 부여잡고. 교실에 도착하면, 교과서와 문제집에 고개를 처박기를 밤 10시 넘도록. 학원이다 뭐다 다니다보면, 집에 도착하면 적어도 12시반. 그러고 바로 뻗어버리기. 그리고 아침 되면 다시 반복.

 

 

학교를 그만둘까 말까 하는 고민은,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의, 입시제도 안에서 굴러가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꼭 해보지 않았을까 한다. 내가 자퇴를 확실하게 결심한 건, 공부 열심히 해서 스카이 들어가서 취직 잘해서 돈 많이 버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밟고 내가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는, 정확히 그곳에서 얘기하진 않지만,(아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노골적으로 얘기한다-)그런 걸 가르치는 학교가 싫어서, 그리고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앉아있어야 한다고 하는 걸 더는 견딜 수 없어서였다.

학교에 다니는 많은 청소년들이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테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건, 청소년인-그 나이 때의 사람들은, 당연히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크고 단단한 고정관념과, 대학을 가고,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는, 오로지 한 길만 보이는 불안한 현실과, 그 밖에 여러 가지 것들을 쉽게 깨뜨리기가 힘들기 때문일거다.

 

 

이런 고민하던 나는 지금, 참 편하게(?), 규칙적인 생활 뭐 그런 거 없이 잘 살고 있다. 머리모양, 입는 옷, 화장실 가는 시간, 시험 점수, 성적표, 학교등록금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가끔 후회 안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회 안 한다. 읽어야 될 책이 엄청 두껍다던가, 밤 샐 일이 많아졌다던가, 탈학교 청소년이에요 이러면 좀 이상하게 본다던가, 주민등록증 만들라는 노란 종이가 날아온다던가, 하는 생각하지 못했던 좀 힘든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난 학교를 그만 둔 걸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렇게 사는 게 더 재미있고 더 사람 사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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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의 사람들은 거리행진을 계속하고있다. 경찰은 이것이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있다. 연행된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또 연행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가 뜨면서 인터넷이시끌시끌하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학생들', '"집에 가고 싶어요" 여중생의 눈물', '"미성년자는석방하라!"… 끝내 모두 연행' 등의 내용이다.
  나는 최근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몇 차례 참가했던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시위 때 경찰에연행도 한 번 당했었던 청소년으로서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미성년자 연행'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무고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해가는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연약하고 어린 여중생', '눈물 짓는 어린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사를 보면,'여중생'으로 보이는 10대가 연행버스 창문을 통해 "집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을연행해갔다, 는 내용인데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그 때 그 청소년은 "집에 가고 싶다"가 아닌 "평화시위보장하라" 등 촛불집회의 정당함을 알리는 얘기를 외쳤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중생, 중학생'이라는 이미지(?)로"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못미"라는 목소리를 담고서 '중학생', 어린 학생' 등 '약한 자의 이미지'로 비치게끔 내용을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그저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소년을 청소년 그 자체로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나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직접자기 요구를 말하는 것에 "미성숙하니까", "위험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한계를 두고 비청소년들이 그걸 대신 해주려고한다거나 하는 것은 청소년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게 되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연행 자체보다는 '저 어린 애들'까지 연행해가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저 어린 애들'까지도 거리로 나오게 내모는 정부를욕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지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 등 성별의 차별이 부당한것처럼, 청소년과 비청소년도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집회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만 집에 가지 그러냐"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까' 못하게 하는 '보호주의'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자주 눈에 띄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 친구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을 만들어서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위험한 건 다 같이 위험하지 않은가? "미성년자는석방하라!"는 얘기도, 결국 '미성년자'에 대한 평소의 좀 차별적인 상식에 근거한 것일 뿐, '미성년자'만이 특별히석방되어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우리 이제 "왜 우리만 풀어주냐. 모두 다 석방하라."라고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거나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자", "서로를 지켜주자"는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다
(성남 청소년인권모임 인지인,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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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청소년들이 두려운 어른들에게

 

청소년들의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중단하라

 

 

 또 다시 수차례 반복되어 왔던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05년 5월 내신등급제 반대 집회와 두발자유 집회에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교사들과 장학사들을 수백 명씩 동원하여 집회장 주변을 지키고 서있던 모습이, 보수 언론들이 핏대를 세우며 “철 없는” “감수성이 예민한”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우려스럽다고 떠들어대고 “배후세력”이 있다고 외쳐대던 그 모습이, 2008년 지금 광우병 소고기 반대 집회를 둘러싸고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경찰들까지 나서서 5월 17일에 휴교시위를 하자는 내용의 문자를 ‘추적’하고 ‘조사’하고 있으며, 법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 “업무방해죄”를 억지로 적용하면서까지 청소년들의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 2003년에도 정부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촛불집회에 대해서 ‘미성년자들이 집회에 강제동원 되고 있다’면서 이를 불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헛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2008년에 이르기까지 어찌나 발전이 없으신지, 갑갑해서 목이 메일 정도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거듭해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를 막기 위해 학교와 교사들을 동원하는 등 청소년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에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에 대해 ‘귀가’를 ‘지도’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 것과 교사들을 집회 현장에 배치한 것 등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5월 8일에는 전국 교육감들이 교육과학기술부에 모여서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이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라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기관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본질적 가치에 속하는 정치적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고 억압하는 조치들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발표하는 것에 우리는 큰 분노를 느낀다.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인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자신들이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기관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꼴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위축시키는 발표와 조치들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철회해야 하며, 청소년들에게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비롯한 여러 정치적 권리들이 당연히 보장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경찰들은, 처음엔 “정치적 선동”과 같은 법적 근거가 없는 말을 쓰다가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업무방해죄”나 “정보통신기본법” 등을 이야기해가며 청소년들 사이에 오가는 “5월 17일 휴교시위” 문자 메시지까지 추적하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의 문자메시지를 조사하고 교장을 만나 집회에 참가하지 않도록 지도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이런 행위들은 명백히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위축시키려는 행위이다. 청소년들이 “휴교시위”를 선택하여 결석처리를 감수하고 등교를 거부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 또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겠다는 것은 경찰이 청소년들을 권리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학교의 소속으로만 판단 업무의 연장선상으로만 판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경찰은 “인권 경찰” 같은 명분만을 내세우지 말고 청소년인권을 비롯한 제대로 된 인권교육부터 시켜야 한다.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는 것이 경찰이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이며, 따라서 경찰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부당하게 위축시키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추적할 시간에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를 강압적으로 막는 교사나 교육청 등을 사법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청소년 집회참여를 두고 연예인들의 의견에 무작정 따라가는 팬덤현상이라거나 미성숙한 판단력으로 인해 괴담에 휩쓸려 또는 몇몇 사회단체들의 이야기에 속아서 조종당하는 거라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태도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행동을 편훼하는 것이며 상식이하의 행동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촛불집회가 놀이문화의 부족과 소수 단체들의 정치조작 때문이라는 청와대 발표는 언급하기도 힘든 망언에 불과하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의 의미를 깔아뭉개는 것은, 청소년들이 주장하는 내용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라는 이유로 청소년의 주장을 무시하는 지극히 ‘꼰대’스런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현재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충분히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만일 청소년들이 나서게 된 배경에 ‘오해’가 있다면, 그 일차적 책임은 청소년들을 비롯한 정책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 붙이는 정부에게 있을 것이다. 보수 언론들이나 청와대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와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계속해서 놀이문화, 인터넷 괴담과 배후조종, 연예인추종 등 궁색한 ‘설’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집회 현장에서 청소년들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발언을 주의 깊게 들어보기만 하더라도 그런 ‘설’들이야말로 얼마나 왜곡된 거짓말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언론들이 정말 자신들이 내세우는 것처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면, 언론들은 오히려 지금껏 민주주의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배제되어 있던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 주장․활용하며 나선 것을 긍정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광우병 우려가 있다고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학교자율화 조치를 비롯한 교육정책에 반발하며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누가 청소년들을 ‘내몬’ 것도 아니며 청소년들이 누구에게 ‘속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 정부가 청소년들의 삶을 더욱 나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 정책들을 연이어서 발표하고 있으며 그런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정치적 권리에 속하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함은, 여러 국제인권조약이나 헌법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권리이자 명박한 진실이다. 이러한 기본적 인권에 대한 것들은 외면하면서 무슨 민주주의와 인권과 교육을 말하겠는가? 우리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 경찰, 언론 등이 지금까지 해왔던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고 위축시키는 여러 부당한 반인권적 조치들과 발언, 기사들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철회할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촛불집회 참가를 비롯한 정치적 권리를 적극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2008년 5월 9일
청소년 광우병 집회참가 및 정치적 참여 탄압 규탄 기자회견 참가일동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교육공동체 나다, 문화연대, 민주노동당청소년위원회, 범국민교육연대,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그 외 개인활동가들) 평등교육실현을위한민중학부모회(준), 인권단체연석회의(거창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구속노동자후원회,광주인권운동센터,다산인권센터,대항지구화행동,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주주의법학연구회,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사회진보연대,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에이즈인권모임나누리+,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울산인권운동연대,원불교인권위원회,이주노동자인권연대,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운동사랑방,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전북평화와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진보네트워크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평화인권연대,한국교회인! 권센터,한국DPI,한국게이인권단체친구사이,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전국 38개 인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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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담임과 한 얘기.

 

 

 

담임이 날 불렀다.

 

 

"아까 어머니 오셨더라, 봤냐?"

 

"네."

 

 

 

 

"근데 넌 왜 학교 그만둘라 그러냐?"

 

"......"

 

 

 

 

"자자, 앉아봐. 얘기 좀 들어보자 뭐 때문이냐? 나 때문이냐?"

 

"아뇨."

 

"내가 싫은거면 그냥 하루에 20분만 보면 되는거 아니냐, 그것도 못 참겄냐?"

 

"선생님, 제가 선생님 땜에 그러는게 아니라요,

학교에서의 공부 같은거나, 학교에 있는 시간이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게 왜 의미가 없냐?"

 

"시험 잘 보고, 수능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 가기 위해서, 하는 그런 공부가 싫어요."

 

"......."

 

"점수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내 자리가 정해지고, 그런....."

 

"잠깐잠깐, 근데 말이다. 너는 지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어. 나도 학교 다니고, 너만한 시절에는 학교 그만두고 싶었던 적 많았다. 나는 니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럴 땐 더 오래 산 사람 말을 들어야되는거야, 알겄냐? 나는 50년을 살았지만, 니는 18년 밖에 안 살았단 말이다."

 

"네, 선생님이 저보다 오래 사시고, 아무래도 저보다 경험 많으신 것도 사실이겠지만요, 그렇다고 제 판단이 잘못되고, 선생님 판단이 옳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니지. 어른 말이 맞는거야. 니는 지금 동굴 앞에 서있어. 캄캄한 동굴 말이다. 거길로 들어갈라고 하고 있단 말야. 근데 안돼. 거기서 비껴나야돼. 내가 만약에 그 때 니처럼 학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뒀으면은 지금 어떻게 됐을지 몰라. 배추장사 하고 있을지도 몰라."

 

"선생님, 그 말씀은..."

 

"어쨌든 안돼. 지금 내 말 안 들으면 니는 나중에 후회한다."

 

"선생님, 전 예전부터 계속 고민해왔던거구요,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

 

"니가 고민해봤음 얼마나 해봤겠냐. 그럼 한 달 동안 나오지 말아봐, 어떻게 되나. 학교에 있는 게 더 행복할걸. 학교에 막 오고싶을걸."

 

"....."

 

"니 지금 이래서는 안돼. 니가 뭐 해금 한다고 그러나본데, 예체능도, 정상적인 코스를 밟지 않으면 안돼. 인정 못 받는단 말이야. '

 

"전 인정 받고 성공할려고 하는거 아니예요."

 

"국악고 같은데 가고싶어서 이러는거면 선생님이 국악고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한테...."

 

"전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예요."

 

"....아무튼, 공부 지금 안해놓으면 안돼.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안된다고."

 

"지금 하는 공부가 제 머리를 전혀 채워주지 못하면요?'

 

".....아무튼간에 안돼. 다시 생각해봐."

 

"선생님 저 이거 저희 가족하고도 다 얘기한거구요,"

 

"니가 느희 가족들이랑 다같이 얘기를 했든, 온 친척들하고 얘기를 했든간에, 무조건 안돼. 선생님 말 들어."

 

"......."

 

"알겠제, 인제 가봐. 선생님 바쁘다."

 

"선생님 그러면요, 저 한달 동안 안나와볼게요."

 

"......안돼."

 

"왜요?"

 

"그럼 출석 다 못 채워서 짤려, 학교에서. 그럼 하루만 안나와봐."

 

"저 지난주에도 한번 하루 안 나왔었잖아요. 근데 그 때도 별로 바뀌지는 않았어요."

 

"..........그럼 그냥 학교 다니면서 더 생각해."

 

"선생님.......... 전 결정을 내렸다니까요, 안된다고 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학교 안 나오면 안돼."

 

".........."

 

"선생님도 힘들어. 우리반 애들이 좀 많냐. 오늘도 이따 병원 가봐야돼."

 

"그럼 저 하나 빠지면 저희반 인원도 줄고 좋겠네요. 전에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우리반 너무 많아서 전학 좀 보내야겠다고."

 

"그거는, 안 나와도 될 애들이 안 나와야 편해지는기고. 니는 안돼."

 

".........선생님, 진짜..."

 

"종쳤다. 올라가봐라. 암튼 생각 고쳐먹어라."

 

 

 

 

 

 

 

머릿속을 좀 정리해볼려고 쭉 써봤는데...

 

그렇다.

 

우리 담임이랑은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무조건 다시 생각하라하고,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한다.

 

우리 엄마랑 먼저 얘기 했는데 엄마한텐 이런 소리까지 했단다.

 

"근데요, 그러다가 애 시집 못 가면 어떡할라 그러세요?"

 

 

..............................-_-미치겠다 진짜.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했고, 암튼.... 쫌 안타깝다. 말을 중간에 다 끊어먹으니ㅠㅠ

 

 

무튼 난 목요일에 나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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