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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의 병역거부를 응원해주세요!

 

청소년인권활동가 공현이 현재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4월30일부터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서울구치소, 수감번호1131, 유윤종)

 

월정기후원(CMS) 신청으로 공현의 병역거부를 응원해주세요!

공현이 감옥에서 라면이라도 맛있게 먹으면서 힘을 낼수 있게 후원해주시길 부탁드려용

(공현후원회 비스무레한걸 맡고 있는 따이루와 난다가)

http://cafe.daum.net/gonghyun/4qzl/2

 

* 아래는 공현의 편지를 함께 첨부합니다.*

 

 

 

 안녕하세요?

 

이 편지는 저와 이렇게 저렇게 알고 지내던 분들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읽으실 어떤 분들은 저를 공현으로 알 테고, 어떤 분들은 저를 유윤종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으시겠지요. 이미 소식을 들으신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지금 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선고는 4월 25일로 정해졌는데, 유죄 판결을 받고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거의 99%쯤? 바로 그날 법정에서 그대로 수감될 가능성도 높으니, 4월 25일부터 저는 감옥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 한국의 병역제도가 개인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저는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평화가 지켜진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평화적인 수단에 의해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신념 때문에 군대에 복역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병역거부라는 방식으로 제 신념을 실천했습니다.

 

이 편지를 읽으실 분들 중에는, 제가 군대에서 복역하는 대신, 병역을 거부하고 처벌받는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동의하고 지지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안타까워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탐탁해하지 않아 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가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분들은, 가능하면 시간이 허락할 때 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쉽게도 당장은 그럴 시간은 별로 없습니다. 이제 수감되기 전까지 시간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고, 저는 제 신변을 정리하고 수감 생활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러니 그런 이야기들은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편지로 주고받거나, 아니면 1년 6개월 뒤, 출소한 이후에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여하간,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제가 곧 감옥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걸 알리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전화나 문자도 안 될 것이고, 이메일을 보내시거나 트위터 멘션을 보내셔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1년 6개월(잘 해서 가석방 받으면 1년 2~3개월?) 동안, 얼굴도 못 보고 연락도 못 하고 지내겠지만 저를 잊어버리거나 하진 말아주세요. 여러분 주변에 병역거부로 수감된 사람이 또 한 명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염치없고 민망한 이야기지만, 정기적인 수입이나 경제적 여유가 조금 있는 분들은 제 영치금을 약간이라도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옥은 군대랑 또 달라서, 생필품도 아주 최소한만 지급되기 때문에 옷이나 담요, 반찬, 휴지 같은 것도 돈을 주고 사서 사용하고 먹고 해야 합니다. 몇천원의 소액도 가능하니, 1년 6개월 동안만이라도 정기 후원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에 대한 지지와 염려의 뜻, 아니면 저의 병역거부라는 실천을 후원하는 마음을 담아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며칠 후면 감옥에 갇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편지를 이용해서 언론에 칼럼을 연재하거나 글을 쓰는 등의 형태로 제 이야기를 가끔씩 접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어디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계속 같은 세상에 사는 거니까요.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4월, 공현(윤종)이

 

※ 후원이나 이후 소식 관련해서는 <공현과 함께라면> 다음카페 cafe.daum.net/gonghyun 에서 봐주세요.

 

공현의 병역거부를 후원해주시고자 하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의 지원을 받아 월정기후원(CMS) 후원시스템을 준비 했습니다. 2페이지에 있는 월정기후원(CMS) 신청서와 동의서를 작성해서 abcmansung@naver.com메일로 보내주시면 간단히 처리 되니 ‘귀찬타’ 넘기지 마시고 공현을 후원으로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현이나 공현후원회를 맡고 있는 난다나 따이루를 통해 직접 전달해주셔도 됩니다. :-)

 

공현을 후원하는 씩씩한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2-241-865229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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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0

 

 

호흡이 짧다. 결심이 짧다. 후하 후하 깊은 호흡ㅡ 잠수ㅡ는 아니고,

활동사진이나 관심글, 성명서 등등 활동자료들 요 공간에 잘 모아두자, 해놓고서 또 멈췄당ㅎㅎ...

 

속닥, 담아두기.

 

치열함, 이라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인데

치열함, 이라는 게 지금 나한테 필요한 말일까, 곰곰.

아주 약간 찜질방 같은 지하철에 올라타서, 잠깐 곰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좀 안 부지런해. 게을러 게을러 게을러 터졌어

생각도 게으르고 고민도 게으르고ㅡ 부끄러운 기억도 한 가득ㅡ

심지어는 그 부끄러운 시간을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더 부끄러워질 때가 있는데. 중요한 건 그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위축시킬 필욘 없다는 거, 부끄러움으로 스스로를 압박하진 말자는 거, 그걸 지금의 나는 기억해야 한다ㅡ 라고 쓰긴 했는데, 머릿속은 우당탕탕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나의 '활동가 말', 많은 내용을 담으려는 여전한 욕심, 어색한 흐름, 눈길이 닿지 않는 곳, 내 마음부터 열려있지 않은 건 아닐까,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다고 했다), 근데 좀더 생각해보니 그럼 교육이라는 거 자체가 하나의 '강요'인 건 아닌가? 싶다가ㅡ 일단 제끼고. 아무튼간에 돌아보니 반복되었던 것들.

끊임없이 경계하고,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일은, 아무래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 같다ㅡ 어쩌지ㅡ

 

일단 필요한만큼, 내키는대로, 가면 되는걸까ㅡ 발걸음 닿는대로, 아둥바둥, 꼬물꼬물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면서ㅡ 이만큼 저만큼 걸어가면 되는걸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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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청소년을 요구하지 말라.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하라

 
[기자회견문]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청소년을 요구하지 말라.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하라
 
 
  이제껏 청소년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일 것을 강요당했다. 그 강요 속에서 정치란 미성숙한 청소년이 다가가서는 안 되는 금기의 영역으로 자리 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논하는 청소년은 자기 본분을 잊은 아이로, 혹은 어른들에게 조종당하는 존재로 폄하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청소년을 요구하지 말라. 청소년에게도 정치적일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라.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선거를 할 수 없다. 과거, 여성이 미성숙하단 이유로 선거권을 제한 받았듯, 청소년 또한 단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 표를 던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보통선거의 원칙이 청소년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25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주어짐으로써 선거권보다 더 높은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이 정당에 가입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청소년은 주체로 서지 못한다. 작년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은 청소년 스스로들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할 수 없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민투표법의 나이 제한 때문이다. 이처럼 지방자치법의 나이 규제 때문에 청소년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결정사항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청소년은 주체가 되어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기에 투표권을 가진 어른들에게 기대어야만 했었다.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법에 관해서조차 당사자를 철저히 배제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드는 현 법 체제는 심각하게 반인권적이다.
 
  심지어 18세의 청소년에게는 병역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가 지워진다. 소위 성숙한 인간이라는 '성인'들의 의무는 지워주면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와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성숙과 미성숙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의 법은 대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나이 제한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미 전세계 167개 나라 중 150개 나라가 더 낮은 연령의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동향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도 한국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규정은 너무도 뒤떨어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이 정당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는가? 선거철만되면 난무하는 '투표는 국민의 소중한 권리'라는 선전이 우리에게 이러한 의문을 남긴다. 현재 선거법, 주민투표법, 지방자치법, 정당법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청소년의 행복추구권,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가차없이 침해한다. 오늘 이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위한 헌법소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부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길 기대해본다. 다시 한번 우리는 말한다.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하라. 
 
 
3월 22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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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네트워크는 죽어서 물음표를 남긴다?>★청소년운동 간담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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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네트워크는 죽으면 물음표를 남긴다.”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읽고, 지형을 살펴, 현재를 묻는<물음표 간담회>

 

안녕하세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입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청소년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꾸며, 활동해온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06년 창립 이후 학생인권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청소년 인권의 다양한 영역(여성주의, 노동/알바, 보호주의 넘어서기 등)을 개척하며, 청소년 운동의 지평을 넓혀가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습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올해 2012년, 5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며 해소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2010년에 꾸린 ‘청소년활동기반조성모임 활기'와 통합해 청소년운동 안팎에 필요한 또 다른 역할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사람도 적은ㅠㅠ 청소년 활동의 열악한 현실을 함께 바꿔내고, 보다 나은 청소년 활동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듯, 네트워크는 죽으며 물음표를 남겨보려 합니다. 점점 깊고, 넓어져 가고 있는 청소년 활동의 영역 속에서 서로 궁금했던 점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투덜대며 또 힘을 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더 번창할 청소년 활동을 꿈꾸며 즐겁게 죽어가는(?) 네트워크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들에, 여러분이 함께 고민하고 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이야기 나누고픈 여러분을 모십니다!

 

아래 자세한 기획안과 네트워크가 남기고 싶은 질문들을 첨부합니다.

3월 29일 목요일, 늦은 6시 30분에 함께 만나길 기대합니다.

 

 

◑ 때: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 곳: 민주노총 교육원 (서대문역 근처 경향신문사옥)

◑ 여는 단체: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 모임<활기>

 

◑ 목표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2006년 창립)의 발전적 해소 및 <활기>로의 통합을 맞이하여 현재 청소년운동의 위치와 지형을 점검함.

- 현재 꾸려져있는 청소년 당사자 운동 단위들의 활동가들이 모여 서로에게 갖고 있는 질문을 나누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공유함.

- 듣보잡 취급받던 청소년(인권)활동을 망하기는커녕 나름 예쁘게 성장시켜온 서로의 노고를 다독임.

- <활기>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음을 청소년 활동가들에게 알리고, 앞으로 함께 할 수 부분을 발견함.

 

<앞풀이 마당> 오후 6시 30분 ~ 오후 7시

 

<본 마당 1- 네트워크의 다잉 메시지> 오후 7시 ~ 오후 7시 30분

: 네트워크가 청소년활동가들에게 보내는 유서

: 네트워크의 시선에서 바라본 청소년(인권)활동의 흐름을 재밌게 풀어봄

: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 네트워크!

 

<본 마당 2- 청소년운동, 물음표를 나누다> 오후 7시 30분~ 오후 9시 30분

: 이야기 손님을 모시고 물음표를 나눠봅니다

: 이야기 손님 뿐 아닌 모든 사람의 참여로 후끈후끈한 토크를 나눠봅니다 



[네트워크가 남기는 물음표]

* 공통 질문: 자기 단위의 정체성, 활동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 3개 뽑고, 소개.

 

To. 아수나로

 

1-1) 청소년인권이 학생인권과 같은 말이 될 수는 없지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의 숫자도 많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나 가정 안에서의 인권 문제도 중요하니까요. 아수나로 역시 학생인권으로만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아수나로 활동가들 중 상당수가 탈학교 상태기도 하구요. 이러한 아수나로에게 전국적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어떤 의미인가요? 작년에는 특히 다른 사업보다 학생인권조례(특히 서울지부)에 많은 역량을 쏟기도 했는데요. 듣보잡 학생인권이 전국적 이슈로 떠오르고, 중요한 정세가 되는 것은 의미 있으나 학생인권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에 대해 내부 이견이나 고민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

 

1-2)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을 하며 청소년 활동가들이 참 많이 웃고, 울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비청소년을 만나 설득하고, 서명을 독려하는 과정은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야말로 ‘보통의’ 사람들과 운동의 내용을 널리 나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주민발의의 조건상(투표권ㅠ) 그간의 ‘싸가지 없음’을 내려놓고 어른(혹은 꼰대)들과 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다른 운동 방식의 경험이 아수나로 활동가들에게는 무엇을 남겼나요?

 

2) 아수나로는 전국 지부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어려움이나 고민은 없으신지요? 지역마다 운동의 자원(사람, 공간 등)도 다를 테고, 이슈도 다를 텐데 그 차이들을 어떻게 모아내는지도 궁금합니다.

 

To. 정당 청소년 위원회

 

1) 정당 청소년 위원회는 청소년 인권 의제 뿐 아니라 마리 투쟁이나 재능농성장 결합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인권문제를 다루기 위해 꾸려진 여타 청소년 모임들과 달리 여러 이슈들을 고른 비중으로 다루는 것 같아요. 청소년 위원회의 정체성이 궁금해요~ 정당 안에 있는 청소년(나이 기준)들이 모여 있기에 청소년 위원회인 것이지, 아니면 청소년이 겪는 차별의 상황을 알리고 청소년 인권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위해 모인 위원회인 것인지요.

 

2) 정당은 제도권 내 정치 세력화를 모색합니다. 선거를 잘 치러내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구요. 청소년은 피선거권은커녕 선거권도 없습니다ㅠㅠ 청소년 관련 정책은 그 흔한 공약에도 제대로 담겨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있어봐야 학부모를 겨냥한 정책들이 대다수지요. 이러한 조건에서 정당 안에서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활동 공간을 정당으로 삼으신 맥락이 궁금해요. 청소년에게 정당 운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3) 비청소년 당원, 혹은 당직자들과의 관계에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을 것 같습니다. 뒷담화로 꼰대들의 욕을 와장창 하는 걸로도 화풀이가 안 되는 순간이 있지요. 당내에서 나이주의, 청소년 차별과 관련해 공론화하거나 공식적 문제제기를 해본 경험이 있으신지요? 당내 갈등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To. 10대 섹슈얼리티 인권 모임 + 서울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10대 팀

 

1)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도 10대 여성주의 운동을 쪼꼼 해본 역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10대 혹은 10대 여성들과 성/섹슈얼리티 담론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습니다. 섹슈얼리티, 라는 말 자체도 너무 어렵지요. 청소년 인권의 다양한 영역 중 활동 키워드로 ‘섹슈얼리티’를 잡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2)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이라는 정체성과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복합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청소년운동 안에서 호모 포비아(동성애 혐오)와 싸우는 것, 성소수자운동 안에서 나이주의와 싸우는 것. 둘 모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차별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To. 고졸이하네트워크 ‘고등어’

 

1) 대학을 안 간다고 하거나, 대학(학력/학벌중심)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가장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 이 이야기를 오히려 불편하게, 허황된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또는 ‘대학에 못가는(등록금의 문제든, 성적의 문제든) 사람도 많은데, 니들은 뭐냐!’ 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보수 언론이 이런 상황을 이용해 대학입시 거부, 학력 차별 반대 운동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학력차별에 반대하는 것, 대학만이 길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려내는 데 있어서 이 정서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말 걸기를 할 수 있을까요?

 

2) 대학을 거부하는 것, 가지 않는 것이 청소년들의 더 활발한 운동이 되려면 여러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고등어에서 탈대학 공부방 활동도 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이후의 삶을 지원하고, 지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갖춰져야 할까요?

 

To.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을 위한 모임 활기

 

1) 활기는 2010년에 꾸려졌고, 올해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냥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활동기반 조성을 위한’ 모임을 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2) 활동기반을 조성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느낌은 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활동 지원금을 준다는 건가? 여기서 하는 교육을 받으면 된다는 건가? 등등 의문 투성이~ 앞으로 활기는 청소년 활동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 것인지요? 다른 청소년 모임/단체들과는 어떠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읽고, 지형을 살펴, 현재를 묻는 <물음표 간담회>!
많이 많이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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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8일★홍대클럽FF, 짱짱한 라인업과 함께하는 투명가방끈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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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 http://cafe.daum.net/wrongedu1/RbEu/3  

 

              3월 18일, 저녁6시, 홍대 클럽 FF로 오세요~_~꼭 오세요~

 

 


★투명가방끈 콘서트 참가제안서

수신 : 경쟁에 쳇바퀴 위에서 죽을때까지 달려야 하는 당신께
발신 : 투명가방끈 콘서트 팀

안녕하세요. 저희는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입니다. 투명가방끈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저희는 대학입시거부/ 대학거부자 그리고 그 움직임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모임입니다.

제 안서를 쓰면서 ‘거부’라는 표현이 무겁게 다가가면 어쩔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상징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는 것과 제도권을 벗어나는 것의 급진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차별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학을 거부 하려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부조리와 잘못 된 편견을 ‘거부’하고 나아가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중 고등학교는 대학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사회가 원하는 상품이 되어갑니다. 대학은 대기업 혹은 안정된 고수익직종이 되어 사회의 주류계층에 편입하기 위한 취업양성소가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끝없는 줄 세우기로 인해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버립니다. 조기 교육된 경쟁은 심장 속에 깊숙이 박혀 공부보다는 오히려 성적에 따른 우월감 혹은 자기비하를 가르칩니다. 배움의 과정 자체도 폭력적입니다. 토론을 통해 서로의 다양한 주장과 가치관을,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닌 하나의 정해진 답을 외우고 시험지에다 옮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과정자체도 권위주의 적입니다.
매 년 수백 명에 이르는 고교생들이 자살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긍정의 힘’과 1%만이 가질 수 있는 ‘성공신화’ 가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배우도록 선택할 수 있는 환경 그러면서도 경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사회의 안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 년대 초부터 꾸준히 '안티수능페스티벌', '입시폐지대학평준화페스티벌' 등의 문화제가 열려왔고 많은 뮤지션들이 함께 해왔습니다. 이 같은 문화제들 처럼 대중 들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투명가방끈 멤버 중에 음악을 하고 있는/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끼리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어느새 당연하게 생각하는 교육과 경쟁의 모순들을 다시 한 번 문제제기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경쟁을 벗어난 삶, 꼭 승자가 아니더라도 매순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안합니다.당신이 콘서트에 함께 해주실 것을!
고 통 받고 있는 청소년/청년들에게 위로를 넘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에 함께 목소리를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학업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 인한 고교생들의 자살. 등록금을 내지 못해 목숨을 끊은, 취직을 하지 못해 세상을 등진 우리의 청춘을 위해서.
잘못된 교육과 환경이 그들의 삶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검은 싸인 펜은 끝없이 OMR CARD 위에 자살자 숫자를 마킹할 것입니다.
함께 만듭시다. 가방끈의 길이를 잴 필요 없는 투명가방끈의 세상을 !
 

 

* 콘서트 후원계좌 : 제일은행 577-20-127407 김동혁 (투명가방끈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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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기, 운동, 틀, 시간, 기타등등

 

작년, 재작년? 까지만 해도, 어쨌거나 활동이 우선이었는데, 어느덧 돈 버는 게 우선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돈이 급하다. 아니 사실, 또 그렇게 막 급하진 않은데, 무튼 돈이 고프다.

돈돈돈... 돈을 입에 달고 산다. 어휴.

 

무튼 이래저래, 요즘 관심사는 알바 구하는 것. 다음주에 또 면접 보러 간다.

 

 

*

또 시작됐다. 아무래도 사람이 중요한 것 같다. 자꾸만 반복된다. 이 사이엔 신뢰가 없다고 느낀다.

괜찮았다가 아니었다가, 괜찮았다가 또 아니었다가.

그냥 올 한해도 그저 의무감과 책임감과 나 혼자의 의지만으로ㅡ 수원에서는, 그렇게 움직일 것 같다.

 

어제 오랜만에 다행스럽게도, 친구들과 냠냠 맛있는 찜닭을 먹으며ㅡ 이야기했던,

 

"아, 그 뭐지? 돌덩이 말이야. 굴러떨어지고... 그 누구지?"

"시지프스?"

"아, 그래! 맞아!"

 

꼭 시지프스 같다고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굴러떨어지면 다시 올려놓고, 또 굴러떨어지면, 또 올리고, 올리고, 떨어지고, 올리고... 반복.

좀 그런 것이다. 매우 힘들고 그런 건 아닌데, 어마어마한 것이 표출되는, 속에서 꿈틀거려서 가만두지 못하는, 뭐 이 정도의 상황은 아니고. 오히려 담담한 편이다. 근데 무튼 좀 그런 거다.

 

시지프스란 사람은 신에게 엄청난 죄를 지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음.

 

 

 

*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자꾸 자꾸 생각을 하면, 너무 무섭다, 라는 걸 발견한다.

그냥 흘려버릴 때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요즘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ㅡ 아아

무겁고, 무섭고, 으으..

 

 

*

길을 걷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다 흩어져버리는 것이 아쉽다. 나란 사람... 기억을 못한다.

 

"주구장창 회의만 하는 것이 운동은 아니잖아ㅇㅇ" 라는 말이, 어제부터 새삼스레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주구장창 회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래, 그 회의로, 어떻게든, 우리의 활동이 진행되고 추진되고 나아가고. 하는 것은 분명한데, 자꾸만 '회의'라는 틀 안에 갇히고 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도 꼭, 한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계획을 차곡차곡 만들어가자, 라고 생각하는 이맘때쯤이면ㅡ 꼭ㅡ

회의라는 틀 속을 헤매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어라, 지금 어디쯤 와있는거지?

길이 보이지 않는 허무함이 밀려드는 것이,

 

자꾸만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좀 더 해야 하는데. 좀 더 나눠야 하는데.

갈라진 길을 눈앞에 두고서야, 이런 안타까움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걸까ㅡ


복잡미묘한 꿈들...

알 수 없으니 답답한 건 언제나처럼 마찬가지.

알고 싶다. 조금 더, 부지런함이, 부끄럽지 않도록. 필요하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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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3월18일, 투명가방끈 콘서트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벌중심사회에서, 대학중심사회에서, 제 가방끈은 투명하기만 한걸요.

투명해지고 싶은 가방끈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안 보여 안 보여

 

2011 대학입시거부선언,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학벌종말을 꿈꾸는,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투명가방끈)'에서 콘서트를 엽니다.

 

얍얍 투명가방끈 콘ㅡ서ㅡ트

공연 당일에 왠만하면 시간을 비워 참석하시오. >_<

 

★당연하게도 후원계좌도 있네요! :: 제일은행 577-20-127407 / 김동혁(투명가방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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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리 이제 친해지길 바래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리 이제 친해지길 바래

 

난다(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시기를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낸다. 학생, 청소년이라면 착실히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꼭 공부나 배움이 ‘학교’라는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은 제쳐두고서 현실을 보면, 어쨌든 학교가 많은 청소년들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의 학교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변하지 않는 곳 중에 하나였던 학교가, ‘갑갑함’, ‘감옥’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던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 등등이 새로운 열쇳말로 떠오르면서, 경기도에서는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학교가 변하고 있다. 학생인권은 어떤 학교를 바라고 있을까? 지금 학교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나야 할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따라 학교, 학생인권과 친해져보자.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지

 

  나는 지금도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하면 우중충한 하늘이나 조용한 교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떠오른다. 언제나 잠은 부족했고, 시험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문제를 풀고 점수를 올리는 연습에 더 익숙했다. 새벽에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잠에서 깰 때마다 생각했다. 주섬주섬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던 그 때, 같은 모양의 틀로 찍어낸 것 같은 그 일상과 하루하루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답답하던 나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우연히 만난 ‘청소년인권’이었다. 입학식 첫날부터 시작된 ‘야자’에 적응할 수 없어 몸부림치던 시절, 시험기간만 되면 바깥풍경이, 반짝이던 하늘빛이, 구름이, 햇살이 너무나도 눈부셨지만 그 아름다움을 결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나는 ‘미학혁명(미친 학교를 혁명하라)’을 만났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의 집회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내 마음 속을 제대로 엿보게 된 것이다. 혼자 마음 속으로만 꿍시렁거리던 그 불만이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어려운 조건 속에서 청소년운동을 일궈온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우리가 보고싶은 현실을 위해 부던히도 몸을 움직여왔다.

 

  우리가 원했던 그 학교의 변화를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김상곤 교육감이 훌륭하고 개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뚝딱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당연히도 학생인권 운동의 역사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두발자유-no cut’ 운동, 독립적 학생회 보장 요구 등등 거의 10년 가깝게 학생인권에 관한 학생들의 요구와 행동이 진행되어왔다.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높아져갔고 비로소 일상적으로 존재하던 많은 학생인권 침해들이 의미 있는 문제―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운동은 2005년 이후로 광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 그리고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의.) 등의 형태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조치들을 만드는 것을 요구해왔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또한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학생인권운동은 음으로 양으로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자문위원회에도 학생인권에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인권운동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연구용역팀에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 참여했다. 과거에 연구되고 발표되었던 학생인권 지침, 결정 등이 함께 검토되었고,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이나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그리고 학생인권법안 등은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또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학생참여기획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생생하면서도 인권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학생인권운동이 지난 세월 동안 문제제기하고 그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쌓여온 이야기와, 사례와 담론들과 자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튼실한 내용으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지금처럼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또한 학생참여기획단을 통한 활동 외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그리고 통과되는 데에 참여하고 힘을 보탰다. 사실 경기도 교육청 차원에서 그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데 큰 힘을 쏟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도 지역의 학생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그리고 그 동안 학생인권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서 활동해오던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유인물을 만들어 직접 학교 앞으로 찾아가 뿌리기도 하고,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고, 제대로 된 내용으로 통과시키자,는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서명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에서 최종적으로 통과되던 날,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그것은 학생인권조례 통과에 더욱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시행, 그 이후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전국에서 최초로 통과되고 그렇게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인권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고 보장될 수 있도록 조항들을 통해 학생인권의 구체적 권리들을 명시했다. 얼마 전에 통과된 광주학생인권조례안, 일본 가와사키 시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조례’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지난 2010년 10월 5일, 공포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강제야자-보충 금지, 집회의 자유 보장, 차별 금지 등의 조항을 담았다. 그 외에도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참여위원회 등의 제도를 명시함으로써, 조례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학생인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구제절차의 내용이 담겨있다. 비록 단서조항이 붙어 있어서 완전한 조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학생인권을 명문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누구에게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우리 사회의 학생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아직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제는 한글문서에서 ‘두발규제’나 ‘강제야자’, ‘소지품검사’ 같은 말들이 틀렸다고 빨간 줄도 안 그어지는 현실이다.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0교시, 강제야자, 학원 뺑뺑이까지 쉴 틈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규정에 어긋난 데는 없나’ 자신을 검열하며, 양말색깔 하나, 머리핀 색깔까지 신경 써야 하는 모습은 익숙한 장면이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명제는 말 뿐이다. 이 같은 현실들을 바꾸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인권은 어떤 이유로든 유보되어서도 안 되고, ‘미래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분명한 의미가 아닐까.

 

  지난 1년을 돌아보자.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 교문 앞에서 멈추던 인권이 교문으로 등교를 시도했다. 학생인권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터져 나오고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제는 학생인권조례가 뭔지, 학생인권이 뭔지, 대충은 알게 되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를 시작으로, 지난 10월,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경남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제정운동이 성공했다. 서울에서도 얼마 전 서울시 주민발의로 성사된 학생인권조례가 극적으로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전북, 충북/충남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갑갑한 학교와 교육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그러나 이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학교 현장에 충분히 알려졌다고 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학생인권조례가 잘 정착하고 자리잡아가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달랑 학생인권조례만 만들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왔지만 아직 한참 더 가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교문 앞에서 멈췄던 인권이 그렇다면 이제는 과연 교문을 넘어섰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누구도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에도, 아직도 교문지도와 체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체벌금지 이후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벌점제는 ‘법과 규칙이 살아있는 학교’를 위해 학생들의 숨통을 조이고만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정착화에 나서서 힘써야 할 경기도교육청은 대놓고 산으로 가고 있다. 학생인권이 실질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보여주기만을 위한 ‘전시성 사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끊이지 않는 민원과 상담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생들도, 교사들도, 아직은 학생인권조례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직은 이 조례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올해 초, 경기도학생인권조례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때 즈음 진행된 ‘경기도 학생참여위원회’의 공개모집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4월, 경기도학생인권조례안에 따라 ‘학생참여위원회’를 공개모집했다. 학생참여위원회는 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와 같이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에서 여러 가지 학생인권에 관한 일들을 진행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위원회이다. 하지만 이 ‘학생참여위원회’ 공고 과정은, 모집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 학교장의 직인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점 등에서 학생들의 자치적 참여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받았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참여위원회의 자치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학생인권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이 학생참여위원회는 공개모집 과정부터 지금까지 운영에 이르기까지 여러 미흡한 점이 많았다. 학생참여위원회의 존재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안타깝다. 그리고 학생참여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여러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학참위를 ‘학생참여기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생인권조례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전시물로써 인식하고 있는 태도 또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학생인권조례와 친해지길 바래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내고 참여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 공간이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만 보장받는 권리는 진짜 권리가 아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 사실 중요한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을 실제 삶에서 구체화하고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 번에 모든 걸 잘 해낼 수는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더욱,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이후를 우리는 다시금 되새기고 제대로 돌아봐야 한다. 여러 어려움에 부딪히고 가는 길이 더디더라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 같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잘 해쳐나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마음을 모아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만큼 여러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아직은 어색한 이 사이를 조금 더 좁히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 지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진보의 역사는 당연한 것에 대해 던지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가 그 동안 당연히 여겨왔던 그 질서에, 지금 학생인권조례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당연하냐고. 지금의 이 모습은 이대로 괜찮은거냐고.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실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참여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에 꾸준히 관심 갖기. 질문 던지기. 학교 안에서, 소소한 일상에서 내 이야기 꺼내기. 규칙개정심의위원회 참여하기.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심의위원회 등 구제절차 적극 활용하기. 등등. 이런 활동들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

 

청소년을 둘러싼 견고한 ‘전제’를 넘자

 

  학생인권조례 이전의 학교가 “뭐 되는 게 있겠어“, “대충 참는 거지”하며 여러 인권침해적인 장면도 그냥 넘어가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면, 학생인권조례 이후, 인권은 그런 무기력함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요청받기도 한다. 적어도 학생인권조례가 그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청소년)인권을 말하는 것은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얘기들을 끌어올리는 작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위치에 세워두고 있는 지, 청소년을 어떤 주체로 인식하는 지에 대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고, 그 이야기꺼리들을 수면 위로 띄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유보’되어 왔던 학생인권,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것조차 ‘금기’였던 학생인권, 그 존재가 꽁꽁 숨겨져 왔던 학생인권의 봉인을 푸는 주문이다. “학생/청소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 는 류의 청소년 ‘존재’에 대한 그 견고하고 딱딱한 ‘전제’를 바꾸는 일이다.

  재작년에 몇몇 학생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 질문이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가?”였다. 그 중 한 학생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학교는 학생도, 교사도, 서로에 대해서도, 수업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면서 “학교가 바뀌기 위해서는 ‘궁금해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라는 것이었다. 밑줄을 쫙 그어야 될 것 같았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 학생인권이 지켜지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학교의 익숙한 장면과는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고 좀 헤매기도 할 것이다. 혹은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반복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은 ‘살아있는 건지, 살아있는 꿈을 꾸는 건지’, ‘살아가는 건지, 그저 살아지고 있는 건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아닌 건지, 궁금해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지 않고 숨긴 채, 숨죽이며 살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를 바꾸자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가기’를 위한 교육을 만나고 응원할 것이다.

 

 

 

 

 

2012청소년인권아카데미,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우린 아직 어색한 사이' 파트 설명글(?)로 들어간 글.

그리고 이번 아주대 글로벌인권센터에서 주최하는 학생인권조례와 교육운동 관련 토론회에도 가져갈 글.

역시나 여기저기 짜집기 글.

부끄럽지만...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해봐야지 싶다가도, 언제나 마무리는 비슷.

보는 시야가 거기서 거기라서 그런건가ㅡ 좀 더 애써야 되는 걸라나ㅡ 아아 자극이 필요하다. 흐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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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인권조례"인가 (공현/아수나로)

 

왜 "학생인권조례"인가

 

2012.01.30.

 

많 은 분들이 이 지역 저 지역에서 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시행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곳은 경기도와 광주광역시, 단 두 곳뿐이다. 그나마도 경기도가 2010년 10월에 공포되어 1년여 시행됐으며, 광주의 경우는 바로 며칠 전인 2012년 1월 1일부터 시행이 시작되었다. 그럼 다른 지역은? 서울이 얼마 전 공포가 되었는게 교과부가 법원에 이를 정지 가처분신청을 하는 등 삽질을 하고 있다. 그밖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추진 중이거나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다른 어떤 것(교육공동체인권조례, 학교인권조례, 대구교육권리헌장 등등)을 추진하고 있거나, 아예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지역들이 대다수이다.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라는 형태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고 있거나 논란 중인 지금,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왜 "학생", "인권", "조례"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왜 "학생"인권조례인가?

 

학 생인권조례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가장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왜 학생의 인권만 보장하는 제도를 만드냐는 것이다. 주로 교사의 인권은 그럼 없다는 거냐는 식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학부모/보호자의 인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 말에 혹해서 "교육공동체인권조례"나 "학교인권조례" 같은 형태로 조례를 만들려고 하는 지역이나 교육청․단체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이기 때문에 가지는 의미가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그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던 현실을 직시하고,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또는 아동/청소년)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미성숙하고 인간이 덜 된 존재로 보고 각종 인권을 전방위적으로 억압, 규율, 침해하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학생인권운동(또는 아동/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와 관점 속에서 탄생한 제도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에게 인권이 있다는 선언이기 때문에 학교를 교육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안에서 가장 권력과 권리가 없는 존재였던 학생들에게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학교 안의 지형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교사의 인권은 그럼 없냐는 식의 이야기는 마치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라고 했더니 비장애인 인권은 없냐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추측건대 이는 학생들의 인권 보장 자체가 기존의 질서에 대해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협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학생 인권 보장이 그 질서 안의 다른 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학교인권조례"나 "교육공동체인권조례"로 만들겠다는 것은, 마치 겉보기에는 더 나아간 것처럼 꾸미고 있지만,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운동의 관점에서 제안되었고 만들어진 것을 외면하며, 학생인권 보장의 역사적 사회적 요구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도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먼저,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는 대체로 "교사, 학부모, 학생"의 소위 교육3주체의 인권을 보장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교사의 인권은 (주로 정치적 권리나 노동권 등이) 한국의 여러 법률적 문제나 교육정책 등에 의해 제한되거나 침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조례의 형태로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또한 교사에게 필요한 인권이 무엇인가, 또는 교권(이는 교사의 인권과 다른 개념임에도,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에서는 함께 다루는 경우가 있다. 교권으로서의 권리와 교사의 인권을 혼동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이 무엇이며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충분한 고민 없이 피상적으로 구색 맞추기로만 들어가기도 한다. 학부모의 인권으로 가면 더욱 모호하다. 학교에서 보장해야 하는 학부모의 인권은 정확히 무엇이며, 이를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무슨 효과가 있는가? 결국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라는 형식은 학생인권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무마시키기 위해 교사, 학부모를 동원해서 생색을 내고 있을 뿐 아닌가? 이는 오히려 교사, 학부모들이 분개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밖에도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는 ▲ 학교구성원들 중 학교 직원(교사가 아닌 학교의 여러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배제하기도 하고 ▲ 학생인권조례에 비해서 학생인권의 문제를 학교 안의 문제, 소위 교육3주체만의 문제로 한정시키기도 하며 ▲ 학생의 인권을 학교나 교육공동체라는 관념의 틀 때문에 제한하기도 한다. 더 조화로운 공동체/학교를 지향한다는 착각 속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불충분한 보장이나 제한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학생을 대등한 인간으로 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이기 때문에 가지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실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 내용에 일부 한계나 문제가 있더라도 학생인권조례가 그나마 환영받고 정당화되는 이유이다. 교사나 학부모의 권리 문제 그리고 학교공동체의 문제는 학생인권을 요구해온 것과는 역사도 맥락도 차원도 다른 문제이며, 별도의 연구와 운동과 제도를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공동체/학교인권조례를 추진하는 이들은 그것이 학생인권조례의 이런 의미와 이유를 축소시키고 훼손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것이 필요한 이유를 따로 정당화해야 할 것이다.

 

 

왜 학생"인권"조례인가?

 

다 음 문제제기는 왜 "인권"만 보장하냐는 것이다. 이에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의미일 수 있는데, 하나는 "학습권"과 "인권"을 대립하는 걸로 보고 왜 "인권"만 보장하고 "학습권"은 보장하지 않느냐는 식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왜 "인권"만 명시하고 "의무"는 명시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첫 번째, "학습권"과 "인권"을 대립시키는 논리는 일단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 학생인권조례는 인권 중에 교육권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학습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학습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구체적 기준들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학습권이 부당하게 침해당했다면 이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구제 절차 등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으며, 학교․교육청 등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교육환경을 개선시킬 의무를 진다. 만일 학생이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저해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학생들이나 학교에서는 이를 충분히 제지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그 학생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하며 비폭력적이고 합리적 방식으로 제지․징계․지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이다. 학습권은 다른 인권과 같이 인권의 한 내용으로 보장되는 것이고, 다른 인권에 비해서 더 우위를 가지거나 할 이유도 없다.

학습권을 입시 공부 또는 그 동안의 수업방식 유지라는 매우 한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거나, 또는 권리가 아닌 학생의 '의무' 비스무레한 걸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태클을 걸곤 한다. 마치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 보충수업 등을 강제로 하지 않고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거나, 또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떠들거나 수업에 흥미를 잃고 반항하는 학생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입 다물게 하고 닥치게 하는 것 정도를 학습권 보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의 학습권(제대로 된 학습권이라 하기 어렵지만!)이라면 이미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는 이를 지겹도록 강조하고 집착해왔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비롯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것이며, 학습권의 의미 역시 다시 한 번 인권의 관점에서 새롭게 짜야 할 것이다.

두 번째의, 왜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의무"는 권리만큼 명시하지 않느냐는 식의 비판은 인권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인권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며, 현대 국가에서 국가의 존재 목적은 1차적으로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러 그 때문에 처벌을 받고 인권을 제한당하더라도, 이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권리를 박탈한다는 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저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인권에 있어서는 의무를 다해야 권리를 보장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에게, 공동체에게, 때로는 개인에게) 필요한 의무를 부과하는 논리가 적용된다. 즉, 인권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들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는 일, 마음대로 제한하거나 침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학생인권조례라는 형태로 기본적인 인권의 기준을 제시하고 명시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에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의적으로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이러한 의무 부과 역시 학생의 인권이 먼저이고, 그 인권의 기준을 지키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민주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인권조례는 그러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며, 학교 안에서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이나 지켜야 할 의무 등은, 학교마다 다른 상황과 여건과 경험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치적 자율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에게 의무만 강조하고 권리에 인색했던 우리 사회에 익숙해진 이들이 학생인권조례에 의무가 없다고 길길이 뛴다. (정확히는 학생의 의무(타인의 인권 존중이라거나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거나)에 관한 내용도 일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장애차별금지법은 왜 장애인들에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만 보장하고 장애인들의 의무는 명시하지 않았냐고 물을 셈일까? 세계인권선언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왜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냐고 물을 셈일까? 의무보다 인권이 먼저라는 것, 그것이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지가,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 왜 의무의 명시를 인권 항목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하라는 식으로 요구하는지가,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왜 학생인권"조례"인가?

 

마 지막으로 왜 학생인권"조례"여야 하냐는 비판이 있다. 이 역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므로 "법률"로 하여 전국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례는 법적 효력이 있으므로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헌장 같은 선언적 내용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을 법률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인권의 보편성이 조례의 형태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을 막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인권은 말 그대로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한 국가의 법률로 이를 보장하는 것도 부당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다. 반대로, 각 국가와 지역에서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장려해야 할 일일 것이며, 이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와 지역을 변화시켜야 할 일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을 만들려고 운동했던 적이 있고, 또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조례의 장점도 있다. 조례는 지역 사회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학생인권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지역 교육청과 학교 등에 더 구체적으로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오히려 법률로 선언적 내용만 들어간다면 제대로 학교 현장에 적용되지 않을 법한 내용들이 조례의 형태로 만들어지고 교육청과 지역사회를 통해 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인권에 관한 법률과 조례, 두 가지 다 필요하고 있으면 좋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애초에 학생인권법의 제정 필요성을 옹호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어째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학생인권을 조례가 아닌 헌장 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솔직히 인권을 옵션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소리다. 학생인권조례는, 비록 과태료 부과처럼 직접적인 처벌조항은 없지만, 조례의 형식이기 때문에 학교와 교육청 같은 행정기관에 의무를 부과할 수 있고, 학생인권옹호관과 같은 구제 기구의 설치도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비록 형법 같은 것에 비해 강제성은 약하지만 나름대로 조례의 수준에서 학생인권을 점진적으로 개선, 실현시켜갈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헌장으로 만들게 되면 그러한 개선을 위한 제도와 장치들을 둘 수 없으며, 단순한 말의 성찬이 되어버릴 위험성도 있다. 일부 기구가 추진한 헌장 등의 형태로 만들게 되면, 조례가 가지는 지역사회의 자치법규로서의 의미도 상당 부분 퇴색해버린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우리 시대의 과제

 

그 러므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 "인권" "조례"여야만 한다. 그것이 학생인권을 요구하며 운동해온 역사와 맥락에도, 학생들의 현실에도, 학교와 교육과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실효성에서도 필수적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학생인권조례가 아닌 다른 것으로 하려는 사람들(특히 대구의 "교육권리헌장" 같은 -_-)은 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학생인권을 반대하거나 부담스러워 하는 것인지. 학생이 인간이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인지. 학생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개선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인지. 학생인권조례 이상으로 학생인권 그리고 청소년인권 보장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조례는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넘어서고 시행하고 정착시켜야 할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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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화),<공현과함께라면>★못된양심적병역거부자 공현의 후원파티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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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양심적병역거부자 공현 후원파티
 

<공현과 함께라면>

 

 

못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공현을 후원하는 후원파티가 열립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현실"을 바꾸고자,
"우리 사회의 병역거부자 기록에 숫자를 하나를 더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평화에 가까워지고, 인간을 소중히 여기게" 하고자,
병역거부를 선택합니다.

안 그래도 감옥에 쳐박혀서 일도 못하고 우울우울해할 공현이
감옥 안에서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게 후원으로 응원 해주세요!

*일시: 2012. 2. 7(화) 늦은6시~늦은9시
*장소: 홍대 앞 공중캠프(산울림 소극장 근처, 약도 참조)
*입장권: 1 ticket - 공현라면&주먹밥 / 주먹밥&음료하나(1만원)
-- 다른 메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_< 맘껏 즐겨주세용

프로그램
- 부스행사 : 전쟁없는 세상
- 공현과 함께한 영상
- 공연 : 한낱&낭팽&병용
: 수염이 난다영
: 공현 *_*

입장권 구입 및 기타 문의
전화: 010-9916-1461 (난다)
카페: cafe.daum.net/gonghyun



::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241-865229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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