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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7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 주최, 《장애인활동보조인 노동시간 제한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발문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1. 들어가며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2007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많은 싸움이 있었고, 그를 통해 쟁취한 것 중 하나가 활동지원제도이다. 하지만 이 제도를 올바르게 구성하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제공받는 장애인 외에도 서비스 전달자라고 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과 중개기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전달자에 대한 고려는 미비하다.

이미 정치적 주체로 성장한 장애인의 적극적 요구로 인해 장애인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바우처는 비교적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활동보조 시간에 대해 비장애인인 내가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투쟁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에서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을 약속한 사례가 속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1)

하지만 동시에 곳곳에서 활동보조인이 부족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 언론에 따르면 한 지역의 남성 활동보조인의 비율이 1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큰 문제를 겪고 있다.2) 더불어 최근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하기 시작하여, 많은 활동보조인이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3)

이런 현실에서 지자체가 약속한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이라는 것은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이 아니라, ‘24시간에 해당하는 활동보조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 이용자에게 바우처는 전달되지만, 활동보조 서비스는 전달되지 않고 있다. 전달되지 않은 서비스는 집행되지 않은 예산으로 남는다. 활동지원 관련 예산이 800억이나 불용 되었다는 사실은 정부기관이 활동지원제도에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방증하고 있다.4) 나날이 심해지는 감시와 단속 속에서 예산집행을 더더욱 줄이려는 의지마저 엿보인다.5) 장애인 입장에서는 정작 필요한 활동보조 서비스는 받지도 못하고, 늘어난 바우처 만큼이나 자부담에 대한 부담만 높아졌다.

2. 통일되지 않은 요식적 요구들

근로시간 제한과 관련하여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지자체에 내린 하나의 공문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공문 내용은 법정 근로시간보다 많은 시간 활동보조하는 사람은 부정수급의 가능성이 높으니 지자체에서 잘 감시하라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중개기관에 활동보조인에게 208시간 이상 활동보조를 못 하도록 제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노조에서는 복지부에 문의하여 지자체가 오독한 것임을 확인했으며, 이를 수정하는 공문을 내려 줄 것임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지자체의 활동지원제도에 관한 독자적 운영지침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으며, 보건복지부도 노동시간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이것대로 활동지원제도를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활동지원제도 관련되어 중개기관을 지시 감독하는 기관은 보건복지부뿐만이 아니라 지자체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있다. 이들 사이에서 요구하는 기준은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중개기관은 그만큼 많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결국 중개기관의 업무 부담으로, 활동보조인의 노동으로 돌아간다. 하나의 예로 ‘근무 기록지’를 들 수 있겠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활동지원 중개기관을 평가할 기준이 필요한데, 이러한 평가 기준은 대게 서류에 그친다. 보건복지부에서 마련한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시스템이 생긴 이후로, 보건복지부의 지침에는 실시간 결제의 경우 활동보조인의 근무 기록지 작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을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에 대한 평가 지표로 근무 기록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결국 계약관계상 약자의 위치에 있는 활동보조인의 업무로 연결되어 근로조건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노동이 현장에 어떤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의 서명만 받는 요식행위일 뿐이다. 폭행사건이 발생하면 중개기관들은 범죄경력을 조회했으며, 향정신성 의약품 전력이 없음을 확인하는 건강검진서도 받았다고 말할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부정수급을 감시한다는 지자체도 장애인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사유서 한 장을 요구하거나 전화 한통화로 감시할 뿐이다. 각자 서로의 책임을 회피할 면책용 서류들만 있을 뿐, 그곳에 사람은 없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불쾌감만 높이고, 번잡한 서류만 만들 뿐, 아무런 실효가 없다.

3.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

각 중개기관이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서야 본격적으로 두드러진 문제이지만 이러한 제한은 2011년 활동보조인 제도가 ‘활동지원제도’로 변화하는 시기부터 있어왔다. 당시 내가 재직한 센터는 208시간 이상 활동보조를 하는 활동보조인을 타 중개기관과 협의하여 2개의 센터에 등록하도록 종용하였다. A씨가 400시간의 활동보조를 한다고 가정하면 원래 속한 기관에서 200시간 정도 결재를 하고, 협의한 센터에서 나머지 시간을 결재하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서로 활동보조인을 교환하는 꼴이 되어 중개기관에 손해는 없었다. 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하여 중개기관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많은 활동보조인은 영문도 모른 채 센터가 하라는 대로 따랐다. 활동보조인을 따라서 장애인 이용자도 2개 센터에 등록했다. 2011년 활동지원제도로 바뀌면서 변화한 내용 중 하나는 장애인 이용자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 또한 다수 센터에 등록하여 활동보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었다. 활동보조인의 구직활동 용이성을 담보하기 위한 이러한 개선은, 정작 현장에서는 활동보조인의 초과근무수당 지급을 피하기 위한 중개기관들의 편법으로 활용되었다. 2개의 센터에 등록된 활동보조인들은 퇴직금이나 4대 보험이 분할되어 관리되었고, 이 말은 곧 초과근무수당뿐만이 아닌, 퇴직금이나 세제의 측면에서도 활동보조인이 손해를 본다는 의미였다.

활동보조인은 실질적으로 시급노동자이다. 활동보조인의 월급은 일한 시간에 시간당 지급되는 바우처 8550원의 75%(6412.5원)이상을 곱하여 결정된다. 시급노동자의 수당은 시급을 그 기준으로 책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주휴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에 짜 맞추기 위해 활동보조인의 근로계약서는 최저임금(2013년 현재 4860원)에 맞추어 계약되고, 이미 결정된 임금에 수당이 포함되도록 계산된다. 소위 포괄임금제라고 하는 이 계산방식을 중개기관들은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주 4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에 대하여 150%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바, 노동시간이 어느 정도 많아지게 되면 초과근무수당으로 처리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게 되어 현재 지급되고 있는 바우처 수가를 넘어서는 임금이 발생하게 된다. 중개기관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된다. 노동시간 제한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은 센터들은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임금체납 사업주가 된다. 여기에 더불어 상급기관들의 감시와 제재에 중개기관들은 활동보조인의 노동시간을 208시간으로 제한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을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바우처와 같은 기준으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게 단순히 시간당 얼마씩 지급하고, 활동보조인에게도 단순히 시간당 얼마씩 지급한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주휴수당, 초과근무수당(야간·연장근무, 휴일근무수당), 연차수당에 관한 고려가 없다. 여기서 특히 연차수당이 문제가 되는데, 연차수당은 포괄임금제에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활동보조인의 임금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함을 시사한다. 연차수당과 관련하여 활동보조인이 관할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사례들에서 관할노동청은 중개기관이 활동보조인에게 연차수당을 지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4. 중개기관들의 대처

활동보조인의 근로조건이 근로기준법조차 준수하고 있지 않음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다. 여러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도 언급되었다.6) 중개기관들은 활동지원제도가 자신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들의 발화가 정책입안자들을 향한 권리요구가 아니라, 활동보조인의 권리요구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중개기관들은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포괄임금제 도입, 활동보조인의 직종특성을 언급하며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을 무시하는 정부정책에 편승하고 있다.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전국의 모든 중개기관의 장들은 기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범법자들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중개기관의 장들도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기에 범법자들이다.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활동보조인들의 임금이 사실상 최저임금 이하라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하다. 활동보조인들의 묵인과 희생을 통해서 여태껏 활동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법을 지킬 수 없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중개기관들은 정책입안자들에게 항의하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활동지원사업을 받아들이고 상급기관이 요구하는 감사를 충실히 이행한다.

이번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 조처도 같은 선상으로 보인다. 208시간 이상 바우처를 지급받는 최중증 장애인 이용자들, 그리고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208시간 이상 노동할 수밖에 없는 활동보조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7)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은 사실상 활동지원제도의 해체를 가져온다. 노동시간 제한 이전에도 이미 활동보조인력이 부족하다는 성토들은 계속 있어왔다. 근골격질환, 저임금, 불안정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 내려진 208시간 노동시간 제한이라는 조처는, 근로조건 개선이 아니라 ‘부분적 실업’이며, ‘실질적 해고’이다. 활동보조인 없는 활동지원제도가 가능한가?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활동보조 서비스가 가닿기는 하는가? 그럼에도 이에 대해 발언하는 중개기관들보다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중개기관들만 늘어나고 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발화하는 행위자들은 보이지만, 중개기관의 입장에서 활동지원제도에 관해 말하는 목소리는 미미해 보인다. 열악한 운영실태 속에서 한 푼의 예산이라도 더 받기 위해 그저 감시받는 중개기관이 있을 뿐이다.

5. 맺으며

최근 장애인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되어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장애인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자립생활센터가 영리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을 정부에 반납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8) 내가 보기에 여기에서 중요한 쟁점은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을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정책적 제안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활동지원사업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중개기관 또한 활동지원사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중앙정부가 활동보조인의 인력충원을 방기하는 만큼이나, 중개기관 코디네이터의 인력충원이 방기되기 때문에, 중개기관 또한 인력난에 빠져,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정책제안도, 다른 사업을 행할 수도 없다. 자립생활센터가 활동지원사업에 매몰되어 버린 이면에는, 자립생활센터의 사회적 성격을 부정하고, 중개기관 운영에 책임을 방기하는 정부기관 때문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노동시간 208시간 제한이 어떻게 다가가는지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장애인의 “활동보조 24시간 보장하라.”는 구호는 “활동보조 24시간에 해당하는 바우처를 보장하라.”는 구호로 축소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바우처를 쓸 곳도 만들어 주지 않고, 다시 회수될 바우처를 늘려주며 생색내는 정부기관들에게, 장애인들은 단호히 “활동보조인을 내 눈 앞에 대령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불용될 바우처, 다시 회수될 바우처는 없는 것과 같다. 집행되지 않을 예산은 없는 것과 같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중개기관, 그 누구도 견딜 수 없는 이 제도를 우리는 왜 참고 견뎌야만 하는가? 우리가 연대하는 것에는 사실 특별한 연대의 감정마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만이 요구될 뿐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활동지원제도의 공공성을 정부기관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것의 내용에는 활동보조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 장애인의 삶을 돌보는 중개기관 및 자립생활센터들의 사회성을 인정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 장애인들은 안정적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아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부기관의 책임이 담보될 때 실현 가능한 것이다.


1) 은평구, 전라남도, 용인시, 고양시, 등.

2) 에이블뉴스, 답답한 활동보조인 남녀 성비 ‘불균형’, <http://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22&newscode=002220130718175723013106>, 2013.07.19.

3) 이러한 활동보조인의 고충 토로는 활동보조인연대 카페를 통해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다.

4) 경향신문, 장애인 활동보조인 예산, 800억 안 쓰고 놀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120300035>, 2012.11.12.

5) 이런 감시와 단속은 장애인들에게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활동보조인이 심야에 활동보조 할 경우 전화를 하거나 사유서 제출을 요구하는 기관들이 있다.

6) 에이블뉴스, 활동보조인 수당 지급액 근로기준법 위반,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44&newscode=004420121005172006197437>, 2012.10.05.

7) 임금체계 측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활동보조인의 임금이 저임금임은 명백하다. 208시간 활동보조를 해서 받을 수 있는 임금은 2013년 3인 가구 최저생계비 수준이다. 2013년 최저생계비는 아래와 같다.

구   분

1인가구

2인가구

3인가구

4인가구

5인가구

6인가구

7인가구

금액(원/월)

572,168

974,231

1,260,315

1,546,399

1,832,482

2,118,566

2,404,650

8) 비마이너, "광화문역 농성은 혁명적 투쟁의 거점", <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3&no=5727>, 2013.08.09.

2013/09/24 21:24 2013/09/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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