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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도 너무 심하네...

* 이 글은 헤헤님의 [[펌] 성매매운동의 새로운 모색을 위하여]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글쓰기가 더딘 나에게 진보넷은 가끔 쥐약일때가 있다. 방금도 한시간 반에 걸쳐 고민고민쓰던 글을 날렸다. 대개 그런 경우 글쓰기를 포기하고 말지만, 이 글은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쓸 시간이 있어서 '어쩔수 없이' 다시 쓴다.*

 

 

어제 여의도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모여 집회를 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허울좋은 여성인권 존중보다 하루하루 생활하는 생존권이 우선이다'이라는 구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몰라서, 여성운동? 인권운동? 하여튼 관련된 활동을 하는 후배(순전히 대학을 나보다 늦게 들어왔다는 의미에서만 후배이다. 사실은 친구고 동지고 선배다.)에게 '성매매 특별법이 뭐지? 문제가 있나?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라고 물어보았다.

 

후배가 위 글과 몇몇 홈페이지를 소개시켜줘서 읽어봤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위의 글은 성매매 혹은 성매매 운동에 대해 비교적 체계적이고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전혀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대충이나마 뭐가 뭔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 후배가 '성매매 특별법이 뭐지?는 심해도 너무 심하네...'라는 멘트를 마지막에 날렸다.그 멘트를 읽는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수치심을 느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을 던지면서 순간적으로 '이런걸 물어봐도 되나?'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그 멘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부는 내 소심함의 발로이기도 하나, 그 멘트가 내게 해결 혹은 정리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다.

뭐가? '성매매 특별법이 뭐지?'라는 질문이. 성매매 특별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성매매 특별법이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세간의 상당한 관심과 주목을 끌었던 모양이다. 평소 신문이나 TV뉴스를 잘 보지 않는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앞의 글 '일상이 된다는 것'에서 나는 활동이 나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고 썼다. 활동을 통해 내가 변해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근거해서 쓴 글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활동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은 지나치게 건방진 말이다.(지우고 싶지만 두고두고 곱씹어보기 위해 그냥 두기로 한다.) 자본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이고 소시민적이고 개인주의적이던 나의 일상이 그나마 활동을 통해 다른 면들을 접해가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진정으로 활동이 나의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일상에서 접하는, 내안에 있는 자본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이고 소시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요소와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활동에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 사실 이는 겸손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소심함 또는 결의의 부족(피해나갈 구멍 만들기) 때문이다 - ) 한편으론 활동가'인척'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한다면서 내가 하는 일 외에 막상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런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척'하는 모습을 주로 보았던 후배가 보기에는 심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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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글을 쓰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워낙에 글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없기도 하거니와, 평소에 정리되지 않던 수많은 고민들이 쏟아져나와 한줄쓰는데 몇분이 걸렸다.

 

그 중 한가지가 '모르면 용인하는 것이고 공범이 되는 것이다'는 생각. 예를 들어 성매매에 대해 잘 모르면 용인하게 되고, 용인하는 것은 곧 공범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의미에서 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나는 많이 부족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그 만큼 많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 모르는 것 만으로 죄가 된다면 너무 팍팍하지 않나 하는 전혀 정리되지 않는 생각.

다음에 더 고민해봐야 겠다.

 

그래서 어쨋든 이 글의 마지막 결론을 '인척'하지말고 잘하자! 고 내리고 싶지는 않다. '인척'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자고 생각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냥 내 위치, 내 상태를 어느정도 확인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 나를 변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무지, 무식, 부족함을 드러냈다. 그것을 드러내는 일조차 쉬운 건 아니다.'

(결국 변호를 해버렸군.)

 

나의 작은 용기를 '심하다'는 말로 꺾어 놓을 뻔한 ^^ 후배가 조금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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