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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청소노동자는 유령 “교수님한테 인사했더니…”

홍익대 청소노동자 서복덕씨, 비정규직 현실에 눈 뜬 1년
‘유령’ 취급받다 당당한 노동자로…“시민들 응원이 큰 힘”

 

 
» 청소노동자 서복덕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미대 회화과 실기실에서 바닥 물청소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저임금 찾아가며 일했는데 새해 첫 출근날 해고 ‘날벼락’ 49일동안 대학에 맞서 싸워 “다시 일하게 해달라” 외침에 초등생·시민들 응원 이어져

다른 비정규직도 연대 손길 재계약에 임금 교섭 ‘난항’ “싸워야하면 다시 나서야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홍익대 청소노동자 서복덕(57)씨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2011년 1월3일, 서씨는 새해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하청업체 계약이 끝났다며 더는 일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5년 동안 업체가 바뀌어도 계속 일을 해왔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쫓아낼 수 있지….” 분노는 투쟁 의지로 승화했다. 이 대학 170여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49일 동안 대학과 맞서 싸웠다. 서씨는 “싸움이 그렇게 길어질지 짐작도 못했다”며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유령에 빗대곤 한다. 남자 화장실에서 여성 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볼일을 보고, 강의실이나 회의실에서 청소를 할 때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밥을 먹거나 잠시 쉴 때도 건물 귀퉁이의 작고 허름한 ‘그들만의 휴게실’에 머물러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서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지나가는 교수한테 인사를 했는데, 그 교수가 ‘다음부터는 인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무시를 당한 것 같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늘 불안한 고용형태도 이들이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홍익대에서 일하지만 홍익대 직원이 아닌 청소노동자들은 대학 관계자들과 자신들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하청업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임금이 터무니없이 적어도, 휴일인 토요일에 나오라고 해도 묵묵히 참아냈다. 남편이 명예퇴직을 한 뒤 제과점을 하다가 그만두고 보험모집인, 호텔 청소노동자를 거쳐 홍익대에서 일하고 있는 서씨도 ‘유령’ 중 한 명이었다.

49일 동안의 투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다시 일하게 해달라”는 외침에 세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던 여배우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서씨는 “미대 학생들이 찾아오고, 다른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같이 싸워줬다”며 “울산에서 초등학생들이 찾아와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물품 지원도 쏟아졌다. 동네 주민이 라면과 물을 내오고, 경기도 부천에 사는 한 시민은 귤을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김과 손난로, 김치, 콩나물, 생수, 밑반찬 등을 보내왔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서씨는 신기했다. “더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요. 힘내세요. 이길 수 있을 겁니다.” 한 고등학생이 쌀과 함께 보낸 편지를 보고 서씨는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에도 눈을 떴다. 그는 “5년을 이곳에서 일했는데 홍익대는 우리들이 대학 직원이 아니라며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비정규직이고 뭐고 별생각 없이 일만 했는데 해고를 당한 뒤 내 처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해보는 일도 많았다. 눈이 내리는데 거리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 우물거리기만 했던 ‘투쟁’이란 단어가 어느덧 익숙해졌다. 다른 사업장에 연대의 손길도 내밀어봤다. 서씨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들이 싸우는 곳을 갔는데, 길바닥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자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며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비정규직 얘기만 나오면 눈이 획 돌아가고, 그 어려움을 백번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노동조건도 많이 변했다. 최저임금을 밑돌았던 임금(월 75만원)은 시급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130원 많은 4450원(월 90만원)으로 올랐다. 식대도 월 9000원에서 5만원으로 껑충 뛰었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명절 ‘떡값’도 5만원씩 받았다.



하지만 불안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올 3월로 예정된 하청업체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고 노사 임금교섭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다시 파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집단해고’ 경험이 있어 불안감은 더욱 크다.

“대학이 계속 있는 한 청소노동자들은 필요하잖아요. 요즘 수명이 길어져 노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청소일이 노인들의 당당한 일자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해고하지 말고, 청소일을 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씨는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화로 잘 풀었으면 좋겠는데, 싸워야 할 일이 생기면 다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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