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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고시원 총무, 시급 1000원대 '울며 겨자먹기'

 

 

복지ㆍ노동

고시원 총무, 시급 1000원대 ‘울며 겨자먹기’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ㆍ‘돈벌며 공부’ 절박 탓 최저임금 사각지대서 시름

대학생 박모씨(25)는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간 서울시내 한 고시원에서 총무로 일했다.

이 고시원은 100여개의 방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였지만 관리자는 혼자였다. 박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부터 고시원
청소는 물론 비품수리·방값 수금을 도맡아 처리했다. 고시원 투숙객들의 각종 불만을 접수받고 처리하는 것도 박씨의 몫이다. 새벽 1시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박씨는 다음날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고시원 복도 청소를 끝내야 학교에 갈 수 있다. 토요일에도 반나절은 근무했다.

하루에 9시간씩 근무한 박씨의 한 달 월급은 고작 50만원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1900원가량이다. 당시 법정 최저임금인 4320원의 절반도 안된다. 박씨는 고시원에서 월 28만원짜리 방을 하나 사용했다.


 
 

고시원 업주는 박씨가 고시원 총무를 맡기 직전 “개인 시간이 많아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박씨는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공부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씨는 “실제 하루에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5시간 정도지만 갖가지 일이 생길 때마다 불려다녀야 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독서실이나 고시원에서 일상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들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인력채용 전문 사이트마다 총무 월급은 40만~60만원 정도다. 대부분의 업체에서 하루 8~9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루 9시간씩 주 6일 근무를 조건으로 채용공고를 낸 한 독서실은 월급으로 40만원을 책정했다. 올해 44시간 근무 기준 최저임금인 103만508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독서실·고시원 측은 “업무가 많지 않아 공부하면서 일할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일부 고시원은 총무에게 제공하는 방값을 월급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생활비와 공부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취업준비생과 고시생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총무를 자원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중 자유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다. 방값은 임금으로 볼 수 없다.

박문순 노무사(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법규국장)는 “비슷한 사례로 경비직 노동자들이 실제 업무를 하지 않고 대기하는 시간이 근무시간인지 휴게시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근로시간이 맞는 것으로 판시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또 임금은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 고시원 방값과 같은 다른 수단으로 지급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총무 아르바이트생도 법적 노동자임에도 업주들이 노동과 공부의 경계가 불명확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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