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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게 바싹 마른 밭에 목화송이만이 포근하게 피었습니다.
자그마한 아기베개 하나 만들 수 있는 목화솜과 올해 초 심었던 양의 스무배, 서른배의 씨를 얻었어요.
오랜만에 만난 유라님. 아무리 주말에만 오가는 거라지만 안양과 화전은 멀어요. 텃밭은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제일이고 아무리 멀더라도 자전거로 한 시간, 차로도 한 시간이 넘어서면 힘들어.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나은 것처럼 텃밭도 그러하네요.
"툭.툭."
마른 콩대 낫에 부러지는 소리.
낫이 지나간 자리에 쌓여가는 콩대더미.
바싹 말라 벌어진 꼬투리에서 빠져나온 노오란 메주콩
한알 두알 점점 불러가는 바지주머니.
내일 아침은 햇콩밥입니다. :)
전체 콩밭의 1/15인가 1/20을 배어 눕히고 잠깐 딴짓.
낫은 잠시 두고 호미로 살금살금 흙을 파니 무리지어 있는 고구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오밀조밀 서로 붙어 한 무데기네요.
한 달 전 캤을 땐 비 때문인지 싱거웠는데 그간 가을햇살에 좀 달아졌으려나.
간식을 까먹고 김밥이랑 떡볶이도 먹고 빨간 가을사과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나중에 온 숲날과 데반, 나물과 함께 계속해서 콩을 뱄습니다.
풀이 무성한 데는 베기도 힘이 들고 빈깍지만 무성. 뱀이 무서워도 풀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후회는 늘 지각생이네요.
콩을 배며 해를 넘긴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마무리는 빨간 아구찜으로. 주머니속 노란 콩알 만지작거리며 안녕.
일요일 빈마을운동회서 뛰어노는 사이 몸살공뇽이랑 숙취데반과 엄대표일행들이 남은 콩을 다 벴을라나?
남은 건 주중에 조금 더, 그래도 못 다한 콩은 11월 첫 토요일에. ㄼ
느즈막히 씨를 뿌렸는데도 잘 올라와준 배추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밭에 오는 길에 충동구매한 양파모종도 심었습니다.
잡초랑 볏짚이랑 땅콩줄기로 덮어주었습니다.
차마 마주하기 두려웠던 드넓은 콩밭을 째려봅니다.
낫을 갈아야겠습니다.
인생,
두 발짝 앞을 보면 아찔합니다.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무심하게 낫질을 하다 보니 쉼터마루 위에 가득히 콩줄기가 쌓였습니다.
약 백분의 일의 콩줄기들은 베어진 것 같습니다.
한 주간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래, 오늘도 참 잘 했어."
뿌듯한 심정으로 땅콩들을 나눠 갖고 헤어집니다.
오는 주말엔 나머지 콩줄기들을 다 베어야겠습니다.
터지는 콩깍지인지 안터지는 콩깍지인지 확인후 세워 말릴지 뉘어 말릴지 결정하라고 돌삐엄마가 알려줍니다.
이리하여,
이번 주말엔 손이 많으면 더 좋겠습니다.
콩베러 오세요.
와서 벤만큼 가져가세요.
가져가서 팔만큼 파세요.
그리고 판 돈으로 인도갑시다.
인도
인---도
보고있나요, 유라?
서랍 속에 넣어두지도 못하고
들었다가 놨다가
다시 들어서 사진 정리를 합니다.
농사 하루 쉬자고 하고 북한살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온전한 숲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라 할 수도 없는
우리처럼 어중간한 그런 길.
걷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나른했던 주말 아침.
밥 한그릇 달라할 용기가 안나서 길 한 구석에서 자리를 펴고 싸온 도시락들을 주르르 풀어 나눠 먹었습니다.
걷는 것은 온전한 자유라더군요.
다가갈 자유, 멀어질 자유.
홀로인 듯 함께 인 듯.
나를 두고 싶은 곳에 둘 수 있는 자유.
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
적당히 피로한 몸을 버스에 담고 쉽니다.
따뜻한 짜이 한 잔, 두 잔 하러 갑니다.
오늘 나는 좋은 꿈을 지었는지,
몸은 기분 좋은 춤을 추었는지,
마음은 평안히 흘렀는지.
두부 한 모 사서 들어오는 길에
동대문 위로 낮달이 떴습니다.
차들은 달리고 하늘은 뿌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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