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1 13:53

바삭거리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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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게 바싹 마른 밭에 목화송이만이 포근하게 피었습니다.

자그마한 아기베개 하나 만들 수 있는 목화솜과 올해 초 심었던 양의 스무배, 서른배의 씨를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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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유라님. 아무리 주말에만 오가는 거라지만 안양과 화전은 멀어요. 텃밭은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 제일이고 아무리 멀더라도 자전거로 한 시간, 차로도 한 시간이 넘어서면 힘들어. 먼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나은 것처럼 텃밭도 그러하네요.

 

"툭.툭."

마른 콩대 낫에 부러지는 소리.

낫이 지나간 자리에 쌓여가는 콩대더미.

바싹 말라 벌어진 꼬투리에서 빠져나온 노오란 메주콩

한알 두알 점점 불러가는 바지주머니.

내일 아침은 햇콩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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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콩밭의 1/15인가 1/20을 배어 눕히고 잠깐 딴짓.

낫은 잠시 두고 호미로 살금살금 흙을 파니 무리지어 있는 고구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감자와 달리 고구마는 오밀조밀 서로 붙어 한 무데기네요.

한 달 전 캤을 땐 비 때문인지 싱거웠는데 그간 가을햇살에 좀 달아졌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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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까먹고 김밥이랑 떡볶이도 먹고 빨간 가을사과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나중에 온 숲날과 데반, 나물과 함께 계속해서 콩을 뱄습니다.

풀이 무성한 데는 베기도 힘이 들고 빈깍지만 무성. 뱀이 무서워도 풀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후회는 늘 지각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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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배며 해를 넘긴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마무리는 빨간 아구찜으로. 주머니속 노란 콩알 만지작거리며 안녕.

일요일 빈마을운동회서 뛰어노는 사이 몸살공뇽이랑 숙취데반과 엄대표일행들이 남은 콩을 다 벴을라나?

남은 건 주중에 조금 더, 그래도 못 다한 콩은 11월 첫 토요일에.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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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8 20:54

낫을 갈다!

느즈막히 씨를 뿌렸는데도 잘 올라와준 배추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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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오는 길에 충동구매한 양파모종도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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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랑 볏짚이랑 땅콩줄기로 덮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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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마주하기 두려웠던 드넓은 콩밭을 째려봅니다.

낫을 갈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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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두 발짝 앞을 보면 아찔합니다.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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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낫질을 하다 보니 쉼터마루 위에 가득히 콩줄기가 쌓였습니다.

약 백분의 일의 콩줄기들은 베어진 것 같습니다.

한 주간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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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늘도 참 잘 했어."

 

뿌듯한 심정으로 땅콩들을 나눠 갖고 헤어집니다.

오는 주말엔 나머지 콩줄기들을 다 베어야겠습니다.

터지는 콩깍지인지 안터지는 콩깍지인지 확인후 세워 말릴지 뉘어 말릴지 결정하라고 돌삐엄마가 알려줍니다.

 

이리하여,

이번 주말엔 손이 많으면 더 좋겠습니다.

콩베러 오세요.

와서 벤만큼 가져가세요.

가져가서 팔만큼 파세요.

그리고 판 돈으로 인도갑시다.

 

인도

인---도

 

보고있나요,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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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21:27

북한산 둘레길 걷던 기억

서랍 속에 넣어두지도 못하고

들었다가 놨다가

다시 들어서 사진 정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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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하루 쉬자고 하고 북한살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온전한 숲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라 할 수도 없는

우리처럼 어중간한 그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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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도 아니고 쉬는 것도 아닌 나른했던 주말 아침.

밥 한그릇 달라할 용기가 안나서 길 한 구석에서 자리를 펴고 싸온 도시락들을 주르르 풀어 나눠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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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은 온전한 자유라더군요.

다가갈 자유, 멀어질 자유.

홀로인 듯 함께 인 듯.

나를 두고 싶은 곳에 둘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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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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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피로한 몸을 버스에 담고 쉽니다.

따뜻한 짜이 한 잔, 두 잔 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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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좋은 꿈을 지었는지,

몸은 기분 좋은 춤을 추었는지,

마음은 평안히 흘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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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 사서 들어오는 길에

동대문 위로 낮달이 떴습니다.

차들은 달리고 하늘은 뿌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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