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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표는 무슨 조직의 대표인가요?"
"그저 일인 대표일껄요."
"아냐, 조직에 사무국장도 두고 있어."
엄대표는 '동자동 사랑방' 방지기 별명이예요.
동자동 쪽방촌 어른들의 친구지요.
오랜만에 엄이 놀러 왔네요.
땅콩들이 반갑다고 종알종알.
그간 장염으로 고생하다가 건강에대해 깊이 생각하게 됬다면서
술도 염분도 당분도 마다하는 엄.
이 사람, 아주 재미없어졌어요.
일만 해요.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캐라고 세 번 정도 얘기했건만,
많이도 캤어요.
흔들린 건 내가 아니예요.
그렇게 또 땅콩 엑스라지 두 단을 했네요.
근데, 당신!
걸음걸이가 틀려먹었어요.
신발 밑창이 닳은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팔자로 걷는군요.
그럼 고관절에 무리가 가고 척추가 굳어지면서 피로가 빨리 온다구요.
다음에 하나님한테 미리 얘기해서 교회 하루 빼먹고 걷기 하러 가요.
장염이 씻은 듯 나을 거예요.
감사해요.
평화로운 반나절, 부지런한 아침.
건강하세요.
일요일 이른 열 시에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만나요.
이 날은 농사 하루 쉬고 천천히 걸어봐요.
발바닥이 땅을 느낄 수 있는 굽이 없는 편한 신발을 신고 오세요.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오세요.
짐이 많으면 걷기가 무거울테니 최대한 줄여보세요.
북한산 둘레길 중에 제일 좋은 곳은 우이령길이라지요.
이 곳은 미리 예약을 한 소수의 사람만 걸을 수 있어요.
우리도 예약을 하면 좋겠지만 이 날 참가자가 몇이 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우선은 일구간부터 걸어보기로 했어요.
첫 구간이 소나무숲길이네요.
소나무숲부시작해서 체력과 시간이 되는 만큼 걸으면 될 듯 해요.
천천히 삼구간까지는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더 가던지 덜 가던지, 힘이 드는 지점에서 마치기로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요.
이 날 인디언 걸음걸이를 배워볼 수 있을 거예요.
함께 하고 싶은 분은 누구라도 열시까지 수유역으로 와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 되요.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모여진 사람들끼리 열시에 출발하겠어요.
그러니 미리 전화약속 같은건 하지 말기로 해요.
일요일에 만나요.
날이 맑아서 빨간 고추 널어 말리기 좋다.
호박이랑 박이랑 꼭지 떨어진 녀석들은 얼른 주워다가 얇게 썰어서 말린다.
말리면 꼬들고 달아진다.
데반은 지난 밤에 어두워서 다 못고친 자전거를 수리한다.
'정년퇴직교사 개집 짓듯'.
중얼중얼 긴사색 다시 중얼중얼
오늘은 밭에 남은 수수를 마저 베고 땅콩을 적당량 캐고 벼를 베어 세워두고 박을 탈 예정이다.
하나씩 터지는 목화솜도 따 올거고.
이런 거.
사진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베라 솜씨.
저녁 먹고 나서 이야기 하면서 솜 속에 있는 씨앗 뽑아 모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목화가 뭐길래 그 멀리서
생 사람을 잡아다가 일을
시키구 그랬을까..."
"그르게..."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그리웠을까.
"꽃부터 씨앗까지 다
예쁜게 목화인거 같아."
"응, 빨간 가지랑 잎도
이뻐."
"인도에서는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물레가
있다던데... 여인들이
기도하듯이 계속
물레질을 할 수 있데."
"간디가 쓰던거랑
다른건가봐."
"목화솜을 뭉쳐서
작은 열쇠고리를 만들구
<빈농>이라고 써서
나눠 갖는거야!"
"팔아서 인도가자!"
"팔릴까?"
"땅콩은 언제 캐는걸까?"
"백과사전엔 구월말에서 시월까지 서리 내리기 전이라고 써있어. 가지가 시들어 마를 때 쯤이랄까."
"오늘이구나."
한 사람씩 이고 질 수 있을 만큼의 양을 뽑았다.
베라는 머리에 이고, 데반은 가방에 넣어 들고, 라봉은 어깨에 메고, 골룡은 품에 안고 땅콩뭉치를 들고 왔다.
말리느라 거꾸로 세워놨다.
어지러울거같다.
밭에 심은 수세미는 오이 만 한데, 밭에 심은 고구마도 듬성듬성 한데,
씨 떨어져서 절로 자란 마당 녀석들은 참 잘도 자란다.
둘 다 문 밖으로 나가 골목길에 접어들었고 앞으로도 갈 수 있다면 더욱 멀리 멀리 가보겠다는 자세다.
서리가 좀 늦게 내려주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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