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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비가 그쳤다. 꽤 긴동안 가물다가 이틀 내리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시원한 비. 덕분에 더위가 식는 것 까진 좋았는데, 밭에 물길이, 도랑이 생겨버렸다.
곳곳에서 발견 되는 침수의 현장. 물구덩이가 정말 물구덩이 됐고, 토마토, 가지, 오이, 땅콩, 감자, 고구마, 상추 가릴 것 없이 물이 고였다. 공룡, 숲날이랑 한참을 삽, 괭이, 호미를 동원해 물꼬를 트려 했으나 잘 안돼서 낑낑대고 있는데 지나가던 옆밭 손모내기 할아버지 한 말씀. "에이, 힘들게 힘 빼지들 말어. 그냥 놔두면 다 빠져"
그래서 대충 삽질은 포기하고 잡초관리, 솎음에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 정도 비는 며칠 빠질 동안 기다려 줄 수 있는데, 장마대비는 필요할 것 같다. 특히 땅 솎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을 위해. ㄼ
해질 무렵 밭에 갔다. 5시가 넘었는데도 뜨거운 볕. 그래서 더운 밭.
서쪽으로 기우는 해그림자를 크게 만들기 위해 비스듬히 파라솔을 눕히고 안으로 쏙 들어간 보니비.
챙겨온 김밥과 참외를 먹고, 딸기를 따 먹었다. 사실.. 실물은 꽤 조그맣다. 산딸기보다 조금 큰 정도.
노란 꽃이 진 자리에 연둣빛 알맹이가 알알이 맺힌다. 이육사의 청포도 보다 진한 초록으로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있다. 아직은 그린 토마토. 빨갛게 익기만을 기다려!
그래도 무엇보다 귀엽고 예쁜 시금치아줌마 땅콩. 아카시아 같은 잎은 연둣빛으로 잘 자라고 있는데 땅 속에서도 알알이 구불구불 땅콩깍지를 달고 있으려나. 이처럼 기다림을 요하는 아이들이 좋다. 기다리며 돌보며 상상하고 기대하는 즐거움. :)
감자잎에 보이는 이 벌레. 뭐지.. 책에서 본 거 같은데. -_- 감자꽃을 따주며 보이는 족족 쿡.. 눌러 죽였다. 그냥 먹게 내버려 둘 껄 그랬나도 싶지만 유목, 채취하는 삶이 아닌 이상 피하기 힘든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생협에선 벌써 하지감자가 출하도 되고 예약도 받고 있던데. 올해 감자값이 금값이란다. 이상기온으로 수확량이 확 줄었다는. 올해 우리 감자는 아마도 알이 작을 것 같다. 그래도 그만큼 맛은 진하겠지.
감자꽃 부케를 만들더니 아욱은 코사지가 됐다. 가슴에 꽂고 다니면서 배고플 때 즉석에서 국도 끓여먹고 무쳐도 먹으면 좋지 않겠나. 결혼식 부케와 어버이날/스승의날 카네이션 이런 거 몽땅 텃밭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가능. 결혼식 같은 건 되도록 안 하는 게 좋지만 만약 한다면 밭에서 같이 일하고 열무국수 먹으며 두둑따라 입장하고 뭐 이런 거 좋을 것 같다. ^-^ ㄼ
생선대가리나 뼈, 다시멸치를 마당에 던져 놓으면 귀신같이 냄새를 맡곤 담을 훌쩍 넘어오는 길고양이 한마리. 황갈색 얼룩무늬, 고양이 특유의 시큰둥한 표정으로 지붕이나 담벼락에서 낮잠을 즐기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는 그놈(인줄 알았는데 그녀였다. +_+), 그녀가 새끼를 낳았다.
여자방 앞 샷시문을 열어놓고서 책을 읽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뭔가 부스럭 거린다.
고개 들어 보니 어미 고양이가 화장실에서 째려보고 있네. -.-;; 날이 더워 물이 고팠나보다. 어미는 험하게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남아 있다. 살짝 험상궃고 거친 인상(?), 고양이상(!)이다. 한참을 째리다 유유히 사라졌다.
새끼들을 위해 냄비에 물을 담아 밖에 내놓았다. 멸치 몇 마리도 동동 띄워.
고양이를 오래 키워온 지음에게 전화해 도둑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뭘 주면 좋냐고 물었더니
'걔들이 도둑질하는 것 봤냐!'고 한다.정말.. 그렇네. ^^ 오히려 고기생선잔반처리고양이가 맞다.
길고양이 보다도 마당고양이, 지붕고양이, 유랑고양이고.
오전내내 메신저 주문이 없는 것에 용기를 내어 벼르고 벼렸던 먹염색을 했다.
발수건, 뒷수건, 손수건, 티셔츠 등 허여멀건한 것들 몽땅 먹물에 투입. 약국에서 산 백반을 넣고
푹푹 삶아 햇볕에 널어 말린 후 다시 빨아 널었다.
스님이 된 것만 같다. 마음은 중생이지만 옷이나마 도반일세.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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