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5 11:57

햇감자국을 끓여 먹다.

 

새벽5시, 어김없이 알람은 울리고 부시럭, 하나 둘 셋이 일어났다. 차가운 야쿠르트 한 병씩 나눠 마시고 탈탈탈 자전거를 타고 대문을 나선다. 잠이 덜 깬 자전거 세 대. 큰 길을 가로 지르고 작은 동네 안길과 항공대 활주로를 달려 밭에 도착할 즈음 조금씩 맑아오는 정신. 거름이 부족한 땅 때문일까?파종시기가 너무 일렀나... 아니야 역시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때문일꺼야! 서둘러 꽃대를 올려 버린 갓, 알타리, 열무, 겨자채에 낙심하며 한편 야생꽃밭을 즐기는 사이, 고추와 오이, 감자, 토마토. 열매들이 제법 몸집을 키웠다. 완두콩은 연둣빛 풋완두콩을 너머 황톳빛 깍지완두콩이 됐다. 겨자채밭은 온통 겨자채꽃밭이 됐는데 도랑에 핀 겨자는 홀로 싱그럽네. 겨자보다 매운 겨자채다.  깻잎은 아직 아기 손바닥 만한 크기. 어떤 건 점점이 달마시안 깻잎이다. 집에 가서 텃밭백과 뒤져봐야지. 오이는 자수성가형. 가히 스스로 컸다 할 만하다. 어째 우리 밭 애들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크는 게 아니라 무관심을 먹고 크는 것도 같다. 상품성? 대중적인 오이로 때깔 좋게 잘도 자랐다. 길이도 굵기도 어디 내 놓아도 손색 없는 외모. 맛은 말할 것도 없겠지. 앗, 앙증맞은 미니어쳐 당근을 빼먹었네. 아직은 뿌리보다 머리가 더 큰 형국이지만, 시장에서 사먹는 당근은 저리 가세요. 너무도 귀엽고 깜찍해 안 컸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 

 

 

때 이른 장마소식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가 지났는데도 아직 덜 여문 것 같은 감자. 데반이 맛보기로 몇 개 캤다.  촉촉한, 축축한 감자. 집으로 돌아와 수확한 것들을 추스리는 사이 유가 감자국을 끓였다. 다시마에 감자, 들깨까지 바수어 넣은 6월의 햇감자국. 포슬포슬 감자가 참 달구나. 어느새 시계는 9시가 넘었고 해는 쨍~ 하고 떴네. 아침 볕에 널어 놓은 감자가 말라간다. 이른 새벽 밭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은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만은 싱싱하다. 오이처럼, 당근처럼, 상추처럼. :)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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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4 01:03

모듬쌈.

 

이른 새벽 밭에서 솎아온 야채들. 세번 네번 깨끗히 씻어 놓으면 참 이뻐. 사이좋게 모다 놓으니 더 예쁘네. 요즘은 뿌리만 먹던 당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직 독 오르지 않아 부드럽고 연한 어린 고추를 먹는다. 시중에 파는 것 반만한, 앙증맞은 상추와 깻잎은 밥 한술 얹으면 딱 알맞다. 작은 한입쌈. 오늘은 엊그제부터 단기 빈농스테이(템플스테이, 팜스테이? 이젠 빈농스테이! ^-^) 중인 유가 먹어 보고 싶대서 따온 감자꽃을 먹었다. 감자꽃에서 감자맛은 나지 않더라만 꽃을 먹으니 왠지 밥상이 향기로운 듯 했다.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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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22:51

십시일농의 첫삽을 뜨다.

지난 목요일 저녁, 남산에서 동교동 자전거메신저 배달을 마치고 급 지쳐 헤롱거리며 건물 앞 의자에 넋 놓고 앉았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길을 가다 지쳐있는 나를 보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는 그분은 북센스출판사의 송주영샘.

 

마주 앉아 이런저런 나의 넋두리를 풀어놓던 중 빈농이야기가 나왔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지어 먹는다며 북센스에 납품해도 좋겠다는 제안. 연남동 북센스는 빈농집과 빈농밭 반경 7km. 역시 마포구나 서대문구는 딱이다! 당장 뭐가 나느냐는 질문에 바로 먹을 수 있는 건 근대와 아욱과 상추 뿐. 아쉽게도 겨자채나 시금치, 갓은 꽃밭이 되었고, 청경채도 끝물이고, 토마토나 가지, 오이, 호박, 콩, 옥수수 등 열매 뿌리들은 아직.

 

 

에코생협 에서 가격을 검색했다. 근대는 300g에 1,000원, 노지상추는 150g에 850원이니까 300g에 1,700원. 음, 근대가 상추보다 싼 야채구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상추가 생각보다 비싸네. 빈농 상추밭의 절밭은 뽀글이 적상추고 절반은 한살림에서 얻은 토종상추. 둘다 아직 어려 부드럽고 연하니 맛있다. 출판사 직원들에게 퇴근 선물로 줄 요량이신지 적당히 근대 다섯 묶음이랑 먹을 만한 걸 주문하셨다.

 

 

국 한솥 끓일 분량의 근대 (한봉에 500원꼴) 다섯, 하다보니 여섯봉을 쌌다. 그리고 상추 한 봉지.

오늘 아침 가는 빗솎을 뚫고 북센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 전인 11시 10분. 무사히 첫 납품을 했다. 앞으로 화/목 주 2회 상추 및 쌈채를 납품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주 안으로 얼갈이든 알타리든 순무든 근대든 아무튼 텃밭작물로 담은 김치도 납품하기로. ^-^

 

 

배송비까지 합쳐 총 5000원에, 덤으로 북센스에서 나온 책 두 권, <자연을 담은 사계절 밥상>, <자연을 담은 엄마의 밥상>과 안 입는 옷이라며 챙겨주신 티셔츠 두 벌을 받았다. 드린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은 듯도. 고맙게 잘 입고, 잘 읽고, 좋은 마음으로 농사 잘 짓는 것으로 보답해야지.

 

예전에 귀농한 선배를 둔 어떤 분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십시일농이라고. 열 도시 사람이 한 농부를 먹여 살린다는. 빈농의 정기회원? 내 먹거리, 주변과 나누는 먹거리를 떠나 밥벌이로서의 농사짓기의 첫삽을 떴다. 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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