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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6/12

[참세상]호혜적, 선순환적 관계의 광장문화는 가능한가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4) - 월드컵과 광장문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월드컵이다. 2002년의 첫 번째 월드컵을 약간의 광기를 동반한 ‘흥분의 월드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2006년의 두 번째 월드컵은 아마도 ‘비장한 월드컵’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블로거의 말처럼 “가미가제 출정식을 연상시키는” 붉은 응원리본과 락버전으로 되살아난 ‘애국가’, 그리고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광장을 찾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 응원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 이런 광경을 보며 월드컵과 거리응원에 대한 흥분과 기쁨보다도 오히려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 아니 결승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범국민적 국가주의․애국주의에 기반한 ‘비장함’을 더 느낀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월드컵 반(反)광장문화?

한편, 2006년 월드컵 응원문화는 2002년과 구별되는 또 다른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장문화의 부재’다. 2002년의 거리응원을 ‘광장문화의 실현’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에 대해서는 이따가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당장에 평가전이 열리는 시청 앞 광장으로 가보자...

 

[호혜적, 선순환적 관계의 광장문화는 가능한가]기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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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미디어의 축제, 월드컵을 거부하자!

월드컵 개막에 대한 문화연대 논평
4년전 우리에게 자부심을 주고 신명나는 축제를 선사했던 월드컵이 지금 ‘사회적 짜증’을 유발하고 있다. 언론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했고 자본은 온갖 낯 뜨거운 상술을 선보이며 우리를 현혹하려 들고 있다. 이들이 합세해 이 사회를 월드컵으로 덮어버리는 상황에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4년전 시민축제의 진앙지였던 서울시청 앞 광장을 보라. 그 때의 자발적 참여는 간 곳 없고 자본의 기획 하에 가수가 동원되고 시민은 응원객으로 전락했다. 검은 양복의 용역 인력이 시민의 앉을 곳을 일일이 지정하고 화장실 출입마저 통제하는 서울광장의 모습은 소통과 통합의 해방구가 아닌 지시와 통제의 공간, 자본의 점령구로 바뀌었다. 4년 전 열린 공간, 축제의 공간이었다던 이곳은 닫힌 공간, 쇼프로의 공간이 되었고 ‘입장객’이 되어버린 시민은 펜스 안에서 ‘각’ 잡고 앉아 정해진 식순에 따라 박수치고 환호하며 월드컵을 ‘방청’하게 된 것이다.
자본은 가증스럽게도 ‘대한민국’과 ‘국민’을 들먹이며 태극기를 치켜들고는 우리에게 ‘애국’을, 그리고 응원을 강요한다. 이것을 시민의 응원이라 하겠는가! 우리들의 애국이라 하겠는가! 아니다. 바로 자본의 응원이고 자본의 애국이다. 특히 4년마다 찾아오는 ‘주기적’ 애국은 경계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이윤창출을 위한 ‘소비자’가 되길 원하면서도 ‘국민’과 ‘민족’을 외쳐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염치없어 보인다.
자본과 함께 우리는 본분을 저버리고 돈벌이에 매진하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년 전 3개 방송사 4개 채널은 시청률과 광고에 눈이 어두워 한국팀의 경기를 동시에 중계하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다. 올해 이들은 삼일절은 ‘축구절’로, 현충일은 ‘축구일’로 만들어 버리면서 사회의 온갖 주요 현안들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고 있다. 열드컵 광기의 주역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 방송사는 지난번 WBC대회, 하인즈 워드, 미셸 위 관련 보도에 앞장서서 ‘오버’하는 솔선수범을 보이며 스포츠방송사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팀이 WBC 4강에 진출한 날 이들 방송사의 저녁뉴스가 보여준 행태는 차라리 절망적이다. 이번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도 스포츠부 기자들을 모두 독일로 보내고 타 부서 기자들을 동원해 국내 월드컵 보도를 담당케 하며 월드컵에 ‘올인’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그들의 책무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아울러 이는 다른 스포츠를 무시하는, 그래서 스포츠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매우 무책임한 처사이다. 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문 역시 한미FTA협상의 시작 등 주요 사회현안보다는 축구에 압도적으로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최근 이들이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참으로 저열하다. 언론이 사회의 주요 현안들을 오히려 덮어버리고 있다는 비난이 불거지자 이들은 재빨리 면피용 ‘장치’를 마련한다. 신문은 1면부터 축구기사를 싣고는 저 끝 사설 어디쯤에서 ‘너무 지나치다’며 훈계조의 한 마디를 배치한다. 방송사는 매일 저녁뉴스를 월드컵으로 도배해 버리고 끝날 때쯤 ‘너무 심하다’는 코너 하나를 끼워 넣는다. 마치 “우린 비판도 했다. 봤지?”하는 식이다. 아침부터 ‘죄’를 짓고는 자기 전 ‘죄 사함’를 구하는 간교함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치졸한 자기합리화이면서도 간편한 면죄부다.
미디어란 전달을 위한 수단이다. 언론은 사회 구석구석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월드컵 수익사업에만 몰두하면서 이 넓은 세상을 외면하고 있는 언론은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응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과거 지금과 같은 거대한 스펙터클의 응원이 없었어도 정열적이면서도 간절하게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전파상 진열대의 작은 텔레비전을 보며 환호하며 손뼉을 쳐댔고 호프집과 다방에서 펄쩍펄쩍 뛰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집에서 혼자 TV를 보면서도 우리는 함성을 질러댔고 그 함성소리로 온 동네가 하나가 되었다. 그때의 ‘응원빨’은 지금의 그것보다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는 지금 별의별 이유 때문에 응원할 곳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찾아 헤매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응원에 왜 이리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삿대질이 난무하는지 말이다.
응원은 함께 하는 것이다. 같이 즐기는 것이다. 그것은 이기고 지는 것을 초월한다. 승리하면 기분이 조금 더 좋을 뿐이다. 그리고 애국도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얼마 전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논란이 되었던 꽹과리 응원도 그런 맥락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를 상대로 상대방을 무찌르러 나간 것이 아니다. 축제에 동참하고 우리의 기량을 뽐내러 나간 것이다. 나만 잘되고 나만 부각되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월드컵은 더 이상 열린 시민축제도, 우리가 하나 되는 공간도 아니다. 호객꾼들만 넘쳐나는 ‘대목시장’으로 변해 버렸다. 순박한 사람들의 열정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기업과 언론은 깊이 반성하고 자숙해야 한다. 그들에게 그 정도의 이성은 남아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들에게 그 정도의 용기가 있길 바란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보다 결코 더 중요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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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그때 그 광장에 초대형 월드컵 백화점이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3) - 월드컵 광장, 월드컵 백화점

 

우리에게 월드컵이란 2002년으로만 기억된다. 1954년 월드컵 첫 출전 이후 단 1승만을 염원하던 패배의 월드컵은 잊혀졌다. 오직 2002년 4강의 신화만이 남아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공동개최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개최국 국민으로써의 사명감, 자부심을 강요하거나 강하게 느꼈던 이들은 없었다.

 

이런 모습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는 사뭇 다르다. 1988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금메달 12개로 종합성적 4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경기에서의 승리보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더 집중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우리는 국가로부터 동원되고, 강요되었다. 그리고 은폐 당하기도 했다.

 

매스게임에 동원된 학생들에게 학교수업은 생략되었다. 전 국민이 생활영어쯤은 해야 한다며 영어가 강요됐다. 허름한 주택 앞에는 호돌이가 새겨진 콘크리트 담벼락이 급조되어 가난한 이웃들은 은폐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머슴처럼 묵묵히 손님접대에만 열중했다. 어리숙하게 소외당할지언정 내 조국이 자랑스러워지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권위주의 국가시대에 애국은 가슴을 뛰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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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걷어 차지마라. 노점상이 축구공이냐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2) - '대한민국' 구호에 묻혀버린 노점상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다.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으니 개인적으로 빈민운동 단체에 일하면서 가장 바빴던 해가 2002년 요맘때인 한일 월드컵경기가 열리던 해와 곧바로 2005년 청계천 복원 공사를 강행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쪽에서는 전 국민의 열광과 환호 속에서 경기가 펼쳐졌고 또 한쪽에서는 한 달씩 노점 장사를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극단적인 현상은 그해 곧바로 청계천 복원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항의를 하며 청계천 낙원상가 앞에서 장사를 하던 한 늙은 노점상이 분신 사망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월드컵 경기가 벌어지던 이 시기 우리 단체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에드벌룬을 이용하여 거대한 축구공을 제작해 ‘노점상은 축구공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써 붙이고 시민들을 상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스티커와 유인물을 제작하여 뿌리는 등 노점상과 손수레를 축구공 마냥 발로 차지 말라는 뜻의 항의 표시를 하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사실상 냉담했고 언론에서는 일제히 노점상들을 향하여 전 국민의 축제에 재를 뿌리는 천덕꾸러기로 보도를 했었다. 외국인들 보기에 노점상은 선진한국의 모습에 먹칠을 한다는 것이고 비위생적이며 불결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이 찾았던 곳은 유명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월드컵 기간에 청계천 황학동의 벼룩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이드를 대동하여 찾아들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노점상들을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단속을 강행했지만 외국관광객들은 한국 서민들의 삶의 모습에 더 관심이 많았고 이들의 눈에는 길거리 노점상들이 이색적인 볼거리 이었던 것이다. 근면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곳, 그것은 삶의 땀 냄새가 살아있는 청계천 벼룩시장과 재래시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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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월드컵 앞두고 우려 높아지는 극우파의 외국인 폭력

월드컵 앞두고 우려 높아지는 극우파의 외국인 폭력

[정대성의 독일통신](5) - 월드컵 ‘축제’와 독일의 ‘숙제’

 

 

 

6월이다. 며칠 뒤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로 꼽히는 월드컵이 개막한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지금 독일은’ 온통 축구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신문은 신문대로 쉴새없이 월드컵 관련 소식을 전하고, 방송은 방송대로 독일 팀의 상황과 월드컵에 참가하는 각국의 평가전을 신물나게 틀어댄다. 6월은 ‘축구 세상’이라는 ‘계시’라도 내려진 듯하다.

 

독일은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연방 정부는 “세계가 친구를 찾은 손님처럼”이라는 공식 슬로건을 내걸고, 무엇보다 지난 9.11 테러 이후 21세기 지구촌의 지표가 된 ‘테러의 시대’에 대비한 안전한 월드컵을 위해 만반을 태세를 갖추어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에 총리에 따르면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축구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독일에서는 ‘친구를 찾는 독일 손님들’이 걱정할 만한 일이 잇달아 일어났다. 신나치 극우파 청년들의 외국계 독일인 공격 사건이었다.

4월 부활절, 베를린에서 멀지 않은 포츠담에서 이디오피아 출신의 독일인이 극우파 청년 2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 뒤에는 토고 출신의 한 흑인이 집단 폭행을 당했고, 5월 들어서는 베를린에서 이탈리아인과 터키 출신의 독일 정치인이 욕설과 집단 구타로 병원 신세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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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월드컵 너머’ 행동 매뉴얼로 업그레이드, 랄랄라~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1) - 월드컵 일방주의의 반역을 시작함

 

독일 월드컵의 편안한 시청을 위해 방글라데시 한 대학생들은 본부와 투쟁해 시험 기간을 7월로 연기시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값비싼 위성 수신료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영국에서는 한 호텔이 소위 월드컵 기간 중 ‘축구과부’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내놓았다. 신문의 스포츠지면을 잘라낸 채 제공하고, 축구중계 대신에 <더티 댄싱>과 같은 DVD를 튼다. 종업원이 축구에 관해 발설이라도 하면, 호텔 측은 그걸 엿들은 투숙객에게 샴페인을 벌칙으로 내놓는다. 깜찍하다. 예약이 쇄도하고 있단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한걸음 나아갔다. 월드컵 이야기에 질린 여성들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월드컵은 지옥으로나 가라!’ ‘축구로부터 자유로운 네덜란드를 위한 여성’ 모임이 오렌지 색 축구 광기의 남성 호르몬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축구중계로 가득 찬 텔레비전을 고발했다. 그래서 이들이 내건 열 가지 조건 중에는 월드컵중계 한 시간 당 <섹스 앤 시티>와 같이 여성이 즐겨 시청하는 드라마를 트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발랄한 발상, 적극적 공모가 재미있다. 이렇게 월드컵은 반드시 보편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특히 자본이 주도하고 남성가부장적 국가(주의)와 결탁한 현대의 월드컵은 더욱 그렇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월드컵’은 한 마디로 말해 제어불능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보편의 열정을 가장해 모두를 전체의 광기로 불러 내세운다. ‘국민’으로 호명하고, ‘광장’으로 동원한다. 서울시청 앞터 사용권을 독점한 ‘SK 텔레콤 콘소시엄’, 이에 동참한 KBS, MBC, <조선일보>의 치밀한 작업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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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반월드컵 게릴라 문화행동 ‘작전’ 개시

 

 

 

월드컵 개막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열정의 중심에서 반대를 외치는’ 활동가들의 반월드컵 게릴라 문화행동이 6일 새벽 전격 개시됐다.

 

5일 오후 11시 30분, 20여 명의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문화연대 사무실로 하나 둘 모여 들었다. 간단한 ‘작전회의’를 마친 활동가들은 6일 새벽 0시 경 3개조로 나뉘어 대학로, 신촌, 홍대, 명동, 종로 일대로 흩어졌다. 
 

이들의 이날 게릴라 문화행동은 반월드컵 스티커 4종 세트 7천여 장을 시내 곳곳에 설치된 월드컵 관련 조형물과 선전물에 부착하는 것. 스티커 4종 세트에는 ‘월드컵 보러 집 나간 정치적 이성을 찾습니다’, ‘열정의 중심에서 반대를 외치다’, ‘나의 열정을 이용하려는 너의 월드컵에 반대한다’는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맡은 지역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신속하게 스티커를 월드컵 관련 포스터와 조형물 등을 비롯해 시민들이 많이 지나는 시내 곳곳에 부착했다....

 

[반월드컵 게릴라 문화행동 ‘작전’ 개시] 기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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