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참세상]현대차 성희롱 피해자의 승리, 우리에게 남긴 것은?

현대차 성희롱 피해자의 승리,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음지에 있던 여성노동자문제, 양지로 드러내...성희롱 방지는 생존권의 문제

윤지연 기자 2011.12.16 07:42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여성의 원직복직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권리 찾기가 확산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성희롱 피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 박 씨는 지난 14일, 1년 4개월 만에 사측과 원직복직에 합의했다.

 

현대자동차 물류담당 회사인 글로비스와 하청업체인 형진기업, 금속노조와 피해자는 14일 오전, 조인식을 열고 △2월 1일자로 피해자 원직복직 △1월 31일 자로 가해자 해고 △해고기간 임금 지급 △근무환경에서의 불이익 금지와 업체 폐업 시 고용승계 △직장 내 성희롱 방지 예방 프로그램 설치 등 재발방지 대책 등에 합의했다. 박 씨가 서울로 상경해 서초경찰서와 여성가족부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인 지 197일만의 성과다.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싸움, 무엇을 남겼나

 

13일 저녁, 여성가족부 앞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자의 원직복직 소식을 듣고 찾아온 20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동안 박 씨의 원직복직에 힘 써 온 연대 단위들은 “현대자동차라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여성 하청노동자가 승리를 만들어냈다”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사실상 1년 4개월간 박 씨의 싸움은 사내하청노동자가 거대자본인 ‘현대자동차’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뤄냈다는 의미 외에도, 사회적으로 음지에 갇혀 있었던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문제를 양지로 이끌어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민주노총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올 상반기, 여성노동자 1,652명을 대상으로 ‘여성노동자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여성노동자 39.4%가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 씨와 같은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 형태 등 고용이 불안한 여성 노동자들은 더 높은 빈도의 성희롱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 경험행위수 평균은 정규직(3.11)보다 비정규직(3.76)이 더 높았으며, 직접고용(3.13)보다 간접고용(4.02) 노동자가 더 높았다.

 

하지만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노동자들의 대응은 대다수가 소극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간접적으로만 불쾌하다고 표시하는 경우는 39%였고, 별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30%를 웃돌았다. 이들이 소극적 대응에 그치는 이유는, ‘상대방과의 관례 우려(39.9%)’나 ‘업무상 불이익 우려(28.3%)’ 때문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의 성희롱 사건은 노동계에서조차 수면아래에 머물러 있었으며, 성희롱 문제가 발생해도 노조가 사업장 내부에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됐다. 박승희 민주노총 여성위원장은 “사업장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드러내기 힘든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공식화해서 싸우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며 “이번 사례는 매우 드문 사례로,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복직까지 이뤄내며 여성 하청노동자의 투쟁에 쉽지 않은 사례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산업재해’로 최초 인정받으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성희롱에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박승희 위원장은 “성희롱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으로, 현재 성희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민주노총 산하 여성노동자 역시 산재 신청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일반 시민 역시 찾아와 산업재해 신청을 통한 성희롱 대응방법을 물어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결국 성희롱의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희망을 갖게 한 결과였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여성노동자 ‘성희롱’ 투쟁, ‘생존권’ 투쟁 인식해야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은 “이번 투쟁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 아무리 힘이 센 현대자동차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힘없는 하청노동자가 몸을 일으켜 싸우면 시민들이 싸움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이번 싸움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켰다는 데도 의미가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여성가족부, 노동부 등 국가기관이 이번 사건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던 데 반해, 피해자 측이 나서서 성희롱 문제와 이에 따른 해고의 책임이 사측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권수정 대리인은 “국가기관의 비호아래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착취구조에 우리의 싸움이 파열을 낸 것”이라며 “또한 이번 투쟁은 지금까지 여성가족부가 해 왔던 성희롱 예방교육보다 더욱 실효성있는 예방책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일각에서는 그동안 노동운동의 언저리에 머물러있던 여성운동을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처음으로 ‘성희롱’이라는 여성의제 놓고 중앙위의 논의를 거쳐 전 조직적인 결의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 여성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노동운동 내부에서조차 여성들의 ‘성희롱’ 문제를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 노동자의 ‘생존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수정 대리인은 “여성노동자의 경우, 해고되기 싫으면 성희롱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싸움에 나선다는 것은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며 “때문에 노동운동이 이를 깨닫고 비어있는 ‘여성’의 문제를 채워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원직복직’과 ‘가해자처벌’이라는 상식적인 요구가 관철되기까지 1년 4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민주노총과 산별은 사건발생 초기부터 확실한 투쟁 방향이나 대책마련을 내놓지 못해, 그 시간동안 박 씨는 가해자와 사측의 인신 공격을 견뎌내야 했다.

 

박승희 위원장 역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초기부터 피해자를 중심으로 민감하게 대처 해야 하지만 미흡했다”며 “가해자 규탄보다는 성희롱 피해자의 사생활에 대한 가해자와 사측의 공세가 심해 다소 투쟁이 흔들렸던 측면이 있었다”고 내다봤다.

 

이어서 그는 “특히 민주노총 역시 현재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성희롱 문제를 민감하게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으며, 초기 대응방법이나 성희롱 의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해서는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현재 노동계는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틀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와 이후 재발방지 대책 등에 대한 요구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