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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현대차 성희롱 피해 합의 의미] “사내하청 여성인권 사회적 관심 계기”

[현대차 성희롱 피해 합의 의미] “사내하청 여성인권 사회적 관심 계기”

2011-12-15 오후 2:50:14 게재

고용불안 이유로 성폭력 무방비… 국회 시민단체 국제노동계 공동노력 성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여성이 14일 노사합의에 따라 원직복직하게 된 것은 여성노동자의 기본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대기업 사내하청의 여성인 경우 그동안 성폭력으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날 합의는 피해 여성 박 모와 금속노조, 현대차 물류업체인 글로비스, 사내하청 형진기업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졌다.

◆교섭 1주만에 타결 = 간접고용 책임박 씨의 성희롱 사건이 이미 정부기관 등의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197일간이나 장기간 농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엔 사내하청에 의한 간접고용구조 때문이다. 박씨가 일했던 금양물류는 현대차의 물류업체인 글로비스의 사내하청이었다. 성희롱 혐의는 사실이었으나, 사내하청이 형진기업으로 바뀌면서 박씨가 돌아가야 할 회사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 합의는 교섭을 시작한지 1주일만에 이뤄졌다.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노동계의 지원이었다. 지난 11월말 미국 전역과 푸에르토리코 75개 현대차 영업소 앞에서 미국 노동단체 회원들이 1인 시위를 벌였다. 참여한 이들은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한 네트워크(WGNRR)', 국제금속노련(IMF), 국제식품연맹(IUF) 등의 회원들이었다. 또 다른 계기는 근로복지공단의 성희롱 산재 인정이었다. 공단은 지난 11월 25일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라고 판결했다. 권수정 피해자 대리인은 "6개월간의 장기농성에도 불구하고 사측 반응이 없었는데, 미국 노동단체들의 1인시위가 교섭 물꼬를 텄다"고 말했다.

◆사내하청 성희롱 관심 계기 = 박 모씨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7일. 197일간 기나긴 투쟁 끝에 이뤄진 결실은 박씨 자신과 대책위원회에 참여한 16개 시민단체들의 노력 덕이었다. 특히 국회는 이 문제를 국정감사 도마에 올려 핵심 쟁점화했고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은 "피해 여성이 이제라도 원직복직된 것은 다행이지만, 원청인 현대차가 일찍 문제 해결에 나서야 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인권문제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의미는 대공장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성희롱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박 모씨는 현대차 사업장 내에서 지난 14년간 단 한번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상시적으로 고용불안을 겪어야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관리자나 남성으로부터 성적 피해를 당해도 문제 해결에 나서기 어렵다. 오히려 피해자는 회사내에서 고립되거나 해고를 당해야 했다.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산재로 인정되는 계기를 만든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권수정 대리인은 "성희롱 후유증을 산재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원청을 포함한 사용자의 성희롱 방지노력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는 뜻"이라며 "적어도 현대차 사내에 성희롱 근절을 위한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속노조는 이날 논평을 통해 "회사나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는 이번 성희롱 사건에 대해 외면하고 침묵했다"며 "더 이상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고 "현대차와 하청업체는 성희롱 피해자를 해고하고도 폐업개업이라는 편법으로 문제를 피해왔다"며 "사내하청 문제에서 원청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에 현대차의 적극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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