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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자의 눈] 성희롱 피해자 호소 외면하는 여성부

[기자의 눈] 성희롱 피해자 호소 외면하는 여성부

 

김지은 사회부 기자 luna@hk.co.kr

 

서울 중구 청계천로 여성가족부 청사 앞에 '집'이 한 채 생겼다. 6.6m²(2평) 크기 텐트로 등장한 지 28일로 7일째다.

이 집에 김미영(가명ㆍ45)씨가 산다. 그는 올해 초 세상에 알려 진 '현대차 협력업체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다. 비정규직 노동자이던 그는 직장 간부 2명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다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인권위는 진정 내용을 사실로 판단하고 가해자와 회사에 손해배상금 지급을 권고했지만 이미 진정을 냈다는 이유로 김씨가 해고당한 뒤였다. 그 사이 가해자들은 아무 문제없이 다른 업체로 고용 승계 됐다. 막다른 골목에서 열 달을 싸워야 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여성부다.

장맛비가 텐트를 사납게 두드리던 27일. 한여름에도 점퍼를 두 개나 껴입은 그의 모습은 몸 보다 마음이 더 추워 보였다. 하지만 "여성부가 나서서 도와 달라"는 호소에 여성부는 요지부동이다. 22일 김씨를 돕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가 요청한 면담에서 "고용노동부, 인권위 등과 대책회의를 추진하겠다"고 답변한 뒤 아무런 조치가 없다. 돌아온 건 텐트와 주변의 펼침막을 걷어 달라는 독촉뿐이다. 심지어 청사의 화장실도 못 쓰게 해 김씨는 200m쯤 떨어져 있는 공중화장실에 간다.

여성부가 등돌린 동안 매일 저녁 청사 앞에선 사태 해결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린다. 김씨는 "힘내라며 음료수를 주고 가는 시민도 있는데 정작 내가 기대야 할 장관님은 못 본 채 지나치시니 이 싸움이 더 외롭다"며 씁쓸해 했다. 

 

취임 전 백희영 장관을 둘러싸고 "식품영양학자가 여성 인권의 현실을 알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실제 여성부는 장자연 씨의 죽음으로 불거진 '여성연예인 성상납' 등 현안에 대해 침묵해 여성계의 비난을 받아 왔다. 절박한 심정에 노숙까지 하는 성희롱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한다면 여성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여성 주간을 장관이 김씨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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