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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교(구 산어린이학교)와 나의 시간

산학교.

 

내가 처음 산학교를 안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아내가 산학교(구 산어린이학교) 방과 후 교사로 일을 하면서 부터이었다. 대안교육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못하던 내게는 무척 놀라운 경험이었다.

 

물론 이전에 볍씨학교 학부모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가 산학교 방과 후 교사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할 때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었다.

 

광명시에서 구로구 궁동으로 이사를 한 뒤, 첫째가 다닐 어린이집을 찾아보다가 궁더쿵이라는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알게 되었다. 당시 아내와 갈등이 깊었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내가 알아보고 면담도 알아서 했다.

 

8월이나 9월쯤 등원을 할 것 같았던 아이는 계속 기간이 미뤄졌고, 결국 11월에 등원을 하기로 했다. 10월 한 달 첫째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친구가 운영하고 있던 어린이집에 한 달간 보낼 생각이었으나, 첫날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

 

아내가 당시 교장 샘이던 아침햇살에게 상의를 했고, 아내가 근무를 할 때 내가 같이 가서 첫째를 돌보기로 했다. 내가 산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이 2008년 10월. 그 때 깡통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와 등교를 해서 작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첫째를 보고 있던 어느 날 한 학생이 다가와 내게 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당시 아내와 심한 갈등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깡통이라 말을 했다. 아내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나.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던 나. 그저 나는 깡통이었다. 깡통이라는 소리에 아내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지만, 그냥 깡통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고, 그 이름은 약 15년 정도 불리고 있다.

 

한 달의 짧은 생활이었지만, 학생들이 모래밭에서 구멍을 파고, 물을 붙고, 산 밑을 파서 나온 흙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자녀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을 만났고, 친구하고 싸운 뒤 울분을 토해내는 학생들의 모습도 봤다. 운동장에서 집단 놀이를 하는 학생들, 진 놀이며, 와리가리, 오징어 와 같은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산학교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시간이 지나 아내는 생활교사가 되었고, 나는 방과 후 교사가 되었다. 학생들을 보면서 그리고 부모들에게 방과 후 시간에 학생들의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산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알아갔다.

 

산학교는 초등 6년의 과정만 있었는데, 어느 날 중등과정을 만들기로 했다. 일단 실험과정을 만들었고, 파도가 담당교사가 되었고, 3명의 학생이 참여를 했다. 이 후 일반학교에 다니던 1명의 학생이 여름방학이 끝난 뒤 전학을 왔다.

 

한국입양홍보회에서 진행하던 반편견입양교육 강사 활동에 집중하고 싶어서, 산학교 방과 후 교사를 그만 두었다. 학교 현장에서 더 많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짧은 산학교 방과 후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다. 그 해 졸업하던 학생들 부모들이 교사들에게 머그컵을 하나씩 선물로 줬는데, 학교 방과 후 교사를 그만 둔 내게도 머그컵을 선물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당연하게 첫째는 산학교에 입할 할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나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대안교육에 대한 불신과 같은 것이 아니었고, 내게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뭔가 그런 기대가 있었다.

 

광명시에서 목회를 할 때 학교에서 생활이 잘 안되던 친구들과 함께 했었던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내 어릴 적 모습 때문이었는지 공교육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공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망설였다.

 

산학교와 같은 대안학교 교육과정이 너무 좋은데, 이 좋은 교육과정을 알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에 대한 부채의식(?)

 

당시 풀씨와 볍씨에 대한 생각과 광명시에서 만났던 학생들에 대한 생각, 막연하게 생각하는 공교육의 자리매김 등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생뚱맞은 고민이었지만, 나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1차 원서접수가 마무리 되고, 2차 원서접수 마감일에서야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첫째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학교는 시흥시 과림동에서 부천시 송내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학교 이름도 산어린이학교에서 산학교로 바뀌었다. 학생들의 요구와 중등과정 부모들의 요구로 이름을 바꾸려 했으나, 설립총회가 있던 날 중등과정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어른들만의 결정으로 학교 이름을 바꾸는 것에 반대를 했다. 결국 회의 결과 1년 더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부모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을 하기로 했다. 1년 뒤 설립총회에서 산어린이학교의 이름은 산학교로 바뀌었다.

 

아산에 학사가 만들어졌다. 교사회와 아침햇살, 달님 두 분의 전임 교장 샘, 그리고 뚝딱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수차례의 회의 또 회의.

 

둘째가 입학을 하고, 첫째가 중등과정을 결정할 때 첫째는 일반학교로 진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처음 입학할 때만 고민을 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다른 학생들이 일반 학교로 진학을 한다고 해도 산학교 중등과정으로 진학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당황했다. 아니 왜? 첫째와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를 했다. 결국 첫째는 산중등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하고, 올 해 둘째가 중등과정에 들어갔다.

 

궁더쿵어린이집에서 9년의 생활을 했다고 하면, 산학교에서는 지금 11년째 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3년의 시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산학교에서 생활을 하게 될 까? 이런 말 저런 말 생각을 해보도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말 같다. 산학교 참 좋은 학교다.

 

2023. 2. 18.

기억, 너머, 저편

 

2013년 2월 13일 산학교(구 산어린이학교) 졸업생 부모들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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