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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

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
 
진중권 교수가 중앙대에서 잘렸다. 한겨레는 ‘진중권 교수, 중앙대 재임용 탈락’이라고 보도했고 경향신문은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라고 보도했다. 느낌은 조금 다른데 어쨌든 잘렸다는 거다.
 
진중권 교수는 중앙대 겸임교수였다. 중앙대 관계자 말로는 "겸임교수란, 본직을 갖고 교수직을 겸임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뭔 소리인 줄 잘 모르겠다. 다만 겸임교수는 방학 때도 기본 강의료가 나오는 걸로 안다. 반면에 시간강사라고 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말 그대로 강의할 때 받는 강사료 말고는 ‘얄짤’ 없다. 그 강사료가 얼마인지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다.
사실 이런 거 안 지 얼마 안 된다. 얼마 전에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비정규직 교수, 벼랑 끝 32년》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태껏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모두 교수인 줄 알았다. 교수! 아, 물론 교수는 맞는데 교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는 교수들이 그렇게 많다는 걸 정말 몰랐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간 강사의 강의료가 3, 4만 원이라니 이게 무슨 교수라는 말인가. 고등학교 중퇴인 나도 가끔 글쓰기 강연을 하는데 적어도 시간 당 10만 원이다. 지방으로 가면 차비 10만 원을 더 준다. 그런데 대학까지 20년, 외국 갔다 와서 석사, 박사 학위까지 길면 10년,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연구를 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그 교수들이 시간당 3, 4만 원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더 어이없는 건, 그런 시간 강사들이 우리나라 대학 전체 7만 2,419명이나 된단다. 이게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안 오실 거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정규직이라고 하는 전임교원이 5만 8,819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면 놀라실라나? 그래도 별로 안 놀라신다고? 인재 경영이니 학문 연구니 하는 대학에서 ‘보따리장수’라고 일컫는 비정규직 강사가 정규직 격인 전임교원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한나라당, 이명박 지지자다.(이렇게 말하면 놀라는 척이라도 하겠지.)
 
이 글을 읽는 독자님은, 국회 앞, 천막에서 시간 강사 교원 지위를 회복해 달라고 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는 김영곤 교수와 부인 김동애 교수를 혹시 아시는지? 그 분들이 쓴 이야기도 그 책에 실려 있다. 책을 낸 그 당시는 500일 정도였는데 벌써 700일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 책은 32명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비정규 교수 뿐만 아니라 현직 교수, 학생, 문학 평론가, 변호사, 일반 네티즌까지 서로 다른 눈으로 시간강사를 이야기한 글이다. 모두들 비정규직 강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1부 <대한민국 비정규 교수의 오늘>, 2부 <우리는 소망한다,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 회복을!>, 3부 <비정규 교수 문제의 해법은?>, 4부 <벼랑 끝 32년, 희망을 다시 쓰자> 이렇게 차례를 나누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독재정권과 열악한 노동 탄압에 맞서 목숨을 끊은 열사가 많다. 하지만 이 비정규직 강사가 자살하는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덟 명이다. 지난해 한경선 박사도 미국 오스틴에서 삶을 마감했다. 한경선 선생은 2004년,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시간강사와 강의 전담교수로 4년 동안 지냈지만 “처음 1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도대체 비정규직 강사를 학교에서 어떻게 대하기에…….
 
이런 강사 제도가 시작된 건 언제부터일까? <‘교수’와 ‘강사’, 그 차별의 시작과 숨겨진 음모>라는 글을 보면 나온다. 1977년 박정희 정권 때 교수와 강사의 차별이 시작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독재정권이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였는데 도대체 교수와 강사의 차별을 두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다른 나라의 강사 제도는 어떨까? 책 속에는 ‘일본 비정규 교수의 현실’도 들어 있고 ‘호주의 비정규 교수에 지급되는 추가 임금 제도’에 관한 내용도 있다.
 
우리네 부모님들 그저 자기 자식 하나 잘 되기만 바라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학생? 누구나 자기가 가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면 좋겠지. 대학들은 “최고의 교수진, 최고의 시설로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겠다”고 하면서 학생들을 끌어 들인다. 다 뻥이다. 잘라 말하건대 우리나라에 이런 대학은 한 군데도 없다. 지들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시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주는 것에 대해 ‘절대 불가’라고 하면서 그 이유가 ‘시간 강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최고의 교수진이라매? 아니 그 학교의 반이 넘는 교수들이 다 시간강사인데 최고의 교수진이란다. 아, 시간강사 빼고 전임교수만 최고의 교수진이야? 놀고 있다. 자기들이 이 말을 하면서 좀 낯 뜨겁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훌륭한 분들이 있다. 하종강, 박준성, 정태인, 우석훈, 진중권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 다 교수라는 직함이 있다. 그런데, 전임교수가 아니다. 연구교수, 외래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강의 전담교수, 뭐 이런 요상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런 이름들이 모두 열여덟 가지라는데 한마디로 다 비정규직 교수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내가 본 어떤 교수들보다 훌륭하고 실력 있고, 실천하는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다. 그저 권력에 고분고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분들이다. 아, 그렇다고 지금 교수로 계신 분들 다 권력에 아부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강수돌, 한홍구 선생 같은 분들은 현직 교수이면서 얼마나 줏대가 있는 분들이던가. 하지만 사실 이분들도 이명박 시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땄더라면 교수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교수, 벼랑 끝 32년》. 이 책은 비정규직 교수를 둘러싼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과서다. 박사 학위를 따서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만 보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들은 읽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왜? 힘 빠지니까. 재수 없으니까. 자식 잘 되라고 대학 보내는 학부모, 대학을 가려고 애쓰는 학생들은 꼭 읽으셔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알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야 한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외면하고 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은 없다!
 
글쓴이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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