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작하며.

본인의 이글은 현재 개인적 사정으로 인하여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스스로 생각한 바를 적은 글이다. 물론 글 자체의 특정한 문제점이 존재 할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일 것임을 알리면서 이글을 시작 하고자 한다.

예전부터 수많은 혁명가와 조직들은 대중의식에 관하여 그들을 어떻게 하면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 사회주의 혁명의 세력으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해 왔다. 대중의식은 혁명적 상황에서 접점이 권력에 이르기까지도 하고, 그 체제에 대한 도전을 빈번하게 하여 체제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 왜 일반적일땐 그들 자신의 속으로 감추기도 하면서, 언제 그런일이 존재 했던가를 느끼면서 자신의 꼬리를 감추고 조숙한 여자로 변신을 한다. 대중의 급격한 변화의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배계급간의 투쟁 속에서 나타난 모든 표현들, 지배게급의 대응방식과 피지배계급의 맞 대응방식으로 나타나는 체제간의 위기,지배계급이 그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방식과 그에 조응하는 대중들의 투쟁양식 등등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중의식을 규정해야 하는가?

일단 대중의식을 사정에서 찾아보니 그 내용이 없다. 대중의식에서 서로 분리시키고 나니 대중하고 의식이 남고 대중은 일반적인 무리를 의미한다라고 하고 의식은 경험하고 잇는 심적 현상의 총체를 말하며,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체험하고 그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것을 말한다. 체험자 자신에게는 직접적으로 파악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전해듣지 않는한, 직접적으로 파악 되지 않는다. 즉 그들의 표현상태를 보고 그들의 의식수준-의식형태를 파악할 수 잇는 것이다.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를 알수가 없는 것이다.

대중의식이란 이런 개인간의 체험을 대중의 체험으로 확장 시킨것이다. 개인 스스로는 권력에 대한 비판, 또는 맹목적적인 증오가 존재하지만, 개개인이 모인 조직인 경우에서 한 체제에 대한 저항을 하지 못하고-일반적인 경우를 의미한다-그 안에서 안주하는 생할적인 요구가 먼저 나타난다. 대중의 수준이 미약하게 시작 되는 것은 그들 전체의 요구 수준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며, 여기의 교차점으로 직접적인 생활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밑받탕으로서의 경제적인 요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배 계급의 대응방식과 대중들의 할수잇다 또는 하면된다라는 의식의 공유 속에서 피지배계급의 경험이 녹아들어 점차적으로 높은 권력에 대응하여 체제를 흔들게 된다. 이들의 발전 의식은 양적인 부분으로서 서서히증가함과 더불어 그동안 축적 되어온 질적인 맹아가 계기를 통하여 분출하게 되는 것이 대중의식의 급격한 고양인 것이다.

대중의식은 그들이 처해져 잇는 존재 속에서 나타난다. 그들이 존재 속에서 체험한 외적 요인들과 그동안 체험한것을 숙고하고 정리하면서 자신들의 방향성을 나타내며, 진행방향의 장애물을 걷어치워 나가면서 한발 한발 전진해 나간다. 대중의식의 발전 과정에서 존재 외적인 존재들이 의식을 감싸안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 절대적인 빈곤감등을 느끼면서, 자신들도 인간임을 사람으로서 역사의 한장을 연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지만, 의식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을 한다. 대중의식 또한 낮은 경제적인 요구로 시작 하여 높은 권력에 대한 투쟁까지 이동을 하며, 전 계급을 포괄하고자 한다. 전 계급에 대한 포용은 당시에 나타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며 그것이 자신들의 의식임을 착각-깨달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인정한다-하게 되는 것이 피지배 계급의 의식인 것이다. 이는 체제 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체제를 벗어나고자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속에서 표출은 하지만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인하여, 그 체제를 벗어날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량의 파도에 무너질수 밖에 없는 모래성인 것이다.

60년대,80년대, 87년대의 혁명적 상황 속에서 대중들은 권력에 대한, 체제에 대한 직접적이 공격을 햇으나 그들의 요구 수준은 직선제 쟁취, 정권퇴진수준으로 국한 되어 졌고, 지배계급은 과감히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어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수위를 조절하는 힘을 -대응방식을 보여줌으로 인하여, 피지배계급의 체험은 그런 개량 방식이상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게 되었다. 그러한 것이 수준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지배계급에 대한 환상이아직도 피지배계급의 의식속에 남아 있는 한 파도 에 부서지는 모래성을 계속해서 3번씩이나 지어 왔던 것이며, 아직까지도 지배계급이 한국사회에 탄탄하게 남을 수 잇는 원동력이 되고 잇었다.


2.대중의식의 후진성

본인은 대중의식이 낮기 때문에 투쟁의 방식을 선택 할때, 지배계급이 받아 줄수있거나, 아니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라고 제기하는 조직들을 여러번 만나 보았다.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NL친구들이 그렇고 여기에 해방연대도 그렇다. 이는 지배계급의 처분만을 바라는 도살장의 소들처럼 대중운동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전에 제기 햇던 문제이고, 당시 설명했던 내용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넘어 가겟다.

혁명정당 - 노동계급 정당은 전술을 제시할때 그 정세속에서 나타난 각 계급간의 접점을 바라보고, 계급투쟁의 합목적성을 제시할 수잇는 강령을 차용하여 대중의식을 체제내적인 부분보단 체제를 타도해 나갈 혁명의식으로 무장 시키기 위해 조직화시켜나가야 하는것이다. 지배계급이 받아 주면 투쟁의 성과물이요, 그들이 받아 주지 못하면 전진할수 잇어야 하며, 지배계급의 대응방식하곤 무관하게 이들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교화시켜 낼수 있어야 하며, 전략-사회주의 실현-에 종속되여 전략에 봉사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술관인 것이다. 대중의식의 발전 상태는 개관적 상태에 조응 하여 나가며, 강령에 의해 제기된 슬로건은 대중을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이기 위해서 대중의식 수준이 높던지 낮던지 관계없이 그 상황의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문제는 선전 선동가들의 몫으로 남겨 놓도록하자. 배고프다라고 밥을 달라고하는 3일 굶은 거지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물들일려면 어떻게 하는 지는 그들의 몫인 것이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말아라 다친다.(^_^)

자 본론으로 들어가서 대중의식의 후진성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객관적 상황이 혁명적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권력에 대한 도전보단 오히려 지배계급을 감싸안고 그들을 위해. 혹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넘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그것이 사회애국주의자들이 등장 했던 세계 1.2차 대전이며,한국에선 가까웠던 97년의 IMF시절이다. 이때 대중들은 나라와 민족-사회주의자들은 계급적 관점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잇다-을 위해 금붙이를 팔고 달러도 팔고, 함께 노력해서 잘 살아보자고 노동 시장 유연화까지 양보에 양보를 해주었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대어 노동대중들의 투쟁은 정치투쟁으로 까지 발전해 나가고 있었으며, 김영삼 정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소생산자계급까지도 이탈하여 독점자본은 고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기회에 대중들은 지배계급을 도와주어 작금의 현실이 존재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그런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조차 객관적 상황이 혁명적인 상황이라도 대중이 권력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고 그 안에 상주 하는 경우에 대해서 알아보자

1)노동계급을 지도하고 혁명의식으로 무장 시킬 계급정당이 존재 하지 못햇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혁명이 성공 햇던 이유중 하나는 그들과 함께 싸워나가고 그들을 지도 했던 혁명적인 볼셰비키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의 개량화된 사회민주주의 당과는 다른 혁명적인 사상으로 무장되어 올바른 전술관으로 그들의 권력을 지향하게 끔 만들어 주엇기 때문이다. IMF시절에 나라가 망한다. 제2의 국치다하며, 노동대중들의 정서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종속 시켜 계급 화해사상으로 만들며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만이 애국이며, 민족이 살길이라는 사상을 유포 시켰던 것이다. 우리에겐 가장 절실하고 혁명세력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2)노동계급이 지배계급과 싸워 나가는 와중에도 권력에 대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조금 더 낳은 쌀을 원하고 조금 더 많은 여가를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는 것만으로 한정 짓고,그것 이상으론 발전해선 안됀다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해서 더 이상의 발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 관료 노동귀족들의 형태가 나타난것이 지배계급의 의도가 잇던 없던간에 분열된 노동계급이고, 이들은 이미 소유자의 명당으로 소생산계급의 구성원으로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변해간다. 이들은 투쟁의의지가 강한자에겐 자신의 쌀을 빼기지 않으려고 하고, 지배계급에겐 놀러갈수 잇는 차의 기름값을 얻으려고 노력하며, 피지배계급의 끓어오르는 투쟁의 열기에 얼음을 갖다주기 위해 사냥개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대 자동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에도 그 공장은 잘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자동차의 냉각수가 그만큼 좋아 졌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3)마지막으로는 권력에 대한 투쟁이 없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의 물리력과 피지배계급의 물리력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누구하나가 연소가 될 때까지 이루어지며, 피지배계급은 그 전투를 효율적으로 지도 지휘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대항을 한다. 이것이 파리꼼뮌이며, 소비에트인것이다. 노동자 평의회의 제게는 혁명적 상황에만 제기가 가능 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도전 경험은 피지배계급에게 지배계급의 약한 고리를 흔들어 주어, 그들 자신의 권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며, 그것에 대한 목적의식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의 그런 진전이 무서워 대부분이 그러한 물리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군살을 내주어 피지배계급이 그 결과에 만족하고, 자신의 승리로 점철 되엇다고 생각하며, 더이상의 전진을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 하지 못하고, 또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체제안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그안에서 만족하게 된다.


대중의식의 후진성 또는 낮은 대중의식은 지배계급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보단 자신들의 당면의 요구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잇기 때문이지만, 이미 우리가 보앗던 그리고 느겼던 것은 대중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표현형태, 그들의 투쟁을 혁명의식으로 전환 시킬 수있는 매개고리(강령)를 잡아야하며, 그것은 혁명적 노동계급정당이 할 일이고,그 조직원의 활동 지침서인 것이다. 아직도 대중의식이 낮아서 그 수준에 맞추어 전술 관을 제시해야 한다면, 그곳에서 전략적인 면을 말하고 대중정치조직을 말하고 싶으면 계속해라. 본인은 대중의식이란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것 가지고 핑계를 대는 같잖은 것으로 취부 할테니....


3.대중의식의 고양기

그러면 그 역관계는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 누구나 열심히 공부들을 햇기 때문에 본인보단 훨씬 더 똑똑하다라도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을 해볼 겸해서 넘어 가보자. 대중의식이 고양 되어지는 경우는 어떤 상태에서 나타나는가.

1)세계 자본주의모순이 중첩이 되어 지배계급의 물질적 개량의 여지가 부족하거나, 없을 경우다. 피지배계급의 끓어오르는 열기를 시원하게 시켜줄 얼음이 필요하지만, 얼음이 떨어져서 받혀주지 못할 때,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간에 물리력 충돌이 벌어지면서 프롤레타리아는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면서 권력에 대한 체제에 대한 투쟁을 확대해 나간다. 지배계급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서 자신들의 힘에 놀라 스스로 높은 곳으로 이동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발전은 혁명상황까지 발전시킬 수도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2)권력에 대한 투쟁의 경험이 존재 했고,지배계급에 대해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승리 했을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본능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권력에 대한 순간순간의 색다른 체험으로 인하여 거북이 발걸움을 토끼의 발자국으로 호랑이의 숨소리로 바뀌어 진다. 이런 질적인 변화의 하나하나가 대주의식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며, 권력에 대한 도전은 일상적인 생활수준에서 조차 제기 하는 발전이 이루어 질수 있다. 1917년 러시아의 세탁소 국유화처를 외치는 어느 아주머니들의 외침처럼....


4.글을 마치며.

대중의식은 객관적 상황에 조응 하면서,객관적 상황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도 한다. 주요인은 객관적 상황인 것이다.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요인은 변증법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한다. 무엇보다도 상호 의존성을 가지면서 서로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벌인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이 의식이 존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강령이라는 형식속에서 전술이라는 내용을 채워나가는 과정속에서 무한히 부딪쳐야만 하는 대중의식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 할것인가로 부터 시작되어 혁명의 전 과정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인 발전된 대중의식을 바라고 내용이 채워진 술잔을 들고 음미하는 혁명가의 고뇌는 어떤 여정에서조차 꾸준히 제게 되어 온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논리 속에 파 묻혀서 빵을 얻기 위해 싸우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노동계급 대중은 자신의 환상 속에서 좋아 했던 지배계급에게 왼손의 악수를 하고, 오른손으로는 칼을 갈며 파업으로 시작한다.

파업은 지배계급에 대한 도전이며, 체제에 대한 반항의지가 담겨잇기에 대중의식은 발전의 경로를 따라간다.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으로 권력에 대한 투쟁으로 발전해 나갈때 그것을 구체적이고 다음 세계에 대한 목표의식을 갖게 해주는 조직이 존재 할때만이 의식수준을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급의식으로 무장 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의 승리는 객관적 요인과 주관적 요인이 얼마나 잘 결합되어 잇느냐에 따라 나타나며, 주어지는 밥도 누가 어떻게 떠 먹을수 잇느냐는 주체적 역량에 의해 나타난다. 생각을 조금 만 바꿔보자. 한국사회에서 부르죠아들이 떠드는 저 출산율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식에 대한 부담, 부모로서의 부담이 자식을 제대로 못키운다라고 생각하는 부담으로 느껴져 이루어 진 것이다. 주 내용은 현 체제하에선 자식농사도 제대로 못 짓는다라는 이유이기 때문이며, 현 체제에 대한 불만 인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대중의식이 낮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 되어 졌음을. 이미 지난 추억이 추억일 뿐 힘이 되지 못한다라고 할지라도, 추억이 가지고 잇던 경험들이 축적이 되어 체제에 대한 반항이 저항으로 무정부적 의식이 목적의식적으로 변해간다라는 사실을. 이를 올바르게 이끌어가고 지도하며 함께 할 수있는 혁명적 노동계급정당이 있다면, 그 길은 더욱 짧아 질것이며, 그 시간조차 짧게 느껴질 것이다


언젠간 우리에겐 기회가 올것이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아야 하며,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주의 노동계급 정당이 있어 함께 하는 그날이 승리의 축포를 터뜨릴 것이다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라면, 괜히 속보이는 척을 해선 안되며, 그것을 까발리고 자신이 나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야 한다. 더 이상 답답하게 살지 말자. 대중의식, 전 계급적 정치조직이라는 생각 속에 매몰되지 말고 현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고 체제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노동대중에게 선전 선동을 해라. 그들의 본능은 이미 콩밭으로 간 것이다.


대중의 투쟁이 혁명조직을 찾아다닌다라고 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당신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누워서 자신의 존재가 있다라고만 땡강 부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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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5 16:19 2005/09/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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