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금의 논쟁이 시작되기 거의 1년 전인 1938년 10월 6일 나는 당의 신문이 노동자들에게 기조를 맞추어야 할 필요성을 이렇게 글로 표현한 바 있다:

"이 관점에서 [사회주의자의 호소]가 나타내는 태도는 아주 중요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은 아주 좋은 맑스주의적 신문이지만 정치행동을 돕는 진정한 도구는 아니다. 나는 이 신문의 편집부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 글은 확실히 불평조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섁트먼 동지는 당원들의 계급적 구성이나 신문의 독자들보다 이미 오래 전에 끝난 투쟁의 개별적인 문필적 일화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8.

변증법적 유물론과 관련하여 이미 언급한 바 있는 1939년 1월 20일자 편지에서 나는 다시 섁트먼 동지가 쁘띠부르조아 문필계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사회주의자의 호소]는 스탈린주의 정당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정당은 현재 모순덩어리 입니다. 이 정당은 반드시 둘로 쪼개질 것이며 이 결과 탈당한 당원들은 우리쪽으로 획득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정당에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매일 그리고 매시간 이 정당이 보이고 있는 모순들을 추적해야 합니다. 편집진의 누군가가 책임을 맡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스탈린주의 정당의 사상과 행동을 추적해야 합니다. 이 정당 내부에 논쟁을 촉발시킬 수도 있고 가능하면 동요하는 당원들의 편지들을 우리 신문에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트먼이나 라이언즈와 같은 양반들의 글을 싣는 것보다 1천 배나 더 중요합니다. 이스트먼의 최근 글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오만합니다. 이 글을 동지가 왜 당 신문에 실었는지 나는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지가 개인적으로 이 인사들을 초대하여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한정된 지면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까무러칠 지경입니다. 이러한 인사들과의 토론은 일부 쁘띠부르조아 지식인들에게는 흥미거리인지 몰라도 혁명가들에게는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사회주의자의 호소]를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신합니다. 이스트먼, 라이언즈와 같은 인사들에게는 좀더 거리를 두고 대신 노동자들과 스탈린주의 정당에 대해서는 좀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사태들은 섁트먼이 이들 인사들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9.

1939년 5월 27일 나는 당원들의 계급적 구성과 연관시켜 다시 [사회주의자의 호소]의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편지를 썼다:

"회의록을 보니 동지가 [사회주의자의 호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신문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신문은 아주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한 신문이지 노동자의 신문은 아닙니다.

이 신문은 여러 편집기자들이 분담을 하면서 글을 싣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훌륭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면서 노동자들을 신문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편집기자들 각자는 노동자들을 위해 발언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노동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신문은 문필의 관점에서는 뛰어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신문쟁이들에게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며 투쟁하며 경찰과 충돌하며 위스키를 마시는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당의 혁명적 도구로서 이 신문은 아주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재능있는 편집진의 공동노력을 통해서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발언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이 신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이고도 용기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신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기조의 문제입니다. 쁘띠부르조아 청년 당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아주 훌륭하며 당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자기들 사이에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노동자 현장 속으로 침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직 확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나의 일관된 견해입니다.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쁘띠부르조아 출신 당원이 일정기간 예를 들어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노동자 당원을 획득하지 못하면 후보당원으로 강등되고 다시 3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제명되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조치가 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은 전체적으로 아주 필요한 건강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동자들과 연계를 이룰 수 없는 쁘띠부르조아 분자들을 제명시키자는 엄혹한 조치를 제안했을 때 나는 캐넌 분파를 "옹호"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직 당을 퇴보의 수렁으로부터 구해내고자 했을 뿐이었다.  

10.

당원들의 회의적인 목소리에 접한 나는 여기에 대해서 논평하면서 1939년 6월 16일 캐넌 동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전쟁 전야의 상황, 민족주의의 발호 등은 우리 운동의 발전에 자연스럽게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 대오 내의 사기저하에 깊은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의 구성이 쁘띠부르조아적인만큼 당은 부르조아 공식 여론의 변화에 더 많이 의존합니다. 이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용기있고 적극적으로 노동자 대중들에게 향할 필요성을 이 주장으로 보충하고자 합니다. 동지의 글이 드러내고 있는 비관적인 논리 전개는 물론 부르조아 공식 여론의 애국적 민족주의적 압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파시즘이 프랑스에서, 영국에서 승리한다면 ' 과 같은 생각말입니다. 파시즘의 승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숨이 넘어가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의 쁘띠부르조아 분파가 부르조아 여론에 기대고 있다는 문제는 현재의 논쟁이 있기 여러 달 전에 이미 제기되었었다. 소수파 동지들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내가 인위적으로 끌어들인 문제가 전혀 아니다.

* * *

소수파 지도자들이 과거에 보인 쁘띠부르조아적 경향의 예들을 제시하라고 섁트먼 동지는 요구했다. 나는 이 요구에 답하는 과정에서 소수파 지도자들 가운데 섁트먼 동지를 특별히 지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과거의 예들은 아직도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섁트먼과 내가 서로 주고 받은 편지들 중 "과거의 예"로서 더욱 흥미있는 것이 있다. 이것들은 다른 문제와 관련하여 곧 공개하겠다.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기억이 희미하거나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들은 다수파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동지들에게도 불리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섁트먼 동지는 아마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섁트먼 동지의 이름이 이들의 편지에서 계속 반복되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다른 동지들이 어쩌다 한두번 오류를 범한 반면에 섁트먼 동지의 오류들은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섁트먼 동지는 내가 당내 쁘띠부르조아 분자들의 존재를 "갑작스럽게" 그리고 "예상외로" 들추어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완전히 다르다. "쁘띠부르조아 소수파"에 대한 나의 글은 지난 3년 아니 사실은 지난 10년 동안 뉴욕 지부와 교환한 편지 내용을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을 증명했으며 지금도 해당 문서들을 손에 들고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섁트먼 동지는 "과거의 예들"을 요구하면서 뭔가를 과시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그에게 "과거의 예들"을 제시했다. 이것들은 섁트먼의 주장을 확실하게 논박하고 있다.  

맑스주의에 대항하는 철학 동맹

핀란드, 라트비아, 인도, 아프가니스탄, 발루키스탄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내가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신 변증법적 유물론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소수파 동지들의 주장이다. 이 동지들은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모양이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 주장은 소수파 동지들 일부의 수준을 특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사상에 대한 기본적 의리와 이론에 대한 이들의 태도를 특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937년 1월 멕시코에 도착한 직후 내가 기차에서 섁트먼, 와드 동지들과 함께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내용은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선전해야할 필요성에 맞추어졌다.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지금의 주제와 그리 어긋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운동의 미국지부가 사회당과 분립한 후 나는 가장 강력하게 가능하면 빨리 이론지를 발간할 것을 주장했었다. 당원들 특히 새로운 당원들에게 변증법적 유물론을 교육시킬 필요를 유념했기 때문이었다. 부르조아계급이 노동자들에게 체계적으로 속류 경험주의를 주입시키고 있는 미국의 경우 다른 어떤 곳보다 먼저 우리 운동을 적절한 이론적 수준으로 올려놓는 일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나는 글을 통해 주장했다. 섁트먼이 버넘 동지와 공동으로 작성한 글 "후퇴하고 있는 지식인"에 대해서 나는 1939년 1월 20일 섁트먼 동지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변증법에 대한 글의 내용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편집자로서 동지가 개인적으로 맑스주의 이론에 가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공격이었습니다. 좋습니다!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토론해 보기로 합시다."

이로써 이미 1년 전에 나는 섁트먼의 절충주의 경향에 대항하여 공개적으로 투쟁하겠다는 의도를 그에게 공개적으로 알렸다. 당시에는 소수파의 등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어쨌든 맑스주의에 대항하는 철학 동맹이 제4인터내셔널의 강령에 대항하는 정치 동맹의 기초가 되리라고는 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제 표면으로 떠오른 당내의 견해 차이는 당원들의 계급적 구성과 중핵의 이론적 교육에 대한 나의 염려를 확인시켜 주었다. 도대체 기존의 나의 생각을 바꾸거나 "인위적으로" 이론 문제를 논쟁에 끌어들일 필요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다만 이 점은 덧붙이고 싶다. 제4인터내셔널의 한 지부 내에서(!) 맑스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생각을 정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 --- 이것은 약간 창피스러운 감을 나에게 주고 있다.

자신의 "공개 서한"에서 섁트먼은 빈슨 던 동지가 지식인의 후퇴에 대한 자기 글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이 글에 대해 칭찬한 바 있다: "많은 부분들은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러시아 속담이 말하듯이 타르 한 숫가락이 꿀 한통을 망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 한 숫가락의 타르인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할애한 부분은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황당한 개념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개념들은 이제 명확해지고 있듯이 정치 동맹의 기반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 글을 꼬투리로 삼고 있다는 섁트먼의 끈질긴 주장이 있으므로 다시 한번 문제되는 글의 부분 중 핵심적인 구절을 인용하겠다:

" 변증법적 유물론의 좀더 추상적인 교리에 대한 동의나 이견이 반드시 오늘이나 내일의 구체적인 정치적 쟁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 어느 누구도 아직 증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정당, 강령, 투쟁은 이러한 구체적인 쟁점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새로운 인터내셔널], 1939년 1월호, 제7쪽) 이 인용문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혁명가답지 못한 " 정당, 강령, 투쟁은 구체적인 쟁점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라는 표현이다. 어떤 정당이며 어떤 강령이며 어떤 투쟁이란 말인가? 모든 정당과 강령이 한꺼번에 뭉뚱거려져 있다. 노동계급의 정당은 다른 모든 정당들과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쟁점들"에 기초를 전혀 두고 있지 않다. 근본에 있어서 노동계급 정당은 부르조아 흥정꾼들이나 쁘띠부르조아 누더기꾼들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사회혁명을 준비하여 새로운 물질적 도덕적 기초 위에 인류를 소생시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부르조아 여론의 압력과 경찰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 혁명가 특히 지도자는 명확하고 넓으며 완벽하게 심사숙고한 세계관을 구비해야 한다. 통일된 맑스주의적 사상의 기초 위에서만 "구체적인" 문제들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섁트먼의 배신이 시작된다. 작년에 나는 이 배신의 징조가 단순한 오류이기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이제 명확히 드러났듯이 그의 논리는 철저한 이론적 배신 그 자체이다. 섁트먼은 버넘의 생각을 그대로 추종한다. 그래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젊은 혁명정당의 정치행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어느 누구도 아직 증명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맑스주의가 노동계급의 투쟁에 소용이 있다고 "어느 누구도 아직 증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 결과 노동계급의 정당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배우고 옹호할 동기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맑스주의와 과학적 방법론 일반을 포기하는 것이며 경험주의에 불쌍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이 논리는 섁트먼과 버넘 그리고 버넘을 통해서 부르조아 "과학" 신봉자들과 섁트먼이 철학 동맹을 맺었음을 의미한다. 내가 작년 1월 20일자 편지에서 지적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그

런데 3월 5일 섁트먼은 이렇게 대답했다: "동지가 언급한 문제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만약 글을 다시 쓴다면 동지가 주장한 내용에 비추어 여기(!) 저기(!)에서 표현을 달리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지의 비판의 핵심에 대해서는 견해를 같이할 수 없습니다."

이 답장은 심각한 상황에서 섁트먼이 늘상 반응하는 방식과 똑같다. 즉 그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 후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인상만은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분파투쟁의 열에 들떠 그는 "과거에 했던 것을 내일 다시 또다시 하겠다"고 약속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부르조아 "과학"에 투항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맑스주의를 더 이상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섁트먼은 드디어 이러저러한 정치 동맹의 효용을 나에게 설명한다.(어떠한 근거로 이런 설명을 하는지는 조금 후에 보도록 하자.) 그러나 나는 지금 이론적 배신의 치명적인 해를 말하고 있다. 동맹은 그 내용과 상황에 따라 정당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론적 배신은 어떠한 동맹에 의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섁트먼은 자신의 글이 순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나는 그 글 전체가 아니라 맑스주의를 기각하고 있는 그 글의 일부 내용만을 문제삼고 있다. 물리학 교과서가 물질운동의 첫 번째 원인이 하느님이라는 내용의 문장을 한 두 개만 싣고 있을지라도 나는 이 교과서의 저자가 반(反) 계몽주의자라고 결론을 내릴 권리가 있다.

섁트먼은 비판에 대해서 답을 하는 대신에 관계없는 일들로 관심을 돌림으로서 비판의 논지를 흐리고 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철학 영역에서 버넘과 동맹을 맺고 있다'는 트로츠키 동지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치자. 그러면 이 동맹이 레닌이 보그다노프와 맺은 동맹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왜 후자의 동맹은 원칙에 부합하며 나와 버넘의 동맹은 무원칙하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말 듣고 싶다." 좋다. 나는 곧 두 동맹의 정치적 성격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른 것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맑스주의 방법론이다. 두 동맹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섁트먼 동지는 묻고 있는가? 레닌은 이론적으로 정당 일반과 볼셰비키 정당을 혼동하지 않았다. 그는 기질적으로 그러한 혐오스러운 발언을 할 능력이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진지한 볼셰비키는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이제 이해가 됩니까, 섁트먼 동지? 섁트먼은 명확한 대답에 "관심이 있다"고 빈정거리듯이 약속했다. 내가 믿건데 대답은 주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가 "관심"을 갖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추상과 구체 : 경제와 정치

섁트먼의 한탄스러운 글 가운데 가장 한탄스러운 부분은 "전쟁의 성격과 국가"라는 제목의 장(章 )이다. 그는 이렇게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전쟁에 가담하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 특히 이 국가에 지배적인 소유형태를 추상적으로 규정짓는 것을 통해 특정 전쟁에 대한 정책을 직접 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책은 국제사회주의혁명의 이해와 관련시켜 전쟁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와야만 한다." (앞의 글 제 13쪽. 강조는 인용자) 얼마나 뒤죽박죽인가! 궤변이 얼마나 얼키고 설켜 있는가! 우리의 정책을 국가의 성격으로부터 직접 연역할 수 없다면 왜 비직접적으로는 연역할 수 없는 것일까? 전쟁의 성격에 대한 분석은 구체적인데 왜 국가의 성격에 대한 분석은 추상적인가? 공식적으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욱 올바를 것이다: 소련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추상적인 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주어진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국가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통해서만 연역될 수 있다. 섁트먼의 모든 논지에 깔린 궤변의 기초는 아주 단순하다: 경제적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의 사건들을 즉시 규정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실천적인 과업을 해결하는 데 불충분하므로 따라서 경제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검토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섁트먼 자신의 신문쟁이식 속어로 말하면 "살아있는 사건들의 현실"만 검토하면 된다."(앞의 글 제 14쪽)

버넘과 자신의 철학 동맹을 정당화하기 위해 섁트먼은 이런 주장을 유포한 바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리의 정치를 즉시 규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일반적으로 "구체적인 정치적 과업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제 이 주장은 맑스주의 사회학과 관련되어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소유형태가 국가의 정책을 즉시 규정하지 않으므로 "구체적인 정치적 과업들"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맑스주의 사회학을 일반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주장을 맑스주의의 다른 분야와 관련지어 계속하지 않는가? 노동가치 법칙이 "직접적으로", "즉시" 가격을 결정하지 않으므로, 자연도태 법칙이 새끼돼지의 출생을 "직접적으로", "즉시" 결정하지 않으므로, 중력의 법칙이 술취한 경관을 "직접적으로", "즉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맑스, 다아윈, 뉴튼 등 모든 "추상적 개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저서들이 서가에서 먼지나 맞도록 내버려두자. 그렇다면 이 주장은 모든 과학을 엄숙하게 매장하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접적이고 " "즉시 연관되는" 원인에서부터 좀더 멀고 깊은 원인들을 밝혀내고 , 온갖 다양하고 요지경같은 현상들로부터 이 현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동력을 밝혀내는 과정이 곧 과학발전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노동가치 법칙은 "즉시"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격을 결정한다. 뉴딜정책의 파산과 같은 "구체적인" 현상들은 궁극적으로 분석하면 "추상적인" 가치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루즈벨트는 이것을 모르지만 맑스주의자는 이것을 알지 못하면 구체적인 현실을 분석하는 데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곧바로는 아니지만 일련의 직접적인 요인들과 이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소유형태는 정치뿐만 아니라 도덕을 결정한다.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무시하려드는 노동계급 정치인은 결국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다가 계단에서 굴러 코를 부러뜨리는 술 취한 경찰관과 같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섁트먼은 추상과 구체의 구별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구체적인 사건들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두뇌는 추상적 개념들을 가지고 사고한다. 심지어는 "지금 여기에 있는", "주어진", "구체적인" 개는 추상적 개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개에게 손가락을 향하는 "순간" 이 개는 자신의 꼬리를 내리면서 모습을 변화하기 때문이다. 구체성이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어떤 경우에 구체적인 것은 다른 경우에는 주어진 목적에 맞지 않게 불충분하게 규정되어 추상적이 된다. 주어진 필요에 따라 충분히 "구체적인" 개념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추상적인 개념들을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연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동화상을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움직이지 않는 정물사진을 연결시킬 필요가 있는 것과 같다.

구체는 추상의 결합이다.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결합이 아니라 주어진 현상의 운동법칙에 의해 규정되는 그런 결합이다.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대비시켜 섁트먼이 호소하고 있는 "국제사회주의혁명의 이해"는 이 주어진 경우에 모든 추상적 개념들 중에서도 가장 애매모호하다. 결국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혁명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 사회주의혁명의 과업은 노동자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그리 빗나간 대답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을 얘기하기 전에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자본가 국가와 노동자국가들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결과적으로 필요하다.

국가소유가 "그 자체로는", "자동적으로", "직접적으로", "즉시" 크렘린궁의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섁트먼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다. 경제적 "하부구조"가 정치, 법, 철학, 예술 등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방식 문제는 맑스주의 서적들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경제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시 작곡가의 창조력과 심지어는 판사의 판결을 결정한다는 견해는 모든 나라의 부르조아 교수들이 자신들의 지적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한도 끝도 없이 유포시켜온 맑스주의의 우스꽝스러운 모조품에 불과하다.

소련의 사회적 기초와 크렘린궁의 정책 사이의 상호관계라는 즉시 우리에게 제기되는 문제로 초점을 옮겨보자. 이미 17년 동안 우리는 공개적으로 10월 혁명에 의해서 수립된 사회적 기초와 국가 "상부구조"의 경향 사이에 드러나고 있는 점증하는 모순을 사실로서 확립해왔다. 이 사실을 딴 일에 정신을 팔고 있는 섁트먼에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소련 관료집단이 노동계급과 점점 독립된 세력이 되면서 소련 국내외의 다른 계급들과 집단들에게 점점 의존하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매 단계마다 추적하였다. 이미 확립된 이 사항과 관련하여 섁트먼이 덧붙이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비록 경제가 직접적으로 즉시 정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최종적으로만 그러할지라도 경제는 정치를 확실히 규정한다. 부르조아 교수들과 그 제자들에 대항하여 맑스주의자들은 바로 이 진리를 확신한다. 소련 관료집단이 노동계급으로부터 더욱더 정치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우리는 분석하고 폭로해왔다. 동시에 이 "독립성"의 객관적 사회적 한계 즉 외국무역 독점에 의해서 보완되고 있는 국가소유에 한시도 눈을 뗀 적이 없다.

놀라자빠질 일이다! 소련 관료집단에 대해 정치혁명을 수행하자는 구호를 섁트먼은 계속 지지하고 있다. 이 구호의 의미를 그가 진지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10월 혁명에 의해서 수립된 사회적 기초가 "자동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반영된다고 우리가 주장한다면 왜 관료집단에 대한 혁명이 필요한 것일까? 반면에 소련이 더 이상 노동자국가가 아니라면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혁명이 필요할 것이다. (ㄱ) 노동자국가인 소련의 성격 (ㄴ) 국가의 사회적 기초와 관료집단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관계 등에서 도출되는 구호를 섁트먼은 결과적으로 계속 지지한다. 그러나 이 구호를 계속 외치면서 그는 이 구호의 이론적 기초를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정치가 과학적 "추상적 개념들"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려는 행위가 아닐까?

부르조아 지식인들이 우스꽝스럽게 왜곡시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 투쟁한다는 구실 아래 섁트먼은 사적 관념론 (historical idealism)에 문을 활짝 열어 재낀다. 소유형태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은 정부의 정책을 분석하는 그에게는 관심 밖이다. 그에게 국가 자체는 성별이 없는 동물로 보인다. 닭털로 만든 침대 위에 두 발을 확고히 내딛고 이미 1940년이나 된 지금 이렇게 기세좋게 설명한다: 소련에는 국가소유체제가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관료집단에 의한 보나파르트적 더러움과 반동적인 정치도 존재하고 있다. 얼마나 새로운 사상인가! 섁트먼은 자신이 갓난 애기방에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섁트먼이 동맹을 맺다 -- 이번에는 레닌과 함께

섁트먼은 소련의 사회 성격에 관한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이것을 위장하기 위해 소위 노동조합 논쟁 중 1920년 12월 30일 레닌이 나에게 가한 비판적 언사에 의존한다: "트로츠키 동지는 노동자국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추상일 뿐이다. 소련은 실제로는 노동자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농민의 국가이다. 노동조합으로 포괄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방어해야 하며 우리는 이러한 노동자조직을 활용하여 노동자가 국가에 저항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가 국가를 지키도록 이 조직을 활용해야 한다." 이 인용문을 가리키며 섁트먼은 내가 1920년의 "오류"를 반복했다고 선언하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성급한 나머지 소련의 사회 성격과 관련된 그의 인용문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12월 30일에 행한 자신의 연설에 대해서 레닌은 1월 19일에 이렇게 썼다: "`소련은 실제로는 노동자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농민의 국가이다'라고 나는 말한 바 있다. 논쟁 보고서를 읽으면서 당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노동자국가는 추상적 개념이다. 실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특징을 구비한 노동자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1) 노동자가 아니라 농민이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2)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국가이다.'" 이것을 통해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 국가에 대한 정확한 사회학적 규정을 대단히 중시한 나머지 레닌은 논쟁이 한창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에도 자신의 오류를 정정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나 섁트먼은 소련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 너무도 관심이 없어서 20년이 지난 지금 레닌의 오류나 그가 이 오류를 정정한 내용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기서 레닌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비판을 가했는지는 문제삼지 않겠다. 다만 그가 비판을 잘못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국가의 정의에 대해서 그와 나 사이에는 이견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문제가 아니다. 국가 즉 사회 성격 문제에 대해 위 인용문에서 레닌이 한 말은 며칠 후에 주요한 정정을 가한 그의 말과 관련지을 경우 그 이론적 표현은 절대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레닌의 규정을 섁트먼이 어떻게 황당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한 번 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20년 전에 레닌이 `노동자국가'를 추상적 개념이라고 말한 것이 가능한 것처럼 `퇴보한 노동자국가' 역시 추상적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앞의 글 제 14쪽) 섁트먼이 레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20년 전에 "노동자국가"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추상적 개념 즉 실재하지 않는 존재라고는 조금도 생각될 수 없었다. 다만 "노동자국가" 규정은 그 자체로는 올바르지만 특정 과업과 관련되어서는 불충분했을 뿐이다. 즉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이익을 방어하는 과업의 측면에서만 추상적이며 불충분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서 소련을 방어하는 경우에 이 규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1920년에도 의심의 여지없이 올바랐으며 노동자들이 이 노동자국가를 방어하는 것은 의무이다.

여기에 대해서 섁트먼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노동조합 문제와 관련하여 소련에 어떤 종류의 노동자국가가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현재의 전쟁과 관련하여 소련 국가기구의 퇴보 정도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권의 퇴보 정도는 국가소유의 존재라는 추상적인 전거에 의해서 확정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현실(!)을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만 확정될 수 있다." 왜 1920년에는 소련의 성격이 노동조합 즉 국가의 특정 내부 문제와 연관되어서 제기되었으며 왜 오늘날 그것이 소련의 방어 즉 국가의 운명 전체와 연관되어 제기되고 있는지를 이 글을 통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전자의 경우 노동자국가는 노동자와 대비되는 개념이었으며 후자의 경우 노동자국가는 제국주의 세력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비가 두 다리로 어기적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레닌이 대비시킨 것을 섁트먼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섁트먼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문제는 딴 곳에 있다. 즉 그는 소련 국가기구의 퇴보 정도에만 관심이 있다. 즉 이 체제를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양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다. 즉 퇴보하고 있는 것이 노동자국가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를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있다. 그가 퇴보의 "정도"를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한 흔적은 없다. 그러나 파악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렇게 순전히 양적인 평가가 어떻게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방어한다는 우리의 노선을 기각시킬 수 있는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그의 주장은 도저히 앞뒤를 분간할 수 없다. 사실 그는 절충주의자로서의 면모에 충실하다. 그래서 에이번과 버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소련 국가기구의 퇴보 "정도"를 문제로 삼고 있다. 그와 우리 사이의 쟁점은 "살아있는 사건들로 구성된 현실"에 의해서 결정되는 정도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가 애용하는 이 말은 얼마나 정확하고 "과학적이며", "구체적이며", "실험적인" 용어인가! 진짜 쟁점은 이러한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로 변모되었는 가에 있다. 즉 비록 퇴보하기는 했지만 소련이 아직도 노동자국가인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착취체제로 변모되었는 가에 쟁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근본 쟁점에 대해서 섁트먼은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해답을 제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의 주장은 다른 맥락에서 다른 내용을 가지고 명백히 오류를 범한 레닌의 주장을 말로만 흉내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레닌은 자신의 오류를 정정하며 이렇게 선언한다: "소련은 단순한 노동자국가가 아니라 관료적으로 기형화된 노동자국가이다." 그런데 섁트먼은 이렇게 선언한다: "소련은 퇴보한 노동자국가일 뿐만 아니라 "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웅변을 늘어놓는 그와 청중들은 모두 입을 헤벌린 채 할말을 잃고 서로를 쳐다보기만 한다.

"퇴보한 노동자국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강령은 소련의 방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적절한 정도의 구체성을 가지고 해답을 내리고 있다. 즉 (1) 1920년에 소비에트 체제의 "관료적 기형화" 특징들로 나타났던 것들이 이제는 소비에트를 집어삼킨 독립적 관료체제가 되었다; (2) 소련 내부와 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과업과는 양립할 수 없는 관료집단의 독재는 소련의 경제생활을 심대하게 기형화시켜 왔다; (3)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가소유에 기초한 계획경제 체제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계속해서 인류의 거대한 성과로 남아있다. 소련이 제국주의 세력과의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관료집단의 독재체제 뿐만 아니라 국가 계획경제 체제 역시 청산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제국주의 세력들의 영향권으로 분할될 것이다. 그리고 제국주의 체제는 새로이 안정되어 세계노동계급의 투쟁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다.

"관료적" 기형화가 관료적 독재체제로 발전한 상황에서 소련의 노동조합도 국가와 똑같은 퇴보를 겪었다. 따라서 1920년의 경우와 비교할 때 지금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이해를 방어하는 것은 전혀 비현실적이라고 우리는 결론내린다. 노동자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관료집단을 타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업은 오직 소련에 비합법 볼셰비키정당을 수립하는 것을 통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그러나 소련 정치체제의 퇴보는 아직도 국가 계획경제 체제를 파괴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해서 소련을 방어하고 관료집단에 대한 소련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세계노동계급의 임무라고 우리는 결론내린다.

소련에 대한 지금까지의 규정에서 추상적인 구석이 어디에 있는지 섁트먼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구체적인 수정을 그는 제안하는가? 변증법이 "진실은 언제나 구체적" 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면 이 법칙은 비판에 대해서도 똑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노선에 대해서 단순히 추상적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 자체는 아무런 알맹이도 없게 된다. 추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노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섁트먼은 이 노선을 공백으로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공백은 아무리 허풍스러워도 모든 추상들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이다. 즉 이 공백 속에는 아무 내용이나 들어가 앉을 수 있다. 따라서 계급 분석을 대체한 이러한 이론적 공백이 인상주의자와 모험주의자들을 불러들인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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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21:33 2005/10/0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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