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From a Scratch ? To the Danger of Gangrene] 긁힌 상처가 도져 몸이 썩어 들어가다  

현재 진행중인 당내 논쟁은 나름의 내적 논리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각 분파는 자신의 사회적 토대와 정치적 모습에 걸맞게 상대 분파의 가장 약한 지점들을 공략하려고 애쓰고 있다. 적대 분파 지도자들의 미리 결정된(a priori) 계획이 아니라 바로 이 내적 논리가 논쟁의 흐름을 결정하고 있다. 격화되고 있는 논쟁에 대해 지금 한탄하는 것은 사후 약방문일 뿐 논쟁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조직이 보낸 염탐꾼들이 이 과정에서 행사하는 역할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당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논쟁의 분위기를 흐트리고 사상 투쟁을 조직 분리로 이끌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이 신사 양반들이 누구인 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보이고 있는 논쟁에 대한 열정은 지나치며 거짓꾸밈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사상과 주장을 얘깃거리와 비방으로 바꿔치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분파의 공동 노력을 통해 정체가 폭로되고 당에서 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원칙에 입각한 사상투쟁은 끝까지 진행되어 지금까지 제기된 좀더 중요한 문제들이 진지하게 해명되어야 한다. 당의 이론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논쟁이 활용될 필요가 있다.

현재 탄생한 지 얼마되지 않는 제4인터내셔널 뿐만 아니라 미국 지부의 당원들 중 상당수는 쇠퇴기의 코민테른이나 제2인터내셔널 출신들이다. 이 조직들은 당원들을 잘못 가르친 형편없는 학교들이었다. 많은 수의 당원들이 탄탄한 이론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논쟁을 통해서 드러났다. 뉴욕 지부는 맑스주의 이론과 강령을 가볍게 수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려는 힘찬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다수가 이 수정주의자들을 지지하였다. 이 경우를 예로 드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미국 지부와 제4인터내셔널 전체가 진지하게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정직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 이 현상은 불행하기는 하지만 교정이 가능하다. 이들은 배우고자 하는 욕망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다. 당이 노동조합과 노동자 운동 일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당의 중핵들은 이론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서 중핵이라는 것은 "당기구"가 아니라 당원 전체를 말한다. 당원 모두는 노동자군대의 장교임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

언제부터 철학의 전문가가 되었습니까?" 소수파 당원들은 다수파 지도자들에게 빈정거리듯이 이렇게 묻는다. 그러나 이 빈정거림은 대상을 완전히 잘못 찾았다. 무의식적 역사과정 즉 노동계급이 공산주의 사회의 기반을 통해 사회를 재건하려는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운동을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과학적 사회주의이다. 노동자들의 심리 속에 존재하는 이러한 유기적인 경향들은 위기와 전쟁의 시대인 지금 가장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진행되고 있는 논쟁은 당내 쁘띠부르조아 경향과 노동계급 경향 사이의 충돌이라는 사실을 의문의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당 강령을 "구체적인" 문제라는 작은 동전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에서 쁘띠부르조아 경향은 자신의 혼란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반대로 노동계급 경향은 모든 부분적인 문제들을 통일된 이론의 수준으로 연관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식적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적용시키려는 다수파 동지들 개개인의 노력 정도가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동지들이 대체로 노동계급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바로 이 이유로 인해 "혁명의 대수(algebra of the revolution)"인 변증법을 체득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 소수파 동지들은 "변증법"이라는 말만 나와도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가치없는 방법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역사과정의 변증법은 자기를 냉소하는 자들을 잔인하게 벌주었다.

"레온 트로츠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이란 제목으로 섁트먼 동지가 작성한 논문은 걱정스러운 증상을 드러내고 있다. 섁트먼 동지는 논쟁을 통해 뭔가를 배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오류들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의 불충분한 이론적 수준 뿐만 아니라 쁘띠부르조아 경향의 특이한 편견들을 이용하고 있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이러저러한 중심축으로 묶어내는 이 동지의 능력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이 능력 때문에 섁트먼 동지는 재능있는 문필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능력 하나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경향을 자기 것으로 삼느냐가 진정 중요한 문제이다. 이 동지는 문학과 언론에 정치가 반영되는 현상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실제 과정, 대중의 생활, 노동계급 내 각 부위들 간의 상호관계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나는 이 동지의 정말 뛰어난 논문들을 몇편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 노동계급 또는 그 전위의 생활을 파헤친 그의 평론은 단 한편도 보지 못했다.

그의 한계는 제한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하고싶은 말이 있다. 섁트먼의 개인적인 결함뿐만 아니라 역사적 조건들의 특수한 결합으로 인해 노동운동 외부에서 성장한 혁명세대 전체의 운명이 이 현상 속에 체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소중한 분자들이 혁명에 대한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퇴보할 위험성에 대해 나는 과거 연설과 글을 통해 밝힌 바 있다. 한때 존재했던 사춘기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은 이제 결함으로 자리잡았다. 결함은 질병을 유발한다. 그리고 질병은 그대로 내버려두면 치명적인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당의 발전에 의식적으로 새로운 장을 열 필요가 있다. 제4인터내셔널의 선전가들과 문필가들은 자신의 의식에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 쁘띠부르조아 경향에 등을 돌리고 노동자들에게 향할 수 있도록 전환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당내 위기의 원인을 노동계급 부위의 보수화로 보거나 위기의 해결책을 쁘띠부르조아 동맹의 승리를 통해 찾아보려는 시도만큼 당에게 위험한 오류는 없을 것이다. 사실 현재 위기의 핵심은 쁘띠부르조아 부위의 보수화에 있다. 이들은 순전히 선전 학교만을 졸업하였으며 계급투쟁의 길로 나아가는 경로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이러한 분자들이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최후의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소수파 동지 모두는 확고한 욕구만 있다면 혁명운동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분파로서 이들의 생명은 그 운명을 다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에서 섁트먼은 자기 번지 수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있다. 이런 경우에 늘 그렇듯이 그의 강점들은 멀리 후퇴한 채 그의 약점들만이 특별히 완성된 표현을 누리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공개서한"은 그의 약점들을 그 정수만 모아놓은 것이다.

섁트먼은 한가지 조그마한 것 즉 자신의 계급적 입장을 빠뜨리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유별나게 좌충우돌하고 있다. 그는 아무 연관도 없이 역사적 일화들을 짬뽕하는 것으로 계급적 분석을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유일한 목적은 자신의 어제와 오늘의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을 은폐하여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데에 있다. 맑스주의 역사, 볼셰비키당사, 러시아 좌익반대파의 역사 등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류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그가 기대고 있는 모든 역사적 비유들은 차라리 그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오류를 범하는 것보다 오류를 교정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섁트먼의 정신적 좌충우돌을 하나하나 추적함에 있어서 나는 독자들의 인내력을 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히 오류들과 모순들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계급의 입장을 쁘띠부르조아의 입장과 대비시키고 맑스주의 입장을 절충주의 입장과 대비시킬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 모두가 논쟁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과거의 예들"

섁트먼은 화가 나서 이렇게 묻는다: "타협할 줄 모르는 혁명가였던 우리가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쁘띠부르조아 경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단 말인가?"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이 경향이 작년(!) 또는 제작년에 소수파 지도자들을 통해 어떻게 드러났는가?"(1940년 1월 [당내 토론집] 제2권 제7호 11쪽) 과거에는 왜 쁘띠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영향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았는가? 스페인 혁명 기간에 왜 우리는 기타 등등. 이것이 섁트먼이 꺼낸 마지막 비장한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 그는 예외적인 중요성을 두면서 그 주제를 목청을 바꾸어 가면서 계속 반복하고 있다. 바로 이 주장을 이용하여 내가 그를 반박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트로츠키가 10번 가운데 9번 아니 어쩌면 100번 가운데 99번 옳다고 소수파 문서 [전쟁과 관료적 보수화]는 인정한다. 대단히 관대하면서도 제한적인 이러한 양보의 의도를 나는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범한 오류의 정도는 훨씬 더 크다. 그런데 이 문서가 작성된 지 2주 내지 3주가 지난 후 섁트먼은 이렇게 주장했다:

(ㄱ) 지난 10년 동안 섁트먼 자신은 트로츠키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제공된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ㄴ) 트로츠키는 노동계급 경향을 쁘띠부르조아 경향과 그리고 볼셰비키 경향을 멘셰비키 경향과 구별할 능력이 없다.

(ㄷ) 트로츠키는 대중에 의한 혁명 대신 "관료적 혁명"이라는 황당한 개념을 주창하고 있다.

(ㄹ) 트로츠키는 폴란드, 핀란드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

(ㅁ)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에 투항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ㅂ) 트로츠키는 민주집중제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다, 기타 등등 한이 없다.

한마디로 하면 특히 섁트먼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사안들에서 내가 100번 중 99번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그는 지난 2주 내지 3주 동안 새로이 발견했다. 그의 이러한 최근 주장도 과장되어 있다. 다만 지난 번 주장과 방향이 정반대일 뿐이다. 어쨌든 내가 그의 쁘띠부르조아 편향을 발견한 것보다 훨씬 더 갑자기 그는 내가 대중에 의한 혁명을 "관료적 혁명"으로 바꿔치기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섁트먼 동지는 지난 해 동안 아니 심지어 지난 2년 내지 3년 동안 당내에 "쁘띠부르조아 경향"이 존재해 왔다는 증거를 제시할 것을 나에게 요청했다. 그가 더 먼 과거를 들추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그럴 경우 자기의 주장이 공격을 받을 근거는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대로 지난 3년에 한정하여 증거를 제시해 보겠다. 지금부터 관심을 집중해 주기 바란다.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가하는 인사들의 웅변적인 질문에 대해서 나는 몇 가지 문서들을 정확히 인용하면서 담담히 답하겠다.  

1.

1937년 5월 25일 나는 미국 사회당 내의 볼셰비키-레닌주의 분파의 정책에 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뉴욕에 보냈다: " 최근의 두 문서를 인용하겠다:(ㄱ) 당대회에 대한 `맥스(Max)'의 개인적 편지 (ㄴ) 그가 작성한 `혁명적 사회당 창당을 위해'라는 제목의 논문. 이 논문의 제목만 보아도 그가 잘못된 전망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회당의 지난 당대회를 포함한 그간의 정황을 보면 사회당은 `혁명적' 정당이 아니라 영국의 독립노동당과 비슷한 어떠한 전망도 결여한 한심스러운 중도주의 정당으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 사회당이 제2 내지 제3인터내셔널 계열의 어떤 정당보다도 혁명적 맑스주의 입장에 `더 가깝다'는 확신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찬사이다. 미국 사회당은 성격이 유사한 유럽의 정당들인 스페인의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 영국의 독립노동당, 독일의 사회주의노동자당 등보다 더 후진적인 정당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먼 타머스를 중심으로 한 사회당 지도부의 부정적인 강점들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당의 전쟁 관련 결의문이 `이 당이 과거 채택한 다른 어떤 결의문에 비해서 우수하다'고 주장해서는 절대 안된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전쟁 관련 결의안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순전히 문구에만 집착한 평가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결의문은 역사적 사건, 정치상황, 결의문 자체의 시급한 필요성 등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위에서 언급한 두 문서에서 섁트먼은 쁘띠부르조아 민주주의 좌파에 대해 지나치게 근접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것은 혁명가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증상이다! 유럽의 전쟁에 대해 노먼 타머스가 보인 "급진적인" 입장을 그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기회주의자들은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더 급진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 법칙에 유념하면 섁트먼과 그의 동맹자들이 우리를 "스탈린주의에 투항"한다고 비난하는 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섁트먼처럼 뉴욕 브랑스구에 들어앉아 있으면 미국의 쁘띠부르조아들보다 크렘린궁의 스탈린주의자들에게 더 비타협적으로 대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보신에 훨씬 도움이 되며 더 쉽다. 안타까운 일이다.  

2.

섁트먼의 말에 의하면 나는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분파들의 계급구성 문제를 억지로 끌어들였다. 이 점에 대해서도 최근의 경우를 검토해 보자.

1937년 10월 3일 나는 뉴욕에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당생활의 `평상' 시기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당원들이 상황이 급격히 변화하여 일반적 정식이나 유창한 펜을 가지고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뛰어난 자질들을 발휘한다. 이 경우 노동자들의 삶과 이들의 실천적인 능력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능있는 노동자 당원은 자기확신과 정치적 능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 말을 수백번이나 반복한 바 있다.

조직 발전의 첫단계에서 지식인들이 당을 주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상황은 재능이 있는 노동자 당원들을 교육시키는 데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다음 당대회에서 당 지부와 중앙의 각급 위원회에 가능하면 많은 수의 노동자 당원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요 당기구에서의 활동은 노동자 당원에게 높은 수준의 정치학교가 된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모든 조직이 고참 위원들을 보유하고 있어서 부차적이며 분파적이며 개인적인 고려사항들이 위원 후보자 선정에 너무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서 섁트먼 동지가 관심이나 흥미를 보이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

섁트먼 동지에 의하면 나는 에이번 동지의 분파가 쁘띠부르조아 출신 성분들을 유난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에 의하면 이것은 인위적인 문제제기일 뿐만 아니라 어떤 사실적인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937년 10월 10일 섁트먼이 캐넌과 노선을 같이하였을 때 에이번은 분파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자기 입으로 공식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때 나는 캐넌 동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진짜 공장노동자는 당원 중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노동계급적 분자들은 매우 필요한 촉매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러한 분자들의 높은 수준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비노동계급적 분자들에 의해서 압도되어 혁명적 성격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인 방식으로 지식인의 당내 유입을 막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조직활동을 공장, 파업, 노동조합 등에 실천적으로 맞추는 것이 문제해결의 올바른 방식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우리는 모든 공장에 같은 정도의 역량을 투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부 조직들이 지역에 위치한 두 세 공장을 선정하여 모든 역량을 이곳에 집중할 수는 있습니다. 한 공장에 두세 명의 노동자들을 획득한다면 이곳에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가 아닌 당원 다섯명으로 구성된 지원팀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가 아닌 당원들을 노동조합에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을 동지로 획득할 경우 노동조합 내 선동, 선전활동과 관련하여 지원팀을 구성하여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반드시 명심해야 할 규율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지시를 내려서는 안되며 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에게 건설적인 제안들을 제시하며 객관적 사실, 사상, 공장신문, 특별 유인물 등을 통해 이들을 무장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협력은 노동자 동지들뿐만 아니라 확실한 재교육이 필요한 비노동자 동지들 모두에게 엄청난 교육적 효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지는 유태인 비노동자 당원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이 이들을 폐쇄된 분위기에서 끌어내어 공장노동자들과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연결되도록 한다면 이들은 대단히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당내에 좀더 건강한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즉시 일반적인 규칙 하나를 제정할 수 있습니다. 즉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노동자를 당원으로 획득하지 못하는 당원은 별로 훌륭한 당원이 아니라는 규칙이 이것입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정책을 진지하게 수립하고 이 정책의 실제적인 결과들을 매주 확인한다면 우리는 커다란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식인과 사무직 노동자들이 소수의 공장노동자들을 짓눌러 침묵시켜 당을 아주 지적인 토론클럽이기는 하나 노동자들이 있을 곳이 전혀 못되는 그런 조직으로 변모시킬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청년 조직을 운영하고 확대시키는 일도 마찬가지의 규칙들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청년들을 혁명투사가 아니라 아마추어 혁명가로 만들어 낼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 편지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명확해진다. 즉 독소불가침조약 이 체결되고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 점령한 바로 다음날 당내에 쁘띠부르조아적 편향이 존재할 위험이 있다고 내가 말한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 사건이 있기 2년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지속적으로 나는 이런 취지의 발언들을 해왔다. 그리고 당시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에이번 분파를 주로 염두에 두면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당의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뉴욕 지부에 소속된 유태인 출신의 쁘띠부르조아 분자들이 습관적인 보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노동운동 속으로 해소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진행중인 논쟁보다 2년도 더 전에 쓰여진 위 편지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소수파 지도자들이 쓴 모든 글들보다 증거의 가치가 더 크다. 소수파 지도자들은 내가 "캐넌 파벌"을 옹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동기에 대해서 온갖 내용의 글들을 쓴 바가 있다.  

4.

당내 쁘띠부르조아 분자들 특히 학구적이며 문필활동에 종사하는 동지들에게 섁트먼 동지가 약하게 나온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전혀 비밀이 아니었다. 듀이 위원회(Dewey Commission)가 열리던 당시 1937년 10월 14일 나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캐넌, 섁트먼, 와드 동지들에게 보냈다:

" 노동자 그룹들이 이 위원회에 대폭 들어와서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나는 끈질기게 주장했습니다. 와드, 섁트먼 그 밖의 동지들은 나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우리는 이 계획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실제 가능성들을 타진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계속 문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으며 우연히 섁트먼 동지가 나의 견해에 반대한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왜 반대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섁트먼은 이유를 결코 털어놓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외교적인 언사를 사용해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말로는 나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일시적인 자유주의 동맹자들의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그가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이런 일에 관한 한 섁트먼은 자신의 예외적인 "섬세함"을 입증하고 있다.  

5.

1938년 4월 15일 나는 뉴욕 지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에 이스트먼의 편지가 실려서 약간 놀랐습니다. 편지가 실린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표지에 그의 편지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고 [하퍼즈 잡지](Harper's)에 실린 그의 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공식 이론지인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간행 취지를 손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보고 우리가 원칙보다 친분을 더 앞세운다고 해석할 것입니다."  

6.

1938년 6월 1일 나는 섁트먼 동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동지가 왜 유진 라이언즈에게 관용을 베풀며 심지어는 친근함을 베푸는지 이곳에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는 동지가 주최하는 만찬과 백위군(White Guards) 주최 만찬에서 똑같이 연설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소위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좀더 독립적이고 단호한 정책을 펴기를 호소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면서도 노동계급과 "우호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이렇게 할 경우 이들은 부르조아 여론으로부터 자신들의 가치를 2배나 인정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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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21:32 2005/10/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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