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중에 있는 분파 "

1923년 반대파의 지도자" 트로츠키가 캐넌이 이끄는 관료적 분파를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섁트먼은 놀라움을 표시한다.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에서도 섁트먼은 다시 역사적 전망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소련 관료집단이 볼셰비키 중앙집중주의 원칙을 활용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러한 원칙을 완전히 정반대의 것으로 변화시켰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볼셰비즘의 방법론을 가치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레닌은 당을 노동계급의 규율과 가혹한 중앙집중주의 정신으로 교육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쁘띠부르조아 분파들과 파벌들로부터 수없이 공격을 받아왔다. 그러나 볼셰비키식 중앙집중주의는 심대하게 진보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결국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현재 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 소수파의 투쟁은 특권 관료집단에 대한 1923년 러시아 반대파의 투쟁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이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현재 소수파의 투쟁은 볼셰비키 중앙집중주의에 대한 멘셰비키들의 투쟁과는 정말이지 크게 닮은 점이 있다.

소수파에 의하면 캐넌과 그의 그룹은 "관료적 보수주의라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유형의 정치적 경향" 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수적인 노동관료집단은 민족 부르조아지의 이윤을 나누어 갖는 주주인바 이들의 지배는 부르조아 국가의 직접적 내지 간접적 지원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통치는 비밀경찰, 군대, 법원 등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이 스탈린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이들의 이해를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잘 옹호한다는 데에 있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그린과 루이스를 지지한다. 능력있고 수완있는 관료들로서 이들의 악덕이 노동귀족의 물질적 이해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의 "관료적 보수주의"는 어떤 기초 위에 가능한가? 물론 물질적인 기초가 아니라 관료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인사들이 모임으로서 보수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섁트먼은 생각하고 있다. 이에 비해서 적대 진영인 소수파에는 개혁가, 제안가, 역동적인 정신에 충만한 인사들만이 모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파는 "관료적 보수주의"의 사회적 기초 즉 객관적 기초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모든 주장은 순전한 심리상태 그 자체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각이 있는 모든 동지들은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캐넌 동지가 진짜 관료적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죄를 짓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이것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관료적 "특권들"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는 전국위원회 다수 동지들과 당원들 다수가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지는 캐넌 동지의 관료적 경향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캐넌 동지는 자신의 개인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결함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장점들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진지한 당원 동지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들의 생각에 동의한다.

소수파 지도자 동지들은 자신들의 불만과 비판의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모든 정당에 수천 내지 수만건이나 존재하는 서로 연관도 없는 일화들과 사건들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증하기가 불가능하다. 소수파의 문서들이 말하고 있는 모든 이야기 속에 담긴 비판들을 무조건 인정할 의도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사건에 대해서는 내가 실제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목격자이므로 내 생각을 밝혀보고자 한다. 캐넌 동지와 그의 그룹이 비판이나 검토도 없이 이행기 강령을 받아들였다고 소수파 지도자들은 피상적으로 주장한다. 이 강령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일에 대해 내가 캐넌 동지에게 보낸 1938년 4월 15일자 편지를 보자:

"동지에게 이행기 강령 초안과 노동당에 대한 짤막한 소견을 이미 보냈습니다. 동지가 이곳 멕시코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이 초안은 결코 작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동지 여러분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배웠으며 이를 통해 초안의 내용이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당시 토론에 참여한 당사자이기에 섁트먼은 당시의 상황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

쁘띠부르조아 서클에서는 소문, 개인적 추측, 단순한 한담거리들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 당적 유대가 아니라 개인적 연분으로 묶여있으며 사건들을 계급적으로 접근하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수파의 대표들만이 나를 방문했으며 이로 인해 나는 진실의 거리에서 멀어졌다는 소문이 입과 입을 통해 퍼졌다. 그러나 동지 여러분들, 이런 황당한 소문을 믿어서는 안된다! 나는 일반적으로 저서를 쓸 때와 같은 방법으로 정치 관련 정보들을 얻는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는 모든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부분이다. 만약 잘못된 정보를 진짜 정보와 구분할 능력이 나에게 없다면 나의 판단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에이번 분파에 소속된 20명 이상의 동지들과 알고 지낸다. 이들 중 여러 동지들은 나의 저술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이들의 거의 모두는 소중한 당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쁘띠부르조아 분위기, 계급투쟁 경험의 부족, 노동계급운동과의 꼭 필요한 유대의 결여 등으로 나름의 결함들을 지니고 있다. 이들의 긍정적인 자질들 덕분에 이들은 제4인터내셔널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의 부정적인 자질들 덕분에 이들은 모든 분파들 중 가장 보수적인 분파에 속해 있다.

"`반(反) 지성적' 태도가 당원들의 머릿속에 강제로 주입되고 있다."고 "관료적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문서가 불평하고 있다.(당내 토론집 제2권, 제6호, 1040년 1월 6일, 12쪽) 이러한 주장은 순전히 인위적이다. 문제는 노동계급 진영으로 완전히 넘어간 지식인들이 아니라 우리 당을 쁘띠부르조아 절충주의로 몰고가려는 분자들에게 있다. 이 문서는 또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반드시 건강하지는 못한 편견들에 아부하는 반(反) 뉴욕지부 선전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 문서가 말하는 편견들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 반유태주의인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우리 당내에 반유태주의적 또는 여타의 인종주의적 편견들이 존재한다면 이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가차없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막연히 암시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그러나 뉴욕지부의 유태인 지식인들과 반(半) 지식인들에 대한 문제는 사회계급적 문제이지 민족적 문제가 아니다. 뉴욕에는 유태인 노동계급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나 에이번 분파는 이들을 조직 기반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분파의 쁘띠부르조아 분자들은 유태인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을 능력이 없음을 증명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환경에 만족하고 있다.

당이 한 시기에서 다른 시기로 이행함에 따라 과거 진보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분자들이 새로운 과업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하여 긍정적인 자질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자질들만을 발휘한 예가 역사에는 한 번 이상 있어왔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와 반대의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에이번 분파의 현재 역할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분파 내에서 섁트먼은 언론을 담당하고 버넘은 이론을 담당하고 있다. 섁트먼은 끈질기게 주장한다: "지금 진행 중인 당내 논쟁에서 `에이번 분파의 문제'를 주입하는 것이 얼마나 거짓인 지를 캐넌 동지는 알고 있다. 최소한 지난 몇 년 동안 `에이번 그룹'과 같은 문제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모든 지도급 동지들과 많은 수의 당원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현실을 왜곡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섁트먼 자신이라는 점을 감히 말하고자 한다. 나는 약 10년 동안 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의 관계들을 추적해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뉴욕지부의 구체적 계급구성과 특별한 역할이 나에게는 명확히 인식되었다. 내가 터어키의 프린키포에 있을 때에도 전국위원회에게 뉴욕의 쁘띠부르조아적이며 쓸모없는 말다툼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지방의 공업중심지로 당본부를 옮기라고 충고한 바 있었다. 이것을 섁트먼은 기억할지 모르겠다. 멕시코에 도착하자 나는 영어에 더 익숙해질 기회를 얻었으며 미국 동지들의 잦은 방문 덕택에 당내 그룹들의 사회계급적 구성과 정치적 심리를 좀더 생생하게 파악할 기회를 가졌다. 지난 3년간의 개인적이고도 세세한 관찰을 기초로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에이번 분파는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정적으로라도 계속 그 존재를 유지해왔다.

정치적 경험을 별로 가지지 못한 에이번 분파의 동지들은 그들의 사회계급적 특성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식에 의해 쉽게 구별된다. 이들 동지들은 언제나 자기가 소속한 분파의 존재를 공식적으로는 부인한다. 이들 중 일부가 스스로를 해체하고 당의 원류에 합류하려고 시도한 적이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이들에게 무리한 행위였으며 모든 핵심적인 문제들에서 이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당에 대항했다. 이들은 원칙적인 문제들 특히 당의 사회계급적 구성을 변화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지도적 인사들의 연합, 개인적 갈등, 그리고 일반적으로 당 "총사령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에이번 파벌의 특징이다. 나는 이들 많은 동지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한 바 있었다. 즉 인위적으로 조성한 환경에 깊숙이 빠져들다 보면 조만간 새로운 분파적 폭발이 반드시 일어나 이들을 산산조각 낼 것이라고 말이다.

소수파 지도자들은 캐넌 분파의 노동계급적 구성에 대해 비꼬는 듯이 그리고 폄하하여 말한다. 이들의 눈에는 이 우연적인 "사소한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눈먼 쁘띠부르조아적 냉소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제2차 당대회에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는 분열했다. 당시 많은 수의 멘셰비키 대의원들 중 노동자는 3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후 이들 3명은 모두 볼셰비키 쪽으로 넘어왔다. 이 사실을 레닌이 하나의 징후로서 대단히 중요하게 본 것을 멘셰비키들은 조소했다. 이들은 세 명의 노동자들이 "성숙"하지 못해서 볼셰비키 쪽으로 넘어갔다고 자기들 식으로 설명해버렸다. 그러나 이제 다들 알고 있듯이 레닌이야말로 올바랐다.

우리 미국 당의 노동계급 분자들이 "정치적으로 후진적"이라면 "선진적인" 분자들의 첫 번째 임무는 노동계급 당원들의 수준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왜 소수파는 이들 노동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는가? 왜 이 일을 "캐넌 파벌"에게 넘겼는가? 여기서 문제는 무엇인가? 소수파의 일원이 되기에 이들 노동자 당원들은 자질이 충분하지 못한가? 아니면 소수파는 노동자들에게 맞지 않는 그런 집단인가?

당의 노동계급 분자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멍청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점차적으로만 명확한 계급의식을 획득한다. 노동조합은 기회주의적 편향을 노동자들에게 주입할 문화적 매개물을 언제나 만들어낸다. 우리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당은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당원들에게 자주 이렇게 주지시켜야 한다: 노동계급의 후진층을 교육하기 위해서 이들의 정서에 적응하는 일이 노동조합의 보수적 관료들의 정치에 영합하는 것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 당이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 때마다 그리고 당원의 수가 늘어나 당활동 방식이 복잡해질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험도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가장 혁명적인 조직에서 훈련되었을 경우에도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은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당의 단계에서 이것은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현재 비노동계급적 소수파는 비노동계급적 청년당원들의 다수를 잡아끌면서 우리의 이론 , 우리의 강령, 우리의 전통을 수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캐넌 파벌"과의 싸움에서 편의를 도모하려고 가볍게 저지르고 있다. 지금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아니라 바로 쁘띠부르조아 소수파 지도자들이 당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당을 등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 단호하게 쁘띠부르조아 소수파들에 대한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

더욱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이 현재 저지르고 있거나 미래에 저지를 오류들은 현재 미국 노동계급이 우리 당에 가하는 압력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노동계급은 우리의 계급이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압력은 동시에 우리의 주요한 역사적 임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소수파의 오류들은 다른 계급의 압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 계급과 이데올로기적으로 결렬하는 것은 미래에 있을 우리의 혁명적 성공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청년 당원들에 대한 소수파의 논리는 철저하게 잘못되어 있다. 물론 노동계급 청년들을 획득하지 않고서는 혁명정당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현재 거의 전적으로 쁘띠부르조아 청년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민주주의적 즉 기회주의적 정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청년당원들의 지도자들은 의심한 여지없는 미덕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들은 쁘띠부르조아 연합주의 정신으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환경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노동계급 사이에서 일상적인 어려운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거창한 직책 없이 파견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영원히 혁명운동에서 사라질 것이다. 다른 모든 문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청년 문제에 있어서도 섁트먼은 불행하게도 철저히 잘못된 입장을 견지해왔다.  

오류는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섁트먼은 나의 정치적 입장을 "캐넌 파벌"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정도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오류를 통해 내가 프랑스의 "몰리니에 파벌"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철저히 잘못된 노선으로 추락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내가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강령과 무관하게 이들 개인들과 그룹들을 지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몰리니에를 예로 드는 이유는 문제를 더욱 애매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의도를 밝혀보겠다. 몰리니에는 우리의 강령에서 후퇴해서가 아니라 당과 자기 분파를 지탱하려는 목적으로 무원칙하게 자의적으로 모든 종류의 재정적 모험들을 감행해서 비판을 받았다. 그는 매우 열정적인 동지이며 의심할 여지없이 실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몰리니에 뿐만 아니라 당의 이익을 위해서도 노동계급의 규율에 입각하여 그를 설득하고 재교육시킬 모든 가능성들을 타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를 반대하는 많은 동지들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결점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의 반대자들에게 조직을 섣불리 분리할 것이 아니라 그를 계속해서 시험해야 한다고 힘이 닿는 데까지 설득했다. 우리의 프랑스 지부가 불안정한 초기 단계에 있을 때 내가 몰리니에를 "옹호"했던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오류를 저지르거나 규율을 어기는 동지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가지면서 혁명적 정신으로 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방법을 나는 몰리니에에게만 적용하지 않았다. 커트 랜도, 필드, 와이스보드, 오스트리아의 프라이, 프랑스의 트렝트 등과 여타 많은 동지들에게 나는 이 방법을 구사했다. 많은 경우에 나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몇몇의 경우에 나는 소중한 동지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원칙 문제에서는 몰리니에에게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의 강령이 아니라 "네 가지 구호"에 기초하여 신문을 발간할 것을 결정하고 이 계획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즉시 제명될 것을 주장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감추지 않겠다. 제4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나는 다시 한번 몰리니에와 그의 그룹을 인터내셔널의 원칙 속에 시험하고 이들이 자신들의 오류를 확신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나의 시도는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적절한 상황하에서는 다시 이 방법을 포기하지 않겠다. 몰리니에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인사들 중에는 베레컨과 스니블릿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제4인터내셔널과 결별한 후 다시 몰리니에와 한편이 되었다. 아주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동지들은 내가 옛날 문서들을 뒤적이면서 "가망없는 동지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보고 동지애로 나무라곤 했다. 상황에 따라 사람은 변하는 것이며 따라서 몇몇의 심각한 오류들을 저지른다고 사람들을 "가망이 없다"고 재빨리 선언하지는 않겠다고 나는 이들에게 대답했다.

섁트먼이 자신과 당의 일부 동지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는 것이 명확해졌을 때 나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기회가 닿는다면 즉시 뉴욕으로 날아가서 그와 72시간동안 연달아 토론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가 이런 기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이 편지에 대해서 섁트먼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가 결정할 문제이다. 미래에 내가 소장한 문서들을 볼 동지들이 이 경우에도 내가 "오류"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어쩌면 몰리니에를 과도하게 "옹호"한 나의 오류와 연관시켜 나의 행동을 해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결코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하에서 국제 노동계급 전위당을 조직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과업이다. 원칙을 버리면서 개개인들을 획득하려고 설치는 것은 물론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출중하지만 오류를 범한 동지들을 다시 우리 강령 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동원하는 것을 나의 임무라고 생각해 왔으며 지금도 나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다.

섁트먼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잘못 이용한 노동조합 논쟁으로부터 나는 레닌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섁트먼은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오류는 작은 것으로 시작하면서 점점 커진다. 견해 차이들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사람들은 가끔 사소한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이 부상이 세균에 감염되면 치명적인 질병이 뒤따를 수 있다." 레닌은 1921년 1월 23일 이 말을 했다.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좀더 자주 오류를 범한다. 오류를 계속 저지르고 혁명적 대의보다 더 큰 야망을 품는 것은 노동계급 혁명가의 임무가 아니다. 제 시간에 오류를 중단하는 것이 혁명가의 임무이다. 이제 섁트먼 동지는 오류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꽤 곪은 그의 긁힌 상처는 그의 몸을 썩어들어가는 화농으로 발전할 것이다.  

1940년 1월 24일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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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21:36 2005/10/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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