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코뮨주의와 정치

 

 국가와 정치학 -- 국가없는 정치의 사유

    -- 대의적인 정치관념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로서

        정치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하는 질문

    -- 정치와 윤리가 하나인 삶의 영역을 구성하는 문제로서 정치의 문제를 사유

 

    -- 미셜푸코 "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이다."

 

마르크스 주의와 적대의 정치학

    -- 정치란 직접적으로 계급투쟁이다.

    -- 마르크스주의 정치학 - 적대의 정치학 

        적과 동지사이에 중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차이와 대립을 계급적으로 환원한다는 점

    -- 적을 가장 일차적인 개념으로 하며 적의 부정을 통해 동지를 규정하고,

            그 양자의 구별을 통해서 정치적인 개념 모두를 규정하고 평가한다.

    -- 부정에 의해 정의되고 부정의 힘에 의해 작동하는 "부정의 정치학"

 

우정의 정치학

    -- 동일성의 정치학 --> 적대의 정치학

           적의 부정을 통해 정의하는 한 친구나 동지는 동일한 성질(공통의 적에 대립한다는)을

               갖는 집단(한통속)이 된다. 즉, 적의 동일성이 친구의 동일성의 이유가 된다.

             이때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의 목표를 찾아내는 것이 된다.

    -- 우정(친구)이란 의견의 유사성이나 이해의 근접성 보다는 서로 주고받는 "감응(affectus)"의

         긍정성에 의해 정의

 

    -- 우정의 관계 : 서로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손익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촉발하여 야기한

         감응이 긍적적인 한에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특이성 내지 개체성을 부정하지 않을

           정도인 한에서 (가령 '연인'의 경우처럼 '흡인'의 문턱을 넘지 않는 한에서)......

    -- 스승이 될수 없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친구가 될수 없는 스승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 공통관념(common notion)을 형성

           상이한 감응과 능력, 상이한 견해와 성향을 지닌 개체들이 만나서 하나의 리듬속에서

            생산적 능력을 작동하는 것

 

    -- 적대의 정치학과 우정의 정치학의 배치문제

           결국 현실속에서 적대/우정의 배치를 고민해야.....

 

 

 

 



계급의 정치학과 대중의 정치학

    -- 프롤레타리아를 비-계급적 대중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

 

    -- 운동이  대중적 흐름에 머물러 있는 한, 비-계급 프롤레타리아들은 계급적 경계들을 해체하고

         파괴하지만 그 투쟁의 성과 또한 대중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고 만다.

 

    -- 여기서 질문...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차이는 무엇인가 ?(반어...차이가 없다)

         국가권력으로 수렴되는 정치의 목표, 국가적 영역 주위로 제한된 정치 영역의 관념,

         대중과의 관계에서 대의적 또는 대행적 부분으로 설정되는 당조직의 개념,

         그 전위적 부분에 의해 통합되고 인도되고 지도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계급)의식화 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대중의 개념 ...

        --> 동원 가능한 수단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사용

 

     -- 파업

          부르주아들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란 점에서 노동자 계급에 고유한 투쟁방법이지만

          조직의 요구나 그 요구로 대변되는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압력수단"으로

          설정되는 한, 그 고유한 잠재력은 근대적 계급정치학에 포섭되고 만다.

          요컨대 부르주아에게선 발견하기 힘든 투쟁형태조차. 목적과 수단이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목적'에 귀속되는 한 부르주아 계급정치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대중 정치학

      -- 우리는 자본가가 아닌 경우에도 화폐의 증식을 목표로 삼고, 화폐의 권력을 수용하는

           모든 종류의 '부르주아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흐름으로서 대중이 지닌 정치적 역량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중의 개념뒤에서 사유되는 계급 정치학이 어떻게 가능할지 질문해야...

 

      -- 자기-통제, 자기-통치, 자기-훈련의 방법들을 창안해야 하며 그것을 통해 권력의 재생산에 반하는 집합적 능력을, 집합적 신체를 생산해야 한다.

 

      -- 특정한 촉발에 대중이 접속되어야 한다.

 

      -- 로자

           대중파업에서 대중의 자발적 요소가 그토록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것은 러시아프롤레타리아가 "교육을 못받아서"가 아니라 혁명이 누구에게도 그들에 대해 선생 노릇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 대중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대중의 흐름이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 잠재적인 상태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 그리고 그런 흐름을 격발시켜 솟아오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일상적 삶을 바꾸고, 감응과 감각을 바꾸고, 습속의 무의식을 변혁하는 것은 대중을 의식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혁명에 긴요한 직접적 동력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대중이 만드는 것이고, 대중의 능력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위와 대중의 문제

       -- 진정한 대중 조직이란...??

            --> 일상적 조건에서 자기자신을 표현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지니도록 대중 자신이 스스로 훈련되는 조직이어야 하고, 감응을 공유하거나 새로운 감응 능력을 개발하고 민감하게 변용시키는 그런 조직이어야 하지 않을까...?

            --> 억압과 제한이라는 조건안에서 그 벽을 돌파할 정도로 흐름을 가속화하고 이웃한 대중과 기쁨의 감응을 함께 생산하는 그런조직이어야 하지 않을까..?

 

       -- 전위 - 대중의 흐름을 촉발하는 존재여야 한다.

                         --> 정해진 어떤 계급이익이나 "보편적 진리"를 알려주고 전달하는 조직이 아니라

                               앞에서 실험하고 앞서서 실행하며 참조할 수 있는 새로운 사례를 창안하는 것.....

                      - 막연한 대중의 전위가 아니라 계급적 전위

                         --> 대중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이해와 결부된 방향을 향해 촉발하는 조직

                      - 창조적 실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하고 창안하는 아방가르드와 더 가까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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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적대의 정치학 혹은 우정의 정치학에 있어서 배치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적대/우정의 배치에 있어서

흐름과 촉발로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활동들이 그러한 흐름들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여전이 답은 우리들의 일상적 삶속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적 삶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

즉, 자기통제, 자기통치, 자기훈련의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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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2 13:53 2009/04/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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