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수다방  2009/05/09 05:57

모두들에게

전주에 다녀왔어요. 영화 보러...

전주에 가서, 첫 날 영시미에서 일하는 효정이란 친구랑 술을 먹었어요.

작년과 재작년 액션브이 함께 하면서 몇 주씩 같이 먹고, 자고

그리고 술 먹고 작업하면서 서로 고민도, 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던

사는 고민, 일에 대한 고민들 서로 공감도 많이 되고, 그래서 참 애틋하고

스스로도, 누구에게도 정말 친구라고 너무 너무 좋은 친구라고 자랑하는 사람이에요.

 

그 효정이란 친구랑 몇 달만에 만나 전주에서의 첫 날 술을 먹었지요.

너무 반갑기도 하고, 전주 왔다고 영화제 기간 내내 자기 방을 내 주고 자기 시간을 내 준

효정이 고마워서 술 자리 처음부터 말을 많이 했어요.

나 이래~ 나 요즘 이런 거 해~ 등등등

전에 주로 효정의 얘기를 듣고 거기에 제가 공감을 표하고, 리액션하는 식의 대화였다면

이번엔 내 얘기 많이 하고 리액션 받고 싶었어요. 나름 노력했어요.

 

그런데... 술 마시다 새벽 쯤 되서 효정이 그러더군요.

혜린, 너 지금까지 내 얘기 듣지를 않는다고. 너의 이야기는 너무 일방적이라고...

같이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혜린이 변한건지 원래 그랬던 건지 모르겠다고.

 

전 저대로 노력한다고 노력한 대화였는데... 정말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전에는 액션브이라는 공통의 일을 가지고 주로 얘기를 했다면

이번엔 공통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르지 않을 서로의 삶,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저, 서툴렀나봐요.

아니 방식이, 노력의 태도가 틀렸었나봐요.

부끄럽고, 아프더라구요.  

 

살다가 보면 그럴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어느 시기, 시점에 아주 아픈 말이 있는. 들으면 마음이 덜컥하고, 무너져 버리는

그런 말이, 너무 아픈 말이 있을 때가 있더라구요.

전 요즘, 일/방/적이라는 말이 그래요.

그 말을 효정에게 듣/게/되/면/서

너무 아파서 눈물도 안 나오더라구요.

 

효정이 그래요. 작년, 재작년 같이 일하면서 혜린을 보면서

너무 일만 하는 거 같아서, 일에 대한 강박이 있는 거 같다고

그래서 힘들어 하는 거 같았다고 자기가 느낀 혜린은 그랬다고.

(작년 효정은 펜타포트 페스티발 전회 티켓을 선물했었어요.

  그 카드 값 갚느라 몇 달 허리띠 졸랐을 거에요;;;;

  나 억지로라도 시간 마련해서 좋아하는 거 하면서 놀라고...)

그런데 지금의 혜린은 자기 얘기만 하고 있다고, 혜린의 고민과 혜린의 이야기에

자기가 낄 틈이 없다고. 내가 차단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일에 대한 얘기에 결론 다 내리고 있고...

깜짝 놀랐다고...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전에는 혜린과 얘기하면서 너한테 필요할 거, 함께 할 수 있을 거 자기가 고민하고 그럴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혜린이 뭐가 필요한지, 자기가 왜 혜린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이런 대화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혜린, 일방적이라고.

오늘은 이렇게 얘기하지만 이 얘기 다시는 안 하게 될 거라고.

혜린이 다시 변했다고 느껴지기 전까지는...

 

전주에 있는 기간 내내 효정 얘기들 계속 생각해 봤어요.

처음에는 미안하기만 했는데.... 마지막 날쯤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좋은 친구라는, 고마운 친구라는 생각 들더라구요.

영길 선배가 얘기했던 우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난 우정을 받기만 했지 나눠 본 적이 없구나 하는...

난 효정을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효정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해 보거나

그래서 그런 고민을 통해 그녀에게 무언가를 제안해 본 적이 없었구나.

효정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래 본 적이 없구나.

 

듣는 것과 침묵이 다르다는 것.

발언을 정확하게 하는 것과 말을 많이 하는 건 다르다는 것.

그런 생각도 들었었어요.

 

너무 아팠지만, 그 아픈 말을 해 준 효정이 참 고마웠어요.

이런 게 친구구나 생각했어요. 고맙다는 말 끝까지 하고 오지 못했지만

청주 돌아와서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고맙다는 표현과 그리고  

지금의 효정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고민하고 제안할 걸 생각하면서 왔어요.

우리가 함께하는 공룡 일과 관련해서 효정을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왔어요.

 

너무 늦은 걸까요?

효정에게도, 그리고 영길 선배와 종민에게도?

 

나 ... 우정이라는 거, 공유와 소통이라는 거...

배우고 있는 중인데, 그런데 조금 아니까... 제대로 모르니까... 배운 거, 느낀 거 표현하는 게 서투르고

그래서 다시 서투름을 확인하고 그러면서 배우고 있는데... 그래서 당신들이 필요한데

영길 선배, 종민... 당신들이 참 절실한데...

 

그런데 너무 늦은 걸까요?

아니였으면 좋겠어요. 아니게 해야 할 거 같아요.

이 역시 서툴러서 또 서로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그래도 그 상처 서로 확인하면서 더 단단해 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파도 같이 아프고,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같이 행복해 지지 않을까요?

영길 선배 얘기처럼... 좋을 때 같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

힘들 때 일어서는 과정을 같이 하는 친구, 그런 우정... 필요하고 함께 하고 싶어요.

 

함께 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필요해요.

저도 필요하지 않나요?

저와 함께 하고 싶죠! 그렇죠! 

 

영길, 종민... 저, 서툴러서... 미안해요.

하지만... 고마워요.

 

받기만 하는 건 우정이 아니라는 거. 줄 것을 나눌 것을 고민하지 않으면 우정이 아니라는 거.

서툴러도 고민할께요. 서툴러서 또 실수하더라도... 움직일래요.

서투르지만 움직일 수 있게 서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부터 영길과 종민에게 용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투름과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싶어서요.

틀렸다면? 그럼, 고치면 되죠! 그렇죠!!!

틀렸을 때 '그거 아니야!' 혹은  '뭐가 문제인 걸까?' 이렇게 함께 해 줄거죠?

틀릴까봐 주저하다가는 너무 많은 게 포기되고 말 것 같아요.

믿고, 저부터 움직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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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9 05:57 2009/05/09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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