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4

혜린/ 우선 드는 게 지난 번 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는 필요할 거 같다. 종민의 이야기들의 흐름이 전체 맥락이 소화가 좀 되지 않았단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핵심은 그거잖아요. 우리가 창영동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처음에 창영동을 반지하를 가기로 했어. 뭘 가지고 연습을 해 볼까? 놀이를 가지고 갔어. 미리 가능할 것을 생각을 하고 간 거라. 갔더니 골목은 많아, 애들이 없어. 어? 준비했던 거와 막상 갔더니 다른 거지. 다른 거를 확인한 거고 발표하면서 확인된 게 예상됐던 거랑 다른 게 이 동네에 대한 다른 정보들을 듣고 왔어. 와서 작업했던 거를 정리를 해야 하는데 종민이 선택한 방법이 내가 놀았었던 거 되짚어 보고 정리를 해보자. 그 과정에서 종민이 몇 가지 요소들을 뽑았던 거고. 아까 놀이의 조건이라는 거 가치, 노동, 학습 얘기 했었는데... 아~ 그렇게 아직 소화되지 않을 거를 그 단어들 안에 낑겨 넣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요소들은 그 때 종민이 얘기하면서 얘기들이 되게 많이 나왔거든요. 왜 종민이 놀이라는 게 이런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예상하고 갔는데 창영동 가고 반지하에서 얘기 듣고 다시 청주 와서 후속작업 하면서 놀이라는 거의 가치들이 이 주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에 대해서 서로 더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거고. 노는 거, 놀이라는 거. 사람이 살면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게 지역 사회에서 우리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내기, 성장하기 이런 준비를 같이 하자는 거고. 지금 놀이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있어. 하지만 그냥 즐겁고 마는 게 아니라 내 경험을 되짚어 보니까 이런 이런 요소들이 있었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조건들이 있었었던 거라 그래서 이런 게 가능했어. 그 때는 그낭 너무 좋았는데 의미들이 있어. 가치들이 있어. 시설이 있고 장난감이 있어서 재밌었던 게 아닌 거잖아. 그 동네의 공간, 지형, 지물들을 이용하고 그런 과정에서 재미를 분석하다 보니까 관계에 대해서, 문제가 생기면 놀이의 룰을 만들어 가면서 문제해결과정을 경험하고 그 다음에 여기는 무서운 어른이고 아니고 살고 있는 이런 관계들이 조율되고 이런 거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과정이었구나. 그게 어른이 되서도 도시에서 자란 사람과 비교해 봤더니 차이가 있더라. 그럼 우리가 여기에서 이게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이 요소들을 가지고 뭐가 필요할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동네에 아이들이 많지 않고, 있어도 놀 시간도 많지 않고. 어른들 할머니 할아버지들 있고 그래서 아이들로만 국한시키지 말자. 그리고 종민이나 영길선배처럼 놀아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방식들이 이 공간에서 가능하게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네에서 사람들의 동선, 동선을 파악하면서 시간대는 어떻게 겹쳐지는지 조사될 필요가 있겠구나. 그래야 그런 가치들을 구현할 수 놀이가 가능하겠다라는 거고. 그리고 놀이는 혼자가 아니라 두 명이더라도 관계들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역에서 활동을 할 때 좋은 요소로 활용될 수 있겠다. 그래서 종민이 이 작업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놀이라는 주제를 좀 더 진행을 해줬으면 좋겠다. 얘기들이 나왔던 거고. 그래서 창영동 자체에서 실제 바로 가동이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초점을 맞추면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오히려 갔다 와서 다시 보이는 거, 다시 접근해야 하는 부분들, 그 때는 고려하지 못했는데 추가로 고려되야 하는 요소들이라든지 태도라든지 그런 차이들을 종민이 소화한 내용으로 정리를 하고 그래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게 조사의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 이런 이런 조사가 필요하고 이런 조사는 이런 방법으로 가능할 거 같다 정리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생각이 풀리는데는 편하지 않을까. 길쌈 이렇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37:55

영길/ 나는 다른 의견인데 그러니까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한 거 중에 상당 부분은 실제로는 정리를 못 했을 뿐이지 반영은 하고 있다라고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들었는데 길쌈까지는 괜찮았다. 근데 정종민 선생님이 저 지도 안에 들어있던 내용 중에 길쌈을 잡았으면 실제로 길쌈의 의미를 좀 더 깊게 고민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뭐냐면 길쌈이 장흥이라는 동네, 당신의 고향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거고, 길쌈이라는 걸 창영동에 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건데 내가 길쌈을 좀 더 깊게 고민해 봤으면 된다고 느끼는 게 뭐냐면 정종민 선생님의 고향 동네에서 이뤄졌던 길쌈의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놀이로 만약에 파악을 한다라면 할머니들이 길쌈을 통해서 약간의 노동을 통해서 소일거리를 같이 하는 행위를 통해서 찾았던 유희와 같이 하는 느낌들이 있다라는 거고 길쌈을 자기 집에서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왜 같이 했었고 이런 것들이 있다라는 거고. 계속 얘기했던 겹쳐지는 부분, 시간대가 됐든 움직임이 됐든 동선으로 표현이 되든 그런 거도 있었다. 그 가치로 구현하는 거로 보면 창영동으로 보면 난 무리하게 길쌈을 가져가기 보단 길쌈이 가졌던 의미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잡았으면 실제로 됐다. 아까 물어 봤던 마늘 까는 작업을 통해서 세 네 명의 할머니들이 마늘을 까면서 소일거리로 푼돈처럼 용돈을 버시지만 마늘 까는 자체가 즐거움일 수 있는 거는 아시잖아요. 실제로는 그 길쌈이 아니라 마늘 까는 자체를 놀이로 구성하려고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길쌈을 마늘 까는 행위에 반영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고. 근데 전종민 선생님 고향 마을에서 이뤄졌던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서 길쌈을 했던 것과 창영동에서 두 세 명씩 따로 따로 모여서 마늘 까고 다른 거를 하며 소일거리를 하면서의 놀이로서의 우리가 얘기했던 공간으로서 분석을 해 보면 차이가 큰 거잖아요, 반지하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지적했던 그 작은 동네에서도 실제로는 두 세 집씩 블록 져서 교류가 안 되는 부분. 정종민 선생님이 만약에 내가 창영동에 살아서 어르신들과 놀이로서 뭔가를 구현해 보겠다 싶으면 마늘 까는 행위 자체를 길쌈으로 바꾸려는 노력 보다는 마늘 까는 행위를 옛날에 고향에서처럼 할머니들이 다 모여서 하고 남는 걸 자기 집에 가져가서 하는 행위들 그렇게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아니면 동선을 맞춰주고 같이 어떤 장소에서 이뤄지는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라는 거죠. 반지하의 가장 큰 특징이 텃밭이라고 하지만 창영동의 텃밭의 가장 큰 특징이 뭐냐면 농사를 같이 짓지 않는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농사를 같이 짓지 않고 농사 져서 생긴 부산물들은 같이 나눠서 같긴 하지만 실제로 농사를 같이 짓진 않는다. 그래서 길쌈이 의미도 그래서 정종민 선생님이 보다 고향에서 이뤄졌던 거에 대해 가치를 더 둘 필요가 있다라고 바라보는 관점이거든요, 그니까 창영동에서 반지하가 얘기하는 반자본주의적인 공동체를 지역에서 실현하려면 실제로 텃밭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가면 안 된다. 공동경작이라고 하는 시스템까지 얘기할 건 없는데 같이 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농사져서 생긴 작물들을 나눠 갖는 수준으로 하면 실제로는 그게 진짜 반지하가 꿈꾸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건데 이게 오히려 정종민 선생님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놀이, 같이 노는 즐거움으로 이렇게 오히려 구성을 할 수도 있지도 않느냐 생각이 좀 드는 거죠. 지금 당장 텃밭 이렇게 접근할 순 없지만 소일거리들을 좀 집중해 내고, 뭉쳐 주는 것 그래서 동네 한 가운데 원두막이라도 하나 짓든지. 아니면 빈 집 하나를 수리해서 이왕 마늘 까는 게 불편하게 땅바닥에 앉아서 하시는 게 아니라 무릎 관절에 좋은 자세로 앉아서 마늘 깔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 우리가 마늘을 도매상에서라도 떼다 줄테니까 하시고 그렇게 얘기를 정리하고 갔었으면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겠냐.

 

43:25

종민/ 반지하가 그런 역할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공간들을 제공하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까 거기 판매라는 게 끼어들면서 거기서 생각이...

43:39

영길/ 판매라는 걸 보면서 실제로는 할머니들이 시장 가셔서 개별적으로 파시나, 육거리 시장 이런데 가 봐도 앉아 있는 코스마다 가격이 틀린 건 아니에요. 노점 같이 신문지 깔아 놓고 파셔도 가격은 일정하게 형성되는 게 있어요. 그걸 어기면 판매를 못해 실제로는. 그래서 판매 문제가 실제로는 그렇게 복잡하진 않다는 거죠. 자기가 까 놓은 만큼만 해도 되고 아니면 마늘을 대량으로 판매하는데서 실제로 이렇게 수거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판매 문제를 우리가 깊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고, 실제로는 오히려 조금 아까 얘기했듯이 길쌈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길쌈을 설명하고 길쌈이 정종님 선생님 고향에서 가치 있었던 할머니들의 놀이로서 분석해내고 그 가치들을 갖고 창영동에서 각자 이뤄지고 있는 소일거리들을 묶고 그 가치들을 엮어주는 것. 그래서 고향에서 이뤄졌던 길쌈마냥 그 형태만 빌려와서 이뤄질 수 있도록 활동가들이 좀 장소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묶여 있는 것들을 징검다리처럼 연결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해 주는 것 정도가 진짜로 큰 틀에서 공동체를 흐름으로 분석해 볼 수 있지 않냐.

 

45:16

혜린/ 종민이 얘기했던 반짝 반짝 거렸던 얘기가 지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게 뭘까 생각해 봤는데. 구체적으로 영길 선배나 내가 얘기하는 거의 단어들이나 예를 들었던 거를 직접 적용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그랬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할머니들이 많은 동네에서 할머니들과 같이 놀아보고 싶어라고 했을 때는 내 경험과 내 욕구에서 출발할 거 같아. 종민이 경험했던 거 종민이 재밌었던 거에서 놀이의 가치와 의미가 얘기가 나왔던 것처럼.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내가 할머니들과 같이 놀고 싶다라고 하면 우리 그 때 황금슈퍼 앞에서 배다리 축제 이렇게 하는 게 맞아? 하면서 얘기했을 때 배다리 축제 막 갈궜었잖아. (웃음) 우리는 그런 걸 하는 거지. 그 동네가 토박이들이 사는 경우가 적고 거기 할머니들, 시집 오면서 거기 살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면 나는 내 욕구는 할머니들한테 배우고 싶어, 음식 만드는 거를. 그러면 나는 즐거울 거 같아. 할머니들이 길쌈, 판매 이런 식으로 다 셋팅된 판을 다 벌려 놓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걸 내 놀 수 있게 하는 거. 그게 갖춰진 시간대 룰에 장소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 나는 그래서 와~ 한 달에 한 번 이번의 주제는 수제비에요. 할머니들 모시고 그 동네에 젊은이들이 있을 거 아니야. 자취를 하던 새댁이든 모여서 어떤 할머니는 우리 동네는 충청동 식이어서 숟가락으로 떠서 하고 이런 식으로 하면서 할머니들의 옛날 얘기, 삶의 얘기, 역사들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거고, 나는 그러면서 와 하면서 같이 음식 해 먹고 이번 텃밭에서는 고추가 열렸어. 고추장아찌를 해 먹는 방법, 어디는 된장에 박아 먹는 게 최고지, 어디는 간장이야 그러다보면 이런 식으로 그러면 내년에는 고추 농사를 좀 더 많이 해 볼까? 이런 애기도 나올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프로그램으로 주는 게 아니라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 즐거울 거 같은 거, 내가 했었어서 즐거운 것 이런 식으로 접근이 됐었으면 좋겠다.

 

48:17

영길/ 이거는 약간 무리가 있다고 봐요. 이거는 정종민 선생님 판단이 맞을 수 있다. 뭐냐면 창영동으로 놓고 보면 실제로 연습을 창영동으로 하기로 한 거고 정종민 선생님께 자기 동네에서 놀이를 구현해 봐라 그랬으면 더 풍부했겠는데 우리가 무리수를 뒀어도 어쨌든 창영동에서 할 수 있는 걸 해 보자라고 했을 땐 창영동의 현실이라는 게 있다. 난 오히려 길쌈이 맞을 수 있다.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하는 거 보면, 실제로는 그런 거죠. 정종민 선생님이랑 저는 할머니랑 놀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건 아니에요. 어쨌건 연습 삼아 해 보는 거고 분석을 해야 하는 걸로 보면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실제로는 농촌에서 할머니들이 노는 방식에서 음식 만들고 그러면서 놀지 않는다의 핵심은 그렇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수다 떨고 그러면서 놀지만 소일거리 같지만 푼돈이라도 벌어야겠다라는 생각들이 굉장히 강하게 나타나는 게 있어요. 지금 청주시에서 벌이는 경로당 프로그램 보면 실제로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한 의미 같은 게 가미가 되어 있기는 한데 이게 실제로는 살 만한 할머니들 외에 이용하지 못한다는 게 있고 실제로 그 세대, 할머니 세대에서 그런 식의 나눔들이 허락이 잘 안 된다. 개인적으로 허락이 잘 안 된다는 거죠. 창영동에서 내가 농사 져서 그 농사진 걸 나눠줄 수는 있는데 농사를 같이 짓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거다. 그거는 홛동가가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거나 농사를 같이 져봐서 될 수 있는 거는 아니다. 실제로는 연습이 필요한 거다 누구든지. 연습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고 할 때 실제로는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규칙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빈 공터에서 너희끼리 놀아 봐라라고 풀어줬을 때 처음에 느끼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실제로는 존재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존재하지 않으면 자기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거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실제로 농사 문제가 텃밭을 지면서 왜 교류가 안 되냐 하면 자기만의 농사법이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거든요. 이게 교류가 안 되는 거에요. 내가 농사진 거를 달라고 하면 내 줄 수 있는데 내 농사법 같고 터치를 받는 건 싫은 거에요. (혜린/그럼 할머니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길쌈이라는? ) 아니요. 실제로는 마늘을 계속 까셔도 되는데 이왕이면 친한 할머니들끼리 모여서 하는 게 아니라 공동으로 모여서 무언가 해보는 결국에는 같은 장소에 모여봐도 세 명씩 모여서 하겠지만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으면 아까 같이 음식 가르쳐달라 이런 식으로 가면 실제로는 이벤트성으로 가고 공동으로 우리가 같이 살아간다는 의미가 전혀 부각되거나 체험되지 않는다라는 거에요.

51:47

종민/ 길쌈이 부각되서 그런 것 같은데. 마늘 할머니 같은 그런 경우를 여러 군데에서 하자는 거고 그런 경험들을 블록 블록이 아니라 모아서

52:06

영길/ 모아서 해야 지금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에요. 창영동으로 보면 만화할머니 가게나 몇 몇 블록들이 있는데 지경 선생님이 얘기했듯이 이 블록들이 합쳐지지 않는다는 거죠. 그 작은 동네에 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20도 안 걸리는 동네에서 블록이 6~7개 씩 존재하고 실제로 블록과 블록끼리 교류가 전혀 안 된다고 표현하는 것. 그게 반지하의 활동가들이 2년이 넘게 활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렇게 둘이 연결이 안 된다. 이게 반지하가 다큐멘터리 보여주고 아니면 영화 틀어주고 이렇게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중요한 거는 텃밭을 가꾸는데 이쪽도 가꾸고 이쪽도 가꾸는데 이게 왜 교류가 안 될까 보면 실제로 이걸 너무 존중해주는 경향들이 있는 거에요. 불편하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이게 양쪽 블록끼리 트러블, 만나서 싸움이라도 하지 않으면 실제로 이게 계속 고립된 형태로 간다. 이거에 처음에 할머니들과 관계를 트고 그럴 땐 이혜린 선생님 방식이 맞다라는 거고. 동기유발로 보면 맞는데 나중에 가서는 할머니의 요리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해 먹는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요리법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인식 시켜주는 과정으로서 길쌈을 생각해 본 거잖아요. 근데 마늘이든 텃밭이든 이제까지 인정해 줬잖아요. 이제는 이왕이면 이렇게 짓는 게 맞다라고 서로 얘기해주는 단계가 맞다. 그리고 그 단계로 놀이를 상정하자는 거죠.

53:55

혜린/ 드는 생각이 결국 내가 관심을 갖는 거, 놀이에서도 할머니들 얘기를 듣고 싶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내 얘기를 하고 싶고 그렇게 교류가 되면서 이야기가 발견되기를 바라는 방식인 거라. (영길/ 그게 초기의 단계인 건데) 그래서 내가 고민하고 경험했던 폭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고...

54:31

영길/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각자의 관심사나 폭은 아닌 거 같고, 창영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는 거다. 창영동을 처음에 실현을 할 때 이혜린 선생님은 처음부터 이야기를 발견하고 나누는 걸로 상정을 하는 거고 정종민 선생님과 내가 얘기하는 거는 반지하가 현재 쌓아 놓은 상황에서 다음 단계를 얘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지금 탑대성동에서 한다 하면 정종님 선생님이나 내가 얘기하는 게 안 되는 거고,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하듯이 할머니들의 얘기를 듣고, 얘기를 하고 하면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토대를 쌓는 게 맞는 거고. 정종민 선생님한테 처음 얘기했듯이 창영동에서 뭔가를 해 보자 했을 때는 창영동은 이미 그 단계는 반지하가 다 해 놔서 되어 있는 거잖아요. 이것들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지경 선생님이 얘기했던 문제, 지역 공동체로 가는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걸 놀이로서 해결하기 위해서 실제로는 우리가 얘기했던 공간을 같이 쓰면서 겪는 문제들, 공간을 창조적으로 생성하는 문제로 바라보는 게 맞다.

 

55:50

혜린/ 그럼, 그런 것도 그런 건가요? 반지하에서 얘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지난 번에 가서 집수리 해 줬는데 몇 개월 겨울에 책 만드느라 지나고서 다시 찾아가면 관계가 되돌이표가 되는 거. 그게 반지하가 찾아가서 해 주고 나오고 그런 거니까. 공동의 어떤 공간에서의 경험들이 있다라면 그런 부분도 좀 다르게 풀어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건지?

56:20

영길/ 그렇죠. 처음 시작은 반지하가 맞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갈려면 길쌈과 같은 공동으로 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혜린/ 작업장 같은 형태의 근데 그게 놀이라는 걸로 적용을 해서)

56:45

종민/ 생산, 판매 여기 때문에 약간 그랬던 거 같은데 뭔가 같이 하는 거에요. 하면서 얘기가 자연스럽게 오고 가고 경험들이 쌓이는 거에요. 그런데 경험만 쌓이는 게 아니라 뭔가 마늘이라고 했을 때 마늘이 생기는 거잖아요. 근데 뭔가 농사를 짓고 그거를 가공을 같이 하고 친해지는 거죠. 그 다음에, 집수리 아까 그것도 까먹었는데 나눔 애기했었잖아요. 농사 진 거 가지고 해 먹는 거죠. 그런데 초대하는 거죠. 반지하가 중심으로 관계가 맺고 있다고 한다면 반지하에서 할머니들이 모여서 마늘을 까는 거에요. 마늘을 다 깠어, 마늘 생겼잖아요. 해 먹어요. 그 때 할머니들 부르는 거죠. 이렇게 해서 판을 벌리고 그 다음에 또 어떤 농사를 져서 일을 해서 마무리졌어. 힘드니까 해 먹잖아요. 이런 경험들이 확장되는 거고 관계망들이 촘촘해지는 거고. 아까 집수리 같은 경우에도 집수리를 했으면 잔치를 하는 거에요. 여기 수리했는데 가서 구경도 하고 뭣 좀 드시죠. 그 길쌈이라는 게 이익, 노동을 해서 뭔가를 판매하자는 의미 아니었고 어떤 공동 경험이 가능하다는 거,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거. 그리고 그 이후에 해 먹고 초대하고 하면서 관계들을 확장시키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길쌈을 얘기한 거에요. 그니까 누나가 얘기했던 그 얘기들 할머니 충청도식 수제비법 가르쳐주세요가 아니라 잔치 할 때 다 수고를 했어. 뭐 해 먹어야 돼. 할머니가 자기 식으로 해 먹던 이런 식으로 풀어질 거 같다는. 근데 이 과정이 공동으로 뭔가를 경험하는, 의사소통하는 과정들이 됐을 때 이게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 같고. 어린이들을 부르거나 젊은이들을 불렀을 때 이게 자연스럽게 학습이 될 거 같고 얘기들이 오고 갈 거 같은.

59:21

영길/ 둘이 다른 얘기를 하는 건 아닌데 실제로는 단계 차이다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에요. 뭐냐 하면 처음에 접근할 땐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했던 방식, 반지하의 방식이 맞고. 이야기를 발견하고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의 토대라고 하는 사람을 믿는 마음들이 생기게 하는 게 맞는 거고. 근데 반지하가 겪는 문제에서 좀 더 발전, 해결하려고 하면 집수리를 할 때 고쳐주는 게 아니라 연장을 빌리러 오셔서 옆에 할머니네 같이 고치시게 하시는 거. 그러러면 매개적인 실제로는 공간, 마당 같은 구실. 놀이에서 얘기했던 공터 같은 구실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게 계속 파편화된다. 마늘 까는데 자기 집 앞에 땅바닥에 앉아서 하고 싶진 않을 거 아니에요. 그늘도 있고 의자에 목욕탕 의자 같은 거 있고 선별하면 쓰레기 치울 수 있고 이런데 있으면 거기서 까겠지. 그런 공간들이 주어지지 못하는 것. 그런 공간이 주어지면 그래도 처음에는 친한 할머니들끼리 모이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따로 따로 하다보면 부딪치고 이러다 보면 원이 더 확대될테고 난 실제로 그렇게 경험들 쌓는 토대들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 문제로서 끝나지 않을 거다. 그거 보다 더 큰 문제도 생길 거고, 더 해결해서 궁극적으로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건데 처음에 이혜린 선생님이 얘기했던 건 우리가 하려고 하는 탑대성동에선 당연히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처음에는 이야기 발견하고, 듣고, 우리와 신뢰관계 형성하고 그런 방식이 있는 거고. 그 다음은 보다 크게 같은 공간들을 활동가들이 운영하고 이런 게 아니라 동네 계처럼 경조사계 시골에서 꾸려지는 마냥 형태로 가면 더 발전이 되는 거고. 나중에 상부상조 진짜 계를 만들 수 있으면 진정한 공동체가 되는 게 아니겠느냐. (혜린/ 그게 세대 간의 연결될 부분 발견되면 연결지점 모색하고 ) 제가 잡았던 공간 보다 정종민 선생님이 잡았던 놀이가 메리트가 더 크다.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발견하는 방향을 잡는데는 진짜 탁월한 그 고민을 조금만 더 밀고 나가기만 하면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겠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6/10 06:34 2009/06/10 06:34
http://blog.jinbo.net/com/trackback/83
긴 호흡  | 2009/06/10 08:07
드뎌~ 반지하/창영동 답사 관련 모임 내용들 녹취 완료! ㅋㅋ
이제는! 편집편집편집^^ 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