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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4면] 상식이 진보인 시대, 『대한민국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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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국의 근현대사에 갖고 있는 일반적 통설은 무엇일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었다?’ ‘박정희가 독재자였지만 경제를 성장시킨 것으로 봐줄 수 있지 않은가?’ 등이 있을 것이다. 한홍구씨는 이러한 통설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화교 학살,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역사 앞에 평화의 백의민족은 없었으며(2권 1부), 박정희는 70년 당시 형법만을 놓고 봐도 헌법을 유린한 범죄자이며 경제발전 때문에 그 죄를 사해준다는 내용은 없기 때문에 범죄자로 제대로 매장(3권 1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저자는 근현대사의 잘못된 통설, 학살 등의 과거사 문제, 군대, 미국,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부 독재 등을 주제로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객관적인 자세에서 제기한다. 이런 제기와 함께 저자는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바로 세우기를 통해 과거와 연결된 현재를 바꿔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1. 시민권 그리고 역사를 본다는 것은.


우선 저자가 가장 공들여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의 수준에서 제기하는 시민권의 문제이다. 저자는 남한의 역사는 전근대와의 단절을 위한 시민혁명의 과정이 없었으며 그에 따라 남한 사회에 시민은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남한의 역사에서 식민지 해방이나 4.19 항쟁 등과 같은 전근대와의 단절의 기회와 시기는 충분했지만 모두 실패함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끝없는 전근대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근대적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사회의 시민은 시민이 아니라 복종의 주체인 국민으로 세워졌다고 정의하며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혼란 속에 남한의 근현대사가 있다고 말한다. 권리의 주체, 시민은 대한민국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헌법 제21조 1항은 집회․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2항은 집회․시위와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집회와 시위는 경찰이 허가해야 하고, 경찰이 출동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둘러쌓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분명 인권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침해이다.

여기서 2008의 촛불항쟁을 돌아보게 된다. 2008 촛불은 전근대의 흐름 속에 있던 시민들이 21세의 현재에 와서 비상식적이고 억압적 상황을 만나면서 강력하게 자신의 시민성에 대해 제기한 과정이었다고 한 ‘블로그 「밑에서 본 세상」’의 의견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2008 촛불은 이전의 촛불과 다르게 남한 사회의 국민-타성적․수동적이며 끝없이 복종과 의무를 강요받는 국민-이라 부름 받던 주체들이, 전근대성과 단절하지 못한 국가를 시민의 국가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제기속에 비로소 근대적 의미의 시민 주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시민이 뽑은 대통령은 시민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강력한 제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도 촛불 네티즌, 촛불 시민이라는 주체성으로 자신을 부르며 촛불 집회 등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대한민국사』가 힘 있게 강조하는 것은 국가에 의해 쉬쉬해온 숨겨지고 감쳐왔던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이른바 과거사에 대한 객관적 시각의 서술이다. 2권 1부의 한국군의 베트남 혁명전쟁 참전에 관한 서술은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 파병문제’를 특정 시기만의 사건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 관동군․일본군 장교 출신이던 당시 베트남 파병 한국군 사령부 지휘관들이 일본군 시절 ‘배운’ 조선인 학살 방법을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사용했다는 서술에서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더욱 중요한 건 저자가 단순히 ‘박정희가 나쁜 놈이다'식의 감정적 설교가 아니라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파병의 문제와 관련한 경제적 이익, 더 나아가 박정희 정권의 허구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예비역 군인에게 쓰는 편지글 형태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왜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십분 이해할 할 수 있게 한다. 동시에 이 지점에서 가난한 농민, 노동자의 자식들이 베트남의 민중의 해방운동을 막기 위해, 자신들과 똑같이 가난한 민중을 죽이러갔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한편으로 단순히 어두운 역사적 사실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꽤 재치 있는 저자의 표현과 서술도 책을 읽는 과정을 즐겁게 하는데 수구 단체,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 등이 그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헌법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책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이 남한의 헌법에 계승되었다는 것을 비판한다. 왜냐하면 헌법의 내용이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굴곡진 근현대사를 거치며 임시정부 헌법보다 더 후퇴했기 때문이다. 사실 임시정부 헌법에는 ‘토지와 중요생산시설의 국유화’, ‘파업의 자유는 인민(국민이 아닌!)의 권리’라는 내용 등이 담겨있고 그것은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찌되었든 헌법은 임시정부 헌법을 계승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헌법을 두고 벌어지는 한심한 작태들이다. 뉴라이트, 수구 극우 단체 등은 걸핏하면 자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헌법 수호를 부르짖으며 집회시위(자신들의 집회시위는 제외)하는 사람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모두 뿌리 뽑아야 한다고 핏대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수호하려는 헌법의 뿌리인 임시정부 헌법에 그들이 없애버려야 한다는 파업과 집회시위의 자유가 담겨 있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헌법 수호를 외칠까. 자기들이 없애려는 것을 지키려는 것은 자아분열이라고 하던데, 가끔 그들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친일에서 친미로 자신을 바꾼 수구 극우들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다 자유주의로 옷을 갈아입은 뉴라이트에게 강한 일침을 가한다. 너희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싸가지’의 문제라고.
그밖에도 군대의 역사를 통해 보는 국가주의와 국가폭력의 문제들, 일본군 성노예의 연장선에 있는 박정희 정권의 벌어진 미군에 대한 성 공급을 위한 기지촌 정화운동과 베트남 파병 한국군에 대한 위안부 파견 검토, 미국을 통해 벌어지는 굴곡졌던 한국 근현대사의 모습 등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2. 아쉬운 점 그리고 넘어서기


그러나 『대한민국사』의 여러 지점에서 저자의 한계도 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에 의해 조작되고 과잉된 민족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없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70년대 당시 자본주의 운동의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양태로 진행되던 경제 정책들의 하나였으며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사』는 이러한 역사적인 자본주의 흐름에 서술하지 못한다. 또한 단군신화 등의 역사를 권력 유지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낸 민족주의를 비판하나 그것이 민족주의의 허구성에 대해서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저자는 결국 자신의 비판적 내용들을 끝까지 밀고가지 못함으로서 현 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모호하게 하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또한 일제잔재청산, 과거사진상규명, 민간인학살, 군대개혁, 민족통일과 북한 등에 관한 역사적 사건과 해석에 대해서만 주요하게 다루고 있어서 전반적인 한반도 근대 및 현대사를 알기에는 한계적인 면이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사』만을 보는 것은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으로만 그칠 수 있다. 책과 함께 자본주의 역사, 정치경제학 등의 자료나 책과 함께 읽는다면 근현대사가 한반도만을 중심으로 놓고 벌어지는 민족사로 소급되지 않으며 그것을 넘어서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3. 정리하며 - 진보 보수의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많은 사실들을 접할 수 있다. 그 사실들이 무척 진보적인 내용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 한홍구씨는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며 『대한민국사』사실들에 기초해서 집필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이에 관하여 저자기 미국 유학 시절에 『한국의 공산주의』라는 책을 놓고 미국의 보수적인 대학원생들과 토론하던 경험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생각난다. 『한국의 공산주의』는 1980년대 후반의 남한에서 금서였으며 북한을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 노력하던 저자에겐 객관적 사실을 그나마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금서처분까지 받았던 나름 진보적인『한국의 공산주의』가 반공 미국의 보수적인 대학원생들에겐 “1950년 식의 전체주의 연구 방법론의 시각에서 북을 다루었다고 비판하는 책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수적인 책이 어떤 나라에서는 금서로 처분받는 상황은 참 씁쓸한 아이러니로 다가왔다. 그리고 책 『대한민국사』 역시도 상식이 진보로 읽히는 세상에서 국방부 불온도서가 되며 씁쓸한 아이러니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 때문일까. 저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참된 보수의 등장을 통해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 건강한 시민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책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참된 보수의 등장,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과연 맞는 것일까.
mb정권 반대를 중심의제로 민주당을 비롯한 이른바 개혁 세력과 민주노총을 대표로 하는 민중운동 단체들이 민생민주국민회의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 등의 개혁세력과 함께 손잡은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 당시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탄압을 너무 쉽게 잊은 것 같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수하게 만들어내고 평택 대추리 주민들을 쫓아냈다. 그들이 저항하면 집시법으로 탄압했다. 여기서 그들 모두 불법 시위를 했던 사람이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기간의 소위 불법시위가 역대 정권들의 기간 들 중에 발생했던 불법시위들과 비교해도 가장 적었다. 노무현 정권에게 불법이냐 합법이냐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모조리 짓밟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참여정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참된 보수가 등장하면 다를 것인가. 그에 따르면 참된 보수는 진보와 함께 조화롭게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사회적으로 조화롭다는 것은 문제해결에 있어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하고 말한다. 일정 부분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것은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권리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과 충돌 할 수밖에 없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그 돈의 대부분을 갖고 있는 자본으로서는 아쉬울 것 없으니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전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위에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 민중과 거대한 자본의 불평등한 관계에선 대화와 타협은 만들어질 수 없다. 우리의 문제는 참된 보수의 등장 혹은 진보와 보수의 조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 앞에서 멈춰 서며 모호한 입장취하기를 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대한민국사』를 읽는 것도 단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사』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일반적 시민권의 수준인 상식적 이야기들 수준일 뿐인데 그것이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시민권의 수준이 『대한민국사』가 불온도서로 선정될 정도로 굉장히 저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에 대해 주목해보자. 87년 민중항쟁 이후 2008년 시민들은 다시금 헌법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그리고 21세기 우리에게 언제나의 화두였던 인권을 이야기하며 거리로 나왔다. 비록 촛불이 작게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은 가장 중요한 촛불의 심지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넓은 인권의 실현을 우리 삶의 실천들로 가야하지 않을까. ‘좋아,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며 막막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안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일단 많은 사람이 우리의 시민권, 민주주의가 얼마나 저질 취급을 받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사』와 같은 국방부 불온도서 읽기모임을 친구들과 만들고 온라인 공간도 만들고 공개적으로 밝혀보면 어떨까. 그리고 정리하다 열이 받아서 과격하게 글을 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조용히 삭제가 되거나 심하면 온라인 공간이 폐쇄될 수도 있으니, 그때는 정부에 항의하는 센스도 발휘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그래서 상식이 진보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 사실이 사실로서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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