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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커뮤니티 라디오 운동 사례 - 주자영 연구가

 

라디오를 민중에게, 미디어를 민중에게...


- 태국의 커뮤니티 라디오 운동 사례



주자영 (미디액트 소출력라디오운동 연구팀)


해방의 무기, 자유의 미디어 : 라디오


라디오는 누구나 듣고 즐길 수 있다. 또 라디오는 아무 때나,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라디오는 방송국의 설립과 운영이 저렴하다. 라디오는 또한 참여와 접근이 쉽다. 라디오는 지역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전달하고 반영하여 참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효과적인 매체이다.


디지털 TV, 위성, 케이블, 인터넷, 모바일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발전하는 미디어 기술 환경에 숨가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방구석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던 라디오의 이 같은 매력들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지만 자못 설레는 일이다. 들뜬 마음으로 그 구닥다리 라디오를 꺼내들고 입김을 호호 불며 먼지를 닦아낸다. 숨을 한 번 크게 고르고 이 기특한 놈을 곰곰이 쳐다본다. 자, 이제 이 놈을 어떻게 하지?


라디오가 해방과 투쟁의 무기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매체로 그 톡톡한 역할을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 전세계적인 경험이었다. 주로는 미국과 서유럽에서, 라디오는 미처 국가의 허락을 받기도 전에 제 마음대로 전파를 쏘며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저항과 투쟁을 독려하는 매체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이른바 해적라디오’들은 국가권력과 자본의 탄압 속에서도 부지런히 기능하고 널리 뻗어나갔으며 결국 점차적으로 합법화를 쟁취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이러한 경험이 없다. 전파에 대한 오랜 국가 독점의 역사의 한편으론 냉전 이데올로기마저 가세하여 이불 뒤집어쓰고 북한 방송을 듣는 남파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고정관념이 반세기동안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온 나머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뜨거웠던 민주화 투쟁, 계급투쟁을 경험하면서조차 라디오는 한 번도 우리의 무기인 적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라디오의 힘을 재발견한 지금, 라디오가 소외된 사람들의 입이 되고, 억압과 불평등에 맞서는 투쟁의 무기가 되고, 참여 민주주의를 향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이제야 첫 발을 내딛는 우리에겐, 그리하여 ‘과연...’과 ‘어떻게...’라는 한편의 불안과 의구심이 남아있다. 한 번도 꿈꾸어보지 못했던 일이기에 어쩌면 당연하기도 한.


태국의 사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앞서 언급했듯 라디오가 진보적 대안 미디어라는 ‘운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다만 각 대륙별, 국가별로 서로 다른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라디오 운동이 전개되는데, 불법적인 해적 라디오의 활동이 궁극적으로 합법화되는 과정을 경험한 서구와는 달리, 태국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어떠한 역사적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투쟁을 통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민중을 위한 ‘커뮤니티 라디오’를 국가로부터 쟁취해냈다.


권력의 나팔수에게서 어떻게 나팔을 빼앗아올 것인가


태국에서의 커뮤니티 라디오 운동은 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오랜 군사 독재 속에서 방송매체에 대한 국가독점이 나란히 진행되면서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해온 언론과 미디어의 경험도 우리와 유사한데, 태국의 민중 조직들은 이를 통해 방송매체를 개혁하는 것이 사회 민주화의 관건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들은 미디어 개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개혁의 방향을 먼저 스스로 제시해나갔다. 


커뮤니티 라디오, 즉 비상업적이고 비국가 소유의 미디어 영역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개혁 의제가 뜨겁게 논의되었던 1998년 처음 등장하였다. 민중들이 충분히 참여하고 또 직접 소유하는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이 같은 제안에 호응은 뜨거웠고 실천은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그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 멋진 꿈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2000년부터 전개된 다양한 훈련 워크숍과 세미나를 통해 커뮤니티와 시민단체들은 프로그램 제작과 방송국 운영기술을 배웠고, 또 역으로 이를 통해 커뮤니티들이 조직되어갔다.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원을 펼쳤다. 지역조직, 시민단체, 미디어 관련 NGO, 학계 그리고 방송 종사자들까지 지역 조직 세미나에 적극 동맹 가담했다. 


오히려 워크숍을 통해 많은 그림들이 그려지기도 했는데, 이들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커뮤니티 라디오의 구체적인 필요성을 인지해나갔다. 예컨대 1995년에서 1997년 사이에 있었던 태국-버마 간 가스 수송관 프로젝트에 반대해 싸웠던 칸자나부리 보존단체는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커뮤니티 라디오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침내 시작된 민중의 라디오


2001년 12월, 태국의 커뮤니티 라디오는 출력 10와트의, 반경 20km 지역을 대상으로 첫 시험방송을 쏘아 보냈다. 마침내 민중들의 목소리가 오랜 침묵에서 깨어났고 2002년 중반에는 전국 10개 지역에서 145개의 커뮤니티 단체들이 방송 준비를 마쳤다.


이같이 태국에서 커뮤니티 라디오 건설 운동이 급속도로 번지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바로 2000년 제정된 국가방송위원회(NBC) 법안인데, 그것은 전파의 20%를 ‘민중 영역’에 할당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커뮤니티 라디오의 법적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하는 이 법 역시 갑자기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또한 태국의 방송 민주화 개혁 운동의 지난한 투쟁의 산물인 것이다. 국가방송위원회(NBC)는 1992년 태국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후 설립되었지만 국가 소유의 미디어를 민간에 넘겨주는 것을 주된 임무로 삼았다. 경제 자유화에 편승하여 미디어를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시민사회단체들의 방송 민주화 개혁 투쟁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었고 1997년 제정된 민주 헌법에 근거해 2000년 NBC는 독립적인 방송 조정기구로서 새로운 위상을 부여받았다. 새로운 NBC 법에 마침내 명문화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에 관한 마스터 플랜을 짤 때 그리고 방송국을 허가할 때, NBC는 국가 영역, 민간 영역 그리고 민중 영역 간 적절한 비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NBC는 전파의 20%를 민중 영역에 반드시 할당해야 한다. 민중 영역이 미처 준비가 안된 경우 NBC는 충분한 지원을 통해 민중 영역이 적절한 비율의 전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리고 민중 영역은 이윤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민중 영역이라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가’, ‘그들이 과연 방송국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은 국가기관이나 민간 영역과 동등하게 소유권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과 공세 속에서 이러한 소유권 재편을 저지하고자 국가가 미끼로 활용한 것이 바로 기존 방송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활성화였다는 사실이다. 전파를 넘겨주는 것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입장에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와 함께 방송시간의 20%를 커뮤니티에 할당하는 것과 맞바꾸고자 했던 국가의 계략은 도리어 그러한 제작경험을 통해 커뮤니티 단체들이 향후 자신들의 커뮤니티 라디오를 설립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주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태국 커뮤니티 라디오는 민중들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향한 태국 민중 단체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많은 역사적 경험들이 유사하고 무엇보다도 해적 라디오든 무엇이든 한 번도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무경험의 공통점으로부터 태국 커뮤니티 라디오 운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진정한 방송 민주화라는 것이 종국적으로 민중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전파를 쟁취해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위해 끈질기게 싸우고 구체적인 노력을 쏟아온 이들의 경험, 이제 스스로 라디오를 만들겠다며 전국에서 몰려든 이 소리없는 자들의 외침과 탄성은, 이제껏 낡은 라디오의 먼지를 털어내며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보라구, 우리도 해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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