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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의 방송 매체에 대한 규제개혁과 민주화의 문제 [보고서]

 

태국에서의 방송 매체에 대한 규제개혁과 민주화의 문제

by Ubonrat Siriyuvasak, Chulalongkorn University


이 보고서는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타이에서 있었던 사회, 정치 개혁의 맥락 속에서의 방송 미디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 3월, 독립적 조정기관 설립을 위한 새로운 법안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의 골자는 방송 미디어의 국가 소유를 재구성하여 이를 세 가지 범주, 즉 국가, 민간상업 그리고 커뮤니티 소유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례 없는 법개정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전파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하는 국가적 자원이라는 사실이 1997년 헌법 40조에 명문화된 이후 일어났다.


그러나 새 헌법이 미디어 법률의 법 개혁을 효과적으로 야기했지만 실제 구조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과정은 아직 구체화되지 못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을 소유한 국가 기관들은 그들의 소유권을 재편하는 데 저항하는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거대 사유 미디어 기업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산업의 새로운 역할자가 되고자 했다. 이들은 영향력 있는 국가 기관과 연합하여 국가 방송 위원회(National Broadcasting Commission, NBC)의 선택 과정에 함께 관여했다. 그리하여 법적 권한을 보장을 받는 커뮤니티 영역만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1999) 주장했듯 자유화의 과정은, 새로운 민간상업적 허가로 인해 국가 소유권과 재산이 사적 재산으로 이전되면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보다 더 사유화시킨다. 게다가 국가 기관에 의해 운영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들은 상업화하게 된다. 분명 전지구적으로, 경제적 탈규제화는 미디어의 탈규제화에 관한 개혁의제 위에 놓여있다. 그러나 국가는 정치적, 문화적 표현의 자유화를 제안하는 데 조심스러웠다. 따라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논의는 이러한 개혁의 시기에 방송 미디어의 민주화에 관한 핵심 이슈들 몇가지를 다루게 될 것이다.



국가 방송 위원회(NBC)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통제


구조적인 수준에서, 태국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다양한 국가 기관들 속에 놓여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공공 규율이나 규제 없이 방송할 수 있었다. 이는 절대군사독재 체제(1967-1973) 기간동안 특히 그러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국가는 법 규율이 아닌 정치 권력에 근거하여 방송 미디어를 운영할 수도 있었다.(주: 방송법(1955)은 방송 허가권을 국가기관에 대해선 면제해주었지만 민간 운영자들에겐 적용하도록 법제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송국들이 국가 기관의 이름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민간 허가권은 한번도 허가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90년대에 들어 대중들의 저항으로 방송 미디어에 대한 국가의 절대적 통제는 지속되지 못했다. 정권이 전복되었을 때 방송 미디어에 대한 정치적 규제는 변화해야 한다. 이제부터의 논의는 국가 조정기구의 설립과, 방송 미디어의 민주화가 얼마나 소홀히 다루어졌는지에 관한 상세한 내용들이다.



방송 실무 위원회(The Broadcasting Executive Board-BEB)(1974-1992)


현재의 국가 방송 위원회(NBC)의 전임인 방송 실무 위원회(BEB)는 1973년 학생들의 봉기의 여파로 설립되었다. 이것은 라디오 및 텔레비전에 관한 최초의 행정기구였다. 위원회는 방송 매체를 소유, 운영하는 국가 기관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의 프로그램과 내용에 관한 정책을 제정하였다. 분명 정부는 1974년 처음 BEB의 규정을 만들면서, 방송 매체가 국가 안보를 지키고 사회윤리를 통제하는 국가 도구가 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BEB는 검열 기능, 특히 뉴스 프로그램에서의 정치적 비판을 삭제하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거르기 위한 사전 감시 시스템도 마련됐다. 그러하니 드라마 프로그램들에서의 정치적 표현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정부와 (특히 군사와 정치 분야의) 국가 기관들에 대한 정치적 혹은 문화적 비판으로 간주되는 어떠한 발언이라도 있을 시에, BEB의 드라마 소위원회는 대본을 검열하거나 특정 배우의 목소리를 삭제하여 그 표현을 지운 채 방송을 내보낸다. 따라서 BEB는 민중의 권리와 자유에 봉사하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의 운영을 조정한다기 보다는 정치적 검열에만 집중해왔다.


1992년 5월 신문과 정보에 대한 국가의 검열 통제에 대한 저항이 다시 일어났다. 수친다 크라브라윤 장군의 정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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