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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서울인권영화제 및 말하는 건축가 초간단 감상평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도저히 최근에 봤던 영화들 감상문을 쓸 수가 없을듯. 초간단 정리만하고 나중에 복기해야할듯;;;
 
- 카사블랑카의 여자들 : 주요 배경인 유럽의 마을과 지중해, 그리고 1세대 트랜스젠더인 3명의 여주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시켜주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 혹은 동양인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도 던지게 된다. 60이 넘었지만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그이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음.
 
- 새로운 학교 : 학생인권조례? 그게 끝이 아니다. 학교 안에 있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조례가 만들어진다고 달리지지 않는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지금의 학교구조로는 풀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오자 객석 뒤편에 앉아있던 청소년들이 '어 저거 우리 학교랑 똑같네'하는 말이 생각난다.
 
- 우리가 원하는 것 :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미누씨가 건강하시다는 것에 다행. 즐겁고 슬픈 한편의 뮤직 드라마. 
 
- 고용 : 우리거 서로의 삶을 착취하는 것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마지막 장면을 보며 이 영화를 감성자극 버젼으로 바꾼다면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를 배경음악으로 썼을듯.
 
-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 : 신자유주의 아래 건강권과 질병은 상품이다. 도요타 방식이 어떻게 의료영역으로 살짝살짝 알 수 있었음. '초 단위의 생산조절을 통해 노동강도'를 완성시키는 도요타주의가 노동자를 겁나 빡세게 만들거라는 느낌을 영상 편집으로 잘 보여줬음. 대공장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음.
 
- 말하는 건축가 : '건축가는 해결책을 내지 않는다.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조직해 줄 뿐이다'는 말은 꼭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듯. 왜 건물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말하는 건축가'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음. 죽음 앞에 위엄이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 말하는 건축가 : '건축가는 해결책을 내지 않는다.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조직해 줄 뿐이다'는 말은 꼭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듯. 왜 건물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말하는 건축가'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음. 죽음 앞에 위엄이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내 도저히 최근에 봤던 영화들 감상문을 쓸 수가 없구나. 초간단 정리만하고 나중에 복기해야할듯;;;
 
- 카사블랑카의 여자들 : 주요 배경인 유럽의 마을과 지중해, 그리고 1세대 트랜스젠더인 3명의 여주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시켜주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 혹은 동양인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도 던지게 된다. 60이 넘었지만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그이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음.
 
- 새로운 학교 : 학생인권조례? 그게 끝이 아니다. 학교 안에 있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조례가 만들어진다고 달리지지 않는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지금의 문제로 풀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교실에서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오자 객석 뒤편에 앉아있던 청소년들이 '어 저거 우리 학교랑 똑같네'하는 말이 생각난다.
 
- 우리가 원하는 것 :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미누씨가 건강하시다는 것에 다행. 즐겁고 슬픈 한편의 뮤직 드라마. 
 
- 고용 : 우리거 서로의 삶을 착취하는 것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마지막 장면을 보며 이 영화를 감성자극 버젼으로 바꾼다면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를 배경음악으로 썼을듯.
 
-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 : 신자유주의 아래 건강권과 질병은 상품이다. 도요타 방식이 어떻게 의료영역으로 살짝살짝 알 수 있었음. 초 단위의 생산조절을 통해 노동강도를 겁나 빡세지겠다는 느낌을 영상 편집으로 잘 보여줬음. 대공장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음.
 
- 말하는 건축가 : '건축가는 해결책을 내지 않는다.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조직해 줄 뿐이다'는 말은 꼭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듯. 왜 건물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말하는 건축가'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음. 죽음 앞에 위엄이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내 도저히 최근에 봤던 영화들 감상문을 쓸 수가 없구나. 초간단 정리만하고 나중에 복기해야할듯;;;
 
- 카사블랑카의 여자들 : 주요 배경인 유럽의 마을과 지중해, 그리고 1세대 트랜스젠더인 3명의 여주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부각시켜주는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 혹은 동양인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도 던지게 된다. 60이 넘었지만 관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그이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음.
 
- 새로운 학교 : 학생인권조례? 그게 끝이 아니다. 학교 안에 있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조례가 만들어진다고 달리지지 않는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지금의 문제로 풀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교실에서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오자 객석 뒤편에 앉아있던 청소년들이 '어 저거 우리 학교랑 똑같네'하는 말이 생각난다.
 
- 우리가 원하는 것 :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미누씨가 건강하시다는 것에 다행. 즐겁고 슬픈 한편의 뮤직 드라마. 
 
- 고용 : 우리거 서로의 삶을 착취하는 것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마지막 장면을 보며 이 영화를 감성자극 버젼으로 바꾼다면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를 배경음악으로 썼을듯.
 
-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 : 신자유주의 아래 건강권과 질병은 상품이다. 도요타 방식이 어떻게 의료영역으로 살짝살짝 알 수 있었음. 초 단위의 생산조절을 통해 노동강도를 겁나 빡세지겠다는 느낌을 영상 편집으로 잘 보여줬음. 대공장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음.
 
- 말하는 건축가 : '건축가는 해결책을 내지 않는다.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을 조직해 줄 뿐이다'는 말은 꼭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듯. 왜 건물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말하는 건축가'인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음. 죽음 앞에 위엄이 있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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