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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잡년행진을 지지하는가.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유무형의 통제와 폭력은 역사적인 범죄였다. 그 극단전인 예는 전쟁과정에서 그이들을 향해 자행된 강간과 학살이었다. 다수에 의해 실체화 된 폭력. 지금도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는..
 
헌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타인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해 '최소한의 침해'라는 기준을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역사가 증언하듯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그러나 폭압과 살육에 이르렀던 혐오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 혐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일상적 혐오는 '낮은 계급', 그중에서도 이른바 '정숙하지 않은(혹은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른바 잡년)을 먼저 공격했다.
 
때문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 몸에 대한 혐오에 반대하는 잡년행진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끌어다 저지르는 인권침해에 반대하고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다. 나아가 잡년행진은 소위 '잡년'으로 불리는 여성만이 아니라 드랙킹(또는 드랙퀸)을 비롯한 성수수자와 장애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만으로도 '혐오'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지 않을까. 혐오에 맞서며 혐오를 넘는 투쟁. 그래서 나는 잡년행진을 지지한다. 부족하지만 격하게.
 
진실유포죄를 읽던 중 문득 잡년행진을 심정적으로는 계속 지지해왔지만 조금 더 깊게 왜 지지해야는지를 생각하다 글을 쓴다. 일단은 여기까지만.
 
(이하는 잡년행진에서 http://slutwalkkorea.wordpress.com/)

 


몸매를 가꾸려 하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요.
다른 사람의 몸에 관심을 가져도 좋아요. 하지만 그 사람의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요.
 
내가 무엇을 입더라도
내가 어떻게 보이더라도
내가 어떤 젠더적 표현을 하더라도
내가 얼만큼 섹스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더라도
내가 어디서 왔더라도
내 몸이 아무리 다른 사람에 의해 폄하되더라도
내가 어떻게 불리더라도
내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된다.
 
몸매를 가꾸려 하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요.
다른 사람의 몸에 관심을 가져도 좋아요. 하지만 그 사람의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요.
 
내가 무엇을 입더라도
내가 어떻게 보이더라도
내가 어떤 젠더적 표현을 하더라도
내가 얼만큼 섹스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내가 이제껏 무엇을 했더라도
내가 어디서 왔더라도
내 몸이 아무리 다른 사람에 의해 폄하되더라도
내가 어떻게 불리더라도
내 몸이 모욕이 되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 몸에 대한 혐오에 반대하는 잡년행진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끌어다 저지르는 인권침해에 반대하고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다. 나아가 잡년행진은 소위 '잡년'으로 불리는 여성만이 아니라 드랙킹(또는 드랙퀸)을 비롯한 성수수자와 장애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만으로도 '혐오'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지 않을까. 혐오에 맞서며 혐오를 넘는 투쟁. 그래서 나는 잡년행진을 지지한다. 부족하지만 격하게.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에 대한 유무형의 통제와 폭력은 역사적인 범죄였다. 그 극단전인 예는 전쟁과정에서 그이들을 행해 자행된 강간과 학살이었다. 다수에 의해 실체화 된 폭력. 지금도 집요하게 반복되고 있는..
 
헌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타인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해 '최소한의 침해'라는 기준을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역사가 증언하듯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그러나 폭압과 살육에 이르렀던 혐오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일상적 혐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일상적 혐오는 '낮은 계급', 그중에서도 이른바 '정숙하지 않은(혹은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른바 잡년)을 먼저 공격했다.
 
때문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 몸에 대한 혐오에 반대하는 잡년행진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을 끌어다 저지르는 인권침해에 반대하고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다. 나아가 잡년행진은 소위 '잡년'으로 불리는 여성만이 아니라 드랙킹(또는 드랙퀸)을 비롯한 성수수자와 장애인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만으로도 '혐오'로 여기는 이 사회에서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직접행동이지 않을까. 혐오에 맞서며 혐오를 넘는 투쟁. 그래서 나는 잡년행진을 지지한다. 부족하지만 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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