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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2

 

병가 중인 어머니의 말동무를 하다보면 꽤 비중을 차지하는 소일거리가 TV시청이 되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TV프로그램 중에서도 역시 드라마 얘기가 주가 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 출근 준비를 하던 내게 아침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가 '저기에 전태일도 나오더라' 해서 잠깐 화면을 보게 됐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일때 어린이용 전태일 평전을 사주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같이 봤었지'하며 집을 나섰다.

 

문득 아침에 하셨던 얘기가 생각나 드라마를 찾아보니 얼핏 봐서는 60~70년대를 살아가는 빈곤한 가정의 여주인공이 억척같이 공부해서 성공하는 그런 내용인가 했다.
그러다 최근 재방을 보니 한약방에서 일하다 한의대에 가려고 하는 여주가 야학에 다니던 중 우연히 전태일을 알게 된다. 그러다 전태일이 여주에게 연락을 해 여주와 함께 야학에 다니는 시다를 만나며 아이가 피를 계속 토한다며 한의술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다가 '작업반장이 잠 안 오는 주사라며 매일 놔줘요'라고 말하자... 아 젠장... 하며 슬쩍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다음이 전태일이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공장 시다들은 다 주사맞고 일해요' 하는 장면인데 본방때 봤으면 출근길에 담배부터 샀을지도...

 

종종 KBS가 서울1945때도 그렇고 최소한의 진실은 담으려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드 중에도 과거 미국의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범죄의 진실을 담으려고 하는 수사물도 있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 공중파 봐줄 맛이 있지. 케배수씨, 지금 상황에서 더는 바라지도 않을테니 삼생이 정도의 드라마는 계속 좀 찍어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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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리자 투표시간이 아니라, 줄이자 노동시간.

얼마 전, 친구가 투표시간을 늘리는게 어떤 계급적 이익이 있을까라고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그이의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노동자의 민주주의가 아닌 자본을 위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시간을 늘리거나 휴일을 만든다는 것이 노동자 시민의 단결과 연대를 확대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누군가는 '그래도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완성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 투표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의미있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하고,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 혹은 투쟁이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효과를 남기도록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그렇다면 계급적 이익과 단결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 투쟁을 해야지 않을까. 그것이 각 현장의 노동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투표율이 낮다고 생각하며 "젊은 놈들 개새끼"를 읇조리기 전에 당신이 학생-청소년의 인권-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되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최소한 당신 자신이 학생-청소년에게 미성숙의 굴레를 씌운 억압자는 아니었는지 돌아보라고. 투표시간 연장하라고 얘기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거칠게 말해 청소년 선거-피선거권 보장에 앞장서면 된다고, 그럼 굳이 투표시간 연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마디 더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질문 하나에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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