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0년만에 수영장에 가다

1.

사실 10년도 더 됐을것이다. 수영장에 안간 이유야 많고 많지만 아마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는 내 몸의 털들 때문인것 같다.

 

이상하게 사춘기 때는 내 몸에 털이 많다는 것 때문에 노출을 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다. 오죽하면 어느해에는 집에서 빼고 반바지를 한번도 안입었으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다만 초등시절 친구중에 유달리 콧수염이 좀 많던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항상 흥국(-_-;;)이라고 놀림을 받았는데 아마 나도 그렇게 놀림받을까봐 두려워서 털에 대해 민감했던 것 같구.

 

 

2.

지금은 거의 나아졌긴 하다.

 

나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다른 두려움이 있을 것 같다. 음... 뭐라고 해야할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냥 풀어서 말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지금' 속해있는 집단들에서 실수나 놀림거리 혹은 약점이 생기면 방어적인 자세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실수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얼마전에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을때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의 실수라면 실수가 있었는데 순간 내가 마치 변명을 해야할 것처럼 느꼈고 변명했다. 초대받은 친구가 그랬다. 너 갑자기 방어적으로 변한다? 헐. 그러고 보니 그렇네. 왜 그랬을까.

 

 

3.

쓰다보니 삼천포 나락에서 헤어나오질 않겠네. 에라 그냥 주절주절 타자질이나 해야겠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 룸메가 수용장에 다니자고 했다.  룸메들과 집에서 수박쪼개먹으며 소주한잔 하던 자리에서 말이지. 오잉? 이 친구 수영도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대뜸 좋아라고 했다. 그 순간에도 의식의 밑바닥에서 털 문제가 나를 멈칫하게 했지만 그냥 털털하게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친구들한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왜 수영장에 몇년만에 말이다. 그냥 별 반응 없이 그러냐고 그랬다. 무덤덤한 룸메들. 역시 리액션은은 같이 술먹던 손님(?)만 있엇다. 뭐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나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했던 어느 대장장이보다는 아니지만 나름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4.

그러고보니 요즘 막막하던 가슴이 뚫리는 일이 몇개 있었다.

 

지역의 삼성 반도체 산재 환자와 만나던 자리던가.

 

지역의 삼성 산재 환자와 만나는 자리. 사실 울컥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아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어렵고 막막한 일에 부딫히면 회피하고 싶은 이놈의 방어기제. 그렇지만 어찌해도 몸은 이미 움직인다.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쪽지를 돌려 헌혈증을 모으고 공문을 만들어 산재 환자 치료비 모금 운동연대를 요청한다.

 

메신저로 답장이 온다. 무슨 일이냐고. 그냥 이런 저런 설명을 간략하게 줄여서 말하니 몇년만에 만난 대학 동창이 자기도 헌혈증 모아보겠다고 한다.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만 고맙고 잊고 있었다. 그래서 비오는 날 동창에게 받은 헌혈증은 총 23장. 내 손에 쥐어주던 묵직한 헌혈증들에 놀랐다. 나는 그냥 본인이 헌혈한거 몇장만 받을줄 알았는데. 동창은 가족들한데 이야기했다고 한다. 더 많이 모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미안은, 뭘 미안해 고마워. 여름5,날 미친 소나기 속에 그 친구가 씩 웃던게 생각난다. 그곳에서 두 블록 거리에는 삼성화재 건물이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나는 비속을 구름위를 걷는 것처럼 걸어 사무실로 돌아왔다.

 

갑자기 스치는 생각. 그래 미안해 해야돼, 너만이 아니라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의 피와 고통속에 만들어진 반도체 속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면, 건강하게 살아있는거에 대해서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있어야 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꼬였어.

 

 

개보다 못한 삼성 족벌 쌔끼들. 휴. 평소에 욕은 글속에 잘 담아주지 않는데 이렇게 쓰게 되는구나.

 

하. 참. 오랜만에 타자질한다고 아주 손가락이 너는 생각이나 해라 나는 두들길테니하는 식으로 막 움직이는군. 아무튼 쓰다보니 별별 이야기를 다 쓰는 구나. 하긴 나도 요즘 잘 정리안되고 막 생각없이 일이나 하며 선풍기와 지난 몇일을 지나왔지.

 

200만원이 넘는 모금과 그동안 모은 헌혈증. 한낮의 기온이 33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도시의 에어컨있지만 전기세가 무서워서 쓰지 않는 사무실에서 그게 나를 위로했다. 그저 이 더운날에도 마스크를 쓰고 수줍은듯 조용하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만 말하던 산재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그런 마음이 더위속에 지쳐버린 나의 또 다른 마음을 위로했던거 같다.

 

정확히 말하면 262만원의 모금을 전달하려고 계좌번호를 물어보던 나에게 대답하던 환자 언니분의 떨리는 목소리. 헌혈증을 전해주며 커피도 쥐어주던 손이 나를 위로했다.

 

 

5.

그리고 휴가라는 것도 나를 위로했던거 같네. 휴가라서 마음이 붕뜨다보니 수영장도 가게 됐던 것이고. 맞아 곧 휴가라서 그럴거야. 아마 내가 수영장을 덥석 받아들인건 말이지.

 

그렇게 오늘 수영장을 다녀왔다. 아마 내가 그 수영장 물 절반은 다 마셔버린 것 같다. 수영이 아니라 제대로 수급(水給)받고 온 기분. 에후. 기초부터 다시 시작이구나.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일단 저질러 버리니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