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대담] 오세철, 최철에게 듣는다 [사회주의자 통신 2호]

[대담] 오세철, 최철에게 듣는다

-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김병효, 임천용

 


 

임천용 : 오는 길가에 보니 연극제 포스터가 많이 있던데, 무슨 연극제인가요?
최  철 : 서울연극제는 대학로 전반에서 하는 것인데요, 연극제 개막 행사에서 4-5명 정도가 서울연극제 관련한 주제 토론회가 있습니다. 저도 패널로 참가하는데 무슨 발언할까 고민중이에요. 이번 연극제 주제가 ‘거울’이라는 사회적 이슈입니다.
임천용 : 전에도 이런 주제가 있었나요?
최  철 : 처음이에요. 문화예술인들도 기획 과정에서 뭔가 이슈, 주제들을 다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임천용 : 사회가 이 모양이다 보니 세태를 반영한 것인가요?
최  철 : 그런 고민은 아닌 것 같고, 연극하는 사람과 행정하는 사람들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다가 최근 MB 들오면서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유인촌 이후 자기 사람 포진시키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감성보다는 내부 삐걱거림이 표현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임천용 : 이번 작품이 여덟 번째죠? 여섯 편 정도 봤는데, 대학로에서 연극 흥행이 여의치 않은데, 어떻게 칠 년 넘게 해오고 계신지? 밥은 잘 먹고 다니나요?
최  철 : 거꾸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밥 잘 먹고 다니나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시작한 것이죠.
임천용 : 저도 많이는 못 먹고 조금씩 먹고 있습니다.
최  철 : 연극하고 밥 먹고 산다는 것, 기획하고 연극팀을 꾸리고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연극 일반에 만성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일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임천용 : 오선생님께서는 음주, 뒤풀이 문화가 마음에 들어서 연극 계속하시는 것 아닙니까?
오세철 : 내 음주 문화를 전파하려고 결합한 측면도 있다. 연극하면서 술을 더 먹게 됐고...  예전부터 먹으면 새벽까지 가긴 하지만 반도체 소녀 하면서도 하루 걸러 하루씩이었다. 젊은 배우들에게 몹쓸 짓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 훨씬 가까워졌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연극계 막내로서, 막내처럼 행동하니까, 선배들이 참 좋아하더라. 술이라는 것이 운동에서도 마찬가지고, 뭔가 만들어가는 데 있어 좋은 매개가 된다.
임천용 : 술을 많이 못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술 외에도 젊은 동지들과 가까워지는 방법이 있나요?
오세철 : 무대체질이 좀 있어서 판이 벌어지면 이야기도 잘 하고,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젊은 동지들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 같다.


반도체 소녀, 나르키소스와 택시택시

 

김병효 : 최철 동지의 전작인 반도체 소녀를 볼 때 불편하다는 느낌을 갖는 분들이 많던데, 연출자가 특별히 의도한 것인가요?
최  철 : 뭐 연극이론을 끌어다 대는 것은 우습고..... 감정이입하는 분들도 계시고,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판단은 관객의 몫이죠. 처음에 오선생님께 대본을 보여드리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준비를 하며서 추상적이고 모호하던 것이 구체적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임천용 : 노동자들이 봤을 때 눈물도 흘리고 하는 것을 보면 노동자들은 감정이입이 쉬웠다고 봐요. 그런데 학생들은 아직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서 불편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 아닐까요?
김병효 : 저는 쉬우면서도 곱씹어보면 더 깊은 것이 있는 것이 좋던데요. 쉽게 생각하면 쉽고,  또 그러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뭔가 더 생각할 거리가 있는....
최  철 : 쉬우면서도 묵직하게 뭔가 던져줄 수 있는,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뭔가 제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실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것이죠.
임천용 : 결론을 나열하지 않고도 관객들이 마음으로 느끼고 새로운 결론을 향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요?
최  철 : 말로 해야하기 때문에, 또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글과 달리 많이 힘들어요.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연극은 계속 사람들과의 만남, 특히 관객하고도 만나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영화는 틀어놓으면 끝이잖아요. 연극은 관객의 호흡과 같이 가지 않으면 어렵지요. 배우, 무대, 관객, 연극의 3요소에 관객이 들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임천용 : 나르키소스 극중에서 브이가 에프에 대해서 사랑의 감정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성을 찾아나가는데,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최  철 : 근원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유물변증법 요소에서 벗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을 인간으로서 만드는 노동, 긍정적 힘으로서의 노동을 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을 통해 소외당하고 착취당하는데, 노동을 통해 복원, 아니 오히려 창조되어야 할 소외되지 않은 노동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바로 사랑이죠. 남녀만의 사랑이 아니라 더불어 모든 것들에 대해, 파괴의 노동이 아닌, 생산의 노동으로서의 에너지가 아닐까요?

임천용 : 오선생님은 김상수 연출의 택시택시에 출연하시는데, 택시택시는 88년 초연 후 이번에 시대상황에 맞게 수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횡포는 변한 게 없는데 오늘날 현실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그리고 어떤 역으로 나오시는지 궁금합니다.
오세철 : 그 당시 연극은 못 봤다. 월남전을 다뤘다고만 알고 있다. 어쨌든 이번 연극에서는 두 죽음, 반도체 소녀와 장자연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구조적 타살이다. 대사도 적나라하다. 지난 반도체 소녀랑 이어지는 면이 있다. 이 연출자가 반도체 소녀를 보고 작년 말에 나에게 자기 연극에 출연해 줄 수 있는가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이후 공식적인 제안을 거쳐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인공 운전수를 하라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못하겠고 잠시 등장해서 압축적으로 대사를 하는 인물로 등장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유럽 연극에서 대사 없이 연극을 지켜보는 인물을 설정하는 것처럼 역할을 잡았다. 대사보다 오히려 침묵이 더 좋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공유했다. 구루라고 하는 말처럼. 대사를 적어둔 것이 있기는 한데, 오히려 그것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평가를 해봐야 한다. 9번 정도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앞이나 무대 뒤에 계속 서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과정에 나온다는 말이다.
최  철 : 하이퍼 리얼리즘, 연극적 현실과 실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인데요, 오선생님께서 교수이면서 출연을 하지만 현실에서도 운동가이자 교수시잖아요. 우리나라에서 드문 것이긴 한데, 반도체 소녀에서도 오선생님께서 연극에 그대로 들어가 계셨죠. 거기서는 그대로 연극의 인물로서 들어가 계셨고, 물론 이번에는 대사 없이 관찰자로서의 역할이긴 합니다. 반도체 소녀의 경우 미리 이야기 돼서 고려하여 기획한 것이고 이번 택시택시에서는 그냥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여튼 저도 오늘 출연하시는 연극을 한 번 보려고요.

 

 

인생은 연극이다

 

임천용 : 오선생님께서는 반도체 소녀 이후에 불과 두 달만에 김상수 감동의 택시택시에 캐스팅되셨는데, 연극을 통한 문화운동에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최철 동지는 쭉 작연출을 해오셨고... 세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했는데, 두 분께 연극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최  철 :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라는 막연함에서 연극을 통해 구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오선생님과 함께 저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사회주의 운동과 연극이 만난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이 엄중한 현실에 맞닥뜨리고 계시면서도 가장 원칙적인 분과 만난 것이 행운이지요. 오히려 제가 공부와 다른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가가야 할 지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오세철 : 극단 ‘날’이 무대에 올렸던 관동여인숙, 리스트를 봤다. 요번 반도체 소녀 극본을 먼저 볼 기회가 있었고, 연극이 아니라 삶 자체를 무대로 올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연극하면 가상,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리스트는 용산 문제를 간접적으로 다뤘고, 반도체소녀는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좀 더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다. 직접 현실에 다가설 기회를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특히 무대에 설 수 있게 한 것에 대해서도.
임천용 : 최철 동지의 그 전 작품들은 추상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난해했다고 할까요. 나르키소스는 반도체소녀 공연 후 짧은 준비기간 속에서 올린 것인데도 이해가 쉽고, 자본에 예속된 기계적 삶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그 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김병효 : 오선생님께서는 사회주의 운동, 조직활동을 해오셨는데, 새롭게 연극에 대해 흥미도 있으시고요. 오선생님 운동에 있어 연극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세철 :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는데, 부모님이 연극인이시자, 사회주의자셨다. 지금까지 잘 안 드러나다가 이제야 드러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우리가 혁명정당 건설 한다고 하는데, 당건설의 역사에 있어서 문화예술에 있어서의 문화예술의 결합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노동현장이 중요하지만, 우리는 너무 좁게 사고하는 경향이 있어서 장기적으로 본다면 뿌리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 생각했고,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 속에서 나는 이 분야의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재미있게 신나게 할 생각이다. 그냥 배우로서 무대에 선다가 아니라, 사회주의 예술운동, 당건설 운동에 복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임천용 : 나르키소스 작품은 혁명 패배 후 미래사회의 끔찍한 이야기를 하지만, 희망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미래가 아니라 그냥 혁명에서 성공할 방법은 없을까요? 연극을 통해 이것이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  철 : 자본이 더 흉폭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대한민국은 현상적으로 별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잔인한 발톱을 드러내겠죠. 이번 나르키소스 연극에서는 혁명의 전망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다음 연극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의 혁명을 그려내려고 하고 있지요. 다음 세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노동자 혁명이 가능할 것인가 다뤄보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의 핵심 키워드는 무장인데, 아랍 현실을 보더라도 그렇고 평화라고 하는 것의 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을 다루려고 해요. 우리가 폭력혁명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이야기 하는 폭력보다는 자본주의의 폭력 자체가 인간성까지 파괴하는 것 같아요.
오세철 : 나르키소스는 1984의 21세기판이다. 조지오웰에서는 자본주의 문제 자체보다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것, 인간성을 되살리는 것을 통해 노동자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주의적 인간상이라는 말을 쓰는데, 자본주의에 찌든 속에서 새로운 인간형이 나오겠는가? 본성을 부정하고 역사, 사회적 산물이라고만 보면 오히려 답이 없다.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맑스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 토론해야 한다. 이런 시도를 한 것이 아닌가? 삼부작이 나온다는데 기대해보자.
김병효 : 본성에서부터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인가요? 그렇다면 분열적 자아로 빠져들거나 아니면 외부 존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최  철 : 의식은 존재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토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그런데 심리학이라고 하는 것이 부르주아 학문만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오선생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융이 집단 무의식이라고 한 것처럼, 무의식에 대한 반성 속에 60년대 유럽 철학을 비롯하여 알튀세르 중첩 이론, 좌파 철학자 등이 많은데, 이런 것이 심도 있게 토론이 많이 안되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근원을 흔들면 안되는데, 이 부분까지 건드린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듭니다. 쉬운 문제가 아니죠. 저는 출발이 종교였거든요. 이런저런 과정을 쭉 거치고 나서 유물변증법의 진리성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주의 운동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가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자본주의는 원칙적이잖아요. 원칙을 훼손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유연하죠. 가치증식의 기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내어줄 것은 내어주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무장봉기 문제도 사실 사회주의 운동의 원칙이고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흔들리는 순간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된다고 봅니다. 공산당선언에서 맑스가 사회주의의  조류를 구분한 것도 원칙 없는 유연성에 대한 경계 아니었겠어요?

 


부르주아 문화와 연극, 영화

 

최  철 : 우리가 노동시간 24시간 중 10시간을 노동한다면 10시간의 현실이 재생산구조를 통해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이마저도 자본은 착취기제로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10시간의 문제를 문제로 못 느끼게끔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 같아요. 노동자들을 마취시키고,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이를 통해 착취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연극 이런 것을 떠나서, 임금을 받아서 쓰는 것을 보면 얕은 쾌락을 위해서 쓰잖아요. 그리고 이를 문화예술로 착각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착취 구조로 돌아가지요. 공장에서의 소외뿐 아니라 노동력 충전을 위한 시간에도 정신적으로 지배당하게 되는 겁니다.
김병효 : 우리 일상에서는 연극보다 영화에 많이 익숙한데, 이런 부분과도 관련되나요?
최  철 : 영화는 헐리우드에서 성장했잖아요. ‘블레이드 러너’처럼 체제 비판적인 영화도 존재하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익명성이 존재해요.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만 남게 됩니다. 생산 방식도 그렇고 향유방식도 자본주의적입니다. 영화가 효율적이고, 자본주의적 방식과 동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더불어 방송매체와 영화가 성장하는 것이죠. 제가 왜 굳이 연극을 고집하느냐 하면, 살아있는 사람들과 대면하기 때문에, 그래서 연극이 노동자 예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거든요.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영화로 갔다가 쓸쓸한 노년을 맞이하는데, 이 때 자신의 연극 시절을 부정하기까지 하잖아요. 채플린도 사회주의자였지만, 매체의 익명성, 기계를 통해 상영되고 그를 통해 비춰지는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죠.

최  철 : 연극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연극 예술의 치유 기능이에요. 억눌린 자존심, 자괴감, 위축감 등을 연극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거든요. 자기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것이에요. 많이 억눌린 아이들을 보거나, 노동자들은 얼마짜리 인생인가로 평가받으면서 자존감을 잃는 모습을 보잖아요. 연극을 통해서 이것이 치유가 가능해요. 그래서 힘들지만 이것을 하고 견뎌내려고 해요.
김병효 : 현자 비정규직 투쟁을 비롯한 큰 투쟁을 겪으면서 많은 동지들이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으로 봅니다. 연극이 이러한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겠지요?
최  철 : 현자뿐만 아니라 쌍차도 마찬가지죠. 자살 문제도 그렇고. 운동하던 사람들도 투쟁 후에 겪게 되는 정신적 고통이 많아요. 한국사회에서 특히 승리의 역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문화예술이 해야 할 몫이라고 봅니다. 문화예술 운동 과정에서 구호로서가 아니라 직접 가서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습니다. 연극계에도 의식의 편차는 있지만 기회만 되면 현장과 결합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 과 함께 연극 만들고 다시 대학로 무대로 오고 싶어요.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의 전망과 과제


임천용 : 문화예술 운동도 비용과 시간 등에서의 어려움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연극을 계속하실 계획인가요?
오세철 : 연극배우가 가장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조건에서 계속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안정적인 연극운동의 토양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중적 운동으로 벌여가야 한다. 연극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장하고, 연극체를 만들어내고 대중적인 후원을 모아내야 한다. 대자본과 별개로 살아남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접근하지 않으면 연극 노동자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고, 노동자들도 스스로의 운동으로서 접근해야 한다.
임천용 : 노동자로서의 연극배우로 인식하고, 그들의 생활 또한 안정될 때, 현장노동자들에 대해 더 폭넓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오세철 : 배우들도 노동자라고 인식해야 한다. 배우는 이중적이다.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스타의 꿈을 꾼다.
임천용 : 노동자 운동이 자본에 밀리면서 임금만 보더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비용이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그나마 일부 노동자들의 경우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데, 대체로 자본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되고 마는데요. 새로운 문화예술운동이 창출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김병효 : 문화예술운동 기획에 있어서 부르주아적 문화 향유 시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착취당하는 시간을 새로운 문화예술운동으로 대체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최  철 : 시스템 자체를 뒤집어낼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을 부르주아적 문화의 향유가 아니라, 대공장에서 공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재충전의 틀거리를 노조 중심이 아니라 다른 틀거리를 찾아서 들어가야 합니다. 연극 한 편에 3천만 원 드는데, 연극인들은 그 돈이 없다보니, 자본가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노동자 한 명당 천 원씩 3만 명을 만들어서 연극을 꾸리게 되면 연극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상영할 수 있거든요. 자기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서 거꾸로 대학로에 들어와서 공유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상호 피드백이 이뤄지면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할 거에요.
예를 들어 한 달에 천 원씩 내서 만드는 공연이 내가 함께 하는 누군가가 만들고,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고, 감동을 느낄 수 있고 한다면 큰 운동의 성과로 남겠죠. 그리고 그 사이에 사회주의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고, 토론도 할 수 있죠. 딱딱한 책보다 토론에 더 쉽지 않겠어요?
공연 한 편에 3천만 원 정도 투자되면 연극 노동자도 기초 생활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다수가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예술의 힘이죠. 자본가에게 3천만 원 아무 것도 아니지만, 노동자에게 있어 오직 단결이 무기라고 한다면, 단결을 통해 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것이 문화예술의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병효 :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해서 말씀해 주세요.
최  철 : 기존에 추상적으로 접근했었어요. 현장과 결합하면서 문화예술적 상상력과 현실적 과제들을 결합시키는 문제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어요. 그 단계로 나아가고 싶어요. 현장에서 함께 하고, 문화예술적 상상력으로 이를 풀어내고 이를 일반인들에게도 감동으로 전해주고, 이를 통해 사회관계 전반에 긍적적 변화를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었고, 구체화시키는 데 실패했었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결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것이 현재 나의 과제고 숙제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