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회주의운동을 혁신, 재구성하자! [사회주의자 통신 1호]

사회주의운동을 혁신, 재구성하자!

 

강령기초위원 장혜경

 


 

지금 사노위는 건설할 당의 강령안을 마련하기 위해 치열한 토론을 전개하고 있다. 사노위가 민노당이나 진보신당같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려 하는만큼, 강령안 마련을 위해 제출된 입장들은 모두 현시기 한국사회 변혁은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주의혁명을 이룰 핵심주체는 노동자계급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몇가지 부분에서 쟁점이 존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련을 위시한 역사적 사회주의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운동 안에서 오랜 쟁점이었던 이 주제가 사노위 내에서도 논쟁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사노위 내의 논쟁지형은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역사적 사회주의국가의 ‘실패 원인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과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며, ‘어떤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할 것이냐’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련사회 성격 규정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현 사노위 내 논쟁지형은 역사적 사회주의운동의 실패원인을 규명하고, 이로부터 사회주의운동을 혁신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까지 논의가 확장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제출된 강령초초안들은 소련에서 사회주의 건설 실험이 실패한 조건으로 유럽혁명의 실패로 인한 러시아 혁명의 고립, 당시 후진국이었던 러시아의 낮은 생산력에다 내전으로 인한 생산력의 대대적 파괴, 그리고 내전 과정에서 선진적인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파괴된 것을 모두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어려웠던 조건의 문제와 스탈린주의 반혁명만을 얘기하는 것은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실험이 왜 필요했는가를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소련에서 전개된 ‘사회주의 건설노선’의 문제점을 뽑아내고, 노동자권력 수립 이후에 닥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무엇이었는가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우리는 대중(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된 사회주의 건설이 아니라 당의 지도 아래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건설노선, 즉 ‘당과 국가가 융합된 국가사회주의 건설 노선’이 소련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를 낳은 중요 원인이라 본다. 또 생산력 발전을 사회주의 건설의 관건적 요소로 파악하는 ‘생산력주의’ 역시 문제였다고 판단한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보자.

소련은 10월 혁명을 통해 노동자권력을 수립하고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철폐했다. 그리고 혁명적인 여성해방 조치를 취하여 여성해방을 획기적으로 진전시켰다. 그러나 당-국가 관료층이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면서, 노동자민주주의가 파괴되었다. 노동자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인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공산당 독재로 변질되었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역량(자치역량)의 성장에 따라 당과 국가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어가기는커녕, 오히려 당과 국가의 힘이 더욱 거대해져서 당과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인민의 일상삶과 예술활동까지 규정하고 지배하는 극단적인 국가주의 체제를 낳았다.

초기 혁명적인 여성해방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가 주체가 된 여성운동이 부재하고, 뿌리깊은 가부장제가 유지됨으로써, 여성들은 해방의 주체라기보다는 여전히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객체로 머물렀다.

두 번째로 생산력주의 문제를 살펴보자.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을 이뤄나간다는 노선은 낮은 생산력이라는 소련의 경제적 조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보다 높은 생산력을 향한 급속한 경제발전전략은 노동자계급을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생산력 향상을 위한 동원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정치영역에서 당독재-국가관료층의 지배계급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리면서 진행되었다. 생산력주의는 동시에 경제발전과정에서 자연을 대거 파괴시켰다. 자본주의가 철폐되더라도 자연과 인간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태적 관점을 갖지 못한다면, 자연 파괴는 피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정당운동을 본격화하는 지금, 우리는 소련 실패를 거울삼아 사회주의운동을 혁신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그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자국제주의’에 바탕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소련 혁명의 실패는 노동자국제주의, 또는 전세계적 차원의 사회주의혁명만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데 관건적으로 중요함을 시사해 주고 있다.

둘째, 노동자계급의 권력장악이 혁명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정치 역량이 강화되어 나가지 않는다면, 없어진 자본가계급 대신 당-국가관료층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즉 노동자국가를 수립한다 하더라도 그 국가와 인민의 갈등은 충분히 생겨날 수 있으며, 이 갈등과 대립이 노동자국가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갈등과 대립은 국가의 인민으로부터의 자립화와 관료층의 지배계급화라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자치역량 강화를 통해 국가의 영역과 역할이 축소되는 방향 아래 해소되어 나가야 한다.

셋째, 사회주의정당은 인민 위에 군림하는 당이 아니라 대중의 정치주체화를 강화하는 것이 자신의 주 역할로 하는 당이어야 한다. 이는 노동자권력이 수립되기 전이나 수립된 이후나 마찬가지다. 당이 노동자계급을 대표한다는 이름 아래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대리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당은 과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이성의 화신’이 아니라, 언제나 대중과 호흡하면서 자신의 오류를 언제든지 정정하고 혁신할 수 있는 당이어야 한다.

네 번째는 소련 붕괴를 근거로 계획경제는 불가능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지배세력의 논리에 맞서,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주의 경제의 상을 제출하면서 투쟁하는 것이다. 최근 대공황으로 극명히 드러난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노동자권력에 의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노동자민중이 경제의 주인이 되는 민주적 계획경제의 수립이라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다섯째,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달리 자연과 공생하는 경제를 건설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은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보는 관점, 생산력주의적 관점과 맞서 싸워나가는 운동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며, 자연과 인간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식하며, 이 관점 아래 실천하는 사회주의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억압을 비롯한 모든 억압과 차별, 배제를 극복하는 인간해방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피억압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해방운동의 주체로 성장,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이 노동자계급의 해방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억압에 맞서 싸우고, 이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이것들이 사회주의운동을 혁신하고 재구성해야 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혁신과 재구성은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은 후의 일,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펼쳐나가야 할 사회주의운동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