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7) 수원구치소 측의 '반격' - 지문날인 없이는 영치금을 사용할 수가 없다!

"*승규씨 무인 찍어주세요." 

 

 "저는 지문날인을 거부하니 서명으로도 해줄 것을 원합니다."



저로선 앞서 아마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어봐서 그들의 놀라움은 당연할 뿐이었지요. 저 높으신 분들의 명에 의해, 정해진 그들만의 시스템에 한 보잘 것 없는 인간에 의해 도전을 당하는 것이니까요.

 

더욱이 가족이나 지인 등이 민원실에 통해 구입해준 물품이나 재소자들이 구입을 신청한 후  본인에게 전달하면서 그러한 행정에 대한 본인확인을 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의미로서 날인을 해야 하기에 가장 완벽한 식별확인을 할 수 있다는 지문을 찍는 것이 좋겠다는 저 위대한 '빅브라더'들의 결정에 그동안 그 누구도 의의가 없이 순응을 하며 규정대로 집행을 하였지요.

 

그러나 지난날부터 이어져 온 전통(?)에 아니 어느 누가 반동을 하는 것이냐라는 물음은 저 분들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고 뭔가 위기감(?)이 오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비록 저로선 이 단순한 행동이라도 국가의 통제와 '국민'들의 감시 속에서 반박하기가 쉽지 않지만, '안보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의 생체정보를 채취 당하는 '국가의 부당한 명령'이기도 한 지문날인에 대하여 병역거부자로서, 아니 하나의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그러한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지문날인'거부도 동시에 암묵적인 선언을 하였고, 개인의 자유를 법률로서 억압하는 수감생활에서도 끝임 없이 지켜 내었는데...

 

그 무인(지문날인)을 날인할 것을 요청하던 구매담당 재소자(징역말로는 '구매 소지'라고 부르지요.)는 저의 이러한 반응이 역시 처음인지라 당연히 대동한 직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내었고, 반입해 준 구매물도 다시 모으라고 하였지요. 그 '악몽'에 대한 변주곡처럼...

 

그리더니 사동 담당자가 철문을 열면서 뭔가 말을 할 것이 있듯이 절 밖으로 나오라고 하였고, 복도에 나서니 다른 쪽에서 다른 직원이 갱지를 들고서 절 보더니 '*승규씨 맞습니까?'라고 묻더군요.

 

물론 맞다고 하였더니 그 직원은 들고 있던 갱지 즉 영치금사용신청서를 적혀진 수번과 이름 그리고 뻘건 인주가 묻은 신원 미상의 지문이 묻혀진 걸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물어 보았지요. ' *승규씨 지문이 맞냐?' 라고...

 

전 그 지문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아니요'라고 말을 하였고, 당연한 결과로서 '사용신청'은 불허 당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봉사원(방의 대표)의 말에 의하면 영치금 사용을 일체 사용을 할 수 없고 구매신청도 할 수가 없다는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반입하던 물품은 회수 조치를 당하면서 그 금액은 환불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었지요.

 

결국 자기들 입장으로는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은 있어 보이지만 저에게 또 다른 '옥쇄'를 채워지면서 '내 돈'임에도 내가 쓸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지요. 물론 저로선 지문날인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에 행동을 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겠지만 '양심상' 되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구치소측의 '반격'은 그동안 별다른 고민 없이 지냈던 저에겐 엄청난 첫 번째 '시련'이었지요.

 

그런데 왜 지문날인을 거부를 한다면서 어떻게 영치금사용을 하면서 지문날인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전하면서 '공동구매'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실만한 사람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감옥에서 엄연한 자본주의 사회이라서 나름대로 무상지급(음식이나 의복, 소량의 생필품 등)을 해주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는 '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력과 인맥으로 음식들이 너무 많아서 유통기한이 다될까봐 시간 죽이기 용으로 하지만 윷놀이를 하며 억지로 먹어야 하는 방이 있는 반면, 너무 빈곤해서 사동 청소에게 밥 좀 더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방도 있는 빈부의 차가 크는 또 다른 사회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 방에도 돈 있거나 없는 사람들끼리 차려진 반찬들의 차이를 두면서 따로 먹는 경우까지도 있지요. 적어도 다양한 까닭으로 어떤 방에 들어와도 어떻게든 '가족' 같이(별로 좋아하는 말이 아니지만...) 같이 먹고사는 분위기가 다수인데 좀 치사하다는 반응이 들리겠지만 정말 냉혹한 현실이지요.

 

그래서 이 징역살이에서 방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위하고자 일정 요일이 되면 '봉사원'은 방에서 돈 있는 이들에게 서로의 여력을 살피고 시기나 재고를 바라보면서 품목이나 개수를 똑 같이 정하면서 신청하는 '공동구매'를 하게 됩니다.

 

물론 마구 물품을 시킬 수는 있지만, 금액의 제한이 있고 이후의 시비도 날 수가 있어서 따로 장부를 작성하면서 똑같이 나누면서 적지요.

 

그렇더라도 재력이 있는 당사자의 의견이 중요하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구매를 할 수 없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이 감옥내의 심리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논리에 맞선다는 것이 솔직히 쉽지가 않기에 비록 각자의 마음속에 아깝다는 반응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하는 것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하기에 앞서 구매 신청을 할 때에도 당연히 구매 신청서에 제 이름을 넣어 적으면서 또 다른 사람이 몇몇이 그렇게 적은 신청서에 한꺼번에 손가락에 인주에 찍게 되는 것이지요. 비록 내 이름에 다른 사람의 지문을 찍혀진 것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지만 또 다른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 아니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타협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저의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것에는 서로 참 착잡함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기에 이 영치금 사용 문제는 이 징역살이에서 정말 민감한 문제이기에 저의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방 사람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어이없음과 비아냥거림, 심지어 같이 살수가 없으면서 '전방'(前房)을 요청하려고 할 정도로 냉랭함 그 자체이었어요.

 

특히 실제로 살림살이를 도맡았던 어른들 입장으로는 빈약한 급식에 대한 보충과 억제 당한 욕구의 충족으로서 구입하는 식품부터 최소한의 생필품까지 영치금을 통해 자비부담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돈이 있음에도 그까짓 무인을 찍지 않겠다고 돈을 쓰지 않겠다고 하니 절 같이 지내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제 나름대로의 사유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저로선 병역거부와 마찬가지이겠지만 비록 구속을 당하건만 절대 '범죄자'가 아니며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에 반박하는 보잘 것 없지만 소박한 양심에 따라 국가 권력에 불복하는 것 자체가 '비국민' 취급을 당하는 만큼 이 파시즘에 엇대어 버린 사람들에게 사실 이러한 말에 입 밖에 나오는 것은 그에 대한 예상된 반응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 이상의 폭력이 나올까봐 정말 두려웠어요.

 

그럼에도 그 비상식과 비이성이 가득 찬 이 사회에서 당연히 이 진리(?)를 설파하며 해독을 시켜 주어야 하건만 이 소심한 성격 탓인지 지금도 설득하지 못하는데 일년 전에는 어째 하겠습니까?

 

그래도 조금씩이지만 이런 제 심경을 약간씩 밝혀 주었지만 심지어 '지문날인 거부한다고 병역기피를 한다'라는 허황된 반응이 나오기까지 하였지요. 그동안 당연하게 지켜지는 한 것에 대하여 어느 누가 반동을 하니 재소자까지 주변까지 '튐'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지요.

 

그렇지만 은행업무이나 행정서류 신청까지 서명날인을 하면서 여기선 지문날인 만을 고수하는 것이 문제가 있냐고 말하더니 어느 정도는 먹혀 들어가기도 하였지요. 그럼에도 뒤늦게 이 방에 증인이 들어서면서 그 들의 원칙에도 반대하는 것이 없더라도 양심상 그렸더라면 이해하는 반응일 뿐, 그 냉소함은 끝내 당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봉사원은 전방까지 요청하려고 하였지만 다른 방에 가도 린치를 또 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어쩔 수 없이 받아주었지요. 그리면서 제가 기결수 방으로 가면서 그 분이 가지고 있었던 물품을 다 주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그 두 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런데 빌려준 속옷을 갚아야  한다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 다른 분이 면회를 하면서 방에 있는 다른 분 이름으로 차입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여서 어떻게든 갚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가끔씩 면회를 하려 구치소에 가면서 소시지나 과일 등을 차입해 주면서 방안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말을 하였는데 그 다음날에 환불 당하면서 돈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서 차마 못 먹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이 잘 먹었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차입 자체가 안 된다고 하니 제 눈앞에서 비추는 분노와 우울함이 가득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건 정말 한숨이 나오게 하더군요. 물론 제 자신의 고역은 어째 하겠습니까?

 

지금 당장 사야 할 것도 많은데 어차피 징역살이를 해야 하기에 이불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사야해서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말 한마디 없이 구속을 해야 하였던 저로선 또다시 대목을 박히게 하던 것에 어떠한 말로서 설명이나 변명이라도 할 자신이 없었지요.

 

그래서 재소자로서 이러한 처우에 침해한 만큼 당연히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해보겠다고 결심하면서 밖에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제가 직접 진정신청을 할 것이니 필요한 자료 좀 보내라고 요청을 하였는데, 이후 '다산인권센터' 쪽에서 알아서 진정을 하였지요.

 

또한 재미있는 사실은 다행히 옷가지 등의 생활용품이나 서적, 등기우편 등의 경우에는 처음엔 반입을 할 수가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좀 거시기하잖아'라는 담당자의 입처럼 저의 서명으로 본인확인을 하여서 어떻게든 반입을 해주었지요. 저로선 그 거시기하다라는 반응이 영치금 사용허용까지 이어질 것 원하였지만 끝내 그 문은 열리지 않았지요.

 

그렇지만 서명 날인을 하면서 '주민증' 있다고 하는데 뭐 대단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짓이냐라는 주위의 비아냥거리는 언행이란... 심지어 사동담당 직원이 날 '싸인맨'이라고 놀려 줄 정도이니까요.

 

그래서 저로선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걸 줄이려고 어느 날에 밖의 지인에게 비누나 편지지(봉투), 볼펜 등의 생필품을 보내주라고 하더니, 소포로 도착하여서 내 눈  앞에서 개봉을 하더니 자기들 규정을 보여주면서 납득할 수 없는 저에게 반입을 해주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답변만이 들렸어요.

 

그때 저로선 화가 영치금으로 뭐 생필품을 살 수 없다면 최소한 외부에라도 반입을 할 수 있겠냐라는 반박을 하며 분노하였고 상담을 요청하려고 하였지만, 지금은 혹시 행형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추측만이 남아 있지만, 다양한 취향과 체질과 상관없이 획일화되는 시스템은 정말 싫다는 건 어쩔 수밖에 없네요.

 

그 후 이러한 폭풍이 지나가면서 평상의 하루들이 지나갔고 8.15에는 컵라면과 부라보콘을 특식으로 주면서 꼼짝없이 보내다 저의 심리공판일인 8월 17일이 시나브로 다가오게 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