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3) 흙색이여 안녕. 그리고 Hi! Blue - 기결수 방으로 이동...

앞서 증인 한 분이 방을 옳긴 후 몇몇이 기타방에 들어 왔지요. 그 몇몇은 이후 '바다이야기'로 난리가 났지만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면서 그 걸로 밥벌이를 하는 분이 있었고 공익근무요원에 있다 2번째로 무단 결근을 하여 법정구속으로 들어온 이가 있었지요.

 

그리고 누군가 '병역거부권이 인정하면 징병체제가 무너진다'고 한 인간에게 한 소리를 하듯이 필리핀에서 몇 년동안 거주를 하였다가 그 때가 되어 자진귀국과 함께 징역살이를 선택한 여호와의 증인이 들어왔지요.

 

특히 성인오락실 사장님은 그 당시 수원지검 모 검사가 성인오락실과 조폭와는 연계성이 있을 거라고 잡아들었는데, 자신이 한나라당 당원이라고 하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인 저와 나름 사상 논쟁(?) - 별 다른 건 아니고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유무 논쟁 - 을 벌었졌죠.

 

그러다가 개천절도 지나더니 10월 4일 아침이 되더니 담당 직원이 절 '전방' 즉, 방을 옳길 준비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앞서 출역신청을 하였기에 나도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는 듯한 설렘과 함께 봉사원 등에서 준 물품과 많은 책들을 이불 속에 넣어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렸지요.

 

그 후 한 두 시간 후 담당 직원이 절 나오라고 하였고, 방 사람들과 해어짐의 손저음을 하면서 이 못난이에게 은혜를 주어서 고마움을 주며 두 달하고도 하루동안의 미결수는 끝난 채 짐을 들고 직원이 가라고 한 곳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 저와 몇몇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처음 들어올 때의 공간으로 갔고, 상하의를 벗은 다음 수번줄만 때내었지요. 그 다음 세탁을 안한 듯한 퍼런 상하의 뭉치를 주었고, 전 아무거나 집어서 입었고 직원의 설명을 하였는데 역시 면회 횟수의 제한을 알고는 있었으나 좀 아쉽긴 하더라고요.

 

약간의 시간이 지나 각자 살 방을 찾아갔고 저도 그 무거운 짐을 들고서 제가 살 방으로 갔는데 그 곳은 나동 8층 17방. 역시 앞에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가 있어서 어두침침한 분위기였어요.

 

방 앞에서 도착한 후 짐은 방안에 넣고 그 사동담당 직원과의 대면하면서 대화를 했고, 잠시 후 그 방에 들어오니 처음인 것 자체가 뭔가 움츠리게 하더라고요. 다행히 조폭인 듯한 분이 없었고 인원수도 날 제외하면 3명뿐이어서 분위기는 좋을 듯 싶었으나 역시 작아진 난 변함이 없었지요.

 

그 다음 방 사람들은 짐을 풀어서 방 규칙에 의거하여 제 위치에 차곡차곡 맞추었지요. 그리고 실질 봉사원과 명목상의 봉사원의 방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요. 그 중 핵심은 여기는 기결수 방이고 이감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하니 할 일은 하면서 편히 있으면 된다는 것이 기억이 나군요.

 

그런데 이방에선 왜 봉사원이 두 명이냐고요? 그 건 명목상의 봉사원 즉 소측에서 지정한 봉사원이 너무 오랫동안 하니까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고 다른 분에게 위임을 하였거든요. 사실 지도자라는 위치가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보이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중압감이 크잖아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넘겨 준 것이지요.

 

이후 저에게 할 예기가 있냐고 묻더니 전 당연하게 지문날인 문제로 영치금을 쓸 수가 없다는 걸 양해해달라고 말했지요. 그리더니 바로 봉사원이 직원 면담을 신청하는 등 그 싸늘함은 예상대로 이었지만 반응은 극악이었지요.

 

물론 그러한 불편에 대하여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받아줄 아량이라도 있겠으나 문제는 제한된 체제인 감옥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측에서 최소한의 생필품 이외에는 지급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나마 인간된 삶을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는데 저와 같은 불순분자(?)에게는 솔직히 도움이 안될 뿐이지요.

 

잠깐의 시간이 지나 그 봉사원은 철문에서 나왔고 이 다음 교대하면서 제가 나왔지요. 그리면서 그 직원은 역시 알아보는 듯한 말로서 오해가 있었다고 하면서 잘 있으라고 하군요. 그럼에도 이후 뒤늦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요구에는 인권위 진정 따위의 핑계로 기다리라는 답만이 들렸지요.

 

그래서 제 방으로 돌아왔는데 그 봉사원이 좋은 분이었는지 너그럽게 아니 어떻게든 대리는 듯이 나을 것 같거나 얼마 있으면 갈 사람이다라는 판단인 것 같이 받아 주었지요. 그 다음 오후에 두 분이 더 들어 왔으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좌충우돌한 하루는 끝났습니다.

 

그 다음날 기결수로서 처음 운동시간이 되었는데 그나마 햇빛이 들어와서 화사한 가동과는 달리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감돌은 건 물론이고 구성원도 다르다보니 너무 달랐지요. 그리고 세월라 내월라 그냥 내버러 두었던 시스템과 달리 역시 30분이란 시간를 끝가지 지키려는 듯해서 약간의 부적응이 들었지요.

 

그리고 그나마 편안한 나날을 보냈는데 다시 '막내'로 들어오니 인원수도 적어서 아침저녁으로 설거지를 하게 되어서 좀 적응이 안 되었고요. 그래도 앉아서 TV를 보는 것과 달리 누워서 이불피며 보는 건 좋았지요.

 

그럼에도 직원이 이런 행동에 대하여 뭐라고 터치하는데 그 때 그 봉사원이 반격을 해주었지요. 특히 이분은 저같이 미결수에 있다 기결수가 된 경우와 달리 모 교도소에 있다 구속 전에 있던 사건으로 검사가 기소하여 재판을 받으려 온 상황이었는데 징역말로는 '추가건이 떴다'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 징역살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알고 있었기에 직원과의 대응방법을 알고 있었고, 또한 국가인권위 진정에 대하여 자주 건수를 높여서 조사관에겐 악질적인 행동을 하였던 분이라 저와는 약간 코드가 맞은 듯 하였지요.

 

그러기에 다음 날 바로 출역 신청을 해주었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그 당시 취사장이라도 좋으니 여기에 남아 있고 싶다는 바램이 좀 강한 것 같았어요. 물론 취사장이 새벽부터 나와서 쉴 시간 없이 고강도 초저임금으로 일하기에 싫을 수 있지만 병역거부자이기에 이후에 어떻게든 좋은 자리로 갈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걸 믿었지요.

 

전 여기서 일하길 바라면서 하루들을 보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