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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년 10월 26일)학생회와 학생운동 골치아프시죠?

 

발제 1. 어느 전직 학생회장의 회고

발제 : (주)지구학생회컨설턴트 대표 우주


  이 글은 가상의 전직 학생회장의 회고입니다. 가상이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회고록이 말하고 있는 학생회의 현실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본 것들이란 점입니다.


 2002년 3월. 입학.


  나도 이제 대학생. 대학에는 학생회란 것이 있다는 것을 난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내가 대학에 와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바로 학생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다. 나는 반학생회가 배정되자마자 집행부 중에 하나인 사회부에 들어갔다.

  많은 집회를 다니게 되었고 선배, 동기들과의 토론이 계속되었다. 아, 새로운 세상!

  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발전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은 동기 60명 중에 사회부 3명뿐인 것만 같다. 학생운동 안하면 왕따 되던 시절은 80년대의 이야기였던 것인가!! 나는 상황파악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학생회는 다 투쟁하려고 만들어진 건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투쟁하는 사람들은 우리 학생회에 딱 4명이고 겨우겨우 집행부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것도 학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닌 전폭적인 무관심 속에서!! 윽....!! 이제 난 고민에 빠졌다. 선배들이야 취직하기에 바쁘니까 그렇다 쳐도, 왜 동기들마저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걸까?    


  오늘의 결론: 더 이상 내가 꿈꿔왔던 80년대의 ‘투쟁에올인학생회’는 현실에 없다. 지금 학생회는 학생들의 분노를 모아내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뒷받침해주는 곳으로 전락해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 자본가의 앞잡이 노무현을 지지하고 있다!


 2002년 말. 그리고 2003년 말.   


  그래, 그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도록 ‘대중운동’을 해보자!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총학생회 선거. 나는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학우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래서 난 나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려고 한다.

  …

  선거운동을 마쳤다. 이번 선거에는 다양한 정치를 가진 사람들이 선거에 출마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사람들, NGO가 대안이라고 하는 사람들, ‘비운동권’이라고 하면서 기존의 학생운동에 대한 온갖 왜곡과 반동적인 정책을 들고 나온 사람들까지. 그리고 선거를 나가지 않더라도 ‘유권자모임’, ‘여학생위원회’등에서 공약을 평가하는 등 각자의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학생들이 지향하고 있는 정치가 다름을 볼 수 있고 내 생각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때일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각 선본들은 자신들의 정치를 부각시켜 얘기하기 보다는 복지공약을 부각시켰고, 이는 유권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각 선본의 정치는 모른 채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 사건이다. 총학생회 선거 시기에는 한총련출신 후보라는 것을 숨겼던 것이다. 학우들은 그 선본이 한총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번에 당선된 선본은 ‘신자유주의분쇄’를 말하는 선본이었다. 음, 이런 선본이 당선될 정도면 고대생의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근데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세상을 긍정하고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실히 갖춰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대선에서는 노무현 찍고. 허허 이게 무슨 모순이람. 만약에 노사모가 학내에서 단체를 만들고 열심히 활동한다면 당선되기는 수월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다른 선본들이 당선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공약에 있어서도 정치활동 공약과 복지공약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선본이 출석체크와 참살이길 할인 등의 기능을 모은 카드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이었다. 전형적인 노동자 통제 수단과 불경기 수요확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의 결합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선본원 내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기 선본의 정치에 동의하고서 선거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는 선배라서 시작한 경우가 정말 많았다. 2003년 선거에서는 사실 어느 두 선본의 정책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하게 드러났다. 양쪽의 정치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경쟁적인 선거운동을 거치자 감정적으로 서로를 대하게 되었고, 이는 올해에 서로에 대해서 이유 없는 적개심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선거운동은 안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열사들의 투쟁을 학내에서 알려나가기로 했다. 사실,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은 열사들의 투쟁을 학교 내에서 열심히 알려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선거를 나갔다고 이 얘기를 못할 거 없으며, 선거를 안 나갔다고 못할 거 없다. 어떻게든 자기 현실에 맞춰서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 시기에 이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음...무엇이 ‘대중운동’이지?


  오늘의 교훈:

1. 선거운동은 정치활동이다. 한번 경험 삼아 해볼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이 시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2. 선거운동은 솔직해야 한다. 내가 한총련이면 한총련, 열린우리당이면 열린우리당, 그렇게 껄끄럽다면 단체이름을 말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정치를 솔직하게 얘기해야한다. 그리고 동의를 구해내야 한다. 복지공약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선거운동을 하는 목적이다.

 2003년. 드디어 학생회장.


  학생회장 임기가 시작되었다. 자,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시작해보자!

  요즘 내가 느끼는 건 아직도 학생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조합이잖아. 그런데 학생들의 조합에 학생들이 없다!? 적어도 총회를 하면 누구나 와야 하고, 선거를 하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하는 것 아니가? 그런데 학생총회에 학생이 없고, 학생회선거에 학생이 없다!

  더 신기한건, 이러다가도 고연전만 되면 벌떼같이 모여든단 말이다! 심지어는 고연전 축구 전반전 끝나고 총회를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기발하다.) 아아, 그런데 난 고연전에 반대하는데 학생회장이라 발 빼지도 못한다. 아..차라리 동아리에 있는 내 친구가 이런 준비도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변에 훨씬 많다. 난 왜 학생회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난 교육투쟁을 하면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물론, 교육투쟁은 하루에도 백 명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알려나갔으니 그나마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관심이 더 높을 거야.’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자발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 사안은 탄핵과 전쟁, 귀족노동자였다.

  하하하하. 자자! 이때다! 우리가 기다리던 절호의 췌안쓰! 이제 우리들이 탄핵은 부르주아 정치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권력다툼인 것을 알려나가고, 파병하는 것은 오직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귀족노동자는 없고 오직 귀족 자본가만 있다는 것을 알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똥물들이라는 점도 말해야 한다! 바쁘다 바뻐!

  아아. 그런데 학생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딱 3가지였다. 대자보 붙이기, 커뮤니티에 글올리기, 술자리에서 내 생각 말하기. 사실 학생회장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들이었다ㅠㅠ 내가 학생회장을 왜 한거야!! 하긴 학생회장이라고 하니 좀 더 잘 들어주기는 한다.

  음,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나의 정치를 말해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 그래그래 수요일마다 토론회를 열자. 지금 시작은 4명이지만 내년에 새내기도 받으면  점점 발전할거야. 그래, 이렇게 나의 생각을 알려나가자! 그렇게 발전하면 학회도 몇 개 더 생길 것이고, 그러면 앞으로 학생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이러한 학회들의 톱니바퀴를 맞춰주는 역할이 되겠네.


  오늘의 교훈: 학생들과 학생회가 맺고 있는 운명의 고리는 이미 끊어진지 오래다.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이해(利害)또한 전혀 같지 않다.

우리가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은 고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보론 1-1. 과반학생회, 그리고 단대 학생회/총학생회


발제 : 고난


 위기? 위기!


  흔히 학생회, 또는 학생운동의 위기라고 말한다. 물론 과반 학생회에도 이 말은 적용된다. 매년 과반 학생회는 건설되지만, 학생회 사업을 만들고 이끌어나갈 주체들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학생회 활동을 통한 인자 재생산은 너무나 힘들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들을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반 학생회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단대 학생회/총학생회와 차이점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과반 ‘학생회’에서만 희망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 과반의 상황에 따라, 활동가들은 학회나 소모임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를 말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과반 학생회의 틀거리가 남아있는 고대 상황에서, 과반학생회와 단대 학생회/총학생회와의 질적인 차이를 확인함으로써 그것의 유의미성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모여라! 모여라! 과반 동산으로.


  과 학생회와 단대/총학을 비교해봤을 때 가장 명확한 차이점은 바로 구성원들 간의 친밀성이다. 물론 학부제가 시행됨으로써 그 긴밀성은 많이 약해졌고, 많은 과반 학생회가 무너지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과반에서는 학생회를 꾸리고 그것을 통해 대중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 학생들은 대학생활을 과반(혹은 과방)에 기반해 시작하며, 과내의 학회나 소모임이나 동아리에 가입하며 ‘재미있는’ 나날을 보낸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가 FM(개인적으로 필자는 옳지 못한 방식이라 생각하지만)이다. 대다수의 신입생은 자신이 무슨 과반이며, 앞으로 이 과반 구성원인 선배, 동기들과 잘 지내보겠다고 소리지르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는 과반학생회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과반학생회가 공동체적 속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얼마 후면 치러질 과반별 학생회장 선거에서 대다수 선본은 ‘과반 문화의 복원’ 이나, ‘새로운 관계맺음을 위해’ 등을 모토로 내세우며 공동체로의 유대감을 견결하게 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신입생, 동기들과 함께 선본을 뛰면서, 활동가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치에 대해 풀어나가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동체적 유대감과 신뢰감을 기반으로 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흩어지는 걸까?


  반면, 단대/총학 선거의 경우 그들에게는 뭉쳐져 있는 공동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흩어져 있는 학생 대중이 존재할 뿐이다. 총학에 비해 단대의 경우 그것이 덜 하긴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힘든 단위가 단대부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애초에 단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선본을 꾸리며 그것을 토대로 활동을 해나간다. 이러한 활동을 벌여나가는 데 있어, 같은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는 사람들로서의 인간관계를 통하거나,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까라는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정치를 어떻게 대중들에게 알려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치를 명확히 학생들에게 알려내고, 그것에 동의하면 자신들을 뽑을 것을 설득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각 선본들은 자신의 정치를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내용으로 표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당황하고, 그들이 선본을 꾸렸던 정치적 의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오로지 수권만을 목적하는 부정직한 태도일 수 있으며, 말 그대로 학생대중을 수동화/대상화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사항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공동체적 속성이 강한 과반 학생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가담하는 학생들의 층은 다양하다. 아무런 정치적 고민도 없이 생활의 걱정도 없이 마치 고등학교 때 반장, 부반장을 하듯 조합적인 사업에만 매달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학생 사회에 투영해 상이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알려 나가는 노력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조합 사업만을 위한 틀로서 학생회를 사고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정치를 학생회를 잡기 위해 숨기는 일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어떤 학생회의 경우에라도 마찬가지이다. 덧붙이자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쉬고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과반 학생회의 경우와 그렇지 못한 단대/총학은 자신의 정치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발제 2. 학생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발제 : 녹테잎


 1. 들어가며


  여기 계신 학우 여러분 중에는 지금 학생회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학생운동’이라는 것도 고민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글을 쓴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혹 여러분이 학생회를 건설하고 기획하는데 있어 제 글이 참고자료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학생회를 준비하기 위한 저의 고민이 미숙하고 별로 깊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여기 계신 학우여러분들과 저의 고민을 나누고 함께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회에 대한 단상이나 그것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는 다들 이전 발제를 통해 확인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시기에 있어 학생회가 80-90년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학생회라는 것이 이정도로 남아있는 것도 고대 외에는 드문 것이 사실이고, 그 중에서도 90년대와 같은 모습으로 학생회가 구성되고 진행되는 곳도 많지 않습니다. (사실 학생회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과반의 학우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대에 일반적인 과반 -학생회란 틀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매년 집행부 할 사람 남기는 것도 겨우겨우 하는- 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지금의 대부분의(고대의) 학생회는 집행부 몇몇을 남기기도 힘들게 그럭저럭 돌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과반에서 정치적인 사업을 만들기조차 힘들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대해 너무 안타깝다고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학생사회라는 것은 전반적으로 그 전체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고, 지금에 학생회도 그러한 사회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집회가 매일같이 있었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강고한 투쟁이 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많이 일어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 투쟁에서 패배하였고, 그 후로는 대중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은 많이 줄었고, 실제 집회도 많이 줄었으니까요. 좋습니다. 80년대를 생각해 봅시다. 사실 학생회라는 공간은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대중투쟁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로는 어느 정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그러한 전선이 해체되었습니다. 이것이 학생운동이 쇠퇴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대학 내 구조조정에 일환으로 들어온 학부제가 과공동체라는 최소한의 문화까지도 위태위태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학생회=학생운동’라는 공식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학생회 공동체마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2.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처음에 길게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학생회라는 것이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과정을 통해 쇠퇴했고 사실 학생사회는 전체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말할 내용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있는 현실에서 시작하자”고. 현실과 학생회의 연관을 보지 않고 학생회를 이야기 하는 시도는 공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에 개입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옳은 자세이겠지요.

  그리고 하나 더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치. 즉 자신이 운동이란 것을 하는 활동가로서 과에서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학생회라는 것 자체를 물신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미있게 모여서 놀기 위한 공간이라면 다른 공간도 만들 수 있고, 활동가로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굳이 학생회일 필요가 없겠지요. 학회나 동아리 등 여러 방법을 통해서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지 지금 고대의 상황에서는 아직도 과학생회가 틀이라 하더라도 존재하고, 새로운 학회를 만드는 것보다, 있는 과 학생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고민을 푸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지요. 물론 과반 문화가 완전히 없어진 곳에서는 과를 복원하는 것보다 다른 공간을 통해 활동을 만나고 많은 학우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학생회는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이야기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공간입니다.


 3. 과반활동을 준비하는 자세


  과반활동을 하는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 가지는 과 활동에 헌신적으로 임하려는 자세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녹아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배치하려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의 활동가로서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위적인 부분일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임무를 소화하기 위해서도 헌신적으로 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우선적으로 활동가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책임감과 믿음을 주는 모습이 필요하고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에도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새터를 준비한다고 합시다. 여/남에 대한 성폭력문제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실천을 벌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새터 기획단에서부터 적극적으로 함께하면서 기획회의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새터를 가서 “반성폭력자치내규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겠죠. (쟤는 평소에는 암 것도 안하다 왜 저래? 운동권은 다 저래? 등등의 수 없는 비판들...)

  그리고 첫 번째 임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학생회에서 열의를 가지고 활동을 한다는 것은 집행부(혹은 과장)를 결의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학생회는 일종의 조합이기 때문에 친목이나 과학생회 싸이클에 따라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사업 역시 존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연전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런데 고연전을 하고 싶어 하는 학우들은 굉장히 많죠.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 그 학우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고연전에 대한 비판 등을 통해 과내에 고연전 반대 흐름을 키우고 고연전을 가지 않아야 할까요? 물론 역량이 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그런 역량이 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죠. 이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그래도 가기 싫다고 해서 안가면 학우들에게 무지하게 반감을 사겠죠?^^; 그렇다면 과 집부 혹은 과장으로서는 고연전을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실천들(지하철에서 응원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유인물로 돌리거나 하는 등)을 최대한으로 하면서 고연전을 학우들과 함께 가서 여러 실무를 해야 하겠지요. 하기 싫다 하여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고연전이 싫은 이유는 무진장 힘든 응원과,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정신 나가 보이는 행동들- 응원이나 FM등등- 인데,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이러한 것들에 대해 문제제기 조차 하지 못하겠지요. 혹 들어가기 싫은 회의가 있다 해도, 과에서 필요한 회의라고 하면 들어가야 할 경우도 있겠구요. 정치적 입장을 가진 활동가와 조합에서 활동하는 집부원의 역할에서는 서로 상치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서 그것을 마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역량에 따라 할 수 있는 실천을 최대한으로 하면서 그것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활동가로서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고 그러한 사업을 배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지금의 사회를 자본주의사회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이 사회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꺼떡하면 사람들이 생활고에 못이겨 죽고, 매일같이 짤리는 노동자들이 있고, 국적이 다르단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까지 몰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이 잘못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고, 또 실질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겠지요. 저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사람들이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들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저는 지금 학생입니다. 그러면 제가 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의무는 학생운동이겠지요? 그리고 제가 해야 하는 학생운동은 학우들과 고민을 나누면서 학우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도록 하는 것이고요. 이러한 제 입장을 알려나가고, 논의하는 일을 과내에서도 지속적으로 해야 하겠지요. 그 방법은 무지하게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공간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학생회는 몇몇 결의 높은 사람들이 붙잡고 있지 않으면, 굉장히 빠른 시간에 무너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한 해 한해 근근이 사업만 꾸리는 것도 힘들지요. 그렇기 때문에 학생회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간과, 사업의 틀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과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정기토론회를 열도록 한다. 우리 집행부에서는 매년 몇 월 달에 투쟁하는 노동자나 사회인사 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진행 한다 등등... 꽤나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성이란 것은 참 무섭습니다. 요즘 4·18에 참여하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매년 진행되고 왠지 당연히 뛰어야 할 것 같잖아요? 이런 식으로 이 맘 때쯤 되면 뭐 하겠구나 하는 식의 사업의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착되면 그 공간을 통해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지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2-3년 동안의 철저하고 현실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그 틀 내에서 헌신적인 참여와 기획을 통해 자신의 정치를 이야기 하고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겠지요. 학생회 전체적으로 사업을 배치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부서별로 사업을 배치시키는 것이 관성이 되기에는 좋을 것입니다.(예를 들면 학술부에서는 매달 한 번씩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열고 내부논의를 통해 신문을 발간하는 등의 것은 (식상하지만) 매우 좋은 방법이겠지요.) 물론 구체적인 방법은 창발적이고 다양하게 나올 수 있겠지요. 한 가지 명심할 것은 너무 무리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행부가 두 명 있는 과에서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토론회를 하고 매주 그에 관한 신문을 낼꺼야’라고 기획한다면 훌륭한 활동정신이기는 하지만 실행되기 힘들겠죠.


 4. 정리하며


  길게 썼던 제 글을 정리해야 될 것 같군요. 핵심적인 것만 정리하자면,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기획하자.’, ‘조합 활동가로서 헌신적으로 참여하자’, ‘지속적으로 갈 수 있는 사업을 만들자’ 뭐 이정도 되겠죠?

  다들 상황이 안 좋다 하여도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현실에 입각한 학생회 활동들 열심히 펼쳐 내봅시다!!!


보론 2-1. 학생회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


발제 : 김성렬


 0.들어가며


  학생회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학우들의 복지를 위한 공간? 아니면 새터, 대동제 주점, 고연전 참가 등 매 달 있는 달력사업을 학우들과 함께 하는 공간? 이런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 바로 현재 학생회에 대한 학우들의 인식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대중자치조합’이다. 대중자치조합이라면 말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확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학우들의 생각은 개개인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학생회라는 틀은 기본적으로 단일한 ‘정치’를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우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학생회에 대해 ‘대중자치조합’이라는 것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우들 즉 대중들이 모여 학생회 행사를 함께 만들고 진행하는 조합적 틀을 의미한다. 이런 학생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 혹은 단체들은 시각을 달리하기도 한다. 이제부터 학생회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다양한 담론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학생회가 노동조합인가?


  학생회에 대해 노동조합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렇다면 ’학생이 노동자와 똑같다고 말하는 건가?’하는 의문이 금방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학생을 노동자와 동일하게 바라보는 단체에서는 학생을 ‘사회적 노동자’라고 부르고자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더라도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모순에 처하듯이 학생 역시 이 체제에서 학생으로 살아가기에 고통 받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사회적으로 보면 노동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자본주의 체제인 남한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다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변혁의 길로 이끌 수 있는 계급은 어느 계급인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은 어느 새 희석된 채 모두가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이 사회적 노동자라고 주장하면서 수업에 대해 ‘수업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학생 대중의 이해가 다름을 사고하지 못한 것이다. 학생들 중에서 수업에 대해 미래의 사회진출에 있어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높은 학점을 받으려고 결코 강제적이지 않은 ‘능동적’으로 열심히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을 단일한 이해를 가진 대중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체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다양한 조류에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학원사회이며, 따라서 학생들의 정치적 의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학생을 사회적 노동자로 바라보는 경향에서는 학생회와 노동조합은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임금인상 등 경제적 요구를 주장하는 경제투쟁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 기반한 여러 사안에 대해 싸우는 정치투쟁으로의 상승이라는 논리가 학생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등록금인상 및 학내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교육투쟁(경제투쟁)을 바탕으로 하여 반전투쟁이라든지 노동자투쟁에 연대(정치투쟁)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앞서 언급했듯 아직 직접적인 생산관계에 위치하지 않은 학생을 무리하게 ‘사회적 노동자’라고 설정하는 그 자체에 이미 오류가 있으며, 따라서 학생대중의 이해는 단일하다는 전제 아래 노동조합처럼 학생회를 중심으로 운동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 역시 오류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조직’의 형식은 문제가 안 된다! 오직 운동만이!


  학생회에 대해 대중자치조합으로 바라보고 여러 자치단위와 더불어 하나의 의미있는 정치적 공간이라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각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오히려 바르게 분석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하지만 문제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이 왜 위기에 빠졌는지, 학생회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이다. 우선 이렇게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학생회가 학우들로부터 보편성을 상실하거나 붕괴해가고 있는 것은 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학생운동의 위기로 인해 학생회가 학우들로부터 보편성을 상실한 것이지 학생회가 학우들로부터 보편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학생운동의 위기가 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현재 학생운동의 위기는 어디까지나 융합의 위기일 따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은 바로 학생운동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이다. 과연 변화된 학생대중과의 융합의 위기인가? 그렇다면 다시 학생대중이 왜 변화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80년대의 서슬 퍼런 군사파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기에는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사실상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학원을 중심으로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었다. 따라서 학생대중들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단일한 행동을 할 수 있었고, 그 때 학생회란 학생대중들을 하나로 묶는 효율적인 틀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와서 어느 정도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화되고 강화되자, 더 이상 학원사회에서 단일한 정치적 행동을 벌일 수 있는 기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전체 사회의 정치적 조류에 따라 학생대중의 정치적 이해는 더욱더 선명하게 분화되어 갔다. 따라서 기존 학생운동의 방식이 학생회 중심이었다면 변화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에서는 학생운동의 위기를 학생대중과의 융합의 위기로 보는데, 이는 학원사회를 전체 사회에 맞물려 존재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학생대중의 이해를 바탕을 둔 운동이 학생운동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학생대중의 이해는 단일하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학생회에 대한 개입에 있어서 ‘조직’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운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운동이란 것이 정치적 방향성에 따른 일련의 실천 활동임을 고려해 볼 때, 대중자치조합으로서의 학생회에 대한 개입은 더욱더 조직적인 판단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럴 때에만 학생회 활동을 통해 조직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이 단체에서 바라보는 학생회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그러한 입장이 도출되는 과정은 상이한 입장 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모두가 행복한 학생평의회?


  위에서 언급한 두 단체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회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학생회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하며 ‘모두가 행복한 학생평의회’를 일각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학생평의회라는 말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학생평의회란 말 그대로 ‘총학생회-단대학생회-꽈학생회’로 이어지는 기존 학원사회 구조가 아닌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모두가 자신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자율과 공존’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말한다. 이러한 모습을 가진 학생평의회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생회에 대해 불필요하다는 불만을 가진 지금의 상황에 바람직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이다.

  그러나 학생평의회를 주장하는 단체에서는 학원사회를 전체 사회와 유리된 하나의 이상적인 ‘꼬뮌’으로 바라본다는 것에 우선 문제가 있다. 학원사회가 하나의 꼬뮌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야를 전체 사회로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원사회 그 자체로 확 좁게 만들며, 이 공간 자체가 절대시 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두 단체에 비해 이 단체에서는 학생대중의 이해가 단일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대중운동이란 학생대중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생대중들의 이해에 따라 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으로 결국 학원사회를 꼬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전제가 크게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학생회를 해체하고 학생평의회를 만들자는 주장은 그 동안 학생회라는 틀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긴 했지만 전체 사회와 맞물린 학원사회를 간과함으로써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라고 할 수 있다.


 4.나가며


  학생회에 대한 입장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입장 하나 하나가 다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세 입장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학생대중이 단일한 이해를 가졌다고 바라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학원사회에 안에서 학생대중의 이해를 바탕으로 운동을 만들어 가려는 것이다. 과연 학생운동이 학생대중의 보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학생들의 정치적 의식/이해 자체가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은 옳지 않다는 앞에서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방향의 학생운동이 진정 전체운동과 맞물리는 운동이 될 것인가? 이런 입장 아래 학생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우리는 새롭게 가질 수 있다. 이제 고민의 해결방안에 대한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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