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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노선과 역량: 생산양식 (1)」 『총명한 유물론』 제3집 가을호
사회구성체: 생산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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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국체 해부와 경제적 사회구성체 ||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의 일반 노선을 수립하는 데서 국가 취급 및 도출 문제는 최우선 과업이다. 이는, 국민 대중 개개인의 삶에서 직접적으로 전체적이고 또 공식적인 규제력이 국가로 출현한다는 데에 그 당위를 놓는다.
국민 대중이 국가의 전체적이고 직접적인 규제력을 공적인 것으로 마주함은 자연사(自然史)적 규정력을 띠는 가상이다: 그것은 국가를 사적인 의지, 사적인 감성에의 철의 규제자로; 특수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승리자와 패배자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여 총의(總意)로 표현되는 ‘이성(理性)’으로 또는 ‘실증’ 가능한 규약·약속·합의로서; 그리고 생산에서 개개인의 투쟁·적대적인 제 관계를 국가의 국가로서의 역량─소위 통합적이고 공통적인 기능에의 추상적 표상에서 가능한 것의 종(種)으로 전도하는 가상이다.
현상에서 본질은 은폐된다. “만약 사물의 현상형태와 본질이 직접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쓸모없어질 것이다. ─ alle Wissenschaft wäre überflüssig, wenn die Erscheinungsform und das Wesen der Dinge unmittelbar zusammenfielen.”1 누구라도 현상형태로서 국가의 고유한 기능을 국가를 이루는 또다른 현상형태로서 공포된 ‘권력의 주체’로 소급하는 즉시 그것은 국체(國體)이다. 국민 대중이 국체에 대해 직접 마주하는 것의 출발점은, 그것의 내적 한계, 〈시작〉과 〈끝〉이 아니라, 이미 성숙한 것으로서의 국가 기구, 그것의 공인된 인격화된 담지자, 그리고 이 담지자들의 행위를 규율한다고 표방되는 법전이다. 모든 감성적인 규제력의 당위·권능이 법전에 있다는 것과 법전의 교리주의(敎理主義)적 형식을 통해 국가 권능의 담지자인 ‘권력의 주체’의 표상은 국민 대중의 뇌리에 절대적이며 영원한 격과 지위를 누린다. 절대적인 권능은 타의 열등한 권능에 의해 침해될 수 없으며, 외려 그것을 침해할 정당한 능력을 지닌다. 국민 대중의 모든 삶이 국가라는, 단일하고 통합적인 매개로 집약되어 있다는 사정으로 인해; 국민 대중의 집결을 위한 강령적 요구의 시행도 현존하는 국가가 원용되어야 한다는 사정으로 인해─그것의 복잡다단함과 복합성이 무색하게 국가 문제는 사회주의 운동이 국민 대중 속에서 동의와 권위를 취하는 데서 으뜸으로 해소해야 할 과제가 된다. 그것은 또 정치-도덕적으로 가장 대중화·속류화되기 쉬운 문제이다. 예컨대 지구상 거의 모든 국가의 국민 대중은 설사 그 대중적인 발언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을지라도─일상적이고 사회적인 교류, 경제 활동, 법률 행위 등에서의 문젯거리를 참으로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땅, 조국의 문젯거리로 취급하고 있다. 국민 대중은 최소한 관념 속으로라도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국가와의 직접적 연속성 하 “국가의 ⋯ 시급한 과제”, “국가에 산적한 ⋯ 문젯거리들” 그리고 “ ⋯ 해결하기 위한 국가 개선의 필요성”에 관해 되뇔 수 있으며, 국가 경영에 대한 실망은 심지어 “이게 나라냐 ⋯ ”라는 말로 유행처럼 번져 있다. 특수한 도덕적 당위로서 다수 국민 대중의 열망과 사적 소유의 보증자로서 국가의 경영 메커니즘은 곧잘 유리되는데, 이로 인한 자연발생적 싫증은 국가의 한 요소·국가 관료·국가 시책을 향해 있으며, 이것들의 뿌리이자 유리의 뿌리인 소유 관계로서, 생산으로서 기초는 빗겨 간다. 그때문에 이 유리가 국가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을 야기하나, 그 적개심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의식인 경우는 드물다.
주어진 모순, 주어진 문제를 국가와의 직접적 연속성의 정신 속에서 해소하고자 했던 역사가 순전히 국민 대중만의 역사는 아니다. 수 세기에 달하는 역사에서 명멸해 온, 비상한 개혁 정신의 선구자들 또한 국체를 현존하는 모순의 최종적인 근거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개혁가들은 상투적으로 시대의 모순을 빈번히 ‘선량한 의지’에 따른 국가 기능이나 국법 원칙의 회복으로 해소하려 하면서, 이의 방해를 소수 부패한 자들의 삐뚤어진 심성으로, ‘판가름하기 좋게’ 인격화하였는데, 이는 역사적 고전 문헌상에서 숱하게 발견된다.
국민 대중과 개혁 정신의 소유자가 예외가 아니었듯, 통속 평론의 저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통속 평론은 이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에 만족하여, 특수한 당파나 정권의 정책, 개개 관료의 개인적 자질과 동기, 공인된 법조문의 추상 문언을 그 자체로 국가의 실체인 양 이야기하며 그 사고방식에 기름을 붓는다. 그것은 국가를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남긴 흔적에 잉크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사적 소유 자체와 현재의 모든 특수한 소유 관계는 은연중에 신성불가침 왕국으로 간주되며, 이 자연법칙으로 선언되어 고정된 소유 관계의 위력 행사에서 국가는 순전히 흥망성쇠의 유일한 징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벌써 여기에서 국가는 소유 관계를 자기의 한계로 가진다는 게 드러난다.
국민 대중이 삶을 근거 짓는 것의 최종적인 것을 국체 또는 국법에 놓는 이 사정으로 사회주의 운동 외에도, 개개 지배자든 지배자의 호주머니에 몸뚱이를 의탁한 지식 나팔수든 자존심 강한 전통적 지식인이든 상관없이, 거의 모든 평론이 국가 혹은 국체 문제를 취급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는 국가 문제에서 국민 대중이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데에도 그 목표가 있지만, 또한 그들 자신의 소외된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정치 지도자들과 평론은 통상 ‘대한민국’ 헌법에서 혹은 추상적인 선량한 열의의 표명에서 혹은 지난 역사의 ‘민족정신’으로서의 ‘국가 이념’과 국조(國祖)의 ‘건국 이념’에서─“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국체와 국가를 취급하는 정치적 견해의 당위를 구한다. 통속적인 평론과 정치적 발언은 이 모든 것의 잡동사니이며, 국가 정의(定義)는 국가의 소위 ‘요소설’과 고전적 목적론의 뒤범벅으로 대변된다. 헌법 정신, ‘민족정신’, ‘건국 이념’ 따위는 그 고도의 일반성과 추상성 덕분에 정치가들이 서로를 향한 명시적인 반대 의견을 던지는 데서 쌍방의 전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애국심’의 고취에서 자신의 위선을 은폐하려는 공동의 목적 의지가 그것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성적으로 국체의 내용을 규정하는 데서 쓸모없지만, 국체의 활동성의 한 양상이다. 왜냐하면 공허한 표어가 국가를 신화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 그러한 목적 의지는 특수한, 역사적인 사회적 복합체에 상응하는 소유 의지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발생·발전·사멸은 보편적 자기-규정 메커니즘이다─국가 경영은 국체 분석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경영의 합법칙성은 국가의 발생·발전·사멸의 제 조건의 한 계기를 이룬다. 다시 말해, 오직 국가의 보편적 자기-규정 메커니즘을 명징히 파악할 때라야 국가 경영의 비밀에의 해답을 취할 수 있다. 예컨대 일국의 내치(경기 부양·사회사업·재정·집행 등), 외국 무역, 전쟁 등의 합법칙성은 다수 국가의 총체로서 국가 일반의 발생·발전·사멸의 특수 계기이다. 총체성으로서 국가는 필경 그에 비해 최종 심급인 총체성의 한 부분일 터 이 최종 심급은 소유 관계와 생산 내부에서의 투쟁이다. 낡은 정치 지도자와 평론가는 자신이 국가에의 소외된 의식에 잠식된 만큼 역사법칙에 대한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한참 뒤처져 있으므로, 그들은 산재해 있는 국가 문제를 다루는 데서 무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고도로 발달한 SMK 하 사회주의 운동은 국가 독점적 규제 메커니즘에의 성공적인 통제, 즉 국가 경영의 예비로 국민 대중에게 성과를 내놓을 수 없다면 국민 대중을 한 깃발 아래로 모을 수 없는 엄중한 조건에 처해 있다.
국가 경영의 예비는 그만한 토양을─주체 역량과 권력 전취─요구하는바 사회주의 운동은 먼저 자신들이 발을 디딘 일국의 자기-규정성을 규명하고 이 성과물을 국민 대중에게 보급해야 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과제에서 〈디아마트〉는 국민 대중의 상식에 침투하여 그것을 급진화하는 데 그 목표를 설정한다. 그 첫술은 국가 취급 및 도출 문제와 한국의 경제적 사회구성체 규명을 동시적으로 해소하는 데 있다.
문건의 이 항목에서 〈디아마트〉는 공적이고 중립적인 외피를 쓴 국가의 최종 심급에 계급투쟁의 원리와 생산양식의 내부 동태가 도사리고 있음을 계통학적으로 간취하는 것을 일반 노선상 과제로 설정하며, 그것을 아래의 세부 항목으로 정리한다: ⅰ. 초역사적 국가 정의; ⅱ. 발생학적 연구 과제로서; 생명과정(Lebensprozess)으로서 국체; ⅲ. 국가 형식을 근거 짓는 것: 경제적 의지와 생산양식(Produktionsweise); ⅳ. 마르크스의 학문적 예증: 프랑스 1848년 혁명에서 국체 문제에 관하여; ⅴ. 경제적 사회구성체(ökonomische Gesellschaftsformation)의 출현; ⅵ. ‘자본 일반’의 필연적이고 내재적인 특수 계기의 하나로서 자본주의 국가; ⅶ. 독자적이고 즉자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 국가의 구성 요소.
§ 6.1 || 한 국체에 대해 이러저러한 규정을 짓는다는 것이란 특수한 국체를 대상화하여 그것의 참된 존재 양식을 정신의 관념물로 재현한다는 데에 그 출발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출발점에 들어섰을 때에 ‘한 국체’ 또는 ‘한 국가’라고 표현되는 이 대상은 더는 그것의 사전적 정의, 현실 운동의 발생학적 취급 없이 관념론적으로 소망화된 그것의 속성에의 ‘최상의 양식’과─대표적으로 고대 노예제 하 반동 귀족정치가였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했던 방식과 같은 그러한 것─‘국가가 국가이기 위한 것’으로는 조금의 학문적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는 집단”이라는, 국가에의 사전상의 정의2는 이 정의가 함유하는 그것─‘보편적-’이라고 취급되는 요소의 충족에 있어 하나의 가상적인 당위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경험적-감각적으로 확신하거나 지각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보편자인 일단의 유형의 영토·국민(=일정한 거주 인구)·주권의 재현을 영원불멸하는 표상으로 고양하는 정신은 이 요소들을 국가가 국가이기 위한 당위로 설정한다. 이 정신은 한번 영토, 국민, 주권의 실존을 ‘입증’(또는 ‘실증’)할 경험적인 것3을 외타적인 객체들로부터 감각적으로 확신하거나 지각하면 손쉽게 그것들을 국가의 이러저러한 불가분의 요소로 간주하고 범주화하여 국가를 정의하려 시도한다. 그것은 여하한 세 가지 요소에 ‘대외 관계 능력’(몬테비데오 협약) 혹은 이 협약이 정한 항의 ‘모호함’을 지적한 매튜 크레이븐(Matthew Craven)의 ‘독립’4이 추가되든가, 루돌프 키엘렌(Rudolf Kjellén)의 ‘자원 및 이것의 이용’과 ‘문화’가5 추가되든가 하는 방식으로 그 준거가 부정될 모든 표상을 제공하나, 그것은 국제법적인 요식 행위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법률적 해석에 유리한 요건을 구비해야겠으나, 그 요건이 충족된다면 국제법에서는 요소들의 감각적 현존이 법률적으로 지정된 요소─이것들의 오성적 현존으로 즉시 이행하며, 이 오성적으로 인정된 요소의 합은 국가이다. 그것은 지극히 동어반복적(“영토·국민·주권의 현존이 국가이고, 국가는 영토·국민·주권의 현존이다.”)이며, 오성의 본성대로 초역사적이다. 이 초역사적 관념은 부득이하게 한 개인이 어느 때부터 자신이 속해 있다는 영토 관념을 획득했는지, 어느 때부터 자신을 국민적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승인했는지, 어느 때부터 주권 있음과 주권 없음의 척도의 관념을 지녔는지를 발생학적으로 추적할 그 어떤 필요로부터도 자유롭다. 이것이 본래 오성 정신의 한계 내에 있는 국제법적인 ‘실증적’ 인정받음의 요체이다. 구 소련의 법학자 예브게니 파슈카니스(Evgeny Pashukani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한다: “당연히 인구·영토·경제·사회 없이는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가 존재하지 않던 발전단계에서도 이 모든 ‘요소’가 실존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비평대로, “국가의 구성 요소나 측면에 대한 이러한 모든 정의와 구분은 핵심적인 것, 즉 사회계급의 분할과 계급지배가 빠진 까닭에 공허한 개념들의 스콜라적 유희에 불과”하다.6 ‘요소’는 국가 목적을 ‘실증’하는 데 턱없이 연약하므로 실증주의적 ‘요소설’론자들은 국가 목적을 ‘요소’에─국가 정의─대한 이원론으로, 하지만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정의한다.
다른 경우에 국가 정의에 관한 범주화 작업의 목표는, 국가 문제를 취급함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서 이상적 당위 혹은 정치 윤리를 국가 그 자체에 들이는 데에 있다. 이 국법학자들은 순 국가 정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국가 정의의 범주화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정의가 목적의 기원이든가, 목적이 정의의 기원이다.7
어떠한 것의 진리의 견지에서 어떠한 것의 목적은 진리의 생명이다. 국가의 상대적 목표 발견에서 요구되는 것은 국가에의 이상의 구체적인 존재 방식들을 통해 국가를 정의하는 것, 즉 1. 허공에 뜬 국가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특수한 국가와의 통일물로서 국가 ‘일반’의; 2. 국가 내부의 모순이 국가의 보편과 특수를 규정하는 과정의; 3. 전체로서 국가 ‘일반’을 구성할 각 부분 요소의 행정(行程)과 그 부분 요소가 내재성의 원리에 의해 전체에 규제됨의 논리적 조작의 포괄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탐구 주제로 삼는다면 곧바로 추상적인 정의 혹은 목적은 자기의 한정성을 노정한다. 모든 국가가 상식적인 국가인 한에서 내재하는 작동 메커니즘들─국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운동 경향들, 국민경제, 국가 사이의 무력 행사, 공공연한 폭력의 근원을 ‘연역적’ 조작으로 통일해내기에는 이 ‘원상(原象)’은 턱없이 불충분하다.
신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이자 사회주의의 열렬한 반대자인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는 우익에서 목적론적 자연권을 그 ‘원상’으로 수호하는 데서 정점에 선 자라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사실과 가치가 절대적으로 이질적이라는 점이 사회과학에서 윤리적 중립성을 필연화”8한다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학설이 정치철학의 위기임을 경고하며, 이에 반대하였다.9 “만약 목적에 대한 참된 지식이 존재한다면, 그 지식은 자연스럽게 수단을 찾는 모든 과정을 이끌 것이다.”10 스트라우스의 견해에 의하면 정치철학의 본령은 국가와 정치에서 존재(Is)로서, 참된 진리로서, 초역사적인 것11으로서 선과 악을 정의하는 데에 있다.12 국가 윤리에 있어 그의 형이상학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최선의 정체(政體)’를 빌려오므로 국가라는 명명법 대신 폴리스라는 명명법을 선호하고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학설에 대한 주해에 의지하였는데, 이로써 그는 서구와 정치철학의 위기에서 서구적 정신과 정치철학을 복원하는 데 공헌하고13, “근대성의 첫 번째 물결에 의해 초래된 타락”14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15
“폴리스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 외 다른 것이 아니”므로 “시민 사회나 국가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과 동일하다.”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에 부합하는 평화로운 활동”이다.16 스트라우스에게 개개인의 능력차는 천성인데, 국가 정신·국가의 원리가 개개인의 원리에 상응한다는 사정에서 개개인 사이의 능력차는 폴리스의 불평등을 ‘존재’로서 옹호한다. 능력차가 천부적이므로 폴리스에서 불평등은 자연이다.17 그는 이같은 규범 및 윤리를 당위로 하여 정체의 본성이자 목적으로서, ‘국가’ 윤리로서 확증하고자 했다. 그는 개인의 덕성, 개인의 불평등한 자조력(自助力)에서 불평등의 천성화를 폴리스의 목적 규범으로 이상화하였으며, 근대기에 나약하고 소심한, 홉스적·로크적 “자기 보존”이 신성시되면서 이 규범이 상실되어 가는 것(“타락”)을 최초로 관통했던 니체를 저 고대 정신의 복원가로서 주목했다: 니체는 “삶에 대한 이론적 분석이 철저히 소수에게만 허용되는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하는 것, 즉 플라톤적인 ‘귀족적 환상(noble delusion)’의 개념을 복원하는 것”의 사명을 가진 자였다;18 그것은 니체에게 자연의 복원이었다. 그는 “ ⋯ 자연은 법칙적이라거나 자비로운 것으로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니체의 창조적 요구는 자신의 사회나 민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혁신해야 할 개인들에게 향했다.”19 스트라우스에게 “정체”란 “한 사회의 삶의 형태이자 삶의 양식이며 도덕적 취향이자 사회의 형태, 국가의 형태, 정부의 형태, 법의 정신”20인데 니체는 정체가 영원한, 혹독한 개인적 자기 개선으로서 삶의 양식의 연장이며, 그것이 정체의 ‘존재’·자연임을 관통하였던 것이다.
본성적인 삶의 양식을 인위적인 “합리적 해석”을 덧칠하는 것─정체에 관해서는 유기체로서 국가라든지 “중립적인” 법치 원리에서 연역된 국가라든지 계약 국가라든지 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정체의 ‘존재’로서 “존재 이유”를 사유하였던 방식과는 적대적이며, 그것은 근대적 타락의 산물이다: “헤겔의 요구 즉, 정치철학은 국가를 되어야 할 바로서의 국가로 해석한다거나 국가가 그러해야만 한다고 가르치지 말고 현재의 사실상의 국가를 본질적으로 합리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요구는 결과적으로 고대 정치철학의 존재 이유(raison d'etre)에 대한 거부에 해당된다.”21 이는 정체에 관한 그 ‘자연적 본성’의 관점에의 폴리스적 정치철학과 근대의 “타락”의 차이에서 유래한다: 자연관(自然觀)에서 그리스적 자유주의자(Greek liberal)와 현대 자유주의자(modern liberal)의 “근본적인 차이를 의도치 않게 드러내”22는 것은, 현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적-”인 데 반해, 그리스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연’은 “‘자의성’의 근거”─“이성적 동물로서 인간이 지닌 자연적 본성”─이며, “‘관습’ 또한 ‘자연’의 영역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관습을 수립하는 자의적 행위의 산물 그 자체를 결코 자연이 아니”10라는 데 있다. 스트라우스에게 근대적 “타락”은 정체에의 반(反)자연적인 것·인위적인 것을─국가에의 “합리적인” 해석─국가의 ‘자연’, 국가의 ‘실체적 진리’라고 곡해하는 것이다.
스트라우스에게 자연으로서 인간 본성은 초역사적인 것이므로 소위 “인간의 탁월성”의 예증으로서 “질서의 진보”를 대표하는 “역사적 과정”24은 용납될 수 없었다. 이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철학의 ‘보고(寶庫)’인 고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에 대한 그의 애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그가 “헤겔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적 혹은 진보적인 변형이라 규정”25한 역사학자 C. E. 보건(Vaughan)의 “독단적인” 역사해석에 대한 이의제기를 “다소 다르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독단주의의 가장 파멸적인 형태는 아마도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일 것이다. 만약 그 믿음이 옳다면 오늘날의 견해들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이전의 견해들보다 더 진리에 가까울 것이며, 그러한 결과 이전의 견해들에의 어떠한 열렬한 관심, 이전 사상가들의 교설을 자진해서 따르고자 하는 어떠한 진지한 마음, 현재의 선입관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어떠한 진지한 노력, 그리고 어떠한 진보도 발현할 수 없을 것이다.”26
정체에서 개개인 간 지배와 피지배가 그 덕성에 따라 명확하게 나뉘는데, ‘최선의 정체’란 바로 개개인의 삶의 양식, 도덕적 취향에 아무런 제약도 가해지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이 속에서 최선자(最善者)들의 힘의 연장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정체이다. 당연히 최선자의 힘의 연장이 사회의 보편적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최선자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최대로 증대하는 것조차 우연적이다: “고대의 저작은 인간 본성의 유약성이나 의존성 때문에 보편적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그들은 역사의 완성에 대해서, 따라서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꿈꾸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 본성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최고도로 가능할 수 있는 사회를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그러한 사회가 최선의 정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힘이 얼마나 한정된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최선의 정체의 실현은 우연에 달려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근대의 인간은 [이 고대적] 유토피아들에 불만을 품고 그것들을 비웃으면서 최선의 사회 질서의 실현을 보장해 줄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노력하여 왔다. 성공하기 위하여 아니면 자신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 있기 위하여 그는 인간의 목표 수준을 낮추어야 했다. 이러한 목표가 이루어지는 한 가지 형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으로 도덕적 덕성을 대체하거나 모든 사람으로부터의 인정에서 연유하는 만족으로 행복을 대체하는 것이었다.”27
계몽주의에 대한 스트라우스의 공격은 낭만주의에 대한 은밀한 옹호와 동전의 양면이다. 스트라우스는 “고대 정치철학으로의 회귀”를 요청28하면서,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투키디데스 저작 주해에서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규범으로의 회귀의 의도를 공공연하게 내비친다. 이 이념에서 낭만화된 국가(그가 ‘정체’, ‘폴리스’라고 명명하는 것)는 개인의 ‘자연적 본성’의 활력에의 방종이며, 이 활력을 국가 원리로 유비(정의)하는 데에 그의 낭만의 정수가 있다. 종종 스트라우스에게서 이 유비는 지배와 피지배를 원용29하여 활력의 전체로서 전체론적인 모습을 취하기도 하나, 지배적으로는 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원자적 개인의 ‘덕성’이나 ‘천부적 능력’의 모습을 취한다. 스트라우스의 학설에서 정체의 공적 권능은 국가적 작용으로서 통합적인 공적 기능의 모습을 띠지 않는다. 스트라우스의 신념은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자유주의적-개인적 도덕성의 주체일 수 있다는 상식에 호소하여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당위를 놓는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와 아테네의 전쟁』에 관하여(On Thucydides' War of the Peloponnesians and the Athenians)』에서 그는 스파르타의 호전적 결단력을 찬양하며, 이 당위를 관념적인 공적 권능으로 변용하여 국가의 대내외적 폭력을 “자연적 위계”로, “경외로운 것”으로 신성화한다.30
자유주의적 개인이 실체적으로는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고, 외양은 이 앙상블이 추상적 개인으로서 물화된 형상으로 나타나는 가상이며, ‘본성’도 그것의 산물이다. 스트라우스 자신은 국가에 명시적인 정의를 내리지 않으며, 외려 이 방식을 ‘역사주의’의 산물로서 배제하고 있음에도, 그의 추상은 교환 원리에서 원자화된 개인을 초역사적 자연이자 확신된 실체로 승화하며, 정체는 이 추상적 개인의 추상적 ‘본성’으로 유비─국가 정의─된다. 스트라우스에게 목적은 정의의 기원이다─추상적 개인의 합은 추상적 개인의 영혼의 표상으로 묘사되며, 이 표상은 폴리스적 규범─그가 폴리스의 목적이라고도 하는─이고 규범은 “정체”의 정의이다. 현실적인 소유 관계의 역사적 기원은 은폐되며 능력차는 절대적인 능력차로서, 천성으로 고정되는데, 이는 능력의 소유가 사적 소유에 근거 지어진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가 능력의 소유에 근거 지어진 것이라는 가상을 ‘존재’로 전도한다. 이 학설은 현상에의 가장 ‘정직한’ 묘사이며 동시에 본질에의 가장 왜곡된 묘사이다.
스트라우스가 현실적 국가의 가상으로서 도덕적 표상을 ‘존재’, ‘본성’, ‘자연’이라는 왜곡된 상으로 주조하였다면, 진보적인 신공화주의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은 현실적 국가의 가상을 그의 ‘이상적인’ 국가의 도덕적 표상의 가상으로 대신한다. 초역사성─전자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플라톤식 귀족정 및 스파르타)의, 후자는 고대 로마의 것을 길어온다.
페팃은 그의 특유의 이념인 ‘비지배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를 로마 공화정의 사례로부터 끌어오며 그것을 공화국의 ‘이상’을 정초하는데, 이 ‘이상’은 공화국의 당위이며, 그것은 기존 국가에서의 법률적 공권력에 의지한다. 그에 의하면 ‘비지배 자유’는 ‘사적 영역의 지배’의 철폐이다. 예컨대 “불간섭이 아닌 비지배에 관심이 있는 공화주의자들에게, 지배로부터 보호하려는 과세는 그 자체로 지배만큼─적어도 언뜻 보기에─그렇게 거의 나쁘거나 반대할 만한 게 아니다.”31 당연히 “그 과세는 세금을 부과받는 사람들이 비지배적 선택을 향유하는 영역을 제한할 것”인데, “왜냐하면 과세를 통해 그들은 어떤 자원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팃은 그것이 “지배 그 자체보다는 훨씬 덜한 침해”임을 이유로 공화주의자가 이 과세를 옹호해야 한다고 한다.32
‘사적 영역의 지배’는 아래의 “모든 지배의 관계” 중 하나에 속하는 권력으로 정의된다: “1.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2. 자의적으로; 3. 타인이 내릴 수 있는 특정 선택들에 대해서.”33 ‘비지배 자유’가 ‘사적 영역의 지배’의 철폐를 목적한다면 ‘비지배 자유’의 의지는 법률적 공권력 일반이 계약 조건에 의한 자본의 지배를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약의 당사자인 상품소유자의 소유 관계에서의 경제적 지위차는 계약상 쌍방의 선택권의 평등을 내용상 침해하는 지배로 현현하며, 계약 이행의 사회적 결과는 이 지배를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상’의 전제인 법률적 공권력이 한 분야에서 ‘비지배 자유’의 확실한 보증자로서 기능한다고 하더라도 주요하게는 법률적 공권력은 이 사적 지배의 보증자로서 기능하는 까닭에 그것은 대수술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페팃에 의하면 “우리는 비지배 자유의 이상이 사회주의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기대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는 공화주의의 이상과의 결합 위에서 배양되었다.”34
페팃은 현존하는 법률적 공권력을 ‘심의적 공화국(Deliberative republic)’으로 견제할 수 있으며, 이를 수단으로 “가스와 수도 공화주의(Gas and Water Republicanism)”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35 그는 특수한 의사결정제의 기적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찬사를 보낸다. 페팃에게 국가는 여러 목적을 표방하고 추구하는 행위자 또는 기관이다: “국가는 단순히 그 영역 내에서 관료들이 어떻게 업무를 수행해야 할지를 규정하는 비인격적인 규칙과 관행의 기구가 아니[라] ⋯ 다양한 목적을 표방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수단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유지되는 표상에 근거하여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행위자 또는 기관이다.”36 국가는 이 목적을 일관되게 제시하고 수호해야 하는 집단 행위자이다.37 목적은 숙의─협상으로 각자 받아들일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 즉 “수용 가능성 게임(acceptability game)”에 의해 규정되는데, 이 게임에서는 “사안이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며] ⋯ 당사자들은 집단적 선택의 영역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을 제안하거나 ⋯ 모든 이의 관점에서 유의미하다고 여겨질 만한 논거를 서로에게 제시해야 한다.”38 제도로서 심의─이의 제기 민주주의는 이 게임의 공적 창구이다.39 주어로서 국가의 정의는 술어로서 이상적인 국가의 보편자, 국가의 유(類)에서 선별된다.
현실적인 국가에서 ‘사적 영역의 지배’가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종당에 의사결정제는 그 내용상 단지 특수한 ‘사적 영역의 지배’임을 두말할 나위는 없을 것이다. 페팃에게서 숙의는─“심의적 공화국”─‘인민’과는 달리 피규정자로서 고려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국가는 그가 이상화하는 공화주의 정부와 이원적으로 놓여 있으며, ‘이상’으로서 국가 목적은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그에 반해 국가의 실재적 포텐츠는 전자이다. 그에게 현실적 국가의 진보는 현실적 국가의 모순의 지양이 아니라, 이원적으로 놓인 공화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숙의가 현실적 국가에서 치워내야 할 악덕의 자리를 대신함으로써 관철된다.
한 시대에서 재생산되는 도덕적 표상에 따라 정치적 속성을 자의적으로 나누고, 이 나누어진 정치적 속성을 눈에 보이는 국체 하나하나에 부가하는 방식은 부가하는 것과 부가되는 것 사이의 계통학적·발생학적 순서 및 일치에는 무관심한 것이므로 순전히 통속적으로 당위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나쁜 행동을 일삼는 아이에게 “그 행동을 하지 말 것인데, 왜냐하면 이 행동에는 이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권고하는 것과 같다. 실로 이 권고는, 요구되는 다른 제 조건으로서 그것, 즉 그 요소들의 내재적 비판이 완비되지 않는 한 아무런 효과도 없다. 왜냐하면 나쁜 행동은 그 아이에게 있어 외따로인 것·회수되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본질 발현에서의 차이 일반항이며; 나쁜 행동을 일삼음이 필시 그 아이에게 있어 특수한 규정의 의지적인 것을 강제하는 현실 조건의 발전 양식 상의 경과라면, 나쁜 행동은 이 경과에서 전사(前史) 추적40되는 각 계제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자신을 부정할 수 없고, 추상적인 권고는 보편적으로는 계제의 변화도, 그 변화를 유발하는 외적인 지성 포텐츠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는 항상 불완전하므로, 학문에 있어 무용지물이다. 진정한 정의는 사물 자체의 발전뿐이나, 이는 또한 더는 정의라고 할 수는 없다.”41 추상적인 원칙이나 가장 일반적인 진술에만 국한하는 것은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며, 결국 현실에 대한 왜곡된 그림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단순하고 추상적인 본질을 파악하는 단계는, 비록 필수적인 단계이긴 하지만, 현실을 정신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에서 단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42
§ 6.2 || 모든 직접적인 것으로서의 현상, 사물의 구체는 그것 그 현존하는 직접적인 것을 띠게 한 발생 및 그 직접적인 것을 반복하고 자기를 폐지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자기를 스스로 추동시키는, 발전하는 자기 증폭 양식·양상의 논리-역사적 순서를 요한다.43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의 발생 방식을, 즉 현상이 조건의 구체적 총체성에 뿌리를 둔 필연성으로 발생하는 규칙을 발견하는 것을, 현상의 발생 조건 자체를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44 대다수 과학적 탐구에서는 이 논리-역사적 순서를 확정함으로써 하나의 탐구 주제에 마침표를 찍는다. 분석되어야 할 논리-역사적 순서에서 그 범위 크기는 탐구 주제 및 탐구 기관의 특징에 따라 제각각이다.
한 국체, 한 국가에의 분석이 엄밀한 학문적 탐구 상에서의 규정 짓기와 연관된다면 그것들의 발생학적─순전히 표지되고 표적(標的)된 사물·주제의 논리학적 발생만을 취급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자기-조직화까지 취급하는─꼴에의 추적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제 한 국체에의 이러저러한 규정은 그 국체의 발생사뿐만 아니라, 그 국체의 생명과정이라 할 그것, 즉 반복적인 자기-재생산 시스템을 학문적으로 규명하는 데로 이행한다.
국체가 대상성을 띠는 한, 그 국체를 구성하는 (국가) 기구들로, 합리적 추상으로 분류된 분석 작업에 의해 분해될 수는 있다. 이 분해된 표상은 모든 개별적인 국체에서 상식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보편자’─공통자의 특징을 가진다. 이 추상된 기구들은 다시 분석으로, 기구라는 동일한 성격을 띠는 더 작은 추상된 사회과학적 ‘입자들’로 분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해 작업의 산물이 현실 역사에서는 더 큰 ‘덩어리’로서의 추상된 기구의 전사일 수도, 참된 보편성일 수도 없다. 만약 경험적으로, 모든 개별적인 국체의 하나하나를 구성하는 “충분히” 작은 공통된 ‘입자들’의 심리적·소재적 특질에서 국체의 완결된 상을 획득하려 한다면, 이 탐구는 필연적으로 바다 한가운데에 표류한 목선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개별적인 국가들의 표상으로 재현 가능한 공통된 특징이지만, 한갓 추상적인 공통자이다. 이것은 “그것들의 상호 연관, 상호작용의 구체적 본질을 ⋯ 표현하지 않을 것”이며, “바로 이것이 추상이 만들어내는 특징이다.”45
이에 반해 “변증법의 관점에서, 개념을 통한 사유의 대상이자 목표를 이루는 것은 바로 구체적 현상의 구체적 상호작용이다.”46 그리고 “자연에서든, 사회에서든, 혹은 의식에서든, 아무리 초보적인 것일지라도, 현실적인 상호작용의 어떤 경우이든, 필연적으로 구별된 것들의 동일성, 곧 단순한 동일성이 아니라 대립물들의 통일을 포함”47한다. “상호작용은 한 대상이 자기에게 주어진 특정한 본성을 다른 대상과의 상호관계 속에서만 실현하며, 이러한 관계 밖에서는 그러한 것으로서, 다시 말해 ‘이것’으로서, 특정하게 규정된 대상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48 국체를 구성하는 기구의 본질이란, 자기를 〈기구의 창조〉 또는 기구로 〈자체 부정〉한, 기구가 아닌 것의 〈부정의 부정〉 혹은 〈자기-규정〉에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분석에 대한 마르크스의 통찰에 빚을 져야 한다.
§ 6.3 ||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후대에 남긴 미완의 과제─국가 일반의 자기-규정의 총체 규명에 관한 예비 작업이 함유되어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저작에서 소유 일반은, 인간 자신의 자연으로서의 욕구와 분리될 수 없다고 썼다. 국가, 그리고 기구의 가상적 ‘기초’로서 법률, 그 외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물질적 생활양식에서 돋아나는 그 전 과정, 전 매개에의 마르크스적 해명을 이 강령적 문건에서 지면에 모두 할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인간 역사의 최초 무대에 서 있지는 않을지라도 경험적으로는 “역사의 최초 행위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을 제조하는 것, 곧 물질적인 삶 자체를 생산하는 것”49임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라도 먹지 못하면 불만을 느끼고, 또 안정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장기간 없으면 심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는 신체 활동 하나하나에서 소비되는 에너지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고, 도구로 만들어진 다양한 생산물을 손아귀에 넣는다는 것이 추가적인 욕구로서 미적이고 예술적인 욕구의 충족에서 필수 불가결함을 안다. 욕구의 끊임없는 충족, 이 충족을 위한 생산적 노력은 우리가 글의 서문에서 밝혔듯, 생산의 규모화를 이끌고, 이는 분업을 야기한다. 태초의 자연발생적 분업은 “가족 안에서 그리고 사회가 서로 대립하는 개별 가족들로 분열하는 것 속에서 생겨나는 노동 분업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가족의 노동 분업과 동시에 분배가,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과 생산물에 관해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 불평등한 분배가 생겨나며 또한 소유가 발생”50하는데, “그것이 소유의 최초 형식이었다.”51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는 노동 분업에 있어서도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차이를 가지며, 이 차이는 나아가 “가족 내에서의 노동 분업과 동시에 개별 개인이나 개별 가족의 이해와 서로 교류하는 개인 모두에 속하는 공동의 이해 사이에서 모순을 발생”케 한다. 이 모순은 점차 개개인에게 낯선 힘으로 자립화되어 개개인의 행위를 지배한다. 요컨대 “노동이 분화하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그에게 강제로 부여된 특정한 배타적인 활동 범위가 있게 도며, 그 누구도 이 범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서로에 대해 적대적인 집단으로서 가일층의 모순에 빠져들고, 이것이 계급의 지반이 되어, 계급투쟁을 발전시킨다. 이 적대적 양상은 서로에 대한 공방의 물심양면의 수단을 발달시킨다.52
따라서 우리가 이 물심양면의 수단, 예컨대 대표적으로 국가 내지 국체의 구체적인 것을 정신적으로 구현해내는 데서 필수 경로는, 국가의 이면에서 살아 숨 쉬는 경제적 공동체의 구조를 분석하여, 이 공동체의 생산력과 그것의 교류 형식인─벌써 재생산에서 요구되는 각각의 사회 행위의 기초로서 소유의 형식, 분배, 노동 관리, 생산의 조정상 지위와 권력 관계의 총체가 스며 들어가 있는─생산관계, 그리고 이를 요람으로 하며 동시에 생산의 대타존재인 총 의지의 감성적·대상적 실존 양식인 개별 이데올로기를 통일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필연적 조응 법칙 속에서 두 규정의 상호작용인 생산양식을 지반으로 개별 이데올로기가 쌓아지므로 전자는 구조에서 하층을, 후자는 구조에서 상층을 구성한다. 이 시스템 속에서만 국가가 생산관계의 자기 운동 속에서 상부구조라는 결과로 규정된 현상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 속에서만 국가에 관한 상기하였던 낮은 상이 해소된다. 하지만 국가에 관한 낮은 상의 구성 요소는 이 사회분석으로 절대적으로 퇴장하는 게 아니라 더 높은 상으로 재구조화된다. 국가에 관한 더 높은 상에서는 국가가 하부구조의 필연적 산물임이 그 생생한 역사적 도정과 함께 일련의 논리적인 상으로서 정련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산물이라는 이유로 인해, 그것은 또한 순전히 산물일 뿐만이 아니라 그 기원인 하부구조의 코나투스53의 필연적 계기라는 규정을 띤다는 것이 분석된다. 그리하여 국가의 구성 요소인 특수 목적의 폭력 기구, 행정기구, 사법기관, 입법집단 그리고 법률적 당위를 조건으로 하면서 독립적 외양을 띠는 국가적·준국가적 기구의 발생학과 참된, 즉자적인 존재 방식이 천유(闡幽)된다.
“한 국가의 전반적인 내부 체제 자체도 그 국가의 생산과 내외적인 교류의 발전단계에 의존한다.”54 “국가의 실질적인 기초는 ⋯ 물질적 삶과 또한 서로 제약하는 관계에 놓인 생산양식과 교류의 형식이다.”55 “국가는 지배계급의 의지를 통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물질적인 생활양식에서 출현하며, 이렇게 출현한 국가가 지배 의지라는 형태를 취한다.”56 우리는 한 국가를 구성하는 각 기구의 존립 근거를 최소한의 상식선에서 찾아낼 때, 그 기구를 관할하는 법률을 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법률은 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개개인 사이의 대립 속에서 다수의 지배자가 개인에의 사적 지배를 본질로 하는 “평균적 지배(Durchschnittsherrschaft)”57를 관철하는 수단이다. 예를 들어 “개인의 개인적인 권력은 여러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발전되는 생활의 조건에 의존”해야 하고 “다수의 사람[일정한 수의 지배자 혹은 지배자의 잠재태]이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이런 생활 조건이 지속해서 유지되는 것을 요구해야만 한다.”55 예를 들어 부르주아 법은 자본가계급의 의지에 의거, 경제적으로 미리 규정되고 정치적으로 강제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된 행위를 규율한다.59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사회계급의 경제적 생활 조건이 그 계급의 의지를 형성하며, 이 의지는 해당 계급의 국가 권력 기구를 통해 구속력 있는 법 규범으로 이행한다.”60 이제 시민 사회의 사적 의지는 공적 의지의 가상을 띤다. “실제 관계 아래 지배하는 개인은 특정한 물질적 관계를 통해 제약되는 국가 의지라는, 또는 법률이라는 보편적 표현을 부여해야 한다.”61
사적 소유가 지배하는 역사시대에서 법의 항상적 측면, 즉 그것이 구체적인 인간관계를 단호한 오성적 규칙에 쑤셔 박을 힘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법률이란 순전히 지배자 사이의 이러한 공통된 이해를 통해 제약된 의지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 제약된 의지의 근원으로서 의지는 경제적 의지이다.
“어떤 법률적 개념 구성이 비록 인위적이고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사법의 특히 재산법의 범위 내에 남아 있는 한 견고한 기반을 가진다”62는 것은 다수의 지배자 의지의 물질적 기초는 소유 관계이며, 그때문에 그의 의지는 소유 의지라는 점에서 근거 지어진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정부가 존재했다. 그곳에서 목격되는 군주제나 공화제로의 이행이나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의 이행 등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가 노예 소유자 국가였다는 근본 사실을 뒤흔들지는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 조직되었든, 강제력 행사 기구는 노예 소유주들의 소유였으며, 무력을 통해 노예에 대한 지배를 보장했고, 노예의 노동력과 인격을 처분하고 착취하며 그들에게 원하는 어떤 폭력 행위라도 가할 수 있는 노예 소유주의 권리를 보장했다.63
동양적 전제국가, 노예 소유자 국가 그리고 봉건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 일반의 특수한 형식인 부르주아 국체에 대해 파슈카니스는, 상품소유자의 상호관계에서 그가 정의한 ‘법형식’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관계의 기원을 발견한다:64 “어떠한 법철학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통상적인 분석은 법률관계를 특별한 관계, 즉 인간의 의지 관계 일반으로 구성한다. 여기에서의 사고는 사유 형태의 역사적 기원을 설명하지 않고 ‘발전 과정의 완성된 결과’로부터, 즉 ‘통상적인 사유 형태’로부터 출발”한다. “통상적인 사유 형태”─즉, 개인적인 상품 소유의 현존 일반이, 인간관계 일반의 전제인 개개인의 그 독자 존재에서 무한하게 절대적이고 현실적인 전제로─프롤레타리아는 노동력의 판매자로서, 부르주아는 노동력의 구매자이자 생산수단의 배타적 소유자로서─등장하면, 상품 소유 의지, 즉 상품 소유를 의욕하는 것이 관계하는 의지의 주인이 된다. 이 특수한 관계는 상품생산의 일정한 발달 속에서만 실존한다. 상품경제가 발달하면 교환 행위의 전제(독립된 소유자, 등가교환)가 모든 인간 교제의 자연형태가 되어 사회 전반을 각인한다: “상품경제의 발전에 비례하여 교환 행위의 자연적인 전제가 모든 인간적 교제의 자연형태가 되고, 이 교제들을 각인하는 데 반해 철학자의 머릿속에는 반대로 상업행위들을 단지 그것을 위해 영원한 성격을 취하는 일반적 형태의 특별한 경우로 나타난다.”32
상품 소유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상품교환은 원자화된 경제를 전제”66로 하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상품 소유의 그 크기에의 절대적인 척도의 성립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평등한’ 상호 교환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환은 구별·차이를 단일한 도량으로 환산하는 것인데, 교환이 개개인의 경제생활의 총체에서, 생존에서 필수 불가결한 규정이 되면, 개개인과 개인 간의 인간관계에서 단일 도량은 ‘자연필연성’으로서 등장하며, 필연성의 폭력은 폭력적 추상화의 규정을─물신화─획득한다. 예컨대,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자본가는 자신의 배타적 생산수단이 존재하며, 노동력을 구매한다. 구체적으로, 두 실존은 〈노동력밖에 없는 자〉와 〈생산수단을 가진 자〉라는 차이에 의해 자본주의 하 분배에서의 모든 악덕에의 경험적 차이를 가지지만, 법률적으로 그들은 동등한 교환자로서 ‘자유로운’ 계약 당사자라는 추상적 동일자로 왜곡된다. 물론 이는 하나의 단순한 가상으로서 폭력이므로 실재적인 가상이며, 그만큼 실제적인 힘, 물리력이다. “자본주의적 관계들에 대한 물신주의는 관찰자에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실제적 관계들이라는 현상들의 본질을 눈가림하는 한낱 주관적인 속임수가 아니다.”67
계몽주의 정치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사회계약론은 시민과 국가를 ‘평등한’ 교환자로서, 두 차이를 단일 척도 아래 두고자 한 것이며, 사회계약을 옹호하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부르주아 자연법론은 계약의 권리의 최종 준거로서,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판정’되는 소유 능력을 신성시하여 사회계약에 도덕적 당위를 부여했다.68 구체적인 인간으로서 교환자가 ‘평등’하지 않다면, 즉 추상적이고 형식적이지 않다면, 그가 구체적 현존이라면 모든 추상적 도량의 오성 기능은 그들을 규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적으로 고립된 경제 사이의 결합은 거래의 계약 체결로써 그때그때 유지”69되며, 이는 공적 권력, 바로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보증되는 등가교환의 형식을 띤다. 공적 권력에 의해 보증되는 등가교환이 하나의 폭력으로, 철의 법칙으로 출현하고 그에 합당한 물질적 외피가 주어졌을 때 그것은 ‘법형식’이다.70 ‘법형식’은 등가교환에 임하는 상품소유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 및 과정으로서 물상화의 최고 형식이다. ‘법형식’은 철의 진리로서 가상·외양이고, ‘법형식’이 자본주의 국가를 보증하는 한, 이 국가는 시민 사회 상품소유자들의 우상이다.
법은 그 본성상 특수자 사이의 등가교환 운동에서 단지 ‘평등한’ 척도일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71 이 유효성 유무의 판단은 시민 사회의 법률적 엘리트들의─그 다수가 공적 권능의 공공연한 우두머리, 대표자이기도 한─법적 해석에 의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슈카니스의 견해에 의하면 “계급지배를 위한 조직으로서의 그리고 대외 전쟁을 지휘하기 위한 조직으로서의 국가는 법적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명백한 합목적성의 원칙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소위 국가 이성이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 교환의 보증인으로서의 권력은 법의 용어로 표현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법으로, 그것도 순전히 법으로, 즉 추상적·객관적인 규범과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것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72 그러므로 “법률학적 국가이론”으로 국가의 모든 기능을 포괄할 수 없다.73
생산력과 소유 관계에 있어 가치를 본질 규정으로 하는 현실적·실천적 등가교환이 삶의 전 분야를 아우르지 못하는(소외의 생산적 조건이 미발달한) 전(前)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의─전제군주, 노예 소유자 그리고 봉건 지주─의지에 의거, 소유 관계의 수호에서 경제외적 강제에 의한 ‘직접적인’ 폭력의 보증자이자 실행자로 군림한다. 그에 반해 부르주아 국가에서 지배자의 소유 의지는 상기한 대로 상품교환을 매개로 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가상으로서, 시민 사회에서의 경제적인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 방식은 ‘공정하고 엄숙한’ 법률의 외피를 입었으며, 이는 시민 사회에서 개개인에게 물상화의 사회적 경과가 더욱더 실체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물론 예외적인 계급적 조건에 의해 자본주의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이 관철되기도 하나, 상시적으로는 시민 사회가 발달하여 등가교환과 ‘법형식’이 철칙으로서 더욱더 확증되면 될수록 그것은 제한된다.
§ 6.4 || 정치·역사 평론이 국체 분석과 동전의 양면처럼 운동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명백하다. 그리고 개개인의 국체 분석은, 표면적으로는 국가 운영의 향방과 국체의 속성을 에워싼 구상을 중심축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보다 심층적인 것은 도대체 실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문에 잘못된 정치 분석과 그에 수반하는 실천은 순전히 잘못된 구상을 만들게 한 미숙함, 즉 대개 판단 상 또는 감정상 미숙함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 이상은 없다고 쉬이 여겨진다. 동시에 종종 그것은 심정의 불순한 의도, 이기적인 동기에서 자란 것으로 여겨진다. 상기한 것에 의한다면, 여기서는 경제적 의지·이해관계에 따른 동기와 지성적 포텐츠의 일치가 문제이다. 본질 규정에 있어서 정치 분석은 정치 일반에 상응하는 정도로, 눈에 보이는 정치적 잡동사니에의 분석에서 생산 그 자체와 생산의 산물에의 소유 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관계와 이 관계의 이데올로기적 잡다의 현상형태에 관한 분석으로 소급된다. 19세기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그리고 독일 혁명에 대한 엥겔스의) 분석은 이 소급의 백미(白眉)이다.
《신라인신문》의 경제 평론에서 마르크스는 1830년 7월, 부르봉 가 왕정에서 오를레앙 가 왕정으로의 교체에서 1848년 혁명의 촉발, 그리고 이 혁명의 쇠퇴까지의 제 당파의 그 경제적 이해관계 상 기원을 추적하면서, 그들 사이의 투쟁과 동맹이 어찌하여 보나파르트주의 국가를 구성하였는가를 발견하였다. 분석의 출발점은 1848년 혁명이 그 수술칼을 들이댔던 7월 왕정이었다: “7월 혁명에서 자유주의적인 은행가 라피트는 자기 대부 오를레앙 공을 의기양양하게 시청으로 안내하면서, “이제부터는 은행가들이 지배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라피트는 혁명의 비밀을 무심코 드러낸 것이다. 루이 필립 시대에 프랑스를 지배했던 사람들은 프랑스 부르주아가 아니라 그들의 한 분파인 은행가, 대증권업자, 철도왕, 탄광·철광·삼림의 소유자, 이들과 결탁한 일부 지주, 즉 금융 귀족 등이었다. 이들이 왕위에 올랐으며 의회에서 법을 조작하고 내각을 비롯하여 전매청에 이르는 관직을 분배했다.”74 마르크스는 이 일파의 지배를 그가 본래의 “부르주아의 지배”라고 하였던 그것, 즉 “산업 부르주아의 지배”와 구별하였다. 이 정권에서 “본래의 산업 부르주아는 제도권 야당의 일부를 형성”했을 따름이다. “즉, 그들의 대표는 의회에서 단지 소수파를 차지할 뿐이었다.”32 이 당파는 오를레앙 가의 계급적 기초였던 금융 귀족의 독재가 점점 더 본격적으로 전개될수록, “산업 부르주아 스스로가 유혈이 낭자했던 1832년·1834년 1839년의 폭동 이후에 노동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가 공고해졌다고 생각할수록” 반정부적 입장을 점점 더 단호하게 표현하였다.76
7월 왕정의 지배자인 금융 귀족들과 왕족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투기에 있었다: “대체로 은행가 및 의회나 왕가에 있는 그들의 공모자들은 국가 신용의 불안정한 상태와 그들이 장악한 국가 기밀을 이용해 급격하고도 변칙적으로 국채 시세를 조작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다수의 소자본가는 파산하고 대투기꾼은 엄청나게 빠르게 축재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적자가 부르주아 지배층의 직접적인 이익으로 되었으므로 프랑스의 연간 총 수출액은 7억 5천만 프랑에도 못 미쳤던 데 반해, 루이 필립 통치 말기에 국가의 임시 지출은 나폴레옹 시대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해 연간 약 4억 프랑에 달했다.”77 철도 건설에서도 “지배계급은 국가 지출 일반과 국채를 이용해 사욕을 채운 것과 같은 방법을 ⋯ 이용”했다. “각료의 일부를 포함한 다수파 의원 모두가 바로 그 철도 건설에 주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우연히 밝혀졌는데, 의원들은 입법자로서 국가의 비용으로 철도 건설을 추진했던 것이다.”78 “7월 왕정은 프랑스 국민의 재산을 착취하는 일개 주식회사에 지나지 않았다.”32
여기서 마르크스는 “국가 신용의 불안정한 상태”가 “그들이 장악한 국가 기밀의 이용”과 결합하여 이 일파에게 막대한 이익을 흘러 들어갔다고 적고 있다. 국가 신용의 불안정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어디로 소급되는가? 그는 먼저 “예산의 균형, 국가 세입과 세출 간의 균형을 회복하지 않고서 국가 행정을 국민 생산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이는 국가 신용의 불안정의 모순을 끌어올린다고 이야기한다. 마르크스는 7월 왕정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 하 “국가가 ⋯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을 제출한다: 첫째는 “세출을 억제하는 것, 즉 정부 조직을 간소화하고 축소하며, 가능한 한 통치의 범위를 줄이고 가능한 한 소수의 인원을 고용하고 가능한 한 시민 사회와의 관계에 발을 조금 들여놓[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가 가장 부유한 계급에게 특별세를 부과함으로써 부채를 피하고 예산상 일시적이지만 당분간이라도 균형을 유지시키는 것”이다.80 “그런데 [7월 왕정은] 국가의 경비를 줄이지 않고, 즉 지배 체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많은 기관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그리고 세금 부과를 새롭게 조정하지 않고, 즉 상당한 양의 세금 부담을 상층 부르주아지의 어깨에 부과하지 않”고 있었다.77 당대 프랑스의 이 사회경제적 특징은 “국민 생산량이 국채에 비교가 안 될 만큼 낮고 국채가 투기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며 증권거래소는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가치 증식을 꾀하는 자본의 주요 투자 시장이 되는 그러한 나라”의 사정이다.82 반대로 프랑스에서 제조업 공장주의 경제적 의지는 어디에 놓여 있었는가? “그들의 이해는 말할 나위 없이 생산비의 감소, 따라서 생산에 투여되는 세금의 감소, 따라서 그 이자가 세금에 포함되는 국채의 감소, 결국 금융 귀족의 타도에 있다.”83 이제 마르크스는 이 운동의 자기 보존의 비밀을 프랑스에서 공업-부르주아적 생산의 미비에서 발견한다:
“영국에서─프랑스의 최대 공장주들도 영국의 경쟁자들에 비하면 소부르주아에 불과하다─는 실제로 은행과 증권거래소의 귀족을 상대로 하는 십자군 원정의 정점에서 코브던이나 브라이트 같은 공장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왜 그렇지 않은가? 영국에서는 공업이 지배적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농업이 지배적이다. 영국에서는 공업이 자유 무역을 필요로하나 프랑스에서는 보호 무역을 필요로 하며, 여타 독점들과 아울러 민족적 독점을 요구한다. 프랑스 공업은 프랑스의 생산을 지배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기업가들은 프랑스의 부르주아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들은 나머지 부르주아 분파들에 대항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영국인들처럼 운동을 이끌 수도 없으며 동시에 자기의 계급적 이익을 전면에 내세우지도 못한다. 그들은 혁명의 꼬리를 쫓아가고 자기 계급의 전체 이익과 대립되는 이익에 봉사할 수밖에 없다.”32
프랑스의 제조업-부르주아적 생산의 미비를 해명해줄 열쇠는 다양한 요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참된 보편자─사회경제적 모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경제사적으로, 농업이 경제의 주력을 도맡았던 프랑스에서 공업 부르주아가 지불해야 할, 입지에 비해 고수준인 토지 가격과 지대는 부르주아 생산의 진보를 가로막았다. 한편으로 프랑스에서 소규모 농업 생산을 구가하고 있었던 다수의 토지 소유자는 외부 세계와의 자유로운 무역이 몰고 올 충격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토지 이용의 난점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한 분할지 농가 경제에 있었다: “1789년 혁명에 의해 봉건적 채무에서 무상으로 자유로워진 제1세대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토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다음 세대는 그들의 반농노적 조상들이 지대, 십일조, 부역 등의 형태로 지불했던 것을 토지 가격의 형태로 지불했다. 한편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다른 한편으로 토지 분화가 가속될수록 분할지의 가격은 비싸졌다. 분할지가 소규모화되면서 분할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민이 그것을 직접 구매했든 공동 상속인들로부터 자본을 받았든 그가 자신의 분할지에 지불한 가격이 상승한 정도에 비례하여 농민의 부채, 즉 저당금은 반드시 증대한다. 토지를 담보로 한 부채의 명칭은 토지 저당, 즉 토지 전당표라 일컬어진다. 중세의 영지에 특권이 축적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의 분할지에는 저당권이 축적된다.”85 소규모 분할지 경제는 또한 분할지에 부가된 자본 규모의 협소함에 상응하는 정도로 그 시설 개선이 열악하다. 이때문에 “분화가 심화될수록 토지는 극히 빈약한 농기구와 함께 분할지 소유자의 유일한 자본이 되며, 토지에 자본을 투하하는 것은 더 어렵게 되고, 영농 기술의 진보를 이용하기 위한 토지·자금·교육이 부족해지며 토지 경작은 퇴보하게 된다.”86 인구 증가와 더불어 토지 분화가 가속화하는 만큼, 생산 도구인 토지는 더 비싸지고, 토지 생산성은 낮아진다. 그만큼 농업은 쇠퇴한다. 이 결과는 이제 다음 세대가 더 많은 부채를 가지게 되는 원인으로 된다. 새 세대는 “더 불리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하며 저당이 저당을 낳는다.” 농민은 자기 토지를 새 부채의 담보로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이제 “농민은 곧바로 고리대금에 말려들게 되며, 고리대금의 이자는 더욱 커진다.”87
마르크스는 이것을 자본의 집적과의 관련 하, 『자본론』에서 발생학적으로 분석하였다: “분할지 소유. 이 경우에 농민은 동시에 그의 기본생산수단이며, 그의 노동과 자본의 없어서는 안 될 투하 분야인 그의 땅의 자유로운 소유자이다. 이 형태에서는 어떠한 차지료도 지불되지 않으며, 따라서 지대는 잉여가치의 갈라진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 이 토지소유형태는 이전의 보다 낡은 토지소유형태에서와 마찬가지라 농촌 인구가 도시 인구에 비하여 숫적으로 현저히 더 많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일반이 지배한다 하더라도 그 발전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그때문에 다른 생산 부문들에서도 자본의 집적이 좁은 한계 내에서 움직이고 자본의 분산이 우세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88 ⋯ 토지 소유자로서의 그에 대하여 말한다면, 소유로 해서 당하는 제한은 없어지는데, 이 제한은 그것과 분리된 자본(노동도 포함하여)의 투하에 대한 장애로 됨으로써 자본과의 대립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 분할지 소유는 그 본성으로 해서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 사회적 노동형태, 자본의 사회적 집적, 대규모 축산, 과학을 더욱더 응용하는 것을 배제한다.89 ⋯ 토지 소유가 대부분 생산자의 생활 조건을 이루고 그들의 자본에 없어서는 안 될 투하 분야를 이루는 경우에는 토지 소유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능가하므로 땅값은 이자율과 관계없이 그리고 자주 이자율과 반비례하여 오른다. 이 경우 분할지로 팔리는 땅에 대해서는 큰 땅뙈기로 팔린 때보다 흔히 훨씬 높은 값을 받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작은 구매자의 수는 많고 큰 구매자의 수는 적기 때문이다. 이 모든 원인으로 해서 이 경우에는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땅값은 오른다. 이 경우에 농민이 땅을 사는 데 지출한 자본에서 빼내는 상대적으로 낮은 이윤에 대하여 다른 편에서는 농민 자신이 저당권자에게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높은 고리대적 이자율에 상응한다.90”
분할지 농가 경제는 소송 비용까지 증가시켰다. “이 소송 비용이라는 것은 일부는 프랑스 입법이 토지 소유에 들씌운 정규 절차 자체에서 야기되고 일부는 도처에서 분할지 간의 경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에서 야기되며 또 일부는 농민들의 소송열에서 기인”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분할지 농민은 토지에 더한 애착을 가지며, “이들의 소유욕은 관념적인 소유, 즉 소유권에 관한 광적인 주장에 제한되어 있다.”91 《신라인신문》의 경제 평론에서 인용된 1840년 프랑스 경제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토지에서의 총생산액은 52억 3,717만 8천 프랑에 달하지만, 이 총액에서 경작비는 토지 경작자의 소비를 포함해 35억 5,200만 프랑이나 된다. 나머지 순생산액은 16억 8,517만 8천 프랑인데, 그 가운데 5천만 프랑은 저당 차입금의 이자로, 1억 프랑은 재판소 관리들에게, 3억 5천만 프랑은 세금으로, 그리고 1억 7백만 프랑은 등기료·인지대·저당료 등으로 빠져나간다. 이 계산에는 당연히 저당권 이외의 고리대금이나 변호사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92
이것이 금융 귀족의 경제적 기초이며, 또 이것이 공업 자본의 확대재생산의 전제 조건을 박탈하는 데 있어 그 경제적 기초이다. 공업 자본의 강력한 밑바탕은 농업에서 유래할 수 없었으며, 도시권의 소규모 공업은 이토록 좁디좁은 국민 시장 속에서만 가치를 증식해야만 했다. 당대 프랑스 은행은 이 시기 파리를 중심으로 발권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운영 방식이 극히 보수적이었다. 그것은 단기 상업어음 할인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그것도 이미 신용이 검증된 대형 상사·금융가에게 우선 배분되었다.
당대 프랑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 특징은 상기한, 1830년대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 계급투쟁에서의 힘의 관계를 만들어냈다: 분할지 농가의 희생 속에서 금융 귀족 독재의 온존, 산업 부르주아의 경제적 토대의 미비 속에서 그들의 행보의 금융 귀족으로의 종속, 분산된 프롤레타리아 군중이 그것이다. 7월 왕정의 수구적인 선거권 제한 조치 등 국체의 성격 또한 이 계급 지도 속에서 규정되었다. 당연히 국체는 자신의 경제적 기초를 온존하는 제도적 힘이 되었는데, 이는 금융 귀족과 왕정 일원의 무책임한 국가 운영─국채 투기와 이를 보조하기 위한 고리대 및 은행 제도, 반대를 제압하기 위한 왕정 폭력 기구의 비대화로 특징 지어졌다.
1845-6년의 고사병과 흉작, 1847년의 물가 상승, 그리고 “영국의 전반적인 상업 및 산업 공황”은 오를레앙 가 정권에 대한 투쟁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오를레앙 가의 몰락이 프랑스에서 부르주아 공업의 진보는 아니었다. 이는 단지 그것의 미약한 전제 조건일 뿐이었다. 1848년 혁명에서 프랑스 산업 부르주아는 다시 한번 공화국의 반대자들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줘야만 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군중의 군대를 충용(充用)하게 할 그 어떠한 생산적 기초도 가지지 못했던 프랑스 부르주아의 한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프랑스의 산업은 대륙의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더 발전했으며 프랑스의 부르주아는 대륙 어느 나라의 부르주아보다 더 혁명적이다. 그런데 2월 혁명은 직접적으로 금융 귀족에 저항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러한 사실은 산업 부르주아가 프랑스를 지배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준다. 산업 부르주아는 현대적 산업이 모든 소유 관계를 자기에게 맞게 형성하는 곳에서만 지배할 수 있으며, 산업은 오직 세계 시장을 정복했을 때에만 이러한 힘을 획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의 경계는 현대 산업의 발전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산업은 대부분 국내 시장조차도 다소 수정된 수입금지제도를 통해서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순간에 파리에서 실질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진 수단 이상으로 전진한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각각 분산된 산업 중심지에 몰려 있으므로 압도적 다수의 농민과 소부르주아지 사이에 섞여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발전된 현대적 형태의 반자본 투쟁, 도약 시점에 이른 반자본 투쟁, 즉 산업 부르주아에 대항한 산업 임금노동자의 투쟁은 프랑스에서는 부분적인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은 2월 사건 이후에는 혁명의 전국적 내용을 제공하는 기능조차 훨씬 미약하게 수행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본의 부차적인 착취 양식에 대한 투쟁, 즉 고리대금과 저당물의 몰수에 대한 농민의 투쟁, 도매상인 은행가 공장주에 대한 소부르주아의 투쟁 등, 한마디로 말해 파산에 반대하는 투쟁이 아직 금융 귀족에 대항한 일반적 봉기에 가려 있었기 때문이다.”93
§ 6.5 || 하부구조의 동태를 살펴봄에서, 그것에 상응하여 그것과 마찬가지로 운동하는 법률적·제도적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일치로서 총체성, 즉 경제적 생산의 요소와 제반 이데올로기의 복합체, 사회경제적 자기-조직화가 경제적 사회구성체이다. 그것이 그것에 내재한 생산력의─인구, 도구, 노동의 양식, 생산물을 구성 요소로 하는─발전 양상 및 이 양상을 잇는 교류 형식의 총체, 즉 경제적 하부구조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면서, 이 위에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얹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은 경제적 사회구성체론의 가장 추상적이면서 일반적인 특징이다. 과정적인 것으로서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경제적 하부구조와 이를 기초로 하는 상부구조의 교호작용인데, 이를 통해 개개인의 구체성이라 할 총체는 ‘순수한’ 자연, 제1자연에서─대표적으로 유전자, 자연지리 등─사회적 존재로 지양되며, 그 변화는 욕구의 내용, 정주(定住) 양식, 인격 발달, 언어까지 포괄한다.94
이 개념의 맹아는 1840년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출현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 용어를 직접 사용한 저작은 1859년에 작성된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이다.95 이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자신 연구의 방법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내 연구는 국가 형태들과 같은 법률 제 관계는 그 자체로부터도, 인간 정신의 소위 일반적 발전으로부터도 파악될 수 없으며, 오히려 헤겔이 18세기의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선례에 따라 ‘부르주아 사회’라는 이름 아래 그 전체를 요약한 바 있는 물질적 생활 관계에 근거한다는 것,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의 해부학은 경제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 이르렀다.”96 이 방법에서 방법론적 보편자인 하부구조의 그 고유한 규정성은 “인간은 사회적 생산에서 그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수준에 조응하는 일정한, 필연적인,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제 관계─생산관계를 맺는” 데에 있다. “이 생산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며, 이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 토대에 조응한다.”97 이 경우 이 토대, 즉 우리가 하부구조라 부르는 것은 “인간의 ⋯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체를 조건 지운다.” 개개인에의 본질 규정에서도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그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 이 의식으로부터 판단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 의식을 물적 생활의 제 모순으로부터,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주어진 갈등으로부터 해명해야 한다.”32 근거 지어지는 것인 이 의식과 그것을 근거 짓는 것인 물적 토대의 총체, 그리고 이것이 교체되는 과정을 해명하면서 마르크스는 “사회구성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99 엥겔스에 의하면, “모든 역사는 새로이 연구되어야 하며, 다양한 사회구성체에 상응하는 정치적·사법적·미학적·철학적·종교적 등의 관점들을 그것들 자체로부터 도출하고자 시도하기에 앞서, 서로 다른 사회구성체의 존재 조건들이 개별적으로 조사되어야 한다.”100
“경제적 사회구성체야말로 주어진 시대의 사회적 조건 아래서 국가를 비롯한 여타의 공동체 형태로 조직되는 구체적인 여러 사회의 일반적인 본질규정태(本質規定態)가─반복되는 객관적인 표지─되는 것”이다.101 또한, 국체의 본질 규정을 파악한다는 것은, 하부구조의 상부구조에의 내재적 규정 관계 속에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특수 계기로 발생하는 그 국가적 작용력을, 한편으로 전자와 후자 사이의 반복되는 되먹임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국가 규정이 대표하는 계급적 폭력 작용은─법, 군대, 감옥, 공식적인 정신 조작 그리고 이것들을 관장하는 권력 행위 등─역사적으로 특수한, 즉 한 시대에서 우세한 생산관계의 코나투스적 발생 기관이다. 이것은 한 계급이 자신과 적대하는 타자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폭력 작용의 고도화 그 자체이다. 마찬가지로 국체는 자기 본디의 기능을─상기한 폭력 작용으로서 가해지는 국가의 활동자들─총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과 불균형 속에서 원활하게 하고자 생산관계에 부가되는 요소를 조정함으로써 그 기능의 활동 조건을 창조한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 국가에서 일반법적 수단을 원용하는 노동 조건의 개선102103, 사적 소유권 행사의 부분적 제한104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조정 요소는 각 시대의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따라 다르지만, 지배계급의 의지를 피지배계급의 역량 성장 속에서 우회적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의도에 의해 근거 지어진다는 점에서 경제적 의지는 규정적이다. 단, 이 과정에서 경제적 의지와 경제적 수단은 도대체 그 자신만으로는 이 근거 짓는 운동을 완결 지을 수 없다. 국가는 이 되먹임 과정의 필수 매개로서, 운동의 상대적 주체가 되므로 상부구조의 구성 요소에의 독립 연구가 요구된다. 즉, 국가기관─국가의 구성 요소의 개별 기능이 ‘야생’의 시민 사회를 규제하는 역작용의 보편적 메커니즘이 파악되어야 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특수 계기로 재편된 상으로서 국체는 결정 관계에서 근거 지어진 것과 근거하는 것 사이를 오고 간다. 이는 경제적 사회구성체가 그 자신의 운동을 완결 짓는 데서 외면적이고 즉자적인 자립소(自立素)로서 국가적 작용 및 여타 개별적인 이데올로기를 요구한다는 데서 유래한다. “사회구성체의 발전과 교체” 또한 “오직 개별 사회의 운동과 발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개별 사회와 분리된 자생적 과정으로서의 사회구성체의 연속은 역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순차적 이행의 법칙”에 관한 잘못된 표상, 즉 “사회구성체는 역사적 발전 속에서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호 교체되며, 국가(Staaten), 민족체(Völk) 그리고 민족(Nationen)은 이 과정의 단순 우연성에 불과하다는 잘못된 관념”105을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한 공동체에 대한 경제 분석을 함에서 그 공동체의 경제적 사회구성체를 규정하는 데 출발점을 두고, 이 규정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자기 재생산이 작동하는 한에서 성숙하는 경제 범주들의 역사적·논리적 절차를 탐구하는 학문을 사회경제학이라고 한다. 사회경제학에서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하나의 총체성인데, 이 총체성은 경제 범주들 사이의 질서, 설정된 목표이다. 1857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의 법칙을 고찰함에서 그 사회를 하나의 유기적 전체, 즉 하나의 총체로서 파악해야 한다─다시 말해 이를 연구하고 서술해야 한다─는 결정적 결론에 도달했다. 생산·분배·교환·소비는 동일한 것이 아니라 총체성 내부의 고리들, 다시 말해 통일성 내부의 차이들을 구성한다.106 이 총체성은 원시공산제, 동양적 전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그리고 미래 공산제로 구별된다. 이제 국가 일반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수한 생산양식의 자기-반성-조건자인 특수한 국가 형식이 문제인데, 특별히는 오늘날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근간이자 최후의 적대적 사회구성체인 자본주의가 이론적으로 조명되어야 한다.
§ 6.6 ||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들은 모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서 경제 범주들의 진정한 논리적 절차를 구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생산과정 일반의 역사적으로 규정된 하나의 형태”로서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내재적 동인(動因)에서 구해진다. 이 “사회적 생산과정은 인간 생활의 물질적 생존 조건의 생산과정인 동시에, 특수한 역사적-경제적 생산관계에서 진행되는 다음의 것들을 생산하며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1. “이 생산관계 자체”; 2. “따라서 또 이 과정의 담당자들”; 3. “그들의 물질적 생존 조건과 그들의 호상 관계”.107 재생산을 담당하는 궁극적인 규정, 사회적 관계인 자본은 적대적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타인 노동의 전유로부터 그 자신의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무한히 팽창하면서, 그 자신의 근거였던 타인 노동의 전유, 즉 착취의 조건을─그 발생사에서는 분할지 농민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자영농, 그리고 농노의 프롤레타리아화가 그것이며, 그 자본 자신이 성숙하여 구조-발생적으로 노동력을 판매해야지만 자신의 생활 수단을 획득할 수 있는 다량의 임금 ‘노예’를 창출하는 것이 그것이다─재생산한다. 자본의 생장하는 육체가 될 잉여가치의 절대적 양이 창출되는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이다. 경쟁으로 표지되는 잉여가치의 분배는 이 직접적 생산과정이 앞서 실존해야지만 현실적인 것이 된다. 비록 이 분배 원리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긴요하다 하더라도, 총 잉여가치나 총 잉여생산물을 초과하는 양은 결코 분배될 수 없다는 사실에서도 그렇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잉여가치의 분배는 “2차적 경제 활동”으로 규정해야만 한다.108 태생부터 사회적 존재인 자본이 주체가 되어 개조되는, 또 결과하는 자연은 자기 자신의 활동으로 변화하는 자연이 아니다. 남아 있던 본래적 자연, 제1자연으로 표지되는 물질적 포텐츠의 잔재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 고도의 생산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재생산 메커니즘 속에서 급속히 사회적 존재로서 물질적 포텐츠로 교체된다. 그러나 그 사회적 재생산은 스스로를 폐지하는 힘─자기 자신으로의 질곡으로서 적대적 모순도 길러낸다.109
자본에의 과학탐구에서 구해지는 경제 범주들의 진정한 관계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자기 자신을 확립하는, 풍부한 자기-복귀에서 추출되며, 이 자기-복귀가 그 역사시대의 총체성이다. 마르크스는 “비록 부르주아 사회라는 전체의 내부 구조와 개념적 위계를 파악해 들어가는 데서 그 초기 단계에 있었을지라도, 끊임없이 그 사회의 총체성을 포착하고자 노력했다.”110 하지만 마르크스가 구상한 이 경제 범주들이 마르크스의 손으로 국가에의 구체 분석의 범주들로 변혁되지는 못하였다. 본디 그것은 1858년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그가 밝힌 소위 ‘플랜’의 제4부를 구성할 것이었다.111 그의 작업에서 그것은 『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에서 최초로 제출112되는데, 마르크스는 그 대목에서 “시민 사회를 국가 형식으로 집약”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시민 사회의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고찰”32할 것을 국가 형식을 취급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모든 적대적 사회에서 계급 관계는 정치 투쟁, 국가 구조, 그리고 법질서의 영역으로 이어지며 자기 분화한다.114 6부 ‘플랜’에서 제4부는 여타 구성 요소와 동일하게, 제1부인 “거의 모든 사회형태에 속하지만, 위에서 진술한 의미[부르주아적 사회형태]에서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정”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가지며 또 이 출발점을 근거하는 계기이다. 그것은 생산적인 부르주아적 관계, 시민 사회가 시민 사회일 수 있게 하는 생산의 타자, 비생산적인 것이다. 『경제학 비판 요강』의 다른 노트에서는 “국가에서의 총괄”[제4부]에서 “국제 관계”[제5부]으로, “국제 관계”에서 “세계 시장”[제6부]으로 이행하는 이 구성이 등장115한다. 그러나 이 저작이 ‘플랜’ 6부 전체를 다룬 것은 아니었으며, 분석은 제1부 제1편 ‘자본 일반’에 한정되어 있었다.116 상품이 구현하는 생산관계가 “세계 시장”에 도달하면 “생산이 그것의 각 계기와 더불어 총체로 정립되지만, 동시에 모든 모순이 진행되게 되는 종결을 이룬다.” 그리고 “세계 시장은 다시 전체의 전제이자 이것의 담지자를 이룬다.”115 이 6부 ‘플랜’의 얼개는 그가 1843년에서 1857년까지 상품·화폐·자본 일반·경쟁·신용·주식 자본·세계 시장을 포괄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복합체를 분석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118 잉여가치론뿐만 아니라 여타 구체적 이론들을 포괄하는 6부 ‘플랜’의 전체 문제를 아우르는 일원론적 연구는, 『자본론』에서 도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현상과 과정을 ‘상품’으로부터 도출해내야 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경제라는 무한히 복잡한 대상을 단 하나의 뿌리(또는 ‘세포’)로부터 도출해내는 작업은, 분석의 초기 단계에서 그 세포(상품)에 대한 가장 단순한 모델을 수립할 것을 전제로 한다.119
마르크스는 1860년대 이후 일련의 경제학 저작에서 6부 ‘플랜’에의 완결된 이론적 해명에 당도하지는 못하였다. 마르크스는 1862년 12월 쿠겔만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자본론』이라는 표제의 저작에 대해 알리며, 이것이 자신의 ‘플랜’의 제1부 제1편인 「자본 일반」의 세 장을 다루는 것이라 한다.120 세 장은 I. “자본의 생산과정”; II. “자본의 유통과정”; 3. “양자의 통일 또는 자본과 이윤”이다. 1866년 10월의 서한에서는 ‘플랜’ 제1부 제1편의 수정하여 『자본론』을 3분책으로 나눠 출판할 것을 알리면서 제1권은 I. “자본의 생산과정”; II. “자본의 유통과정”을, 제2권은 III. “총 과정의 자태”를, 제3권은 IV. “이론의 역사에 관하여”로 메울 것임을 밝힌다.121 『자본론』은 a. ‘자본 일반’, 즉 1862년의 서한에서 밝힌 제1부 제1편 3장의 확장적 수정; b. 관념사인 부르주아 경제학의 역사; c. 6부 ‘플랜’에서 제1부의 제2편에서 제4편122, 제2부123 그리고 제3부까지 주제의 특정 요소의 논리적 절차의 기초 형태만을 포괄하고 있다. 『자본론』에서 c는 자기-완결적인 것·즉자적인 것으로 고양되어 있지는 않으나, ‘자본 일반’에 상응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자기 운동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형태의 계기로서, 상당한 비중으로 서술되어 있다. 정리하자면, 전반 3부를 구성할 것인 몇 요소가 논리적 절차로서, 자본의 자기 재생산에 필연적인 계기들의 그 기초 형태로서 운동하는 특수자로 고찰되며, 다만 이 특수자들의 독자적인 자기 운동의 계기들은 서술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확장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필수 매개 범주로 통합된다. 이것은 자본 자신의 본질에서 현상으로의 발출이다. 그에 반해 제4부에서 제6부의 구성 요소는 자본 운동의 역사적 예증으로서 서술될 뿐이다.
『자본론』에서 제1부의 제2편에서 제4편, 제2부 그리고 제3부까지 주제의 어떠한 요소 영역이 자본의 자기 재생산의 자기 계기로 편입되는가? 볼프강 얀(Wolfgang Jahn)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자본 일반’(1857-62년)은 1862-3년을 기점(『1861-3년 초고』)으로 경쟁의 두 가지 형식, 즉 부문 내 경쟁과 부문 간 경쟁124, 평균이윤과 생산가격125, 절대지대126 발견,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127, 신용의 기본 문제128, 노동력 가치의 현상형태로서 임금129과 관련된 연구 성과로 인해 더 포괄적인 것으로서 “자본에의 일반적 분석(allgemeinen Kapitalanalyse)”으로 지양되었으며130, 그로써 ‘자본 일반’이라는 표현은 사라지고, 위 요소들은 “자본에의 일반적 분석”의 자기 계기로 통합된다. 만프리트 뮐러(Manfred Müller)에 의하면 “1857년에서 1863년 사이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의 기본적이고 규정적인 관계로서 자본을 탐구하는데, 특히 전체 저작의 ‘정수’를 담고자 했던 ‘자본 일반’ 편의 문제를 다루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궁극적으로 자본에의 이 ‘단순한(einfache)’ 개념은 자본의 일반적 개념이라는─『자본론』에서 온전히 구현된 개념─구상(Konzeption des allgemeinen Begriffs vom Kapital) 속에서, 그리고 그 구상을 통해 교체되었다.”131 물론 ‘자본 일반’은 자본의 ‘현실적’ 운동(„reellen“ Bewegung der Kapitale)과 엄격히 분리되지만, 전자가 후자를 정립하는 관계 속에서 둘은 구체적 동일성, “다수의 자본 간 상호작용”으로서 “자본의 자기 규정”으로 묶인다.132
‘자본 일반’에 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 알베르트 코간(Albert Kogan)은 “『자본론』 저술 구상의 핵심 고리는 제1권의 첫 번째 편, 즉 “자본 일반”이라는 제목의 섹션”이며, “자본 일반은 모든 개별 자본의 기초가 되는 근본 토대”임을 승인한다.133 ‘자본 일반’은 가치론·잉여가치론을 포괄하는 영역으로서, 자본주의 일반 이론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잉여가치론의 틀 안에서 경쟁, 신용 및 기타 경제 범주가 오직 잉여가치의 관점에서 분석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들의 발생학적 기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때문에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집필할 때 6부 ‘플랜’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방법론적 구상을 토대로 삼았”으며, “내용 면에서 『자본론』은 그 계획 중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부분인 ‘자본 일반’을 실현한 결과물이다.”134 비탈리 비고츠키(Vitalily Vygodsky)와 알렉산데르 체푸렌코(Alexander Chepurenko)도 코간의 분석에 의거하여 “『자본론』에 나타나 있는 것은 ‘자본 일반’ 개념의 포기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변용된 형태이긴 하지만, 『자본론』의 구성과 『자본론』 및 『경제학 비판 요강』과 6부 플랜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완전히 그 의의를 유지하고 있는, 이 개념의 발전, 내용의 심화”135임을 인정한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현실에 존재하는 ‘자본 일반’은 역시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는 어떤 전체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전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 전체적인 것의 연구를 심화하여(사회적 총 자본의 재생산, 평균이윤의 형성 메커니즘, 이윤의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의 분할, 지대 형성 등의 분석을 통해), 그 여러 부분의 상호작용을 낳는, ‘자본 일반’의 새로운 규정을 고찰하고 있는 것”136이다. 이리나 안토노바(Irina Antonova)에 의하면 1858년 후에도 마르크스는 자본에의 연구로써 ‘자본 일반’의 구조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상당히 심화하였다.137 이 구상의 수정·보완은 본래 1857-8년 초고를 작성하던 시기에도 이루어졌으며, “‘자본 일반’은 자본의 ‘현실적’ 운동에 관한 규정과 결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이미 1857-8년의 초고에서도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138 이 ‘자본 일반’과 자본의 ‘현실적’ 운동을 서로 얽혀들게 한─‘자본 일반’의 확장으로서─요소는 이윤에 대한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이었다.10 착취와 연계되는 자본의 무한 축적 욕망, 즉 자본의 일반적 본성과 그 충족은 최종적으로는 이윤으로 실현되고, 이윤의 분배 속에서 유통의 본질이 드러났으며, 그것은 다수 자본이 상호 연결되게 하는 최종적인 규정이었다.140 1857년에서 1868년까지의 일련의 연구에서 이윤과 이윤의 분배는 잉여가치의 생산에 잠재된 현실적인 계기임이 분석되었으며, 약 10년 기간의 연구에서 저술된 초고들은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의 맥락에서 범주의 내밀한 연관의 파악 차원에서 구별된다.10 이때문에 안토노바는 “‘자본 일반’이라는 개념을 다른 자본 개념으로 교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이며]”142 ‘자본 일반’은 “『자본론』 최종판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한다.143
얀의 견해에 의하면 신용의 특수 문제와 독자적 경쟁론, 임노동의 특수 형태(임금의 다양한 운동, 노동시장 등), 토지 소유의 특수 형태가 『자본론』에는 함유되지 않은, 별도의 탐구 대상으로 남았다.144
『자본론』은 6부 ‘플랜’의 제1부 제1편의 ‘자본 일반’이 지양(얀) 혹은 확장(코간)된 것으로서 자본주의 생산관계 그 자신이 스스로를 증식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생성하는 제 계기를 완결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 범주[‘자본 일반’]는 임의의 자본에 고유한 추상적-일반적 특징 규정만이 아니라, “특수한 현실적 자본들로부터 구별된, 현실적 실존을 갖는” 구체적-보편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자본 일반의 현실적 현현은 사회적 총 자본이다.”135 『자본론』은 6부 ‘플랜’의 제1부 제2편에서 제4편, 제2부 그리고 제3부의 구성 요소들이 취급하는 듯한 외관을 띠고 있으나, 상기한 주제는 이 저작에서 독자적이고 즉자적인 범주로 서술되지 않는다.146 진실은, 지양 혹은 확장된 ‘자본 일반’으로서 자본주의의 일반적 구조의 자기 계기 연관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에 『자본론』 서술의 목표가 놓여 있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당초 제1부 제1편의 제목이었던 ‘자본 일반’은 자본주의 생산관계 일반을 총괄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뮐러에 연구에 의하면, 『자본론』에서 [6부 ‘플랜’의] 제1부 제1편 외 주제에 대한 분석은, “당초 구상했던 서술 구조와 비교해 볼 때, 그 경제적 관계의 ‘실질적’ 측면들은 다루어지지 않은 채 별도의 연구 과제로 미뤄져” 있었다. “이는 [『자본론』에서] 경쟁의 실제 역학에 대한 고찰이나 상업자본, 이자 낳는 자본, 토지 소유 그리고 임노동에 대한 상세한 분석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147
이 정신적 구조물에서 파슈카니스의 ‘법형식’의 근원인 등가교환의 추상화 폭력─물신화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재생산하는 피규정적 매개·계기의 하나임이 명백해진다. ‘법형식’은 가치형태의 전개에서 가장 고등한 사회적 의식의 하나로서 편입된다. 그 까닭에 시민 사회에서 국가의 발생학에서 국가는 그것의 주요한 기능인 등가교환의 최고 보증자의 자격으로서, 자신의 주요 특징의 근거를 가치형태의 전개에 놓게 되며,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피조물로 확정된다.
게오르기 바가투리야(Georgy Bagaturiya)와 비고츠키에 의하면, 6부 ‘플랜’에서 제3부까지는 생산관계 및 사회계급 구조에 대한 것에 해당하며, 제4부은 그에 이어지는 요소인 정치적 상부구조에 대한 것에 해당하고, 제5부와 제6부는 국제 관계 시스템에 대한 것에 해당한다. 6부 ‘플랜’은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생산력에서 사회적 의식의 형태로),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특수한 사회경제에서 국제 경제 관계로) 그리고 현재에서 미래로(비록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사 또한 고찰하였으나)” 상승해 가는 원칙에 따라 구조화되었다.148 또한 “마르크스가 이 전체 계획을 경제학 및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역사를 다루는 별도의 저작으로 보완하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의 해당 부분을 오직 『자본론』 제4권의 형태로만 실현했다.” 이 이론사 연구는 “구상과 실행 양면에서 이 마지막 부분은 사회 구조의 궁극적이고 최상위인 요소인 ‘사회적 의식 형태’에 정확히 부합한다.”10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이라는 이론적 이성의 견지에서, 바가투리야와 비고츠키의 견해는 6부 ‘플랜’이 자본의 탐구에 관한 마르크스의 구상에서 탄탄한 위상을 지녔던 것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전개하는 동안 세계 시장에서의 자본 운동을 의식적으로 추상했으며150, 이 점을 거듭 명시적으로 강조했다.151 『1861-3년 초고』 혹은 『자본론』을 6부 ‘플랜’의 폐기로 간주한다면, 『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에서부터 명확히 표명된, 생산양식과 상부구조의 구체적 동일성─경제적 사회구성체의 통일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야심 찬 방법론을 그의 저작들에 수미일관한 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 얀의 견해대로, 6부 ‘플랜’은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경제학 전체의 본질적이고도 구조적인 윤곽에 대한 고찰의 산물이며, 그 연구 대상 자체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토록 포괄적인 규모로 실현되지 못했을 뿐이다.152
§ 6.7 || 마르크스는 아직은 예비 작업이지만, 토지 소유·임노동·국가·외국 무역·세계 시장이라는 ‘부분’이 자본의 서술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수한 계기의 절차로 등장하며,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것으로서 운동하는지 추적해왔다. 얀은 각각의 다섯 가지 주제가 마르크스의 저작과 노트에서 어떻게 조사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시장”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자본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더 많은 잉여노동을 창출하려는 경향을 지니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교환 지점을 창출하려는 상보적 경향을 지닌다. 즉, ⋯ 근본적으로 자본에 기초한 생산─혹은 가치에 토대를 둔 생산양식 및 사회적 형태, 또는 그에 상응하는 생산양식─을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세계 시장을 창출하려는 경향은 자본이라는 개념 자체에 즉각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모든 한계는 극복되어야 할 장벽으로 나타난다.” 세계 시장에 관해 저작에서 다루어진 범주로는 식민지 확보 경향, 자본 팽창, 수출입, 국제 가치의 형성 및 그것이 국내 가치에 미치는 영향,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관계, 국제 분업, 국제 결제, 환율 그리고 운송 등이 있었다.153 특별히 부르주아 국가의 총체성에 관한 마르크스의 예비 작업만을 선별하자면 우리는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 상기한 『독일 이데올로기』154의 구절들, 『런던 노트(Londoner Hefte)』 그리고 『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탐독할 수 있다. 귄터 빌링(Günter Willing)에 의하면 『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마르크스는 국가의 “발생적 계기(genetische Moment des Staates)”, “기능적 계기(funktionales Moment)”, “형식(Form)”이라는, 그것의 세 가지 측면을 취급한다.155
발생적 계기: 명백히 시민 사회는 국가로 이행하여야 한다. 국가는 “시민 사회의 집약(Zusammenfassung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이다.10 『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마르크스는, 경제적 뿌리, 경제적 토대이며, 통합되지 않은, 즉 상호 적대 속에 놓인 제 계급 사이 투쟁의 장인 시민 사회가 그 자신을 재생산하는 전제 조건을 특히나 노동 규제와 화폐 영역에서 통합적으로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국가의 발생적 계기를 역사적으로 철저히 예증(例證)하고 있다. 물론 마르크스의 학설에서 그 ‘통합적인’ 부르주아 국가란 그 실체상 시민 사회에서 경제의 관제 고지를 거머쥔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의지를 초계급적이고 공적이며 중립적인 것, 즉 세계 이성으로서, 만인 공동의 인륜으로서 ‘고양’하기 위한 도구로서 특수한 폭력이다.
기능적 계기: 부르주아 국가는 인구의 다양한 계급·계층을 포괄하며, 정치적·경제적으로 세 가지의 주요한 사회계급을─자본가계급, 토지소유자계급, 노동계급─하나의 통일된 공식 공동체로 통합한다. 다양한 사회적 연관 형태가 개개인에게 자신의 사적 목적을 위한 단순 수단으로 출현하는 시민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요구 사항을 총체적으로 고려한다. 국가는 무엇보다도 입법이라는 고전적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 사회가 분할되어 있는 세 가지 주요 계급의 경제적 생존 조건의 재생산을 보장한다. 시민 사회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대면하는 형태가 바로 부르주아 국가였다.157 국가는 사회정책의 주체, 즉 시민 사회 자체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특수한 제도’로서 기능하는데, 이 경우에는 예를 들어 산업혁명기 빈곤 문제를 관리·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착취 계급 내부의 여러 파벌이 가진 특수 이익에 맞서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을 관철하기도 했다. 국가가 사회 위에 군림하는 듯한 가상은 비록 그것이 허구적일지라도 개개인의 실체적 관계에 대한 국가의 보편성을 창출한다.158
형식: 부르주아 국가는 법적으로 규율된 관계들의 망(網)으로서 혹은 법치국가(Rechtsstaat)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파악을 기초로 마르크스는 『경제학 비판 요강』 서문에서 행한 역사적-유물론적 분석을 통해, 경제를 의지의 발현이자 그 산물로─법적 형태로서─간주하는 관념론적 환상을 폭로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159
빌링에 의하면 『경제학 비판 요강』을 두 기획을─국가의 기능 요소 탐구 및 경제를 의지의 현상과 산물로 보는 관념론적 환상에의 폭로─바탕으로 아래의 다섯 가지의 복합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부르주아 국가의 경제적 기본 요소에 대한 비판을 구성할 수 있다:160 1. 소위 ‘비생산적’ 계급에 대한 분석─즉, 사회 재생산 과정과 국가에 있어 정치적 조정 기구, 사법부, 직접적인 물리력 및 억압 기구 내 사회 집단, 그리고 국가 지대 수취자가 갖는 중요성; 2.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서, 국가의 경제 활동 및 그에 상응하는 행정적 국가 구조의 출현에 대한 고찰. 이 이유에서 마르크스는 조세, 국가 부채, 공적 신용이라는 주제 영역을 논구하였다; 3. 국제 경제 토대와 관련된 국가 기능, 예를 들어 대외 관계에서의 국가: 식민지, 대외 무역, 환율, 국제 통화로서의 화폐; 4. 세계 시장과 공황. 1857년 11월, 마르크스는 대외 무역, 세계 시장, 공황에 관한 별도의 저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대신 이 주제를 ‘국가’라는 항목 아래 포괄적으로 다루기로 했다; 5. 인구, 그 구성 및 동태에 대한 고찰.
국체에 매개된 이 복합적인 주제들이 개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개개인들로부터 자립해 있으며, 개개인들을 자기 목적의 수단으로 하는 가치 증식, 자본의 확대재생산 일반에─자본의 순환 주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정을 포함하는─의해 정립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숙한 자본주의에서 ‘비생산적’ 관료 계급의 생존 조건은 국세와 지방세로써 마련되며, 이는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이 생산과정의 사회적 고정을 위해 전용된 고체화된 노동, “생산의 부대비용”이다. 세금이 생산과정 자신으로부터 일정량 충용되지 않는다면, 날로 성장하는 가치 증식을 보증할 목적으로 비대화된 ‘비생산적’ 관료 계급은 그 기능을 중단한다. 생산적 계급은 ‘비생산적’ 계급의 요람이다. 고전파의 시대에서 자본가의 이해에 기초해 있던 “A. 스미스에게 있어서도 비생산적 비용으로서 나타나며, 따라서 이것은 될 수 있는 대로 필요 불가결한 최소한으로 축소해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저렴한 것으로 되게 하여야 [했다.]”161 관료는 “사적 이해관계의 충돌과 국민적 이해관계의 충돌(정치가, 모든 법률가, 경찰관, 병사의 경우처럼)로 인하여 필요하게 [된 것]”32이며, 자신의 생활 수단을 박탈당할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 자신이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복무한다. ‘비생산적’ 관료 계급은 국가독점자본주의 하 전반적 위기 관리의 필요성 및 자본과 노동 사이 모순의 첨예화에 따라 자본가계급이 기꺼이 그들이 구현하는 강제력에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증대한 것에 상응한 정도로 성장한다;
국가 부채의 안정적 증가는 그것으로 인한 채권자의 가능한 이익을 이자 형식으로 국가가 현실적으로 보장하는 한에서 이루어지며, 이 보장은 공공 채권 발행에 요구되는 국가적-공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이 신뢰는 또한 국내 시장에서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자본의 운동에 의지한다. 증권은 사실상 장래의 생산에 대한 축적된 청구권, 권리증서에 지나지 않으며, 이 청구권, 권리증서의 화폐가치 또는 자본가치는 국채의 경우와 같이 아무런 자본도 표시하지 않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표시하는 실제적 자본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조절된다.163 국채는 실체적으로 장래의 생산이 총 이윤, 임금 그리고 지대에 대한 세입으로 매개되는 청구권이며, 따라서 현실적인 지불은 그 나라 총 자본의 확대재생산 메커니즘에서 가격 실현을 전제한다. 만약 국제적으로 자본이 성숙한 조건 하 개별적인 국가로서 국세 수입으로 전용되는 일정량의 죽은 노동이 없다면, 더이상의 자본 유입을 기대할 수 없다면, 그러므로 국가가 화폐제도에 있어 총 자본의 요구에 상응하는 매개자일 수 없다면, 국가는 그 특수한 증권을 위한 공적 신용의 주체일 수 없다. 이 경우 국채에의 만성적으로 낮은 수요로 인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이자는 천정부지로 늘어나며, 이는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보전과 관련하여 또다른 성질을─점증적으로 자본의 확대재생산에의 보조의 가능성을 축소하는─가지는 공공 부채를 규정한다. 국채의 이자 지급은 결국 조세를 통한 미래 잉여가치의 전유이므로, 그 나라 총 자본이 산출하는 잉여가치의 절대량과 성장률이 국채 상환능력의 물적 한계를 이룬다. 평균이윤의 견지에서는, 이윤율 저하 경향이 관철되어 생산적 재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과잉축적된 잉여자본이 존재한다면, 이 유휴 화폐자본이 안전한 이자수익을 좇아 국채 시장으로 몰리며, 신용 창구의 발달은 이에 기름을 붓는다. 이는 선진자본주의일수록 한 해에 생산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발행 잔액과 직결되는 국가 부채 규모가 크다는 사실164을 설명한다(외채 또한 국가 부채 규모의 변수이나,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협소한 영역만 차지한다). 이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이윤율을 좇아 끊임없이 운동하는 개별 자본의 경쟁 자태·추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은 이 국가적 의제자본의 판도를 규정한다. “국채라는 자본의 축적은 이미 명백히 된 바와 같이 세금 총액 중에서 일정한 액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의 채권자라는 계급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채무의 축적조차도 자본의 축적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용 제도에서 일어나는 왜곡이 가장 완전히 드러난다.”165 이는 자본의 지배한 세계에서 사회주의 세계를 제외한 영역에서 가치 증식이 강력하게 확립되지 않은 모든 국가의 자본 부양력과 고유 기능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어서 해외 국가로부터 부당한 조건의 신용 제공을 들이고, 극심한 부패에 시달리는 원인의 주요 고리이다. 자본의 국내적·국제적인 개별 운동은 부르주아 국가 기능 요소의 특징을 정립한다;
인구 동태 문제에 대하여는 마르크스166와 K. 카우츠키167의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가 성숙한 조건에서는 주로 도시와 농촌에서 자본의 유입에 따른 산업 인구의 국내적·국제적 대이동, 고정자본의 끊임없는 개선으로 인한 산업 인구의 상대적 과잉인구화와 관련된다. 물론 인구 변동은 오늘날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총 부문 간 자본 이동을 표지하는 국가 간 자본 이동의 불균형으로 인해 국제적인 규모로 야기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부르주아 국가에의 발본적 분석은 자본제 생산양식에서 가치 증식이 전개되는 데서 그 보편성과 특수성의 일치로 소급된다. 그 전개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식적’이고 ‘법률적인’ 강제력이 부르주아 국가이다. 그것은 시민 사회의 경제적 총체성이 진화하는 과정의 한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초점은 단순 “시민 사회의 총합”에만 맞춰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의 국가, 즉 조세 징수, 부채 발생, 재정 지출을 통한 경제 과정 개입, 대규모 비생산적 계층의 고용, 국고 관리, 보호무역주의를 통한 국내 산업 보호, 인프라 개발 등을 통해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서의 국가에도 맞춰진다.168
상기한 사회경제학적 통찰은 일반 노선 수립의 맥락 속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이 항목들은 일반 노선에서 각국의 특수성과 결합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실체적 측면과 현상적 측면을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수성이 현상으로 발출하는 다양한 현존 사례가 특수성의 실체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민족 민주 당파에 대한 강력한 억압에서 양심을 옥죄는 국가보안법의 존치는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이는 국가의 일반 요소는 아닌 점에서 특수성이나 자기 자신 특수성의 실체는 아니다. 의사결정의 후진성, 사법기관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사법 관료의 권위 악용 또한 그 양상이 각국마다 다르다 해야 할 것인데, 이 역시 특수성이지만, 그것의 실체는 아니다. 환율과 국제 통화의 노선상 논구도 기축통화국과 이러한 통화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나라 사이의 차이로 인해 특수성에 관한 질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특수한 현상들의 실체는 세계 시장에 참가하는 각각의 일국적 자본주의 확대재생산 메커니즘의 특수성 및 이 특수자 사이의 경쟁으로 돌출되는 세계 자본주의 질서상에서 각국이 분배받은 국제 경제적 지위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일반 노선의 수립자들에게는 한국적 확대재생산 메커니즘의 보편성과 특수성 및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 그것의 국제 경제적 지위의 파악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2026년 10월 1일
- K. Marx, 『자본론』, 제III권 (2), F. Engels 편, 서울: 백의, 1989, 1000-1.

- 이는 19세기 말 독일의 법 실증주의자이자 공법학자인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의 『일반국가학(Allgemeine Staatslehre)』에서 제출된 소위 ‘국가의 3요소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만, 그는 ‘주권’ 대신 ‘통치 권력’을 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G. Jellinek, Allgemeine Staatslehre, 3. Aufl, Berlin: O. Häring, 1914, 394 ff.를 참조하라.

- 따라서 국가에 관한 다(多)요소설이 경험론적 전통에 뿌리내린 법 실증주의 학파의 단골 메뉴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M. Craven & Rose Parfitt, “Statehood, Self-Determination, and Recognition”, International Law, ed. M. D. Eva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206 ff.

- R. Kjellén, Der Staat als Lebensform, 2. Aufl, Leipzig: S. Hirzel, 1917, 42 ff.

- Y. B. Pashukanis, “The Marxist Theory of State and Law”, Pashukanis: Selected Writings on Marxism and Law, tran. P. B. Maggs, London: Academic Press, 1980, 276.

- 그 고전적인 예는 플라톤의 『정체』(Plation, Politeia, 369b-c, 370a-c, 427e ff, 462a-b.)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Aristoteles, Politika, 1252a1-7, 1274b-1275b.)이다.

- L. Strauss, Natural Right and History, Chicago &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3, 40.

- Ibid., 41.

- Ibid.

- 그는 초역사성이 역사의 진보라는 이념에서도 요지부동한 채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단언하였다. 그는 이 ‘투쟁’에서도 니체의 공적을 빼놓지 않았다: “급진적 역사주의자는 역사주의적 명제가 지닌 초역사적 성격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역사 세계‘나 ‘문화’에 대한 이론적 혹은 객관적 분석의─그 자체로 초역사적 성격을 띠게 될 분석─가능성을 부정한다.” 이 이념에의 “부정은 이론적 관점을 표방했던 19세기 역사주의에 대한 니체의 공격에 의해 결정적으로 준비되었다.”(Ibid., 26.)

- Ibid., 41 ff.

- L. Strauss, “The Crisis of Our Time”, The Predicament of Modern Politics, Detroit: U of Detroit P, 1964, 41 ff.; “Crisis Of Political Philosophy”, Ibid., 91-2.

- 이 타락은 폴리스의 이상, 폴리스적 규범을 망각한 것이다. 스트라우스에 견해에 의하면 이는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가 추동하였다. 이 “타락”은 두 번째 물결에서 칸트와 헤겔이 계승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L. Strauss,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양승태 역, 서울: 아카넷, 2002, 69 ff.을 참조하라.

- “The Crisis of Our Time”, The Predicament of Modern Politics, 1964, 50 ff.

- Natural Right and History, 1953, 143.

- Ibid., 135.

- Ibid., 26.

-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2002, 75.

- 같은 책, 45.

- 같은 책, 121.

- L. Strauss, “The Liberalism of Classical Political Philosophy”, The Review of Metaphysics, 12 (3), 1959: 437.

- Ibid.

-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2002, 90.

- 같은 책, 377.

- 같은 책, 379.

- 같은 책, 186.

- “The Crisis of Our Time”, The Predicament of Modern Politics, 1964, 54.

- 그에게 지배는 최선자에 대한 무지몽매한 대중의 지배일 수도 있고, 무지몽매한 대중에 대한 최선자의 지배일 수도 있다.

- L. Strauss, “On Thucydides' War of the Peloponnesians and the Athenians”, City and Man, Chicago: Rand McNally, 1964, 139 ff, 189-90.

- P. N. Pettit, 『신공화주의』, 곽준혁 역, 파주: 나남, 2012, 285.

- 같은 책.

- 같은 책, 127.

- 같은 책, 273.

- 같은 책, 347 ff.

- P. N. Pettit, On the People's Terms: A Republican Theory and Model of Democrac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133.

- Ibid., 75-6.

- Ibid., 253.

- Ibid., 259-60.

- 여기서의 전사 추적은 단순히 역사적인 것만이 아니라 논리적인 것을 뜻한다. 이에 관한 것은 한동백 「역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V. A. Vazyulin의 학설을 중심으로」, 『총명한 유물론』, 1/가을, 2024.를 참조하라.

- F. Engels, „Anti-Dühring“, MEW, Bd. 20, Berlin: Dietz-Verlag, 1975, 578.

- G. Stiehler, „Die Beziehung von Sein und Bewußtsein konkret fasse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27 (1), 1979: 96.

- V. A. Vazyulin, „Entwicklung systematisch denke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53 (2), 2005: 215.

- E. V. Il'enkov, Dialectics of the Abstract & the Concrete in Marx’s Capital, tran. S. Kuzyakov, Moskva: Progress Publishers, 1982, 177.

- Ibid., 175.

- Ibid., 176.

- Ibid., 90-1.

- Ibid., 91.

- K. Marx & F.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Bd. 3, Berlin: Dietz-Verlag, 1978, 28.;『독일 이데올로기』, 제1권, 이병창 역, 서울: 먼빛으로, 2019, 63.

- Ibid., 31.; 같은 책, 71.

- Ibid., 31-2.; 같은 책.

- Ibid., 32-3.; 같은 책, 71-2.

- 모든 사물이나 양상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자기 자신을 확장하려는 본능적인 노력.

- Ibid., 21-2.; 같은 책, 51.

- Ibid., 311.; 같은 책, 653.

- Ibid., 312.; 같은 책, 655.

- 계급 전체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가상을 띠는, 평균적이고 공적인 형식의 지배.

- Ibid., 311.; 같은 책, 653.

- H. Klenner, Rechtsphilosophie in der Krise, Berlin: Akademie-Verlag, 1976, 11.

- Ibid., 47.

- „Die Deutsche Ideologie“, MEW, Bd. 3, 1978, 311.;『독일 이데올로기』, 제1권, 2019, 653.

- Y. B. Pashukanis, 『법의 일반이론과 맑스주의』, 박대원 역, 서울: 신서원, 2008, 69.

- “The Marxist Theory of State and Law”, Pashukanis: Selected Writings on Marxism and Law, 1980, 278.

- 『법의 일반이론과 맑스주의』, 2008, 70.

- 같은 책.

- 같은 책, 73.

- M. M. Rozental,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변증법적 방법』, 제II권,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변증법 분과 역, 서울: 이론과실천, 1989, 16.

- S. A. Golunsky & M. S. Strogovich, “The Theory of the State and Law”, Soviet Legal Philosophy, tran. H. W. Babb, Cambridge &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51, 403 ff.

- 『법의 일반이론과 맑스주의』, 2008, 73.

- 같은 책, 43.

- 같은 책, 42.

- 같은 책, 143.

- 같은 책, 143 ff.

- K. Marx,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임지현 & 이종훈, 고양: 소나무, 2017, 46.

- 같은 책.

- 같은 책, 46-7.

- 같은 책, 48.

- 같은 책. 49.

- 같은 책.

- 같은 책, 140.

- 같은 책, 48.

- 같은 책, 139.

- 같은 책, 141.

- 같은 책.

- 같은 책, 146.

- “다른 면에서 보면 분할지의 체계하에서 토지는 그 소유자들에게 순수한 생산 도구이다. 그런데 토지가 분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생산성은 감소된다. 경작에 기계를 사용하는 것, 분업, 광범위한 토지 개량 수단, 이를테면 배수구, 관개 수로 등과 같은 것은 점점 불가능해지는 한편 비생산적인 경작비는 생산 도구의 분화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이 모든 것은 분할지의 소유자가 자본을 소유하든 안 하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분화가 심회될수록 토지는 극히 빈약한 농기구와 함께 분할지 소유자의 유일한 자본이 되며, 토지에 자본을 투하하는 것은 더 어렵게 되고 영농 기술의 진보를 이용하기 위한 토지 자금·교육이 부족해지며 토지 경작은 퇴보하게 된다. 결국 순수익은 총소비가 증가하는 데 비례하며 또한 농민의 전가족이 그 소유지 때문에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없음에도 다른 직업을 택하지 못하게 되는 만큼 감소한다.”(같은 책, 146-7.)

- 같은 책, 147.

- 『자본론』, 제III권 (2), 1989, 983.

- 같은 책, 986.

- 같은 책, 990-1.

- 「1848년에서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2017, 147.

- 같은 책, 147-8.

- 같은 책, 58-9.

- H. Steiner, „Die Marxsche Theorie des gesellschaftlichen Reproduktionsprozesses in ihrer Bedeutung für die soziologische Theorie“, Marx-Engels-Jahrbuch, 11, 1987: 20.

- G. Stiehler, 『사회발전의 변증법』, 홍윤기 역, 서울: 미래사, 1986, 197.

- K. Marx,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김호균 역, 서울: 중원문화, 1988, 6.

- 같은 책, 7.

- 같은 책.

- 같은 책, 7-8.

- F. Engels, „Engels an Conrad Schmidt in Berlin (5. August 1890)”, MEW, Bd. 37, Berlin: Dietz-Verlag, 1967, 437-8.

- 『사회발전의 변증법』, 1986, 199.

- S. Stötzer, „Bedürfnisse und Interessen der Werktätigen in der Sphäre der gesellschaftlichen Produktion“,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25 (9), 1977: 1034.

- 마르크스는 그의 1861-3년 경제학 초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현실에서 어떤 상품이 그 가치 이상으로 판매되는가 그 이하로 판매되는가는 구매자와 판매자의 (매번 경제적으로 결정되는) 상대적 권력 관계에 좌우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노동자가 정상적인 한도를 넘어서 잉여노동을 제공하는지 아닌지는 그가 자본의 무한한 요구에 발휘할 수 있는 대항 역량에 좌우된 것이다. 그렇지만 근대 산업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자본의 무한한 요구는 노동자의 산발적인 노력이 결코 억지할 수는 없으며, 일일 총 노동시간이 일정한 한도를 (지금까지는 대부분 일단 일부 영역뿐이나) 발견할 때까지 투쟁이 먼저 계급투쟁의 형태를 취하고, 그럼으로써 국가권력의 개입을 초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K.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1, Berlin: Dietz-Verlag, 1976, 162.)

- 예를 들어 헤르만 클레너(Hermann Klenner)는 독일 기독교민주당(CDU)의 ‘모두를 위한 자산(Eigentum für alle)’과 연계된 정책들,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를 예로 든다. 자세한 내용은 Rechtsphilosophie in der Krise, 1976, 71 ff.를 참조하라.

- G. Stiehler, Dialektik und Gesellschaft: Zur Anwendung der Dialektik im historischen Materialismus, Berlin: VEB DVdW, 1981, 33.

- U. Galander, „Zu Aspekten der Beziehung von Logischem und Historischem in der Entwicklung der Marxschen politischen Ökonomie“, Deutsche Zeitschrift für Philosophie, 34 (1), 1986: 78 ff.

- 『자본론』, 제III권 (2), 1989, 1002.

- M. Müller, Auf dem Wege zum „Kapital“: Zur Entwicklung des Kapitalbegiffs von Marx in den Jahren 1857-1863, Berlin: Akademie-Verlag, 1978, 20.

- V. S. Vygodsky, „Zu Marx' Theorie der ökonomischen Gesellschaftsformation“, Marx-Engels-Forschung heute, 3, 1991: 177.

- K. -D. Block, „Der Außenhandel und der Weltmarkt in den Aufbauplänen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117.

- K. Marx, 「마르크스가 맨체스터에 있는 엥겔스에게 (런던, 1858년 4월 2일)」,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김호균 역, 서울: 중원문화, 2008, 103 ff.

- K. Marx,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I』, 김호균 역, 서울: 백의, 2000, 80.

- 같은 책.

- Y. B. Pashukanis, “Economics and Legal Regulation”, Pashukanis: Selected Writings on Marxism and Law, 1980, 244.

-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I』, 2000, 219.

- V. S. Vygodsky & A. Yu. Chepurenko, 「『자본』과 『그룬트리세』」, 『이론』, 7/겨울, 1993: 348.

-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I』, 2000, 219.

- A. M. Kogan, „Zur Frage der Methodologie des Planes der sechs Bücher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69.

- Ibid., 75.

- K. Marx, 「마르크스가 하노버에 있는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런던, 1862년 12월 28일)」,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2008, 131.

- K. Marx, 「마르크스가 하노버에 있는 루드비히 쿠겔만에게 (런던, 1866년 10월 13일)」, 같은 책, 147.

- 제2편은 “경쟁 또는 수많은 자본의 상호 행위”; 제3편은 “자본이 개별 자본에 대하여 일반적 요소로서 현상하는 신용”; 그리고 제4편은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가장 완성된 형태로서 주식자본”이다.(「마르크스가 맨체스터에 있는 엥겔스에게 (런던, 1858년 4월 2일)」,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2008, 103.)

- 1862년 6월 18일자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서한에 의하면 그는 6부 ‘플랜’에서 제2부를 구성할 지대론을 제1부 제1편에 포함하려는 의도를 보인다.(「『자본』과 『그룬트리세』」, 『이론』, 7/겨울, 1993: 334.)

- K.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6, Berlin: Dietz-Verlag, 1982, 1907.

- K.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5, Berlin: Dietz-Verlag, 1980, 1623.

- K. Marx,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3, Berlin: Dietz-Verlag, 1978, 777.

- Ibid., 704.

- “『1861-3년 초고』의 제15권에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특수한 형태의 자본[상업자본, 화폐취급자본]을 자본에의 일반적 분석에 통합한다. ⋯ 이 형태들이 비록 그 자체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본 규모에 비례하여 평균이윤의 형태로 잉여가치 분배에 참여하는지를 논증한다. ⋯ 평균이윤율의 형성에서 신용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윤의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의 순전히 양적인 분할이 질적인 분열로 나타날 때, 신용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분석을 자본에 관한 일반적 분석 속에 포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때 마르크스가 신용의 특수 문제들을 여전히 별도의 신용이론에 할당하였다는 사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 ”(W. Jahn, „Zur Entwicklung der Struktur des geplanten ökonomischen Hauptwerkes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32.) 『1861-3년 초고』의 본 내용은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5, 1980, 1547 ff.를 참조하라.

-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6, 1982, 2117.

- 얀은 『1861-3년 초고』에서 발견된 ‘플랜’ 초안에는 『자본론』 제1권과 제3권의 구성이 잡혀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자본 일반’에 의한 이론적 제약이 사라졌다고 한다.(„Zur Entwicklung der Struktur des geplanten ökonomischen Hauptwerkes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36-7.) 물론 상기한 코간의 분석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관련 기록(„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anuskript 1861-1863)“, MEGA, II/Bd. 3.5, 1980, 1861-2.)은 ‘자본 일반’을 확장한 것으로 판단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

- M. Müller, „Zur Charakteristik der letzten Arbeitsphase am Manuskript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61-1863) von Karl Marx“, BzMEF, 5, 1979: 39.

- Auf dem Wege zum „Kapital“: Zur Entwicklung des Kapitalbegiffs von Marx in den Jahren 1857-1863, 1978, 20.

- „Zur Frage der Methodologie des Planes der sechs Bücher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62.

- Ibid., 71.

- 「『자본』과 『그룬트리세』」, 『이론』, 7/겨울, 1993: 350.

- 같은 책, 351.

- I. Antonova, „Zur Herausbildung der Struktur der Marxschen Kategorie „Kapital im Allgemeinen“ im Ökonomischen Manuskript 1857/58“,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19, 1986: 5.

- Ibid., 14.

- Ibid.

- Ibid., 11 ff.

- Ibid.

- Ibid., 15.

- Ibid., 5.

- „Zur Entwicklung der Struktur des geplanten ökonomischen Hauptwerkes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26 ff.

- 「『자본』과 『그룬트리세』」, 『이론』, 7/겨울, 1993: 350.

- “동시에 … ‘자본 일반’ 개념의 틀의 이러한 ‘확대’는 마르크스가 최초 플랜에 따라 경쟁, 신용, 주식, 자본에 관한 편, 또한 토지소유 및 임노동에 관한 부의 대상이 되어야 할 여러 문제의 분석도 “자본론” 안에 포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코간의 연구에서 설득력 있게 입증된 것처럼, 『자본론』에서는 상술한 모든 관계는 그러한 내용이 부르주아 사회의 기본적인 생산관계─잉여가치의 생산─에 의해 규정되는 정도에 있어서만 고찰되고 있다. 『경제학 비판 요강』의 어법으로 말하면, ‘자본 일반’의 내재적인 성질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한에서 고찰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술한 여러 관계가 그 모든 다양성을 띠고 나타나는 현실적 내용을, 그 각각에 대응하는 특수 이론에서 고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같은 책, 351.)

- „Zur Charakteristik der letzten Arbeitsphase am Manuskript Zu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1861-1863) von Karl Marx“, BzMEF, 5, 1979: 39.

- G. A. Bagaturiya & V. S. Vygodsky, Ekonomicheskoe nasledie Karla Marksa, Moskva: Mysl', 1982, 205.

- Ibid.

- 대상 주제에의 탐구에서 총체성이 이론적 이성에 의해 완결적으로 서술되기 전까지는, 그것의 내적 범주 구조를 내재적 비판으로 층층이 쌓으며, 상승한 범주 구조에서 취급되어야 할 것은 그에 도달하지 못한 구조에서 배제했던 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방법이었다. 이에 대해 일리옌코프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가치에 대한 일반적 정의(가치 법칙)는 한 재화를 다른 재화로 직접 교환하는 것에의 분석 과정, 즉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따라서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가치의 구체화만을 취함으로써 도출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화폐·이윤·지대 등 (가치에 기초하여 전개된) 모든 다른 특수한 형태를 배제함으로써 수행했다. 마르크스에 의해 지적된 바와 같이, 리카도의 가치 분석에 있는 결함은 정확히 그가 보편적 형태에 있는 가치 문제에 접근하면서 “이윤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점에 있었다. 이것이 리카도의 추상을 불완전하게, 그리고 그에 따라 형식적인 것으로 만든다.”(E. V. Il'enkov, 「보편자에 대하여 〔 下 〕」, 『총명한 유물론』, 3/봄, 2026: R7AD-F.)

- „Zur Entwicklung der Struktur des geplanten ökonomischen Hauptwerkes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19.

- Ibid., 12.

- Ibid., 19-20.

- “『독일 이데올로기』에 등장한 사회 구조에 대한 구상은”, 바가투리야와 비고츠키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거대한 경제학 기획, 즉 ‘6권’으로 구성된 저작 계획의 이면에 있는 전반적인 논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Ekonomicheskoe nasledie Karla Marksa, 1982, 205.)

- G. Willing, „Einige Bemerkungen zur Materialgrundlage des Buches vom Staat“,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104.

- Ibid.

- Ibid., 104.

- Ibid., 111.

- Ibid., 105.

- Ibid., 105-6.

- K. Marx,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에 관한 제 이론」, 『잉여가치학설사 ①』, 편집부 역, 서울: 아침, 1989, 190.

- 같은 책.

- 『자본론』, 제III권 (2), 1989, 579.

- IMF, World Economic Outlook: Global Economy in Flux, Prospects Remain Dim, October 2025.

- 『자본론』, 제III권 (2), 1989, 589-90.

- K. Marx, 『자본론』, 제I권 (2), 서울: 백의, 1989, 796 ff.

- K. J. Kautsky, 「인구증가가 사회진보에 미치는 영향」, 『인구생태경제학』, 이승무 역, 서울: 순환경제연구소, 2025, 81.

- „Zur Entwicklung der Struktur des geplanten ökonomischen Hauptwerkes von Karl Marx“, Arbeitsblätter zur Marx-Engels-Forschung, 20, 1986: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