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지리산 난개발에 맞서는 투쟁과 연대하는 캠프를 진행하고 난 뒤, 이 문제에 대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가는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스무번에 걸쳐 155명의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워크숍은 두 가지 형태로 준비했습니다. 지리산 권역의 난개발 상황에 대한 정보와 현장의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그리고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목판화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둘 다 필요한 이야기 방식이라 생각했습니다.

 

파란색 천막 안에 8여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이들은 각각 손에 배너나 피켓, 팜플렛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다같이 양수댐 물리치세', '지리산 좀 냅둬'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천막 천장에는 전구 몇 개가 밝혀져있고 손으로 그림과 숫자를 적은 종이들이 여러개 걸려있다.


첫번째 워크숍은 서울 명동재개발2지구 천막농성장에서 시작했습니다. 재개발에 맞서 싸우고 있는 명동 상가세입자들과 연대인들이 함께했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개발사업이 삶을 몰아내고 이익을 얻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닥에 판화 11개의 판화가 놓여있다. 흰색, 분홍색, 황토색 종이에 검은색 또는 빨간색 잉크로 찍은 판화는 여러 동물과 새, 곤충, 파충류의 형상을 담고 있다.


구례 산보고책보고 작은 도서관에서는 판화 워크숍을 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우리 지역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판화로 표현한 존재들의 입장이 된다고 상상하며 개발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조명이 밝혀진 아늑한 실내에 여섯 명의 사람들이 각각 손에 소책자를 들고 읽고 있다.


서울의 홍제천변에 위치한 까페여름에서는 함께 자료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니 무분별한 개발사업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워크숍 참가를 위해 멀리서 발걸음해주신 분도 계셔서 감사했습니다.

 

길쪽으로 난 커다란 창이 있는 실내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소책자를 읽고 있다. 밖은 어둡고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으며 테이블에는 음료잔들이 놓여있다.


서울의 슬금슬금에서도 자료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워크숍을 진행하다보니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골프장 문제를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소책자를 펼쳐든 모습이 가까이 보이고 그 뒤로 둥근 테이블과 둘러앉은 사람들의 모습 일부가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빵과 귤, 음료, 마우스 등이 올려져있다.


서울의 인포숍카페별꼴에서는 최연소 참가자가 함께했습니다. 자료집은 보호자와 성인 참가자만 읽었지만 같이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큰 테이블이 있는 실내에 6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소책자를 들고 읽고 있다. 맞은편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있고 한쪽 천장에는 곡식 나락이 걸려있다.


양평에서는 4대강사업에 맞서 오래도록 싸운 적이 있는 두물머리의 사람들과 워크숍을 함께했습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작동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쪽으로 창이 난 실내에 큰 네모난 테이블이 있고 7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소책자를 읽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지도와 여러 자료가 놓여있고, 맞은편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있다.


전주의 공유공간 지향집에서는 자료집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책장 앞에서 6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 맨 왼쪽의 한 명은 지도를 들고, 오른쪽 다섯 명은 검은색으로 찍힌 판화를 들고 있다. 책장 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있다.


전주의 책방 토닥토닥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같이 판화를 만들었습니다. 남부시장의 고양이도 자연스럽게 함께 자리했습니다.

 

 왼편으로 주방이 보이고 오른쪽 테이블에 7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소책자를 읽고 있다.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있고, 한쪽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 있다.


서울의 혁신파크를 지키고 있는 카페쓸에서 자료집을 읽으며 지리산 문제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넓은 실내에 긴 테이블을 마주보게 배치하여 6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있다. 벽쪽 긴 테이블에는 여러 자료와 책자가 올려져있고 맞은편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있다.


대전의 한밭레츠에서는 정성스러운 비건 간식을 준비해주셔서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지역마다 반복되고 있는 난개발 문제에 깊은 공감을 나누었습니다.


 

어두운 마당에 모닥불이 피워져있고 10여명의 사람들이 간이 의자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금산의 두루미책방에서는 앞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큰 테이블과 티비가 있는 실내에 10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소책자를 읽고 있다. 한쪽 벽에는 그림이 그려진 천이 걸려있다.


용인의 우주소년에서 자료집을 읽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도시 사람의 입장에서 국립공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7명의 사람들이 흰종이에 검은색과 빨간색 잉크로 찍은 판화를 들고 서 있다. 옆에 있는 긴 테이블에는 롤러와 잉크 등 판화를 찍은 흔적이 남아있고 그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은 곰모양의 목판을 들고 서 있다.


서울의 책방79-1에서 자료집을 읽고 난 뒤 판화를 만들었습니다. 어린이 참가자분도 진지하게 지리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바닥에 판화가 찍힌 큰 천의 일부가 보인다. 천 가장자리로 8명의 사람들이 목판화 또는 목판을 들고 무릎을 굽혀 앉아있다.


전주의 지향집에서 판화를 만드는 두번째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판화와 목판이 나란히 놓여있다. 판화 가운데에는 수달의 얼굴이 표현되어 있고 위에는 '우린 연결되어 있어', 아래에는 '수달'이라고 적혀있다.


산청에서 다양한 분들과 만나 지리산에 사는 존재들을 판화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하여 간디학교에서 지리산 난개발 문제에 대하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한 차례 더 가지기도 했습니다.



 

 책장과 소파가 있는 실내에 6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소책자를 보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지도와 자료들이 놓여있다.


서울의 보틀팩토리 지하에서 함께 자료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길 한켠 바닥에 '우리를 지키는 지리산'이라는 문구와 여러색의 판화가 찍힌 큰 천이 놓여있고 그 주변에 4명의 사람들이 종이에 찍힌 작은 판화를 들고 서 있다.


대전의 버들서점에서 지리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판화를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활동가분이 대전 보문산을 둘러싼 난개발 문제를 공유해주시고 노래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왼쪽에 큰 창이 있는 실내에 8명의 사람들이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판화를 만드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앞치마를 입은 한 사람이 서 있다.


이전에 한 차례 워크숍을 함께했던 금산의 두루미 책방에서 이번에는 판화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잉크 자국 등이 남아있는 작업대 위에 13개의 판화가 놓여있다. 12개는 검은색, 1개는 파란색으로 찍혀있으며 여러 동물과 새의 모습이 담겨있다.


도쿄의 아오야마 대학 판화실에서 한국의 난개발 문제를 공유하고 지리산의 존재들을 판화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레이시아, 홍콩, 중국, 일본 등에서 모인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만개한 벚꽃나무 사이에 여러 판화가 찍힌 큰 천이 걸려있고 그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이나 배너, 악기 등을 들고 있으며 그 앞으로 파란색 간이 의자 몇 개가 보인다.


워크숍이 진행되어 갈수록 판화를 모아찍는 큰 현수막의 빈 자리에는 지리산을 지키고 우리 삶을 지키는 서식종들이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를 지키는 지리산'이라는 문구가 적힌 공동판화는 4월 초에 지리산방랑단과 함께 준비한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맨 흙이 드러나 깎여있는 비탈 사이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다. 비탈 아래에는 작은 흙 포대 여러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비탈 위쪽에는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와중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댐 건설에 저항하고 있는 구례군 문척면과 합천군 묘산면을 신규 양수발전소 우선 건설 지역으로 선정했습니다. 골프장 사업으로 무단 벌목이 자행된 사포마을 뒤편 벌목지는 여전히 황무지로 남겨져 있으며, 겨울에 내린 비로 흙바닥은 한층 더 깊이 패어있습니다.

 

 

벽돌로 된 벽 앞에 깃대가 있고 거기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정사각형의 현수막 가운데에는 손바닥 모양이 있고 손바닥 가운데에 '골프장 멈춰'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렇기에 지리산과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사포마을 주민분들은 작년 가을 연대 캠프 때에 벌목지 진입로에 걸어두었다가 훼손된 현수막을 수선하여 마을회관 앞에 다시 걸어두셨습니다. 지리산사람들에서는 숲을 복원하기 위한 나무 길러내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이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한 걸음씩 천천히 움직여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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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16:59 2024/04/27 16:59

* 4월 6일 구례 사포마을에서 열린 숲 음악회에 대해 에코토피아에서 활동하는 동박새가 쓴 글이 괴짜여우응원단(FFC) 웹진에 실렸습니다. 웹진 링크로 들어가면 음악회에 참가했던 괴짜여우응원단의 후기와 사진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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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청명을 맞은 이즈음 날씨는 정말 순수한 밝음으로 빛나고 있다. 이 절기에 피어나는 생명력은 맑은 하늘과 환한 태양 빛에 응답하듯 풀빛은 연하고 생기롭게 돋아나고, 꽃잎은 투명하다.
 

4월 6일의 숲 음악회가 그랬다. 너무 아름다워 눈이 부신 하루를 보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구례 읍내를 지나 산동면 사포마을에 다다랐다. 이곳은 봄에는 산수유꽃으로 노랗고 따스한 빛이 가득하고, 가을에는 다랑논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작년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2023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한 곳이다.
 

이번 숲 음악회는 골프장 예정지 벌목 현장 답사와 음악회 두 파트로 준비했다. 벌목지까지 함께 걸어가며 지리산반대대책위 정환 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포마을에서는 능선이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벌목지를 만날 수 있다. 마을회관으로부터 1km 정도 올라가니 벌채 현장이 넓게 드러나 있었다.
 

"구례군이 벌채를 허가하여 현재 수만 그루 나무가 잘려 나간 이 지역은 생태·자연도 1등급이 약 21만㎡이며,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겨우 170m 벗어난 지역입니다. 이 땅은 수백 년 된 굵은 아름드리가 숲을 이루고, 멸종위기야생생물 1등급 수달과 2등급 삵, 담비 등의 서식 흔적이 발견되는 천혜의 보고입니다.“
 

처음 이곳을 발견한 주민은 산나물을 채집하러 숲에 들어갔다가 벌채 현장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봄철에 새로 돋아나는 푸릇푸릇한 야생초들이 지천을 뒤덮던 숲이 지금은 지표가 다 드러나 있어 정말 가슴 시린 모습이 되었다. 꽃들이 만개하며 아름다운 풍경들로 SNS를 뒤덮는 중에 이곳만큼은 여전히 황량했고 봄기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짓말 같은 4월의 아픈 현장 중 한 곳을 절절히 담아가는 시간이었다.
 

작년 가을 답사를 다녀왔던 한 참가자는 올 초에 내린 눈과 비로 흙이 많이 유실된 것 같다고 했다. 산을 깎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통로를 내놓았던 구간은 토사가 쌓여 비좁은 길이 되어있기도 했다. 본래 숲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물길은 막혔고, 그 옆으로 지표면이 패이면서 자갈이 드러나고 바위가 깎여가며 토양의 유실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일부분 사진으로만 보다가 실제 현장에 가보니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정환 님의 말을 따라 오래도록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온 존재들을 떠올려 본다. 지리산이 지켜오던 사랑을. 조각난 숲의 파편 사이로 또다시 생명력이 움트는 존재들을 발견하며 마음을 보탰다. 그들이 마주할 황량함이 때론 고독할 수 있어도 우리들의 발걸음이 모이고 이어지면서 고립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음악회가 열린 사포마을은 반짝이는 햇빛 아래 여전히 아름다운 지리산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번 숲 음악회는 지리산반대대책위,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사포마을 주민분들과 함께 꾸렸다. 준비팀은 벚나무 사이로 자리한 음악회 무대에 “우리를 지키는 지리산” 판화 걸개를 걸었다. 동아시아에코토피아에서 지난 가을부터 지리산난개발 연대를 하며 전국 곳곳에서 진행한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존재들을 그려왔다. 팔색조, 긴꼬리딱새, 벌매, 개병풍, 담비, 애기뿔소똥구리, 하늘다람쥐, 표범장지뱀 등 비인간 존재의 목소리가 그림에 담겨있다.
 

참가자를 확인하는 안내데스크 한편에는 사포마을 다랑논에서 기른 쌀로 빚은 떡과 동아시아에코토피아에서 제작한 실크스크린 판화 티셔츠와 천 포스터를 다채롭게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금은 모두 지리산반대대책위에 후원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무대는 <캄캄밴드>가 열어주었다. 행진으로 입장하여 바위처럼, Bella Ciao, 다시 만난 세계를 연주했다. 캄캄밴드는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할 줄 아는 노래를 하며 연대를 부르는 브라스 밴드’이다.
 

이어서 사포마을 주민 전경숙 님의 인사말로 음악회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산동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는 날이네요, 사방의 지리산이 우릴 바라보고 있어요.” 이어서 진행을 맡은 지리산방랑단의 상글이 “벚나무님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덧붙여 우리가 머무는 자리가 든든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지리산권에 사는 사람들은 지역명으로 말하기보다 보통 ‘지리산에 산다’라고 말하곤 한다. <살래재즈트리오> 역시 지리산에서 삶 짓는 음악가들이다. 지리산 등지에 음악이 필요한 현장에 소리를 보탠다. 난개발 소식에 참을 수 없어 당장 달려온 이들은 남 지리산을 대표하는 디바 <소리짓는 옥수수>와 함께 뜨거운 무대를 꾸렸다.
 

재즈곡을 한국말로 개사해서 듣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과 이해를 끌어주었는데  ‘EL Pueblo’ 라는 곡은 중남미 시민 저항운동의 대표곡이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투쟁이 두껍게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단결한 민중은 절대 지지 않는다!”
 

이어서 옥수수와 친구들이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과 뜻을 잘 전달키 위해 한국어로 문장을 덧붙여 함께 외쳐보기도 했다.
 

우리의 이 땅은 우리들 모두의 것!
우리의 이 숲은 모든 생명들의 것!
여기에 이곳은 모든 시간의 바다!
농민은 이 땅을 저버리지 않는다!
이어진 우리는 서로를 살려낸다!
이어진 우리는 삶을 이어나간다!
 

마지막 무대는 눈앞의 일상을 묵묵히 바라보고, 떠올려 본 것들을 노랫말로 전하는 음악가 김목인 님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라는 노래로 차분히 접어들었다.
 

그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 사포마을에 다다르고 보니 17년 전 밴드 캐비넷싱얼롱즈로 활동하던 시기에 지리산 음악제에 초대되어 공연한 기억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정말 신기한 인연이다. 마을회관에 가보니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기타 한 대의 선율과 담백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해지는 오후 사포제의 분위기를 더욱 서정적으로 돋아주었다. ‘대답 없는 사회’를 듣는 동안엔 불법 벌목 현장을 목격하며 올라온 질문들을 다시 곱씹어 보기도 했다. 목인 님은 지리산 난개발 소식을 접하며 느낀 자기 생각을 조심스레 건넸다. 나무를 생각하고 아파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감동했다고 했다. 세상에는 온갖 뉴스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리고 보통은 다른 걱정을 더 많이 하지 않나. 절기의 순리에 따라 발맞추어 사는 이들, 고운 시선으로 뭇 존재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을 아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고 덕분에 힘을 보태고 싶어진다는 마음을 전했고 그 순간 모두의 마음속에 바람이 불었고, 오늘 하루 음악회를 통해 여기 모인 모든 이들 나름의 연주 속에 그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악회를 맺으며 '지리산 사람들' 활동을 함께하는 밤구가 앞으로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리산방랑단과 지리산 사람들이 꾸리는 목동반(목요일엔 나무 동무) 모임에서 벌목지의 나무 씨앗을 모셔 온 이야기였다. 앞으로 5년 정도 내다보며 계획하기를 구례 한겨레재단 숲 밭에서 이 씨앗들을 길러내 숲을 복원해 보려 한다고 했다.
 

숲과 나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에 대해 멀리 내다보며 난개발을 오래 지켜보고 활동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했다. 벌목지에 사는 굴참나무, 싸리나무, 물오리나무, 초피나무, 산수국 등… 실제로 그 나무들이 가진 단단하고 고요한 중심에 가닿듯 어떤 상황과 결과를 떠나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배우고 실천하는 이들을 통해 이미 숲이 가꿔지고 있다.
 

“지리산 한쪽을 들어 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가슴과 가슴 헤집고 하얗게 피어나던 배꽃 향기···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이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버티게 아니 신명 나게 할지도 모릅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낭만 가득한 분위기에서 듣는 고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은 정말이지 찬란하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유난히 크고 가깝게 보이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던 밤이 떠오르기도 하고, 기후변화로 예정보다 일찍 피어버린 배꽃이 꿀벌을 기다리다 져버리기 전에 살피는 마음이 전해졌다. 우리가 각자 자리에 돌아가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묻혀온 바람이 계속해서 서로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지리산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자는 이번 음악회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더디어 오는 봄에 이 자리의 여운이 우리 삶에 지긋한 힘이 되어줄 것을 예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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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13:36 2024/04/15 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