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에 평화박물관을 나선 우리는 부안의 해창갯벌과 군산의 수라갯벌로 갔습니다. 새만금 방조제 길은 여전히 황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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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창갯벌에 세워져 있는 솟대와 장승 사이에 2017년 에코토피아 바이크투어 때 두물머리 친구들로부터 선물받은 현수막을 걸어두었습니다. 바느질과 뜨개질로 만든 현수막에는 'ECO is HOME(자연은 집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도요새라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연주한 뒤 수라갯벌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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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수라갯벌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철새와 멸종위기종이 머물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존의 군산공항에 인접한 수라갯벌에 새만금 신공항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 경제성이 현저히 부족하여 추진되지 않았던 신공항 사업은 2019년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으로 선정된 후 적극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신공항 사업이 실질적으로는 미 공군기지 활주로 확장사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루에 두 번 떼지어 갯벌의 양 끝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1만 5천여마리의 민물 가마우지 무리는 지금도 공군기지를 드나드는 군용기와의 충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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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당성 없는 사업을 끈질기게 강행해 온 정부와 시행사 측은 늘 '경제'를 내세우지만, 경제성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새만금 사업으로 잃은 것은 적지 않습니다. 갯벌과 바다의 파괴로 지역 어민들이 입은 손실액은 한 해에만도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때때로 들고오는 어느 사업에서도 이만큼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새만금 사업의 경제 효과라는 것는, 지역민 모두가 고르게 오랫동안 누려온 또 앞으로도 누려갈 귀하고 풍요로운 공적자원과 삶의 터전을 산산조각내어 소수 사업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철새가 찾던 드넓은 갯벌은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전체 갯벌의 10%, 전북 지역 갯벌의 65%에 달합니다.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나고 2년 뒤인 2008년에 열린 제10차 람사르 총회에서 도요물떼새 연구단은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넓적부리 도요를 포함한 19종, 13만 7천 개체가 사라졌다고 발표하며 "새만금에서 실종된 도요새는 다른 갯벌로 (서식지를) 이동한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이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이들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살라'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오랫동안 주변 환경과 균형을 이루어 살아온 이들의 자리는 그렇게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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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9 17:43 2021/12/09 17:43

10월 24일에 열린 제14회 팽팽문화제 일정에 맞추어 우리는 다리밑 브라스밴드 캄캄과 함께 군산의 하제마을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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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시기에 일본군 비행 훈련장이 들어섰던 하제마을에 지금은 미 공군기지가 있습니다. 사람들 삶의 기반이던 마을 앞 바다와 갯벌은 새만금 사업으로 없어졌고, 미군 기지의 탄약고 부지가 확장되며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야했습니다. 마을에는 600년 수령의 팽나무와 200년 수령의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부는 남은 이들을 마저 쫓아내고 땅을 미군에게 공여하려고 합니다. 군 기지 확장과 고조되는 군사적 긴장에 저항하며 오랫동안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은 매달 팽나무 앞에 모여 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평화 행진 '평화가 길이다' 일정으로 군산을 찾은 강정 지킴이들도 만나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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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은 팽나무 앞에서 노래를 연주했고, 에코토피아에서는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판화를 팠습니다. 작고 연약한 우리들이 거대한 무기와 기지에 맞서서, 평화는 강한 군사력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 그 자체로 지키는 것이라고 함께 외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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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엔 평화박물관에 갔습니다. 지킴이 딸기님께서 전시를 안내해주셨습니다. 평화박물관이 정식 개관한 이후 첫 방문이라 구석구석 천천히 둘러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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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8 16:06 2021/12/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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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오후에 가덕도에서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을숙도로 갔습니다. 해가 넘어간 뒤 을숙도에서 어두운 물가를 걷고 있으니 도둑게 등 기수역 습지에서 서식하는 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을숙도와 인근 모래톱 등의 습지는 수많은 새들의 보금자리입니다. 특히 겨울 철새들이 많이 머무는 곳으로 남한의 주요 철새 도래지 중 가장 많은 종이 찾는 장소이며,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철새 서식지입니다. 천연기념물이자 생태계보전지역, 습지보호구역 등 각종 보호법으로 보전해야 하는 장소지만 1987년 하굿둑이 들어서고 부산 서남권 개발 바람이 불며 을숙도의 생태계는 파괴되어 왔습니다. 상당히 개체수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매년 각 종마다 수천마리씩 찾아왔던 철새 무리의 수는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며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새들의 먹이가 되던 습지 식물의 군락지가 파괴되었고, 상류로부터 토사 공급이 끊기며 새들의 주요 번식처이자 서식지인 모래톱이 유실되어갔습니다.

 

4대강 사업은 지금도 여전히 강 유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 관련 법인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일명 '친수법')'은 생태적으로 민감한 하천 유역 개발을 위한 법률로 강 유역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면제하고, 사업자에게 강제수용의 권한도 부여합니다. 입법 당시 '수자원공사 특혜법'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수자원공사는 경제성 부족으로 중단되었던 사업을 다시 가져와서 '친수법'을 근거로 부산시와 함께 추진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 을숙도에 인접한 강서구 일대에서 '에코델타시티' 개발 사업을 시행합니다. 감사원도 국회 예산처도 사업타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지만, '에코'라는 이름을 내건 사업은 자연습지를 밀어내고 농민을 몰아낸 뒤 아파트를 짓고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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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10월 11일에는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영주역에서 지율 스님과 만나 내성천 물길을 막아서고 있는 영주댐이 들어서며 수몰된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제비 무리가 머물고 있는 제비 숙영지가 있었습니다. 떼지어 해뜨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떠났다가 해지는 시간에 맞추어 돌아온다는 제비를 만나기위해 어둑어둑한 강가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아직 추운 계절이 시작되지 않아서 흐린 하늘을 나는 제비 무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을 두고 사업을 강행하는 측도, 이를 비판하거나 평가하는 측도 강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여러 지천과 이들이 합류하는 큰 강과 그 유역에서부터 바다까지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 인간을 비롯해 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명쾌하고 쉽지만, 파괴된 것들을 되돌리는 일은 복잡하고 지난하고 힘듭니다. 언뜻 보아서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곳을 지키며 기록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함께 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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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7 19:36 2021/12/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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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아시아 에코토피아는 캠프를 꾸리는 대신 그동안 연대 행동을 했던 장소에서 '2021 에코토피아 주말'을 진행했습니다. 10월 10일에는 부산의 가덕도로 갔습니다. 부산 에너지정의행동에서 활동하시는 김현욱 선생님께서 가덕도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셨습니다. 강아지 탈핵이도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대항 전망대에서 만났습니다. 북쪽으로는 가덕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연대봉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대항 선착장이 보이는 곳입니다. 화창한 주말을 맞아 가덕도를 찾은 관광객들과 등산객들로 도로는 북적였습니다. 마을 진입로 주변으로는 공사가 한창인 새 건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올해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투자 목적으로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전년과 비교하여 유입 인구도 급증했다고 합니다.

 

반면 가덕도에서 삶을 이어오고 있던 주민들은 아무런 소통없이 강행되고 있는 신공항 사업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합니다. 대체로 어업과 소규모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은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이주와 정착이 불가능할 것이고,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삶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기에 공항 건설을 환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주요시설들이 들어설 장소는 대체로 강제수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활주로 예정지인 외양포 마을 주민들은 더욱 걱정이 크다고 합니다. 백여년 전 가덕도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외양포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에 의해서 강제이주되었습니다. 일본군 시설로 쓰였던 마을은 해방 이후 국유지화되었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사실상 최소한의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사업자에게 전례없이 수많은 특혜를 부여하는 특별법에는 주민 의사를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나 주거권에 관련된 내용은 전무하며, 오히려 공항 건설 반대 및 저항 활동에 대한 처벌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건설 사업으로써의 측면만 보더라도 가덕도 신공항은 타당성이 없는 사업입니다. 2006년 동남권 신공항 계획이 공식화된 이후에 국토부에서 실시한 자체 연구 및 외부 용역 등을 통해 안전성, 시공성, 운영성, 환경성, 경제성 등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 수차례 지적되어 왔습니다.

 

가덕도와 연안 바다는 가덕도 주민들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많은 생물의 터전입니다. 상괭이의 주요 서식지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가덕도 앞 바다에는 2018년 기준, 127마리의 상괭이가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서부산권역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가덕도 일대에는 수달, 솔개 등 많은 멸종위기종과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극상림과 연안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서천 등의 지역에서 파괴된 연안습지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압도적으로 높은 탄소 흡수량을 자랑하는 연안 해양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덕도의 동쪽편에 위치한 새바지항 언덕에 올라가니 낙동강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이 보였습니다. 가덕도에 공항이 들어선다면 바로 옆에 위치한 하구 연안습지와 철새 도래지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복원과 파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지난달 국회에서는 가덕도 특별법 적용 가능 지역을 확대하자는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각 당이 앞다투어 내놓은 개정안에는 신공항 부지 주변 지역 개발을 적극 추진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주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 예산 계획에서 가덕도 신공항 사업 예산은 증액되었습니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매주 목요일에는 서면에서, 매월 첫번째 목요일에는 가덕도 대항마을 대책위 앞에서 공항 건설 저지를 위한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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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21:47 2021/12/0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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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로만 다니던 우리들은 박그림 선생님과 누리솔님의 안내를 쫓아 처음으로 설악산 안에 들어가보았습니다.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을 위해 설치되었다는 철망이었습니다. 설악산 전역에 설치된 이 철망으로 인해 산양 등의 야생동물들은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곧 본격적인 가을 등산철이 시작되면 설악산의 몸살도 함께 시작된다고 합니다. 종종 등산객들이 산에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왜 대피소에 샤워실은 없는지, 등산로에 가로등은 없는지 묻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립공원은 유원지가 아니며, 산과 숲은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이들의 공간입니다. 우리가 그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에는 그 장소를 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마땅합니다. 설악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케이블카 사업이 완전히 철회되어야 합니다.
 

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인 설악산에서 이루어지는 개발사업에 대한 권한을 가진 문화재청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지방환경청에서는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 의견을 내놓고 다시 보완할 것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양양군은 설악산이나 해당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정부부처에 행정심판 등의 요청을 반복하며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합니다. 강원도 역시 케이블카 설치의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으며, 중앙정부도 '그린 뉴딜'을 내세운 산악관광 활성화를 추진하며 사실상 케이블카 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설악산은 아름다웠고, 미끄러운 돌 위를 걷는 것은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산 바로 아래에는 리조트와 골프장이 있었고, 멀리 해안가에 영랑호와 청초호가 보였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환경 파괴 우려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얻은 리조트 시설은 최근까지도 증축과 신축을 반복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오고 있습니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골프를 치는 누군가는, 그 옆 대청봉으로 케이블카가 설치되는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설악산이 오르기 힘든 곳으로, 산양을 포함한 여러 생명들의 터전으로, 먼 미래에도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설악산 그대로!
 

(사진 : 박그림, 동아시아 에코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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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8 12:38 2021/10/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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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강원도 속초시에 위치한 영랑호에서는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수면 위 데크길을 조성하는 '생태탐방로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16년, 2017년 에코토피아 캠프 때와 올림픽 개최지 답사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최정화 선생님과 함께 영랑호를 찾아갔습니다. 
 

영랑호는 6000~8000년 전에 형성된 호수로 동해안에서 원형을 잘 보전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자연 석호 중 하나입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오랫동안 인간 등의 생물종이 자리를 잡고 삶을 이어왔습니다. 동해안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석호 인근에서 신석기 시대 선사 주거 유적을 발견한 사례가 수차례 있었습니다. 영랑호의 풍부한 습지 생태계는 수많은 철새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왔습니다. 영랑호에서는 지금까지 희귀 철새인 바다 꿩과 아비, 천연기념물인 큰 고니•노랑부리저어새•새매•원앙,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개리•검은머리갈매기• 흰목물떼새•수리부엉이•큰기러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흰꼬리수리, 국내 미기록 조류인 버플헤드(Bufflehead) 등이 관찰되었고, 흰뺨검둥오리, 가마우지, 황조롱이, 수달 등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생물종의 보금자리이자 지역 주민의 공유지인 영랑호 생태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왔으나 아직 석호에 대한 보호 및 보전 제도는 미비한 상태입니다.
 

그런 와중에 속초시는 북부권 개발과 관광 활성화를 명목으로 '생태'라는 이름을 붙힌 영랑호 개발사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영랑호와 같은 연안습지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에 준하게 작용하는 '일반해양이용협의서'는 졸속으로 작성되었고, 사업 추진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시의회 의결도 사후에 진행되었습니다. 공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달 중으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영랑호를 지키고자 하는 속초 시민들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타당하지 않은 개발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랑호 일대에는 주민들이 아름다운 호수의 경관을 향유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드나들며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 도로, 자전거 도로 및 휴양을 위한 공간도 충분했습니다. 한 때 주변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되었던 영랑호는 30여년에 걸처 50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들여 수질 정화와 복원 사업을 진행하여 지금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호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수변광장 및 조명, 수면 위의 데크길을 조성하여 서식 환경과 경관을 파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석호인 청초호의 주변을 돌아보며, 영랑호 개발사업 강행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청초호의 모습은 영랑호와 사뭇 달랐습니다. 자연스러운 호수의 곡선을 잃고 매립과 개발사업으로 직선화된 네모난 호수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역대 강원 지역 최고의 분양가에 거래되었다는 고급 아파트 건설 현장도 있었습니다. 호수 주변의 습지는 작게 조성된 공원 구역에 흔적만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속초시가 졸속 절차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며 그리고 있는 지역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요.
 

대단위 개발사업으로 지역 주민 모두의 공용 공간이자 여러 생물종의 서식지인 자연 공간이 생태적 가치를 잃은 공원이 되거나, 특정 건물 단지 거주자를 위해 사적으로 점유되고, 특정 업체를 위해 제한된 관광지가 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가 사는 지역의 산과 강 어디에서나 이러한 사례를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의마저 무시하는 개발사업은 자연 공간을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이 장소에서 앞으로도 살아갈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들의 권리를 침해합니다. 
 

영랑호는 모두의 공간입니다. 철마다 이 곳을 찾는 많은 철새들, 영랑호 주변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여러 동식물들, 이 곳에서 삶의 일부를 보내왔던 주민들 모두를 위해 영랑호를 지금 모습 그대로 지켜내야 합니다. 영랑호를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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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18:28 2021/10/0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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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에코토피아 주말 / Ecotopia Weekend : 10월 2일~24일]
올해 10월 주말 동안 에코토피아는 그동안 캠프를 열었거나 함께 연대했던 장소들에서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변화와 현 상황을 함께 살피고 생각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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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1 11:14 2021/10/01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