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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마음 읽기(2)

아이들의 그림은 어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 숨어있다. 어른들이 가식과 학습된 아름다움을 그릴 때,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린다. 그래서 어른보다 아이들의 그림이 더 많고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성립된 영역, 장르가 미술심리치료이다.

 

필자는 미술심리치료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수천장의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의 그림을 익힐 수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아이들을 관찰하기 굉장히 좋다. 특히 아이들과 늘 붙어 있어야 하는 초등교사는 교사이자, 친구이자, 상담자가 될 수 있다. 전문상담교사가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면,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정보를 많이 갖고 있고, 일상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려치면 전쟁같은 수업이 가로 막는다. 요즘은 학업성적을 높여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정규 수업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하기 어렵다. 도시 지역에서는 시험지만 풀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직도 학급당 학생수가 30명이 넘는 지역도 많다. 필자가 진단을 했던 N초등학교의 경우 작은 읍지역에 위치하지만 학급당 학생수가 26~7명에 육박했다. 당연히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려웠다.

 

공격적인 성향

필자가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아이는 왕따 피해자이다. 부모님의 부탁을 받고 평일 저녁 즈음 부모님과 상담을 했다. 그 전에 문장완성검사지와 '비 속의 나', '동물가족화', '동적가족화', '나무그림' 등 다양한 진단기법을 통해 정보를 수합했다. 가해 학생 중 두 명이 보낸 편지도 읽어보고, 아이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상담 대상자는 나무그림에서 유독 공격성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문장완성검사지를 통해 어머니를 기피하고, 아버지를 좋아하는데 아버지가 일이 바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님과의 면담에서는 주로 어머니가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딸이 왕따를 당하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점점 동생들에게 공격성을 나타내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부모님은 가해자 중 주동자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상담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부모님과 면담을 마친 필자는 상담자를 만나서 직접 검사를 해보았다. 처음에는 친교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자는 처음에는 낯이 선 필자를 보고 피했으나, 좋아하는 그림을 함께 그리면서 곧 친숙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상담자는 싫어하는 아이, 좋아하는 음식, 학교생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불만사항, 그리고 좋아하는 이성 이야기까지 참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마치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다는 듯이.

상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필자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담자는 왕따 피해를 방치한 선생님에 대한 실망,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불신, 그리고 둘째를 편애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 등을 갖고 있었다. 이런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한 상담자(즉 피해자)는 요즘 동생들을 공격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공격적인 반응도 하나의 표현 방법이다. 우리가 일탈이라고 말하는 행동도 표현이다. 그 표현이 사회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표현양식이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중요한 점은 그 표현양식, 행동이 왜 나왔는지, 그리고 표현양식을 바꿀 가능성이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행동을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경우 가족 전체가 치유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필자도 함께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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