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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9/27
    옳은 말.
    로젤루핀
  2. 2008/09/27
    늦가을...당신을 떠나보내고
    로젤루핀
  3. 2008/09/26
    ...가을, ...물들다
    로젤루핀

옳은 말.

 

 

이영희 노동부장관님이 정말로 옳은 말, 지당하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비정규직을 없애자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자고 말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뭔 환경밀레니엄포럼인지 뭔지에서 이야기한 말이라는데,
정말로 옳은 말.

지당하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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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당신을 떠나보내고

 

결국,

빈소에 다녀왔다.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 있던 김종배 유고집을 펼쳐들었다.

 

"당신을 떠나보내고"라는 제목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

당신을 떠나 보내고

낯선 영안실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당신을 지우기 위해

모진 애를 씁니다.

포도에 떨어지는 젖은 낙엽을 밟으며

아무도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는

서로의 슬픔을 싸안고

이제 아주 떠나버린 당신을,

애쓰지 않아도 시간 속에 퇴색될

당신을 향한 슬픔을 잊기 위하여

모진 애를 씁니다.

 

그대는,

이미 추억이 되어서

슬픈 빛살처럼 머물 뿐인데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겠다며

몰려가는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맹세한다고 했지만

번번히 우리들의 맹세는 되풀이됩니다.

그대가

떠나며 남긴 교훈보다는

떠나버린 빈 자리에서

우리의 가슴은 더욱 절실해집니다.

 

 

 

사실, 나는 고인을 잘 모른다.

'잊기 위해 모진 애를 쓴다'는 표현은 그래서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온'

2005년 여름부터 2008년 가을까지의 같고도 다른 시간.

 

그 시간 이후의 지금부터의 삶은

더더욱 나만의 삶은 아니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든다.

 

그래서

괴롭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시,

다녀오니까...더 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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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들다

 

#1.

버스를 잡아탔다.

피곤한 머리를 창가에 기댔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길가에 매달린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가을, 축제로 물들다"

 

자연스러운 연상작용.

나는, 이 말이 생각나다.

 

"2006년 가을, 투쟁이 물들다"

 

이어진 연상작용.

나는, 그 곳이 생각나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 할머니들...

 

 

#2.

오늘 오후에도 내 마음 속의 평택이 다시금 끄집어졌더랬다.

재영이 건네준 책자.

 

"그 많던 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책자를 읽노라니, 예전에 읽었던 치르치르의 글 한 토막이 떠올랐다.

 

“어디 사람들 가는 데 따라가서 가생이에 컨테이너 박스라도 짓고 살면 좋겠어.  난 집도 없고 땅도 없는 데 갈 데가 없잖아.”

 ‘이주’가 결정되었지만 앞으로 맞이하게 될 복잡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주민들은 걱정이 많으십니다. 특히 재산이 없는, 혼자 사시는 할머니들의 근심은 더욱 늘었습니다.

 

쫓겨난다는 것.

'평택'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그 서러움. 그 잔혹성.

 

 

 

#3.

아무튼, 재영이 건네준 책, 재밌다.

가을...난 책에나 물들어볼까? (라고 하기엔 어서 처리해줍쇼~~하고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다 -_-; 쿨럭;;ㅠ)

 

 

 

 

 



 

지역에서 주민들과 나눌 이야기들은 넘쳐 난다.

동네 근처의 하천 오염에 관한 이야기나 어린이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서도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 지역 장애인들이 더욱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나 지역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적정한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들이 투쟁할 수 있는 방법 등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역에서 오간다.

 

그런데 의외로 집에 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터와 삶터, 두 공간을 오가며 삶을 살아간다. 집은 누구에게나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데 왜 집에 관한 이야기들은 오가지 않는 걸까?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테다.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면 집에 숟가락이 몇 개니, 적금 들어놓은 돈이 얼마니 하는 말들은 나누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동네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집주인이냐, 세입자냐 하는 것이 일상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 조건이 어떻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장마철에 비가 샌다거나 집에 개미가 많이 꾄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나누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들은 불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개발 사업 과정에서는 집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상의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은 무엇인지,

어쩌다가 동생네 집에 얹혀살게 되었는지,

집을 마련할 때 진 빚이 얼마인지,

벌써 몇번째 이사를 다니는 것인지 등등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들이 미리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개발의 바람에 휘말리고 나서야 '집'이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인 집과 동네가 갖추어야 할 공공성은 어떤 모습일지 주민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 수 있도록 좌판을 깔자.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지금 살면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우리가 원하는 마을 모습은 어떤 것인지, 개발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과 절차는 어떠해야 할지 등을 함께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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