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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 등록일
    2012/02/24 13:41
  • 수정일
    2012/02/24 23:20

0.

원제 : <Warum warst du in der Hitler-Jugend?>로 추정

(출처 : http://www.rowohlt.de/buch/Horst_Burger_Warum_warst_du_in_der_Hitler_Jugend.3552.html

"히틀러유겐트 왜 했었어요?" 정도의 의미인 듯...)

한제 : <하켄크로이츠>, <아버지에게 던지는 네 가지 질문>, <아버지, 그때는 왜 그랬어요?>,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원제로 추정되는 제목은 묵직한 돌직구.

그런데 한제는 아주 제각각일세 (...)

 

1.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해서 책을 냈던데,

나랑 ㅇㅈㅇ는 ABE 전집의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을 읽었다.

(나는 갖고 있는 걸로 읽었고, ㅇㅈㅇ는 새로 사려고 했는데

저 제목으로 검색하다 보니 <하켄크로이츠>를 못 찾아서,

절판됐나 보다 하고 그냥 내 책을 읽었음)

 

2.

중딩 때인가 고딩 때 저 책을 읽고서

나치를 믿어서 2차대전에 참전했던 독일인의 이야기여서 좋아했다.

폴란드인, 유대인, 미국인같은 反나치 측 관점은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는데,

그런 매체에선 '나치'는 지독한 악당 정도인 경우가 많으니까.

 

3.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다시 보면서는 예전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 발터가 맹목적인 나치 추종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을 핍박하는 걸 보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전쟁과 나치의 선전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 책에는 나치의 주입식 교육을 철저히 소화한(?) 사람도 등장하는데,

그런 사람의 철석같던 믿음이 박살나는 경험을 서술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서 ㅇㅈㅇ에게 이 책을 읽어보자 하고서도,

ㅇㅈㅇ가 별로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4.

그런데 ㅇㅈㅇ는 이 책에 썩 만족해서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더라.

그래서 이유를 말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쓴다면 미화를 하거나 자기를 까거나가 될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이 책 정도면 가장 적나라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단다.

하긴 듣고 보면 그렇기도 하다.

더러 고민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발터는 나치를 믿고 전쟁에 환상을 품었으니까.

"만세! 전쟁이 시작되었다!"

숨이 턱에 차서 쉬었다가 다시 한 번 만세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입을 열기 전에 뺨을 얻어맞았다.

이제까지 맞은 것 중에서 제일 큰 것이었다.

어머니가 때린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흥분한 어머니는 본 일이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화가 났다기보다 차라리 절망감을 억누르려는 얼굴이었다.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pp. 53-54)

 

5.

이 책에서 또 인상 깊은 캐릭터는 바르나 선생이다.

주요 인물은 아니고, 초반에 잠깐 나오는 인물인데,

독일에 사는 유대인이 습격당한 소식에 울기도 하고,

유대인을 증오하는 학생에게

유대인 또한 독일을 위해 일했고 목숨까지 바쳤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인간들이 나쁠지라도

총통만은 고귀한 분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런 일(유대인 핍박)을 하려고 우리 총통께서 싸우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람에게 일자리와 빵을 준 것은 이런 일 때문은 아니었을 거예요.

총통이 이 일을 아신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p. 31)

나름 사리 분별을 할 수 있었던 지식인(교사 정도면 지식인이라고 해도 되겠지)도

저런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저런 부분을 보며 새삼 느낀 점은,

어느 지도자든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겠거니 하고 믿으면 개똥망한다는 거다.

이건 노무현을 뽑았다가 실망하고,

이명박을 뽑았다가 실망하고,

이제 다시 안철수나 문재인이나 박근혜에게 기대하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이라고 본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 이런저런 문제를 한 큐에 해결해 주는 영웅이 있기엔,

사회란 시스템이 너무나 복잡하다.

그러니 의심을 거쳐 가며 신뢰하는 비판적 지지가 필요하겠지.

 

6.

흔히 독일은 2차대전 후에 철저히 자기반성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ㅇㅈㅇ는 이런 얘기를 꺼냈다.

나치를 절대악으로 만들수록 나머지 독일인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게 다 나치 때문이었다'라는 제물로 삼는다고 느꼈던 걸까?

일리가 있다 싶으면서도,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책임 전가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떠나서, 나치의 잘못은 잘못대로 규명해야 한다고.

또 이 책에서는 화자가 '이게 다 나치 때문이다'를 경계하는 시각도 제시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히틀러에게만 책임지울 수는 없잖아요.

특히 아버지들은 비판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가끔 지금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요새 젊은 사람들이라면

자기 밥에 침을 뱉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요."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p. 94)

나는 독일 정부와 독일인이 나치를 청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뒤 세대가 저런 질문도 할 정도였으면,

그만큼 역사를 돌아보며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예전에 지인이 이 책을 평하면서

"나치에 대한 반성이 피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책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7.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새로운 히틀러가 등장하지 않도록 눈을 똑바로 뜨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이건 독일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초월적인 영웅을 희구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단한 존재가 모든 문제를 떠맡아 주길 바라는 한,

차선의 지도자도 선택하기 힘들 테니까.

그래서인지 ㅇㅈㅇ는 나치처럼 이견 없이 평가할 수 있는 존재 말고,

다른 존재를 이런 식으로 다룬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테면, "왜 박정희(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를 지지했어요?" ㅋㅋ

 

 

 

덧1)

ABE 전집이 옛날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번역이 그리 좋지는 않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건 ㅇㅈㅇ가 지적한 부분이다.)

(아버지를) 흔히는 간단히 '우리 집 늙은이' 따위로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손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르면 '조국'이라든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든가,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p. 11)

아마도 독일어의 '조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표현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거겠지.

그런데 한국어 표현으로만 써 두니까, 생뚱맞아 보인다.

원어 표현을 같이 적어줬더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도

나는 저 부분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 버렸지 6-_-`.`.`. )

어쨌든 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ABE 전집 말고 다른 번역본을 구하는 게 낫지 싶다.

 

덧2)

이 책에서 주인공 발터는  '회색 군복'을 선망하는데,

실제로 나치는 군복을 멋지게 디자인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보는 사람들이 발터처럼 동경하길 바랐던 거겠지.

 

덧3)

ㅎㅅㅅㅅ님이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는 영화를 알려주셨다.

이 책을 읽은 김에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링크한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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