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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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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등록일
    2017/06/05 12:49
  • 수정일
    2017/06/0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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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을 알려주세요」

증상은 생의 디스포리아, 내가 쉬는 숨이 내것이 아니에요 내 살도 내것이 아니에요 이 생은 내것이 아니에요 내 이름도
내것이 아니에요 주체성 장애일까요 성주체성(性主體性) 장애 아닌 그냥 주체성의 장애, 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몸을 주듯이 잘못된 세계에 잘못된 생을 내려보낸 걸까요 한번 사는 생이라고 진지하게 살기엔 진짜 같지가 않은걸요 
이 삶에 몰입할 수가 없어요 진단명을 알려주세요 먼저 겪은 증상들을 말해주세요 방법은 이것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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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3/28 00:17
  • 수정일
    2017/03/2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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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박고 싶다
뺨에는 피가 흐르도록
흰 빛을 보고 정신을 잃도록
볕 드는 오후에 주검으로만 발견되도록

베이고 싶다
찰나에 깨끗이
칼날은 서늘할까, 아니면 뜨거울까
한조각 두조각 분해될 것이다

목을 매거나 뛰어내리거나 물속에 잠기거나
어느 날엔 또
손발을 덜덜 떨면서 그런 생각을 하겠지
어쩌면 잠깐동안 진심으로 바라겠지
그리고는 잠에 들겠지

기억하지 못할 꿈을 꾸느라 땀을 흘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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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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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3/06 00:58
  • 수정일
    2017/03/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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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은 모래로 지은 둔덕
파도가 칠 때마다 휩쓸려 내려가고

내 발에 박힌 유리조각들
걸을 수 없어 그곳에 머물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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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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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1/01 03:02
  • 수정일
    2017/03/0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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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을 새로 달았다

흰 빛이 각막에 내리꽂힌다

 

눈부시게 어두운 방

선반과 낡은 에어컨과 빼꼼히 열린 서랍장 아래 그림자

구석구석 그림자가 진다 

 

사람에 실망하여 떠나가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은 그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보다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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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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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9/23 00:55
  • 수정일
    2017/03/0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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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도시의 관광지도를 다운받으려 시(市)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눈길이 갔던 것은 무연고사망자 공고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규정에 의거 무연고 사망자의 사체를 처리하고 
 「동법 시행규칙」 제4조 규정에 따라 아래와 같이 공고하오니 연고자는 유골을
  인수하시기 바랍니다.

 

 1. 사망자 인적사항

  성명 박종용

  성별 남 

  생년월일 1954.12.31.

  등록기준지 고성군 고성읍 월평리 788번지

  사망일시 2016.08.25.

 

 2. 공고기간 : 2016.  8.  29. ~ 2016.  9. 28.(1개월)

 

 3. 사체 발생상황 및 특징
   2009년 행려환자로 책정되어 2013년부터 통영정신병원에 입원 중 알콜성 간질환 
   및 간경화 치료를 위해 통영서울병원에 입원 치료 중 병사 
 
 4. 화장 및 봉안장소 : 통영시공설봉안당
    가. 처리방법 : 화장 후 납골
    나. 봉안기간 : 10년(2016.8.26~2026.8.25)
    다. 연락처
      - 통영시공설봉안당(055-650-2580)
      - 통영시청 주민생활복지과(055-650-4112)

 

대상이 마땅찮을 때에도 살생의 욕구는 찾아온다. 죽 여 버 리 고싶어! 누구를? 그쯤에서 더 생각하면 안 된다. 

주변을 맴돌며 성가시게 하는 모기나 벌레 따위를 죽일 때가 있다. 차마 맨손으로는 실행할 수 없어 한 손에 무언갈 들고 때려죽인다. 죽이고 나면 식욕이 돈다. 죽였으니 포식하는 것이 순리이므로 찬장의 음식을 꺼내먹는다. 

바퀴벌레는 화장해야 한다고 하던데, 모기가 죽은 흔적은 쓱 닦아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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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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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7/12 23:18
  • 수정일
    2017/03/0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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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아왔구나

나는 걸음을 멈춰야 한다

머리통의 중앙에서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

가슴의 내장으로 번지는

통증, 아프다기보다 아린,

전신의 살갗에 전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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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점심엔 송이덮밥을 먹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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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7/09 02:14
  • 수정일
    2017/03/0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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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도 녹여버릴 것 같은 더위를 헤치고 내가 기거하는 곳의 현관 앞까지 다다랐는데 

눈앞엔 지나치게 평범한 이름을 가진 어느 중국집의 전단지

"요일별 특가메뉴- 수요일 송이덮밥"

데리고 들어왔다

송이덮밥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매주 수요일 점심, 내가 그곳에 전화를 걸어 송이덮밥을 주문하다 보면

어느 날부터는 주문 전화를 받는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배달원이 나를 기억하고

어쩌면, 필요한 만큼의 나날이 지나고 난 후

그들은 수요일 점심시간 즈음 내 주문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매일 아침 잠에서 깰 이유

돌아갈 곳과 기다릴 사람

일상의 규칙성과

뒤통수 치지 않는 예상과 기대,

그런 것들이지만

 

팡틴이 노래했듯, 이루어지지 않는 꿈들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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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칭찬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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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등록일
    2016/06/02 19:13
  • 수정일
    2017/03/06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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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칭찬이 불편한 이유

 

종종 칭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낀다. 여기서 말하는 칭찬은 나에 대해 어떤 긍정적인 평가를 내용으로 한 말이나, 내가 한 어떤 일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말 등이다. 칭찬이 불편해지는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진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그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자극을 주거나, 혹은 싫어하는 자극을 주거나. 헌데 싫어하는 자극을 주려면 자극을 주는 주체가 변화시키려는 대상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부정적 평가를 하거나, 벌을 주거나, 때리거나, 위협하거나 등등은 강자가 약자에게 줄 수 있는 자극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약자의 위치에 있거나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관계에서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좋아하는 자극을 주는 것밖에 없다. 좋아하는 자극을 주는 행동 중 가장 간단하고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칭찬이다.

우리는 처세술로써 칭찬의 효과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덜 폭력적인’ 훈육과 교정의 방법으로 학생이나 자식을 칭찬한다는 이들도 많다. 특히 여자들은 남자에게 칭찬을 해주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남자 애인, 동료, 상사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칭찬이며, 칭찬이야말로 권력 없는 여성이 남자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동이다. 똑똑한 여자는 남자를 비난하지 않고 그를 칭찬한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듣고 체화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행동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칭찬을 사용한 적들이 있다. 나는 타인을 칭찬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칭찬의 효과는 자주 체험된다.

때문에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나는 그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내 경험상으로는 특히 여자인 사람들이 칭찬을 많이 한다. 그들이 특별히 구체적인 ‘의도’를 가져서라기보다는 남을 칭찬하는 것이 타인을 대하는 방법으로-약자로 살아남기 위해-체화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두 경우 모두 불편하긴 매한가지이다. ‘덜 폭력적인’ 훈육과 교정의 방법으로써 칭찬-부적 강화보다 정적 강화를 강조하는-하는 것에 대해서도 앞에 언급했는데, 나는 교사-학생, 부모-자식의 권력관계 하에서 일방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의도가 정당화되는 이상 부적 강화보다 정적 강화가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회의적이다.

 

2. 칭찬이 불편한 이유 두 번째는 종종 그 칭찬이 ‘어린데/학생인데/경험도 없는데’ 이만하면 잘했다는 평가로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동 심리치료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아동 치료에서 비청소년인 치료자가 치료대상인 아동에게 불필요한 칭찬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시를 들었다. 이유인즉슨 아동이 자신을 ‘아이’취급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가는 대목이다. 아이였던 시절 어른들이 나의 자연스러운 행동, 내게는 별 것 아닌 행동에 대해 칭찬할 때면 당황스러움과 함께 미묘하게 나쁜 기분이 들었다. 특히 내가 생각하기에는 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 아닌데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위치가 높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나를 칭찬하면 나는 그가 나에 대해 어떤 기대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3. 그럼에도 누군가의 칭찬이 고마울 때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어느 토론회의 패널로 섭외할 때,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았는데 이러이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토론회에서 말씀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등으로 칭찬의 말을 하면 고마운 느낌이 든다. 친구가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렇지만 너는 이러이러한 장점이 있어’라고 덧붙이면 마찬가지로 고마운 느낌이 든다. 그들의 칭찬이 진심으로 느껴져서라기보다는 나의 감정을 배려하거나 생각해서 그 몇 줄의 말을 하는 수고를 하는 데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 몇 줄의 말,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대부분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인 경우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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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물 1-7호에 대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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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5/16 01:50
  • 수정일
    2017/03/06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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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내게 주고 간 글자들, 너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래 처음으로 펼쳐들었다. 쓴 자와 읽은 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타인이 타인에게 쓴 것만 같았다. 너는 내가 네 삶에 근본적인 사건이라 말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노력을 그치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는 우리가 서로가 있음으로 변해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로 인해 변화하겠다는 말, 가장 강력한 사랑의 증언이다. 시간은 사랑한 사람의 몫으로 남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어느 시간동안 그러한 존재였다는 충격에 나는 네가 남긴 글자들을 의심하고 있다. 단지 사랑하기 위해서 믿는 것, 하지 않았던 나는 자격이 없다. 그 시간은 내 몫으로 남을 수 없기에 나는 네가 남긴 글자들로 과거를 유추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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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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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05/01 04:08
  • 수정일
    2016/05/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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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날처럼 온수로 몸을 씻던 중이었다. 더운 물에 커피 가루를 풀면 녹아내리지 않던가. 궁금한 것은 왜 내 몸이 저 배수구로 사라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액체와 잡다한 덩어리들과 또 얼마간의 허공으로 팽팽하게 가득찬 고무주머니 같은 몸이다. 인체의 칠 할이 액체라던데 내 몸이 물과 함께 녹아내리지 않는 까닭은 고무처럼 늘어난 피부가 이십 년이 넘도록 용케 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늘이나 칼날 때문에 구멍이 난 적들은 있는데 펑 하고 터져버리기엔 작은 손상이었는지 결국엔 봉합되곤 하였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것들이 많은 어린 시절에는 주변의 모든 것을 만져보곤 한다. 헌데 손목을 자르거나, 눈알에 무언가를 관통시키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해본 적이 없는데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가끔 어떨까 생각은 해봤던 것 같다. 생각이 행동으로 변하기 전에 등줄기를 타고 몸을 휘감은 위험에 대한 감각이 피부에 오소소한 소름을 만들어내곤 했다. 위험에 대한 감각은 늘 호기심의 충동을 압도했다. 

 

 내 몸에는 매일 액체와 기체가 들어간다. 때론 마른 액체에 가까운 음식들도 들어가지만 완전히 고체인 것은 먹을 수 없다. 액체와 기체를 잔뜩 먹는데 몸은 녹아내리지도 허공으로 날아가지도 않는다. 고무주머니 안을 채우는 공기는 몸을 허공으로 띄우기엔 역부족이다. 숨을 최대한 많이 들이쉬어본다. 숨을 내뱉지 않고 버티어본다. 공기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하긴 태어난 이래로는 들숨 날숨의 반복을 멈추는 데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오늘도 어제처럼 내 몸은 터지지도 흩어지지도 않은 채 지구의 표면에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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