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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을 앞두고

8월이 되면 약국문을 닫는다.

2년 반동안 운영했던 곳. 그 전에 근약 한 것까지 합치면 만으로 4년간 일하던 곳이다.

인수할 때의 권리금을 그대로 날리게 되어 손실이 크다. 때문에 한동안 끙끙 앓았다.

그나마 상가 주인이 아는 선배라 남은 계약기간동안의 월세는 안내도 된다.(이것도 확인해야하긴 하지만)

만일 월세까지 마저 내야했다면 돌아버렸을 것이다.

갑작스레 결정된 거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기에 그저 받아들일 뿐.

빚은 남기지 않은 채 끝난다.

 

4년간 한 곳에서 일하다보니 단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는걸 눈으로 깨닫게 되는건, 애들을 볼 때다.

저 임신했어요, 했던 어떤 어머니의 태아는 이제는 엄마 말 안들으며 약국을 싸돌아 다닌다.

어버버 말도 잘 못하던 애가 이제는 얄밉게 말대답하거나

키작고 빼빼마른 머슴아가 갑자기 쑥 커져서 와서는 변성기 목소리로, 얼마에요? 한다.

 

난 살갑게 사람을 대하기보다 할 일만 제대로 하자는 주의라, 막 친하게 굴고 그러지 않는다.(못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단골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생기는건, 어쨌건 한 곳에서 4년간 일했기 때문이다.

손님뿐만 아니라 주변 가게 사람들, 하루에 네 다섯번씩 만나는 택배기사분들, 음식 배달원 등

오래 보다보니 절로 사정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폐업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내 약국에 오는 모든 사람이 꼭 떠나갈 연인처럼 애틋하게 보였다.

그 이후로 말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복약지도나 상담을 할 때의 피드백이나 분위기가 참 좋아졌다;;

아...진작 이럴 것을!!

 

한 두달 지나니 화병은 많이 가라앉았다.

요즘은 차분히 남은 약 재고를 정리하고, 어떻게 반품할지 전략을 세우고(전략이 필요하다!) 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하게 될 약국을 상상하면서 지낸다.

물론 다시 약국을 하게될지는 모른다.

2~3년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그나마 매물 자체가 줄어들었다.

약국 중계에 브로커가 개입하면서 거품이 많아지고 사기도 많아져서 일명 말하길, 리스크가 커졌다.

 

그래도 몇 년간의 경험을 이번 기회에 한 번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에 대한 것, 내가 원하는 약국/약사의 모습과 역할, 구체적인 아이디어, 매뉴얼 작성 등....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글 쓰는 걸 되게 힘들어하는데, 왠걸

약사일지,라고 한번 쓰고 나니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생각이 조금 정리가 되었다.

실제로 다음날에 블로그에 쓴 내용을 그대로 약국 실전에 쓰기도 했다;;

난 아직 약사경력이 많지 않아(5년?) 내 지식과 경험에 약간 자신없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문제는, 그 산만한 경험과 공부를 제대로 정리해본 적이 없었구나 싶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건 많고, 모르는 걸 알 방법도 잘 알고 있으니

머리를 쥐어짜며 이것들을 문장으로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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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일기3-ADHD

근처에 소아신경정신과가 있어서 관련된 처방을 가끔 받는다.

대부분이 ADHD 아니면 틱이다.

ADHD는 요즘 여러모로 주목받고 있는 질환인데

이 질병 자체가 개발된 거다,라는 의견부터 뇌의 기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엄연한 질병이다까지.

 

나도 처음에 ADHD라는 질병을 알게됐을때

애가 좀 산만한것 가지고 왠 호들갑? 이랬다.

그런데 이 처방을 들고온 애와 엄마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다 그런건 아니지만(강조강조!!),

약국에 잠깐 있는 3~5분동안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건드리고 다니거나

엄마 말을 전혀 듣지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고(때로는 공격적으로)

무엇보다 어머니가 초췌해져있다.

잠깐 보는 내가 힘들 정도인데 어머니는 오죽할까.

 

정확한 진단과 약을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건 의사의 역할이므로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어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좀 아프다.

그런 아이와 같이 살면서 기르는 것도 힘들텐데,

애를 정신과 다니게 만든다고, 그게 뭐가 병이냐고 주위에서 한마디씩 하는게

엄마나 애한테 스트레스를 주고 있더라.

 

뉴스에선 치맛바람 센 지역에서 공부잘하는 약으로  많이 복용하는 것처럼 묘사하던데

내가 있는 지역은 그런 곳이 아니라 그런지

아니면 사실 내가 몰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진료보기로 결정한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그리고 이리저리 마음 복잡한 어머니들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 질병이나 약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고있느냐와는 별개로

약사 개인이 가지는 "태도"가 복약지도에 영향을 끼친다는걸 깨달은 첫번째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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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일기2

오늘은 중이염으로 고생중인 만 두살짜리 꼬맹이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3월부터 중이염때문에 계속 치료중인데도 조금 나아지는 듯 하다가도 계속 재발에 재발을 거듭,

결국 큰 종합병원에 가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중이염은 항생제 치료가 필수적이고,

일반 감기나 편도,인후두염에 비해 치료기간이 길다.

기본이 열흘정도? 2개월이상 약을 먹는 분도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런데 열흘동안 꼬박꼬박 약 챙겨먹는게 굉장히 어렵다.

나도 고작 하루 두 번먹는 약도 깜박깜박 잊어먹기 일쑤.

약에 둘러싸인 내가 이러니 환자들은 오죽할까.

게다가 만 두살짜리한테 약 먹이는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약 안먹으려고 보채는 애를 붙잡고 실랑이하는 어머니들 수두룩하다.

어떤 애는 3분만에, 어떤 애는 30분도 걸리더라;; (어머니 대단해요!)

 

아무튼 중이염 치료 스케줄이 이렇게 길다보니 어떤 분들은 한 3~4일 약먹어보고 안듣는다 싶으면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고 다시 약먹고, 그러다 안들으면 다시 다른 병원가서 약먹기도 하더라.

당연히 이러면 치료의 일관성도 없고, 경과도 썩 좋지 않다.

그래서 중이염으로 처방받아온 분에게는 최소한 열흘 이상 꾸준히 병원을 다닐 것,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약을 잘 챙겨먹을 것을 강조한다.

이 애기 어머니는 다행히 병원을 바꾸지 않고 약 3개월간 꾸준히 진료를 받았는데,

결국은 안돼서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다.

 

전화하신 이유는,

지금껏 치료받아온 내용을 새로 옮길 병원 의사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오오!!! 어머니 대단해요!!

지난 3개월간 어떤 항생제를 어떤 용량으로 얼마만큼 복용해왔는지를 알면

당연히 새로 진료보는 의사도 진료계획을 잡기 수월할게다.

그래서 간략하게 항생제 처방 내역만 적어서 팩스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의사가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

소견서에 처방흐름과 약물반응까지 써서 주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보다는 직접 진료를 했던 의사가 더 많은 걸 알고있을테니.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보내준 팩스는 의외로 별로 도움이 안되는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흠...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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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일기1-독한 약이란 무얼까?

 

복약지도를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1. 이 약 독해요?

2. 수면제 들어있어요?

3. 지금 먹어도 돼요?

 

실은 난 이런 질문이 썩 즐겁지만은 않다.

자주 반복되기 때문이기도 하고(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이 어떤 선입견에 근거하고 있기도 한데,

 

천천히 시간과 공을 들여 이 오해를 풀고싶다.

막상 약국 현장에서는 '천천히'가 잘 안된다.

요이땅 하고 약 받고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뒷 사람이 기다리기도 한다면 속전속결, 한 문장으로 끝내야하고

무엇보다 내가 종종 말하기 지친다;;

 

이 약 독해요?

 

대체 독한 약이란 뭘까?

처음에는 내가 오히려 손님한테 물어봤다.독한 약이 뭐에요? 정말로 몰라서 물어봤다;;

항암제가 아니고서야 인체에 심각하게 부담을 주면서까지(독하게!!) 약을 먹을 만한 일은

(특히 의원급에서는) 왠만해선 없다.

내가 반대로 물어봤을 때 대답은 이랬다.

"내가 속이 많이 안좋거든요..", "어떤 약을 먹으면 독해서 하루종일 어지러워서 살 수가 없어요."

아하~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거나 졸리는 약을 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픈거 나으려고 먹는게 약인데 약먹고 오히려 속이 아프거나 졸려서 생활이 안되면 참 골치아프다.

 

그렇다면 대신 이렇게 질문하는게 어떨까?

"제가 속이 안좋은 편인데 괜찮나요?"라든가

"이 약 졸린가요?"

이 두 질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 대답도 달라진다.

 

간혹 다른 의미로 독한 약을 찾는 분도 있다.

약이 독할 수록 한 방에 나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나을 수 있을만큼 독하게 처방되었는지 나한테 확인하는거다.

이럴 땐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대개 연세있으신 분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계셔서 내가 다른 얘기해봤자 별로 납득이 안되기에

적당히 맞춰서 대답해드린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껏 약을 먹거나 바르면서 단 한번도 부작용이 난 적이 없다.

속이 아프지도, 배탈이 나지도, 심지어 남들이 졸리단 약이 졸리지도 않더라.

물론 이건 약을 먹은 적이 몇 번 없어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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