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김은산 <애완의 시대>

-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른바 에코 세대에게 가장 흔한 심리적 난감함은 ... 특히 젊은 남성에게서 엿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삶의 중요한 가능성조차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 끝내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정을 겪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를 도외시하는 것 같다. 오로지 결과를 염두에 둘 뿐이다. 

- 시뮬레이션에 갇힌 이들의 세계는 실수나 예외를 가능한 배제한다. 예상 가능한 결론 그리고 인풋과 아웃풋이 명확하게 드러난 대차대조표에 의해 움직인다.  ... 그들 앞에는 '부모 산성'이 버티고 있다. 부모 산성은 남만큼 그들을 누리게 하려 했고, 남만큼 가지게 하려 했고, 남에게 기죽지 않게 하겠다며 그들을 한껏 치켜세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철저히 옥죄었다. ...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자기 인생을 시작조차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그럴 기회조차 박탈되어버린 이들이 부모가 만들어놓은 틀에 안주하려 들기에 안타깝다.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삶을 유예하도록 강요받는 20대는 삶을 시뮬레이션할 뿐 시작은 못하고 있다.

- 대리인의 삶은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주인의 의지대로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애완견과 다르지 않가. 애완견은 나이는 먹지만 성장하지 않는다. 애완견은 보살핌은 받지만 존엄의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정서적인 지체와 정신적인 미숙함의 문제를 제대로 성찰해보지 못한 채 미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부모처럼. 

- 이른바 에코 세대 여성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베이비부머 어머니의 중요한 심리는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다. 이들은 자신이 살아오며 받은 정서적, 경제적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누군가 자신에게 보상해주길 바란다. 문제는 자신이 받은 차별의 경험이나 고통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같은 여성인 딸에게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 '유리 멘탈'을 가진 서른 즈음의 여성은 꽤 선병질적이고, 특히 같은 여성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두려워하고 버거워한다. 어머지는 정서적, 경제적으로 종속적이다 싶을 정도로 딸에게 의존하지만, 실제로 딸은 사랑받는다고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베이비붐 세대, 전후에 태어나 컥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세대.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왔기에 대한민국이 이 정도라도 살게 되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부모의 생계활동을 위해 조부모나 친척 집으로 보내져 인생의 초기를 보내야 했던 수많은 50대. 전후의 피폐함과 혼란 속에서 불안한 유년을 보낸 이들은 부모가 되어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좋게 말해 희생적인 그러나 먹고사는 일과 제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윤리나 공공 가치는 고려하지 않는 매우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부모가 되었다.

- 50,60대는 어떻게 파이를 키울까만 생각했을 뿐 그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재데로 고민하지 않았다. ... 결국 그들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자식 세대의 앞길을 가로막은 형국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미래에 후손들이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미래가 얻을 잠재이익을 당겨 써버렸다. 그 잠재이익을 자기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식만을 위해 투자했지만, 그렇게 투자한 자식 세대는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자식을 키우고 노후를 보장받기 의해서는 남의 자식이 내 아파트를 사줘야 하는데 이젠 내 자식은 물론이고 남의 자식도 많지 않을 뿐더러, 있다 해도 그럴 경제적 여력이 없다. 결국 윗세대는 미래를 미리 당겨서 사용했을 뿐이다. 미래의 부를 가져다 쓴 것이다. 

- 전후 세대가 입버릇허철 말하는 '박정희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먹고살게 되었다'는 찬탄은, 자신이 더이상 '잉여'가 아니어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 그들에게 이 말은 치명적인 콤플렉스이기 때문이다. ... 자신들이 한때 '잉여'였거나 '잉여'가 될 위험선상에서 매일매일을 살았다는 것을.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잉여'가 되지 않기 의해서 한국 사회에 '잉여'와 (심지어 자신의 자식까지도) '잔여'가 넘치도록  만들었다. ...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그들 중 많은 수는 과거에 경험한 '잉여'로서의 심리적 불안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후 세대, 그들은 늘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벌이를 못한다는 것은 다시 '잉여'로 전락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 다시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할 수 있다.

- 그래서 그들은 삶을 즐길 때도 모두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낸다. 건강을 위해 산 정상에 올라서도 먹고 마시고, 노래방에 노래브리러 가서도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는 것이 빠지면 모이지도 않는다. ... 그들은 여전히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아직 분배를 말하기는 이르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 박정희가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든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게 한 가장 극적인 장치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 박정희는 시민들의 투쟁으로 실각하여 망명을 간 것도 아니고, 후계자 권력투쟁에 밀려 타의로 권좌에서 내려온 뒤 위리안치된 것도 아니었다.  ... 시민들은 이승만에 대항해 죽기로 싸웠고,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는 그를 눈물로 전송했다.  ... 1980년대의 전두환은 1990년대의 청문회장에서, 백담사에서, 법정에서 반란수괴죄로 부분적으로나마 단죄되었다. ... 하지만 박정희의 1970년대는 여전히 공동의 시간으로 남아 있다. ... 만약 그가 이승만이나 전두환처럼 사라졌다면, 그 과정에서 그의 정권이 쌓은 공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거쳤다면 그는 신화로 남을 수 없었으리라. 

-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는 그 트라우마를 덮기 위해 1970년대가 간직한 마지막 공동체의 삶과 전통의 속살을 정서적 방어기제로 적극 활용한다. 그렇게 1970년대는 절절한 안타까움으로 몸에 기억되고 저장되었다. 문제는 애절함과 인간의 정이 남아 있던 그 시절을 박정희의 시대로 착각한 채, 그것을 박정희와 함께 기억한다는 것이다. 

- 2012년의 베이비부머는 왜 퇴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시절에 넘치던 것은 '잘살아보세'였고, 씨가 마른 것은 민주주의였다. 가장 센 놈이던 박정희, 그 센 놈이 다시 21세기의 기아를 경험하는 우리를 다시 잘살아볼 수 있게 해주리라고 믿었으리라. 그래서 50대 이상의 박정희 신봉자는 "20대 새끼들이 뭘 알아, 어린 새끼들한테 투표권 주면 안 되지"하고 핏대를 세웠다.  ...  2012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베이비부머가 주도한 퇴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즉 가난과 생존 투쟁으로 인한 외상, 시대적 정서와 박정희 정권의 동일시, 그의 갑작스러운 암살로 정서적, 정치적 정리 기회의 상실말이다.  ...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산업화의 역군으로 동원된 그들은 아직도 어떤 상실감과 결핍에 시달리며 '1970년대'라는 그들만의 시공간을 배회하고 있다. 

- 우린 삶의 야생성과 자연성을 죽여 없애고, 서서히 산업화의 역군이라는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국민'이 되어 애완의 시대로 들어섰다. 수많은 자연이 멸종하고, 수많은 건물이 올라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블록이 땅을 대신한다. 산은 도시의 등산객들로 울울창창하다. 거리에는 목줄을 매고 길을 걷는 애완견처럼 넥타이를 매고 종종걸음 치는 직장인의 무표정한 삶으로 가득하다. 도시는 오직 욕망으로만 생동감을 얻는다. 더 괜찮은 애완견이 되려는 듯 욕망은 넘쳐나지만 인간으로서의 소망은 피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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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21:42 2014/02/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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